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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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골 마을 미용실은 동네 소식지 역할을 한다. 이런저런 사연들이 미용실을 돌아 나오면 소문이 된다. 일 년에 서너 번 들르는 미용실 의자에 앉아서 듣는 소식은 때로 애잔하다. 한 어르신이 눈매가 야무진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사내아이와 하늘하늘한 몸매인 다섯 살 정도로 짐작되는 여자아이 손을 잡고 들어와 아이들 머리를 다듬고 나가자, 남아 있던 어르신들이 일제히 한숨을 쉰다. ‘저 노인네, 이번에는 둘째 아들네 애들 맡았나 보네.’ ‘큰아들네 쌍둥이 십 년이 넘게 길렀잖아.’ ‘그것들 고등학교 간다고 떠난 게 작년이지, 아마?’ ‘큰아들은 여태 소식도 없다며?’ ‘둘째네는 늦장가 가서 그럭저럭 산다고 안 했어?’ ‘애들 엄마가 베트남으로 도망갔다잖아.’

 

듬성듬성 들리는 이야기 중에 열두 가구가 사는 동네에 조손가정이 세 가구인 곳도 있단다. 대개 아이들을 맡겨놓고 부모는 떠난다. 늙은 조부모는 여기저기 아프고, 남겨진 아이들은 외롭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버지라는 존재에게 맞아 멍든 곳이 시간이 흐르며 아물고 지금은 때리는 사람이 없다는 정도랄까?

 

부모라는 이름으로 자식에게 가하는 폭력은 다양하다. 몸을 상하게 하기도 하고 언어로 정신을 학대한다. 때로 아이들은 그것이 폭력인지도 모른 채 묵묵히 견뎌낸다. 가난해도 자식을 귀하게 여기는 부모가 있다. 그렇지만 많은 부모가 아이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딘가 아이들을 맡기고 떠난다. 심지어 어떤 부모는 아이들의 존재를 잊었는지 끝내 찾아오지 않는다.

 

소설의 주인공인 소녀는 부모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아이다. 소녀에게는 두 언니가 있고 아직 아기인 남동생과 곧 태어날 동생 때문에 엄마는 지쳐 있다. 아버지는 도박을 좋아하고 거칠다. 엄마는 많은 아이를 돌보고 집안을 챙기느라 힘들다. 소녀는 아버지의 손에 끌려 여름방학 동안 먼 친척인 킨셀라 부부에게 맡겨진다. 무심한 아버지는 아이에게 필요한 옷가지조차 챙겨주지 않고 차에 도로 싣고 가버려 소녀는 킨셀라 아주머니가 건네주는 낡은 옷을 입게 된다. 아이는 낯선 친척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도 몰라 불안하고 두려워서인지 자면서 오줌을 싼다.

 

젖은 매트리스에 누워서 아이는 빨리 야단맞고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면 좋겠다.’ 생각하는데 그 마음을 아주머니는 가만히 어루만진다. 자신이 잘못 했다고, 오래 사용하지 않는 방에 있던 매트리스가 너무 습기가 차서 젖었다고 말하며 소녀와 함께 매트리스를 마당으로 끌고 내려와 세탁하고 말린다. 햇볕에 매트리스를 말리고 있는데 왜 눅눅한 마음이 보송보송해지는 걸까?

 

소녀는 햇볕에 잘 마른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침을 먹고 집안일을 거들고 킨셀라 아저씨가 달릴 수 있어?’라고 묻자 우체통을 향해 달려간다. 날마다 달리며 하루하루 보통 아이처럼 사는 날들이 고여있던 소녀의 마음을 조금씩 흐르게 한다. 킨셀라 아저씨와 걸을 때, 아이의 마음은 여러 가지 생각으로 일렁이지만 애써 입을 다문다. 킨셀라 아저씨는 소녀의 손을 잡고 소녀의 보폭에 맞추어 걷는다. 소녀의 아빠는 한 번도 소녀의 손을 잡아 준 적이 없다. 소녀는 집에서의 생활과 킨셀라 부부와의 생활에서 느끼는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

 

오랜 시간 젖은 마음으로 닫혀 있던 것은 소녀만이 아니다. 어느 날, 킨셀라 부부의 마음에 있는 묵은 상처를 소녀가 알게 된다. 때때로 침묵이 필요하지만 대개 사람들은 모른다. 나도 모른다. 킨셀라 아저씨의 말을 빌리자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은것이다. 그래서 밀드러드 아주머니처럼 남의 집 일을 꼬치꼬치 캐묻고 그들의 상처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이다.

 

나는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첫째는 장남이라고 둘째는 살림 밑천이라고 환대를 받았다. 아버지는 슬하에 아들 셋을 둘 팔자라는 소리를 점쟁이에게 여러 번 들으셔서 셋째인 내가 당연히 아들이라고 생각하셨다. 그런데 딸이 태어나자 매우 실망하시고 관심을 두지 않으셨다. 심지어 서너 살까지 내 머리카락을 아들처럼 보이게 자르고 남자아이 옷을 입혀 기르셨다. 그래서 언니는 공주 옷에 머리 장식을 하고 돌 사진을 찍고 나는 사내아이처럼 짧은 머리에 도련님 옷을 입은 돌사진을 갖게 되었다. 넷째가 아들로 태어나자 아버지는 내게 여자아이 옷을 입히는 것을 허락하셨다. 생각해보면 아주 가벼운폭력이었던 셈이다.

 

아버지께서 오래오래 사셨다면 내 어린 시절의 차별에 대해 항의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아버지는 내 나이 일곱 살에 돌아가셨다. 아버지께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은 오랜 시간 구르고 굴러 작은 돌멩이가 되었나 보다. 소녀를 만나는 동안 내 안의 돌멩이가 잘게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소녀가 우체통을 향해 달리는 동안 흘린 땀방울과 킨셀라 아주머니를 위해 우물에서 물을 퍼 올리다 푹 젖은 마음이 섞여 흐르기 시작했다.

 

맡겨진 시간이 지나고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게 되었을 때 소녀는 흐르다가 다시 갇히게 된 마음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특히 사람이 주는 위안과 따듯함을 알게 된 소녀는 그 마음을 다시 흘러가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소녀의 아버지가 킨셀라 부부에게 보이는 무례함은 소녀의 가슴을 답답하게 조여 온다. 그래서 달린다. 그렇게 달려간 곳에 킨셀라 아저씨가 서 있다.

 

나는 부디 소녀의 달리기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끝내 원하는 곳에 다다르기를 바란다. 늘 마음에 냇물을 흐르게 하여 나처럼 심장이 딱딱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녀가 어떤 삶을 만나든지 킨셀라 부부가 선물한 인간에 대한 예의가 힘이 되기를 바란다. 작은 등불이 하나 켜지면 온 세상이 환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소녀가 쉬지 않고 달려간 곳에 따듯한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에 대한 배려가 땔감이 되어 밥을 짓고 사람들 사이에 온기를 나누어 주는 작은 오두막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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