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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빌 브라이슨 지음, 이미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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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너무나 난감한 상황이라 뭐라 서두를 떼야 할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조차 알 수가 없으니 더욱 난감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난 이 책을 너무나 힘겹게 읽어내야 했다.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그래서 리뷰 마감도 6일이나 늦어졌고, 그럼에도 책을 다 읽었다는 느낌으로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할 주제가 못 된다.

 

시작은 좋았다. 이번 서평 도서로 선정된 <동물학자 시턴의~>를 먼저 읽고 처음으로, 웬일로(-_-) 서평을 빨리 올린 후 이 책,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를 들고 제주도행 비행기에 올랐다. 원래는 이 책을 먼저 읽고 싶었지만, 왠지 제주 올레길을 걸으며 읽기에는 이 책이 더 제격인 듯 보였다.

 

공항으로 가는 지하철에서부터 읽기 시작한 이 책은 표지에서 얻은 느낌 그대로 무척 좋았다.  재치 넘치는, 유머가 가득한, 장난꾸러기임이 분명한, 그리고 꽤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을 작가의 감정과 생각, 말투가 문장에 고스란히 드러나 지하철과 공항을 거쳐 비행기에서까지 혼자 쿡쿡 웃으며 매우 즐겁게 제주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발랄하면서도 웃음기 가득 머금은 문장들을 탐닉하고 싶어 책을 더더 읽고 싶었으나, 3월의 제주도는 아직 너무도 추워서, 무엇보다 바람이 너무 심해서 올레길을 걷다 쉬는 중간중간 책을 읽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쉬기는커녕 어떻게든 쉼 없이 걸어야 그나마 추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서는 처음 만난 사람들과 교류를 해야 했고, 종일 걸었던 탓에 책은 채 다섯 장을 넘기기도 전에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결국 대단한 기대를 품게 했던 <호주 여행기>는 반에반에반도 못 읽은 채 서울로 돌아오게 된 나는 차라리 잘 됐다, 뭉친 근육이나 풀며 본격적으로 읽어보자 싶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호주에 대한 그의 지식과 여행 중 얻은 정보들, 그리고 만나게 된 사람들과 그들과 나눈 대화는 내가 알지 못하던 호주의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정말 부끄럽고도 무식한 말이지만, 내가 당연히 호주의 수도라 알고 있던 시드니가 사실은 그냥 지역 도시일 뿐이며 캔버라가 수도라는 사실을 알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처음에는 책이 나한테 거짓말을 하는 줄 알고 네이버에 검색까지 해봤으니 믿어도 좋다. ㅡ,.ㅡ

 

그리고 호주가 생기게 된 이야기는 책을 읽는 내내(심지어 다른 내용을 읽고 있을 때조차 떠올라) 흥미로웠으며, 또 놀라웠다. 호주가 영국의 식민지였다는 것, 영국이 본국의 잡다구리한 죄수들을 가둬두기 위해 호주로 이주시켰다는 것, 나중에 도시가 생긴 후에는 사람을 늘리기 위해 무척이나 관대하게 이주민을 받아들였다는 것, 그리고 그건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초기 영국인이 재미삼아 풀어놓은 토끼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골치 깨나 앓았다는 등 사람과 동물에 대한 이야기들은 내게 새로운 지식을 안겨주었다.  

 

문제는 책장을 넘길수록 내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재치 넘치던 그의 말본새는 점점 빛을 잃어갔고, 뒤로 갈수록 책에 대한 집중도와 흥미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시턴의 책이 사진 따위 없어도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 공간에 있는 듯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면, 이 책은 후반부로 갈수록 필히 사진이 필요한 책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가 만났던 사람들, 나눴던 대화, 본 것들을 구구절절이 늘어놓는데, 나중에는 내 몸이 베베 꼬여버리는 줄 알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뭐가 잘못된 걸까. 내가 잘못된 걸까? 싶어 무척 괴로웠고, 조금 전 다른 분들의서평을 살펴봤다. 그런데 정말 이게 어찌된 일일까. 다른 분들은 모두 이 책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단순히 취향이 다른 걸까, 내가 이상한 걸까, 아님 그분들도 사실은 지루했지만 예의상 좋은 내용을 써준 걸까.

 

그래서 서평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공짜 책 받아본 주제에 안 좋은 글을 써도 되는 걸까, 그렇다고 거짓말로 써야 하나, 엄청 고민을 하다 결국 그냥 느낀 그대로 쓰기로 결정했다. 만약 이 글을 해당 출판사에서 본다면 무척 안타깝고, 빈정이 상하며, 내가 파렴치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쉬움이 크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엄청 재미있게 읽기 시작했고 기대 만발이었는데 끝이 이렇게 흐지부지 됐다고 생각해보라. 나도 억울할 정도로 곤란하고 아쉽다.

내 사고를 정지시킨 최초의 책이라고 한 건 다름이 아니다. 내 기대가 너무나 갑자기 무너져서 멍해져버린 거고, 더욱이 서평을 써야 한다고 하니 갑자기 머리가 돌이 돼버렸다는 얘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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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학자 시턴의 아주 오래된 북극]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동물학자 시턴의 아주 오래된 북극 - 야생의 순례자 시턴이 기록한 북극의 자연과 사람들
어니스트 톰프슨 시턴 지음, 김성훈 옮김 / 씨네21북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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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래서 내가 여기로 여행을 왔지!"

 

나는 다큐멘터리를 꽤 좋아하는 편이다. 동물을 좋아하는지라 동물과 관련된 것도 좋고, 버섯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식물의 생태에 대해 다룬 것도 좋다. 하지만 역시 다큐의 최고봉은 야생 동물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다룬 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요즘은 통 다큐를 보지 못했다. 집에 TV를 없앤 지가 꽤 오래 됐기 때문이다. 빅 히트를 친 <북극의 눈물> <남극의 눈물> 같은 것들도 다운만 받아놓은 채 아직까지 차마 보지 못하고 있다. 분명 마음이 아플 텐데,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관련 책을 읽은 건 이번에 받게 된 <동물학자 시턴의 아주 오래된 북극>이 처음이고, 그래서 나름 의미가 깊다. 이쪽 분야를 좋아한다면서도 책으로 접해볼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던 터라, 다소 놀란 동시에(처음 책을 마주했을 때는 여행기라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이게 에세인가' 싶었다) 반가웠다. 독서의 영역이 확장되는 순간이었으니까.

 

1907년, 저자가 캐나다 북쪽을 탐험하는 과정을 기록한 이 책은 그가 여행을 하면서 겪었던 감정과 행동 변화들은 물론, 그가 마주친 인디언 부족과 야생 동식물에 대한 탐구, 정보를 방대하게 담고 있다. 굉장히 전문적인 지식을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나같은 일반 독자가 부담없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가장 좋은 것은 자연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오롯이 느껴졌다는 점이다. 줄지어 이동하는 순록의 무리를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고, 매혹적인 수컷 올빼미의 구애 소리를 황홀감에 빠져 듣고, 날카로운 스라소니의 눈빛과 마주한 채 온 몸을 날카롭게 관통하는 전율을 느껴야 하고, 가문비나무의 울창한 품에 자신의 몸을 부벼보고, 자연의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강의 흐름에 몸을 맡겨도 보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며 나는 몇 번이나 크게 숨을 들이쉬어야 했다. 그런다고 그가 호흡했던 자연을 내가 느낄 수는 없겠지만, 그 시간과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 공감하고자 했던 내 본능적인 행동을 헛되고 어리석다고 탓할 수는 없을 터.

 

등장하는 동물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순록이라든가, 무스라든가, 버펄로라든가 등등은 어렴풋한 이미지만 가지고 있을 뿐 정확한 생김새는 몰랐던 까닭에 그들의 모습을 눈에 새기고 인식하는 것도 내게는 지식 습득의 과정이 되었다. 간단히 살펴보면 이렇다.

 

 

<유라시아 순록> 사슴과의 포유류.

 

 

 

 

<무스=말코손바닥사슴> 유럽에서는 엘크라고도 함. 현존하는 최대의 사슴으로 몸집이 말보다 크다.

 

 

<버펄로> 물소, 들소류.

 

 

 

<아비새> 마치 고양이 울음소리 같은 소리를 낸다고 함. 도대체 새가 어떻게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정말 고양이 울음소리 같은지 궁금해서 꼭 한 번 직접 들어보고 싶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다양한 동물과 식물이 등장한다. 일일이 다 찾아보기는 귀찮아 위의 것들 외에 몇 가지만 더 찾아봤는데 그 과정이 재미있었다. 만약 이 책을 읽을 계획이 있다면 꼭 그 과정을 거쳐보길 바란다. 안타깝게도 워낙 옛날에 쓰여진 글이라 책에 사진이 없다. 당시 시턴이 필름으로 사진을 찍었다고 나와 있는데 실린 건 없으니 시턴이 연필 또는 펜으로 스케치한 것 몇 가지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알지 못한 정보들을 알 수 있었던 것도 유익했다. 에스키모와 인디언이 앙숙이라든가, 1900년대의 인디언은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남이 보는 데서 옷을 벗지 않는다든가(시턴이 강에서 목욕할 땐 벗은 몸을 보는 게 부끄러워 뒤돌아 앉아 있었다고 하는데, 완전 귀엽지 않은가!), 그들에게도 언어가 있어(미국인 신부인가 목사가 만들어줬다고 한다) 대부분의 인디언들이 글을 읽고 쓸 줄 알며 그것이 하루만에 배울 수 있을 정도로 쉽게 만들어졌다든가, 그들이 집과 아내도 내놓을 정도로 담배와 위스키에 환장한다든가, 엄청 날쌜 것 같은 스라소니의 달리기 실력이 사실 평지에서는 너무나 형편없어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이라면 몇 백미터만에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라든가, 스라소니랑 여우도 헤엄을 칠 줄 안다든가 하는 건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기약없이 알지 못할 것들이었다. 또, 카리스마 넘치고 지혜로우며 자연과 공생하며 살아가는 게 분명하다고 알고 있던 인디언들이 사실은 닥치는 대로 동물을 잡아 죽이고(그들에게는 사냥 본능이다 ㅜㅜ), 욕심을 부리며 게으름 피우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등의 내용에서는 적잖이 실망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단순히 자연을 관찰만 한 게 아니라 탐구하고 실험하기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순록 무리의 이동, 동물들의 생태를 파악하기 위해 어려움을 무릅쓰고 탐험에 나섰고, 악마 같은 모기떼가 개구리에게는 덤비지 않자 그 이유가 궁금해 개구리 몸의 액을 자기 손등에 묻히거나 맛을 봄으로써 이유를 파악하기도 했다.

 

더 좋은 건 그의 기록이 상당히 위트 있게 서술되어 있다는 것. 배도 빌려주고, 몇날 며칠 치료까지 해줬건만 잡아온 물고기 좀 나눠달라니 돈을 내라는 인디언들에게 호통을 치고 "남은 물고기를 모두 차지해버렸다"고 뿌듯해하는 그, 사람과 동물 모두를 너무나 괴롭게 하는 미친 모기떼를 둔하게 만드는 게 한 곰팡이라는 걸 알고는 "부디 그 곰팡이가 더욱더 강력해지기를! 곰팡이의 번성을 빌어 마지않는다"며 농을 치는 그는 분명 유쾌하고 농담을 즐길 줄 아는 귀여운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중간중간 몇 번 말을 하다 마는 듯한 느낌이 드는 대목이 있는 건 상당히 아쉬웠지만 다른 부분들이 좋았으므로 그건 패스. 그는 이제 더 이상 그 대자연을 느낄 수 없는 세상에 있을 것이고, 그가 보았던 대자연도 더 이상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가 보고 기록한 풍경을 그려본다. 그의 시선에 담겼던 자연, 그 삶에서 느껴지는 약육강식의 치열함과 순도 높은 에너지, 자연성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 시대의 탁한 공기를 조금은 정화시킬 수 있을 듯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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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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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가 읽고 있던 이 책을 흘깃 쳐다보는 내게 선배는 "이 책 참 좋아"라고 말했었고, 얼마 뒤 친구 집 책꽂이에 꽂혀 있는 이 책을 보고 알은 채를 하는 내게 그 친구 또한 "그 책 참 좋아"라고 말했었다. 이미 읽고 싶던 책이 잔뜩 쌓여 있는 상태인 데다 그 책들을 앞지를 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기에, 그야말로 '언젠가는' 읽어보겠다 생각하며 이 책과의 만남은 정리되는 듯 싶었다. 

하지만 다시 그로부터 얼마 뒤, 생일을 맞이한 내게 선배가 이 책을 선물로 건넸다. 한눈에 보기에도 말랑말랑하고 보송보송한 제목과 표지, 한 번 잡으면 쉽게 술술 읽힐 듯한 느낌. 거저 얻은 것이니 마다할 일이 없었고, 잠시 책장에 던져두었다 곧 집어들고 읽기 시작했다. 

책의 내용을 전혀 모르고 읽고 시작했기에 '조로증'이라는 소재는 다소 의외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외였던 건 어둡고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너무 발랄하고 산뜻하며 가볍게 풀어냈다는 점이다. 나이 열일곱에 조로증을 앓고 있는 소년 아름이나, 나이 열일곱에 아름이를 가진 그의 부모나 겉으로는 병에 대해 초연한 듯 농담을 던지고 능청스러운 말들을 주고받아 책 전반에 흘러야 마땅한 어두운 구름 따위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물론 중간중간 아름이의 상태가 위험해질 때나, 아름이의 병이 현실적으로 다가올 때, 또 아름이의 사연을 누군가 이용해먹었을 때는 슬픈 기운이 홱 깨치긴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는다. 심지어 아름이가 죽는 순간에도 슬픔보다는 따스함이 느껴질 정도니까. 

여느 사람의 한 달을 일년처럼 살고 있는 아름이, 자신의 아빠보다 더 늙어버린 아름이. 사실 나는 아름이의 삶도 상상할 수 없었지만, 그런 자식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부모의 마음이 더 참담하게 다가왔다. 작가도 비슷한 생각을 해서인지, 아름이가 "다시 태어난다면 아버지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라는 대목을 넣어놨더라. 또, 아름이가 친구인 장씨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는 자식이 건강하게 짧게 사는 게 낫냐, 아님 아프지만 오래 사는 게 낫냐"라고 묻는 대목 역시. 잠시 생각해봤는데, 나는 짧아도 건강하게 사는 쪽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 작가의 스타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은 상당히 힘이 덜어진 채로 쓰여진 듯 보인다. 여느 소설, 산문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꾸밈이나 감성적 표현이 거의 없이 평이하고 무난한 표현과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성적인 부분이 조금 약하긴 하지만 그게 조로증에 걸린 17세 소녀의 심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약점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점 때문에 신파적인 요소 없이, 군더더기 없이 더 깔끔한 느낌을 주는 건지도...
 
선배나 친구가 말했던 것처럼 '참 좋다'는 느낌은 사실 없다. 한번 읽어볼 만은 하고, 괜찮네, 라는 느낌 정도? 어쩌면 소재가 내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그네들과 나의 취향과 감성이 다른 탓이겠지. 아님 내가 메말랐거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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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 잡혀간다 실천과 사람들 3
송경동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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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 따윈 모른 채 부모님 세대가 꾸려놓은 혜택을 한껏 누리며 살아온 나는 사실 공안이란 게 뭔지, 데모라는 게 뭔지 그 관념적인 의미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세대 중 하나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며칠 전, 아빠에게서 들은 "데모 같은 거 하면 호적에서 파버릴 거다"라는 협박도 겉치레 같은 거였고, 막상 대학교에 가서 본 학생회의 운동도 내 눈엔 별 시덥잖은 걸로 보일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학교가 데모로 꽤 유명한 학교였다고는 하나 그건 선배들 세대의 얘기, 또는 당시 일부 선배들의 얘기일 뿐 내 또래와는 별 상관없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체육대회나 축제, 혹은 평소에라도 학교에서 운동이랍시고 벌이고 있는 그들의 행동은 기껏해야 확성기로 뭔가를 외치거나 민중가요를 부르는 게 다였으니까. 그걸 바라보던 나는 '하려면 제대로나 하든가'라 생각할 뿐이었다. 대체 그들이 그 노래의 뜻이나 알고 부르는 걸까? 목적의식이나 있는 걸까? 그 무리에 섞여 있던 내 친구들의 말을 빌자면 그저 선배들이 하라고 하니까, 몰려다니는 재미로, 술이나 얻어 먹는 재미로, 어찌 보면 일종의 허영심에서 그 무리에 '끼어 있을' 뿐인 거였다. 실제 지명수배를 당해 학교에 숨어 지내던 선배들의 사상 따위 그들에게 있지도 않았다, 애초에.

 

나는 데모를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 것이 우리 사회를 바꾸어왔음을 인정하고, 필요하다고도 생각은 하지만 나는 거기에 나설 용기는 전혀 없는 사람이다. 지금껏 내가 무슨 모임 따위라고 해서 참여해본 건 촛불시위 정도가 다였으니까.

그렇다고 정치나 사회 현상에 관심이 없다거나 분개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출근길 지하철에서 신문을 읽던 중 사람들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고 썩소에 욕을 내뱉을 정도로 나는 분개하고 나름의 문제 의식은 지니고 있는 편이다. 비겁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지만 행동하지 않았던 거였고, 오롯한 내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정말, 엄청, 무지하게, 숨길 수 없이 분개하고 실망했던 계기가 있으니 바로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을 읽으면서다. 이것도 이미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한참 한 후에야 읽게 된 거니, 역사공부를 한 셈이라 쳐도 꽤 늦은 감이 있긴 하다. 1970년대 편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내 분노를 폭발시키다 못해 눈물이 흐르게 한 건 1980년대 편이었다. 광주항쟁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던 그 책에서도 특히, 나이 어린 군인들을 광주학살에 참여시키기 위해 서울에서 그들을 헬리콥터로 실어나르며 막걸리를 먹이고, 빨갱이를 잡으러 간다고 속여, 그들을 짐승으로 만든 후 같은 민족, 또래, 죄 없는 광주 학생과 시민들을 학살하게 했다는 대목에서 나는 분개를 넘어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그런 짐승만도 못한 짓거리가 이 나라에서, 나랑 같은 피가 흐르는 사람에 의해 자행됐다는 게 믿을 수가 없어서. 더욱이 그 사람이 지금도 살아 숨쉬며 뻔뻔히 살고 있다는 게 너무 분하고 억울하고 부끄러워서.

 

과거의 일로 끝난 줄 알았던 그 일이 그런데,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는 데 <꿈꾸는 자 잡혀간다>를 읽으며 다시 한 번 놀랐다. 용산참사도, 대추리마을 일도, 한진중공업 일도 이미 다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그 뒤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만행이 벌어졌는지는 이 책을 통해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그런데 그 내용이 너무 뜨악한 것이어서 지금이 무슨 공안시대인 것인가 싶어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어떻게 2000년대에 그런 일이 버젓이 일어날 수가 있는지, 그런 일이 언론을 통해 제대로 보도되지 않을 수 있는지, 그래서 우리는 그 참상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할 수 있는지 어안이 벙벙한 거였다. 과연 이게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 맞는 것인가.

 

<꿈꾸는 자 잡혀간다>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책을 집어들었다 이내 그 뜻을 깨닫고는 걷잡을 수 없는 참담함이 밀려왔다. 그들이 꾸는 꿈이라야 일하는 만큼 벌고, 인간다운 대접 받고, 내 권리 행사하며 사는 것뿐인데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인격까지 포기해가며 비명횡사를 하고 버러지 같은 취급을 받으며 살아야 했을까.

 

물론 이 책에서 다룬 현실과 내가 지금 알고 있는 현실에 괴리가 있는 부분도 있어서(이 책에서 다룬 시대에서는 충분히 그런 일이 벌어졌을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내용을 100%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대부분이 사실 그대로 벌어졌다는 사실을 나는 믿는다. 믿는 것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지만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의 또 한 면의 부조리와 약자들의 삶을 알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존재 의미는 충분할 것이다. 이런 목소리가 제발 좀 더 커져 강자들에게 사람들의 의식이 지배당하지 않기를... 그래서 약한 자들도 더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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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인의 반란자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16인의 반란자들 - 노벨문학상 작가들과의 대화
사비 아옌 지음, 정창 옮김, 킴 만레사 사진 / 스테이지팩토리(테이스트팩토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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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을 뭐라고 써야 할지, 책을 읽는 내내 고민했고, 다른 책을 읽으면서도 고민했으며, 실은 이미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이 순간에도 고민 중이다. 대개는 책을 읽는 동안 어떤 느낌이 떠오르게 마련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글쎄... '아, 좋다'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 외에는 달리 단어, 표현, 문장으로 만들어낼 말들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노벨문학상 작가 16인과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이 책은 주제 사라마구, 오에 겐자부로, 토니 모리슨, 다리오 포, 오르한 파묵, 도리스 레싱, 월레 소잉카, 나딘 고디머, 가오싱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귄터 글라스, 나기브 마푸즈, V. S. 네이폴, 임레 케르테스, 데릭 월콧, 비슬라바 쉼보르스카와의 인터뷰 내용뿐만 아니라 당시의 상황과 느낌까지 꽤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책을, 글을, 글자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세계적인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거기에 많은, 깊은, 진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지 않다 하더라도 가슴 설레는 일임에 분명하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떠올렸을까,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다룰 생각을 했을까를 생각하는 건 내가 책을 읽을 때 자주 하는 생각이고 작가라는 존재에 대해 경외감을 품는 이유다.

 

이 책에서 만난 작가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다루는 사람들이다. 단순히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진지한 사회적 문제들과 거기에 대한 우리의 성찰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그들은 강하고,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다. 뭐, 그러니 '노벨문학상'이라는 엄청난 경험을 했겠지만.

 

부끄럽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내가 미리 읽어 알고 있던 사람은 도리스 레싱밖에 없다. 그것도 단 하나, <다섯째 아이>와 <런던 스케치>를 읽은 게 다인데, 사실 <런던 스케치>는 내용이 기억나지도 않고 <다섯째 아이>가 너무 좋고 충격적이라 그 외의 작품들에는 차마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는 요상하다면 요상한 변명을 해본다. 마치 다자이 오사무의 책을 읽으면 가슴이 감당할 수 없는 회색으로 차오르는 느낌이라거나, 김기덕의 영화를 보면 기분이 나빠 중간에 꺼버리면서도 또 다음 영화가 나오면 찾아 보게 된다거나 하는 것보다 좀 더 센 기분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래서 앞의 두 사람 작품은 계속 보게 되지만, 도리스 레싱의 작품은 '겁' 비슷한 게 나서 보관함에 잔뜩 담아두기만 하고 더 이상 읽어보지를 못했다.

그리고 더 심지어, 16인의 작가 중에는 완전히 처음 들어보는 이름도 다수였다.

 

글쟁이들이 어떤 식으로 사회 문제를, 우리들이 외면하고 있는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지에 대해 듣는 건 내게 좋은 경험이 되었다. 그들의 성숙함이 좋았고, 해박함이 좋았으며, 그저 나와 같은 한 인간일 뿐임을 알게 한 나약함은 더욱 좋았다(도리스 레싱의 집이 예상 외로 너무나 지저분했던 것, 노벨평화상을 받은 작가들이 공석에서 주먹다짐을 하며 싸운 후 지금껏 절교한 채로 지내오고 있다는 것 등).

그래서 이 책을 읽은 걸 계기로 그들의 작품을 하나 하나 읽어나가보자는, 나름의 계획도 세웠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 친한 선배의 아빠가 돌아가셨다. 마침 나는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오에 겐자부로 편을 읽고 있었고, "나는 불운하지 않고, 다른 일들로 인해 내 세계가 흔들리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아요"라는 그의 말이, 최근 너무나 큰 일들을 차례로 치러내고 있는 선배를 위로하기에 제격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 선배는 무척 큰 위안을 받았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사실 그 말은 그녀가 아닌 나 자신에게 던진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말을 읽고 그녀에게 전하고, 반복해서 읽으며 위로받은 건 사실 나였으니까. 그렇기에 적어도 '역시 글은, 우리를 위로해준다'는 걸 새삼 깨닫게 했다는 점에서만이라도 이 책은 내게 아주 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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