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디갔어, 버나뎃


감독 : 리처드 링클레이터, 출연 : 케이트 블란쳇, 크리스틴 위그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를 좋아한다. 특히 블루 재스민캐롤에서의 연기가 좋았다. 두 영화는 오래전에 (1년 이상 지나면 먼 옛날) 보아서 감상평을 쓸지 모르겠다. 쓰고 싶은 마음은 강렬하지만 그러려면 영화를 다시 봐야 한다. 2023712일에 알라딘에 가입했다. 그동안 도서 구매는 가족의 아이디로 했다. 서재 활동을 하고 싶어 가입했지만 이제 알에서 깨어난 알린이로 걸음마를 하고 있으니 쓰고 싶은 글을 언제 다 쓸지 모르겠다.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버나뎃은 천재적인 건축가였다가 일련의 사고(?)를 겪고 엄마로서 삶에 집중한다. 네 번의 유산 끝에 태어난 딸, 비와는 친구처럼 다정한 관계이다. 남편 엘진은 마이크로소프트사에 근무하는 유능하고 일을 좋아하는사람으로 등장한다. 건축을 전공한 버나뎃이 사는 집은 낡고 빗물이 새고 있으며 정원관리를 하지 않아 이웃과 마찰이 생긴다.

 

영화가 시작하고 앞부분에서 나는 버나뎃의 집 상태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건축가라며? 집 꼴이 왜 그래? 나중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여기저기 빗물받이 양동이가 놓여 있다든가, 강아지가 갇힌 2층 방문이 열리지 않으니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유리창을 깨어 구출한다든가, 하는 장면을 보는 것이 불편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 장면은 버나뎃이 오랫동안 누르고 산 스트레스로 인해 자신과 주변을 돌보지 못해 생긴 일로 여겨진다.

 

다른 이웃들에게는 다정하지만 버나뎃과는 앙숙인 이웃 오드리와의 일화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내가 사는 시골에서 나는 동네 미친년이다. ‘두레를 중요시하는 마을 어르신들이 보기에 나는 완전 유아독존인 때문이다. 처음 이사하며 인사(음식 대접)를 한 것 말고 마을 모임에 가지 않는다. 물론 마을에서 진행하는 최소한의 공동체 활동은 한다. 다만 마을회관에서 같이 밥을 먹는다거나 정자에 모여 채소를 다듬거나 하지 않는다. 어르신들은 함께를 기대하시지만 나는 내 마음이 가는삶에 집중한다. 그래서 불편한 시선을 감수한다. 코로나에 순기능이 있다면 혼자 있고 싶은 사람혼자 있어도 되게한 것이다.

 

남편 엘진의 표현에 따르면 버나뎃은, 뉴욕을 떠나 살게 된 시애틀을 욕하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한다. 그녀는 이웃의 참견이 몹시 불편하다. 그래서 언덕에 있는 블루베리 나무를 없애면 폭우에 토사가 흘러 작은 산사태 같은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설명 없이 이웃의 요구에 따르는 것이라며 블루베리 나무를 없애 버린다. 이웃과 대화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버겁기 때문이다. 사실 버나뎃이 가장 버거워하는 것은 자기 자신인 것 같다. 그녀의 행동을 보면 내가 왜 이러지?’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최연소 맥아더상을 수상한 천재적인 건축가지만 아내로 사는 것이, 엄마로 사는 것이 너무 벅차 보인다.

 

남편이 버나뎃을 정신과 집중치료가 필요한 사람으로 확신하며 정신과 의사와 상의하고 거의 강제 입원시키려고 하는 대목에서 똑똑한 여자를 다락방에 가둔미친 여성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특히 아름답고 영리하며 약초를 잘 다루고 주변을 돕고 살아 마녀로 처형된 여자들의 이야기 말이다. 인류 역사상 잘난 여자는 죄인이었다. 심지어 버나뎃의 빛나는 지성과 당당한 태도에 매료되어 결혼한 남편이 가장 앞장서서 그녀를 몰아댄다.

 

영화를 보고 좋았던 장면은, 버나뎃이 위기에 처했을 때 앙숙인 오드리에게 도움을 부탁한 것이다. 오드리는 도움이 절실한 버나뎃에게 다정한 이웃이 되어 준다. 그리고 일반인은 갈 수 없는 남극기지에 (예외적으로) 갈 수 있도록 버나뎃을 돕게 된 사람이 내가 괴짜와 천재를 좋아해서 다행인 줄 알라남극기지에서 5주를 보내려면 각오해야 한다. 반사회적인 성격이 필요하다, 외출을 할 수 없고 샤워도 하기 힘들고 특히 혼자 지내야 한다고 말하자, 버나뎃이 내가 지금까지 20년 동안 훈련해 온 것이라고 대답하는 부분이다.

 

나도 한 20년 훈련하면 버나뎃 같은 마음이 될 수 있을까? 공동체 생활을 중요시하는 시골에서 혼자지내는 것은 수월한 일이 아니다. 그래도 나는 나에게 집중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금쪽같은 시간과 저질 체력으로 부족한 에너지와 먹고사니즘의 발목을 스스로 잘라 눈물 나게 부족한 돈을 나 외에 다른 곳에 쓰고 싶지 않다. 지금, 이 시간을 얻기 위해 그동안 나름 치열하게 살았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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