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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공지영 지음 / 황금나침반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으면서 '우와, 너무 좋다'라는 기분을 느껴본 게 정말 오랜만이다. 한 번에 읽어치우기가 너무 아까워 야금야금 뜸을 들이며 읽었고, 문장 하나 그녀의 감성 하나를 놓칠까 걱정스러워 문장을 곱씹고 또 곱씹으며 읽어야 했으며, 밥을 먹으러 간 식당에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도 '이럴 시간이 없는데, 책을 읽어야 하는데' 싶어 마음을 졸여야 했다.
처음에 저는 저 자신을 많이 질책했습니다. 엄살이 심한 것이 아닐까 하고 반성하고 고치려고 노력했지요. 그러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추위에 강한 나무가 있고 더위에 강한 나무가 있듯이, 물이 많아야 하는 나무가 있고 물이 적어야 하는 나무가 있듯이 우리는 모두가 다른 존재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고나자 저는 저 자신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뉴월 실크보다 보드라운 미풍이 어떻게 신열에 들뜬 인간의 육체를 갈퀴보다 아프게 할퀴고 갈 수 있는지 모릅니다. 하물며 신열을 유전자 속에 새겨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튼튼하고 상식적이어서 잔인해지는 존재들이 두렵습니다.
그녀는 슬프다. 그녀의 책도 슬펐고, 그 책을 읽는 나 또한 내내 슬펐다. 책의 내용이 특별히 슬픈 것들로만 들어차지도, 현재의 내 감정 상태가 우울 모드였던 것도 아님에도 나는 내내 슬펐고, 또 우울했다. 어떨 땐 그 감정이 너무 벅차올라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기도 했으나 이내 그녀의 차분한 감성에 동화되어 나 역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 참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중 가장 큰 부분은 '이혼을 세 번이나 한 여자'라는 대목이다. 그녀 나름대로는 가정 폭력이라는 명분이 있지만, 거기에 대해서도 어떤 이는 "그리도 진보적이고 해박한 엘리트들이 하나같이 그녀에게 손을 댔다면 아마 남자 문제가 얽혀 있지 않을까"라는 억측을 하기도 하더라. 물론 전혀 설득력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남의 사생활에 대해, 더욱이 남녀문제에 대해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법.
당연히 그런 사회적인 시선에서 오는 날카로움은 그녀의 실패한 경험들과 함께 고스란히 상처들로 남겨졌고, 그런 마음들이 이 책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에 담겨져 있다. J라는 인물(아마도 그녀가 이 책을 쓸 당시 마음을 줬던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으로 씌어진 글들은 그녀의 마음을 너무나 잘 담고 있어서 아프다. 어쩔 수 없이 세속적인 인물인 나는 간간히 '대체 J는 누굴까'라는 궁금증에 사로잡히기도 했지만.
특별히 공지영이라는 작가를 좋아했던 건 아닌데(책도 겨우 서너 권 읽었나) 이 책 하나로 그녀에 대한 이미지가 일순 새롭게 그려져버렸다. 작가에 대해 알고 싶어 검색까지 하는 열정을 보인 것도 아마 처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