발리

 

 

201910월에 57일 일정으로 발리에 간 적이 있다. ‘자발적 퇴직을 한 나에게 주는 선물 개념이었다. 발리에서 돌아오자마자, 20204월에 발리에서 한달살기를 하기 위해 비행기티켓을 예매하고 숙소 계약금을 입금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발리행이 취소되었다. 그리고 미리 구매한 비행기티켓과 숙소예약금을 돌려받기 위한 불편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속상할 만큼 금전적 피해를 보고 어찌어찌 부분적으로 환불받았다.

 

그 당시 많은 사람이 피해 금액의 크고 작음만 다를 뿐, 사전예약한 여행에 대한 취소를 통보받았다. 특히 신혼여행을 계획한 사람들의 충격이 상당하다고 들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며 여행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지만, 발리는 이전보다 나에게서 더 멀어졌다. 그동안 발리를 가려고 모아둔 돈을 탈탈 털어 쓴 것이다.

 

발리에서 보낸 짧은 시간은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구나. 나는 몸으로 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 유명한 곳이라도 오래 걸어야 하거나 수면시간이 부족한 여행은 절대 사절이다. 좋은 음식 먹으며 낯선 나라의 거리를 천천히 걷는 여행이 좋다. 그런 내게 발리는 입맛에 딱 맞는 곳이었다. 느슨하고 게으르게 지내도 되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방구석 여행을 좋아한다. 작은 공간에 여기저기 잡동사니가 쌓여있어 가끔 들여다보면 처음 본 듯한 물건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어머, 얘가 여기 있었네!’라는 소리와 함께 보물(고물이겠지?)을 찾은 기분을 느낀다. 그렇게 찾은 보물은 다시 어느 구석으로 들어간다. 결국은 자리만 이동한 셈이다.

 

생활비를 절약해서 모으고 모아 다시 발리를 가는 꿈을 꾼다. 한 달, 두 달, 일 년쯤 가서 살고 싶다. 가루다 공원이나 울루와뚜를 가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저 사누르 바닷가를 느릿느릿 걷다가 차 한잔을 마시며 지는 해를 바라보고 싶다. 발리에서는 맨발로 걷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납작한 샌들 하나 신고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 위험하다고 느끼기 전에 그 날것이 주는 자유로움이 좋았다.

 

지금의 자유가 연못에서 헤엄치기라면 발리에서 보낸 시간은 바다에서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내가 작은 민들레 씨앗처럼 느껴지면서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잠시라도 태어나기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는 곳이 발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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