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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 잡혀간다 실천과 사람들 3
송경동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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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 따윈 모른 채 부모님 세대가 꾸려놓은 혜택을 한껏 누리며 살아온 나는 사실 공안이란 게 뭔지, 데모라는 게 뭔지 그 관념적인 의미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세대 중 하나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며칠 전, 아빠에게서 들은 "데모 같은 거 하면 호적에서 파버릴 거다"라는 협박도 겉치레 같은 거였고, 막상 대학교에 가서 본 학생회의 운동도 내 눈엔 별 시덥잖은 걸로 보일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학교가 데모로 꽤 유명한 학교였다고는 하나 그건 선배들 세대의 얘기, 또는 당시 일부 선배들의 얘기일 뿐 내 또래와는 별 상관없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체육대회나 축제, 혹은 평소에라도 학교에서 운동이랍시고 벌이고 있는 그들의 행동은 기껏해야 확성기로 뭔가를 외치거나 민중가요를 부르는 게 다였으니까. 그걸 바라보던 나는 '하려면 제대로나 하든가'라 생각할 뿐이었다. 대체 그들이 그 노래의 뜻이나 알고 부르는 걸까? 목적의식이나 있는 걸까? 그 무리에 섞여 있던 내 친구들의 말을 빌자면 그저 선배들이 하라고 하니까, 몰려다니는 재미로, 술이나 얻어 먹는 재미로, 어찌 보면 일종의 허영심에서 그 무리에 '끼어 있을' 뿐인 거였다. 실제 지명수배를 당해 학교에 숨어 지내던 선배들의 사상 따위 그들에게 있지도 않았다, 애초에.

 

나는 데모를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 것이 우리 사회를 바꾸어왔음을 인정하고, 필요하다고도 생각은 하지만 나는 거기에 나설 용기는 전혀 없는 사람이다. 지금껏 내가 무슨 모임 따위라고 해서 참여해본 건 촛불시위 정도가 다였으니까.

그렇다고 정치나 사회 현상에 관심이 없다거나 분개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출근길 지하철에서 신문을 읽던 중 사람들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고 썩소에 욕을 내뱉을 정도로 나는 분개하고 나름의 문제 의식은 지니고 있는 편이다. 비겁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지만 행동하지 않았던 거였고, 오롯한 내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정말, 엄청, 무지하게, 숨길 수 없이 분개하고 실망했던 계기가 있으니 바로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을 읽으면서다. 이것도 이미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한참 한 후에야 읽게 된 거니, 역사공부를 한 셈이라 쳐도 꽤 늦은 감이 있긴 하다. 1970년대 편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내 분노를 폭발시키다 못해 눈물이 흐르게 한 건 1980년대 편이었다. 광주항쟁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던 그 책에서도 특히, 나이 어린 군인들을 광주학살에 참여시키기 위해 서울에서 그들을 헬리콥터로 실어나르며 막걸리를 먹이고, 빨갱이를 잡으러 간다고 속여, 그들을 짐승으로 만든 후 같은 민족, 또래, 죄 없는 광주 학생과 시민들을 학살하게 했다는 대목에서 나는 분개를 넘어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그런 짐승만도 못한 짓거리가 이 나라에서, 나랑 같은 피가 흐르는 사람에 의해 자행됐다는 게 믿을 수가 없어서. 더욱이 그 사람이 지금도 살아 숨쉬며 뻔뻔히 살고 있다는 게 너무 분하고 억울하고 부끄러워서.

 

과거의 일로 끝난 줄 알았던 그 일이 그런데,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는 데 <꿈꾸는 자 잡혀간다>를 읽으며 다시 한 번 놀랐다. 용산참사도, 대추리마을 일도, 한진중공업 일도 이미 다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그 뒤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만행이 벌어졌는지는 이 책을 통해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그런데 그 내용이 너무 뜨악한 것이어서 지금이 무슨 공안시대인 것인가 싶어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어떻게 2000년대에 그런 일이 버젓이 일어날 수가 있는지, 그런 일이 언론을 통해 제대로 보도되지 않을 수 있는지, 그래서 우리는 그 참상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할 수 있는지 어안이 벙벙한 거였다. 과연 이게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 맞는 것인가.

 

<꿈꾸는 자 잡혀간다>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책을 집어들었다 이내 그 뜻을 깨닫고는 걷잡을 수 없는 참담함이 밀려왔다. 그들이 꾸는 꿈이라야 일하는 만큼 벌고, 인간다운 대접 받고, 내 권리 행사하며 사는 것뿐인데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인격까지 포기해가며 비명횡사를 하고 버러지 같은 취급을 받으며 살아야 했을까.

 

물론 이 책에서 다룬 현실과 내가 지금 알고 있는 현실에 괴리가 있는 부분도 있어서(이 책에서 다룬 시대에서는 충분히 그런 일이 벌어졌을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내용을 100%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대부분이 사실 그대로 벌어졌다는 사실을 나는 믿는다. 믿는 것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지만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의 또 한 면의 부조리와 약자들의 삶을 알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존재 의미는 충분할 것이다. 이런 목소리가 제발 좀 더 커져 강자들에게 사람들의 의식이 지배당하지 않기를... 그래서 약한 자들도 더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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