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여우사냥
권영석 지음 / 파람북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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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뷰하는 역사소설 『작전명 여우사냥』은 일제가 민비를 암살한 사건, 을미사변에 대한 소설이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쓰신 임진택 연출가님 말씀처럼 읽는 내내, 꼭 2025년이 1895년의 옷을 입은 채 이야기가 진행되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님은 이런 시대상황을 고려하여, ‘을미사변’이라는 주제를 채택하고 이렇게 소설을 쓴게 아닐까?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지 못하면,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역사적 사건인 을미사변을 주제로한 소설이기에 당연히 실존인물들이 대거 나온다. 하지만 소설을 끌고 가는건, 민비 호위대장을 맡은 가상인물 ‘이명재 ’다. 이 인물은 동시간대에 살고 있는 개화파 성향을 다분히 섞어놓은 듯한 느낌이랄까. 덕분에 가상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실존 인물이었던 것마냥 현실성이 돋보이는 캐릭터다. 또한 실제 사건의 흐름 속에 비어있는 공간을 이명재를 끼워넣음으로서, 소설로나마 비어있는 퍼즐을 맞추며 완벽하게 만들었다.




이명재는 사실 ‘친일’, ‘친러’라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외교란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수단 아닌가. 어느 나라든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 유길준과 중전 민씨가 말하는 ‘친일’과 ‘친러’는 그런 외교가 아니었다. 자주성을 결여한 사대주의에 가까웠다. 그는 믿었다. 나라를 구하고 바꿔나가고자 한다면 백성과 함께 자주적인 힘으로 이뤄내야 한다고. p 084



제목인 『작전명 여우사냥』은 일제가 민비를 암살할 때 사용한 실제 작전명이다. 




을미사변에 대한 내 생각을 잠시 말해보면, 1895년 을미사변은 일본이 민비에게 준 ‘면죄부’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를 식민지배하고, 우리 조상들이 ‘조국’을 잃게한 일제. 그런 극악무도한 일제가 민비를 암살했으니, 백성들 입장에선 민비가 아닌 극악무도한 ‘일제’만 보일 수 밖에 없다. 고종과 민비에게는 이만한 면죄부가 또 어디있을까?



소설은 얼핏 보면 고종과 민비, 그 수족들의 부정부패를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근데 조금 다르다. 읽으면서 미묘한 균열이 느껴졌다. 저자는 모든 탐욕과 죄악을 민비에게 부여하고, 고종은 그저 민비의 말을 거스를 수 없는 ‘무능’한 존재로만 그렸기 때문이다. 민비가 쎈 여성이었다한들, 고종의 탐욕 역시 민비에 못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죄를 ‘민비’에 떠넘기고, 고종은 그저 ‘무능’이라는 단어 하나로 포장된 느낌이 참 별로였달까. 분명 고종과 민비는 공동정범인데, 소설 속 이미지는 민비가 주범이고 고종이 종범인 느낌이다.



굳이 추측하자면 고종과 민비를 통해, 2025년 내란을 주도한 윤석열과 그 뒤에 있었던 김건희를 떠올리게끔 하고자 의도한 소설적 장치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굳이 이미 폐기된 ‘무능한 고종’같은 이미지를 다시 가져올 필요가 있었을까. 비슷한 예로 고종이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얼토당토한 이미지도 한때 유명했었다. 그나마 요즘은 고종의 탐욕과 망상으로 어떤 행보를 보여왔는지, 널리 알려져있어서 다행이랄까.



늘 강조해도 부족하지만, 고종과 민비 그리고 민씨척족들의 부정부패는 정말 끊임없었다. 이 소설 시작부터 언급되는 ‘진령군’도 그렇다. 고종과 민비가 무당 진령군에게 가져다 바친 국고가 얼마이며,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서양, 일본에 철도부설권 및 산림채굴권 등 각종 이권을 헐값에 팔아넘긴건 또 얼마인가. 동학군을 토벌하라고 지시한건 대체 누구란말인가. 



동학군을 몰아내기위해 창고에 있던 개틀링건을 꺼내어 사용하게 한 것도 고종이고, 동학군을 몰아내겠다고 청나라에 지원을 요청한것도 고종이다.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들어오면, 청과 맺은 조약에 따라 일본군이 조선에 들어오는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동학군을 몰아내기 위해 청나라에 지원을 요청한 사람도 고종이다. 고종에게 동학군은 자신이 지켜야할 백성이 아니라, 자신의 권위를 끌어내리려고 하는 역도 그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다. 단연코 고종은 동학군을 토벌하려고 했지, 살리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중에선 고종이 동학군을 살리고자 묘사한 장면이 있다보니 어디까지를 소설적 허용으로 봐야할지 애매하다.



단연코 고종과 민비는 조선 백성 손으로 끌어냈어야 했고, 당연히 조선 백성 손에 처결되었어야 할 망국의 원흉이었다. 



‘어찌 일국의 왕비를 이토록 잔인하게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분노가 치밀었다. 위쪽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왔다. 마냥 슬퍼하고 있을 수많은 없었다. 그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중전 민씨의 시신을 끌어당겼다. 그렇게 중전의 머리가 지하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살리기 위해 팠던 지하통로가, 이제 시신을 옮기는 통로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p 273



그래서 더 화가 난다. 우리가 우리 손으로 처단해야만 했던 부패한 민비를 일제가 암살했다는 사실이. 우리는 암살당한 왕비를 동정하는게 아니라, 부패한 왕비를 몰아낼 정당한 권리를 빼앗아 간 일제에 분노해아한다. 조금 더 나아간다면, 부패한 왕비라는 사실을 떠나서 타국의 왕비를 잔혹하게 죽인 일제에 분노하는 것까지, 딱 거기까지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은 을미사변에 대해, 오랜시간동안 앞서 말한 분노가 아니라, ‘암살당안 가련한 왕비’에 대한 동정 여론을 호소했다. 왜? 정당한 분노를 가질 기회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민비의 악행은 숨기고 ‘일제’와 ‘잔인함’에 초첨을 맞춰, 민비를 그저 가련한 피해자로 만든 역대 정부의 영향이 컸다. 



그렇게 정당한 분노가 사라진 자리를 채운, 어줍잖은 동정심은 많은 부작용을 불러왔다. 대표적인게 바로 역사왜곡이다. ‘명성황후’ 하면 떠오르는 드라마 및 뮤지컬에서 만들어진 “내가! 조선에 국모다!!” 라고 말하는 그 이미지 말이다. 지금이야 여러 역사학자들을 통해 고종과 민비의 탐욕과 욕심에 찌든 행보가 많이 밝혀졌고, 공교육에서도 일면 다루고 있다는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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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뷰하는 『일본어 명카피 필사노트』는 지식을 탐구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문장을 쓰기 위한 노트다. 여기서 함정 하나! 우리말을 쓰기 위한 필사노트가 아니다. ‘일본어’다. 일본 TV광고, 지면광고 등에서 흘러나왔던 카피문구다. 


아이 낳기 전만해도 나에게 있어서 일본어는 제 2의 모국어...비스무리한 언어였다. 꽤 오랫동안 일본성우 덕질로 인해 자연스럽게(?) 일본어 능력이 생겼으며, 역시나 아주 자연스럽게 일본어 공인 어학시험도 고득점! 여기에 기세를 더해 관광통역사 자격증까지 취득! 일본성우 덕질 자체는 학교 졸업과 함께 끝났지만, 일본어는 능력은 남았다보니 그 능력을 여기저기 써먹기도 솔찬히 써먹었다. 


본투비 역사더쿠라 한일고대사 관련 일본 원서도 쉽게 읽을 수 있었고(개꿀), 답사를 위한 일본 여행다닐 때도 편했다. 그뿐인가? 회사에서 일본 논문 번역도 몇 년을 했다(강제 재능기부, 육아휴직하며 해방!!). 맘먹고 일본어 공부를 한건 아니었지만, 늘상 집에서 TV를 틀면 우리나라 뉴스를 보거나, 또는 NHK 방송만 틀어놓다보니 진짜 나에게 있어서 일본어는 제 2의...모국어 비스므리한 뭐 그런 언어였다. 


근데 뭐 이것도 옛날이야기. 아이낳고 화면매체를 안보고, 일본 라디오를 안듣고, 일본을 안가고, 원서도 못읽고...그렇게 n년의 시간이 지나니, 내가 일본어를 할줄 아는건 맞나 싶은 생각이 막 들기 시작했다. 바로 이 타밍에 『일본어 명카피 필사노트』를 손에 쥐었다. 



보통 카피문구는 쉬운 문장으로 구성되어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리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는 건 당연지사.


어머 세상에! 놀랍게도 이정도 수준은 읽는데 하등 문제가 없었다. 세상에!! 폼 안죽었어!!!!!!!!!!!!!! 라고 하기엔 꽤 쉬운 일본어기긴 하지만...하하하. 읽다보니 기세도 오르고! 이참에 진짜 필사도 해보자 싶어서 수첩을 꺼내들었다. 


책 제목에 『필사노트』가 들어가는데 필사를 위한 수첩을 꺼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맞는 지적이다. 이 책에는 필사를 할 수 있는 지면이 매 페이지마다 있다. 하지만 난.... 책에 메모, 낙서, 끄적이기 기타등등을 절대 하지 않는 사람! 그렇기에 수첩을 꺼내어 필사했다.


일본어 읽기나 번역이 아닌, 일본어를 직접 써본적이 언제인가 생각해보니 세상에나! 7년전이다. 2018년에 관통사 실기 준비를 위해 모범답안 외우기 위해 미친듯이 쓰면서 외웠던 그 때! 그 때 이후로 처음써보는 일본어다. 뭐 그때나 지금이나 내 글씨체는 악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어 쓰는 것 자체에는 어색함이 없는거보니 아직 폼 안죽었나보다.




이렇게 된거 슬슬 일본어 기세좀 올려서 JPT나 다시봐볼까...싶은 생각이 드는건 내 욕심인가...으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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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가 품은 식물 이야기
안진흥 지음 / 지오북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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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뷰하는 책은 역사책 『삼국유사』 속에 등장하는 식물 이야기다. 과거에 『삼국시대 꽃 이야기』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기에, 우리나라 고대 기록에 나타난 식물 이야기는 꽤 알고 있는 편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역사책 『삼국유사가 품은 식물이야기』 를 냉큼 집어서 읽었다. 



확실히 과거에 읽었던 책과 비슷한 내용도 많긴 하지만, 책을 쓴 사람이 다르기에 책 속 흐름도 다르다. 앞선 책을 쓴 사람이 원예학자인 반면, 이 책은 식물유전학자가 쓴 책이다보니, 같은 사료를 보고 해석하는데 있어서 ‘관점’ 차이가 확실하다. 이 얼마나 재미있는가!!! 



 


이것을 먹으며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 마늘, 쑥



용맹스런 호랑이보다는 인내심이 많은 곰이 인간이 되어 단군왕검을 탄생시킨 건국신화는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어려운 역경을 지혜롭게 견뎌내고 우리의 찬찬한 문화를 일구어낸 한 민족의 특성을 담고 있다. 구하기 어려운 약초를 택하지 않고 흔하게 자라는 쑥을 신성시 하여 신화에 등장한 것은 평범하고 보편적인 것을 존중하는 우리 민족의 서 민적 사상과 일치한다. p 020



마늘은 이집트가 원산지로 1~12세기에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고 추정한다. 중국 명나라 약초학서 『본초강목』에 의하면 마늘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외국에서 들어온 것을 대산이라고 하고 원래의 마늘을 소산이라고 했다. 따라서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마늘은 대산이 아니고 지금은 전해지지않는 토종 마늘이거나 야생 마늘일 것이다. 한반도에 자라는 마늘과 유사한 야생식물로 달래와 산마늘, 산부추 등이 있다. p 020



조선시대 학자 최새진은 단군신화에 나오는 산(蒜)을 달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달래는 저장성이 적고 오랫동안 두고 먹을 수 없다는 특성 상 단군신화에 나오는 마늘이라는 주장에서 힘이 좀 약하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산(蒜)이 산마늘이라는 주장은 고조선의 지리적 위치라던가 저장성 등을 고려했을때 꽤 유력한 설로 꼽힌다. 단군신화 속 ‘마늘’로 유력하게 추정되는 식물이다. 산마늘이라는 이름이 생소한 사람들을 위해 말하자면, 산마늘의 다른 이름은 ‘명이나물’ 이다. 



짱아찌로도 유명한 명이나물은 울릉도가 유명한데, 실제 명이나물은 울릉도를 포함하여 강원도 북부, 함경도 등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고조선이 존재했던 위치를 보면 현재 기준으로 보았을 때 함경도 ~ 북한과 인접한 중국지역 일대다. 명이나물이 재배되는 지역인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북반구 시베리아까지 아우르는 유라시아 민족은 산마을을 ‘곰마늘’이라 불러왔다. 여기에 TMI 하나 더 추가하자면, 고고학적으로 시베리아와 우리나라는 유사한 부분이 정말 많다.



 단군신화의 주체인 곰과 호랑이, 즉 곰 토템을 믿는 부족과 호랑이 토템을 믿는 부족, 그리고 환인으로 대표되는 하늘을 믿는 집단에 대한 부분에서도 할 이야기가 좀 있긴 하나, 이 책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으니 생략!





대나무는 합친후에야 소리가 나게 되어있으니 - 대나무


동해의 섬 하나가 감은사 쪽으로 떠내려 왔다. 섬에 있는 거북처럼 생긴 산 위에 대나무가 낮에는 둘이 되고 밤에는 하나로 합친다고 신하가 신문왕에게 아뢰었다. 왕이 바다의 용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대나무는 합친 후에야 소리가 나게 되어있으니, 성왕께서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릴 징조입니다. 왕께서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화평해질 것입니다. 용이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 장군이 한마음이 되어 이런 큰 보물을 왕께 바치도록 한 것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왕은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왜적의 침략을 막았다고 전한다. p 059



신라를 침략하던 일왕은 만파식적이 실제로 있는지 확인하고자 사신을 보내 금 50냥을 내고 피리를 보고자 하였다. 거절을 당하자 다음 해에 금 1,000냥을 보내면서 다시 보기를 청했다. 원성왕은 만파식적을 보여주지 않고 금을 돌려보냈다고 전한다. 전해 내려오는 만파식적을 잃어버렸다가 원성왕이 얻었다고 『삼국유사』에 전하는 것으로 보아 8세기 후반까지 왕실에 보관되어 있던 피리인 것 같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용이 바친 옥적이 왕에게 보배로 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p 060




‘대나무’하면 보통 사군자 속 ‘절개, 지조’ 등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다보나 자연스레 조선시대를 떠올리고 하는데, 사실상 사군자 속 대나무의 이미지는 꽤 오래전부터 형성되었다. 일연은 『삼국유사』를 집필하면서, 이차돈 순국에 대해 이미 그의 절개를 대나무와 잣나무에 비교하기도 했다. 



『삼국유사』 속 대나무는 지조, 절개 뿐만 아니라 국력 강화를 위한 요소로도 차용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傳 미추왕릉의 대나무 군사 설화와 신문왕 때 만들어진 대나무피리 만파식적 기사다. 



신라 11대 유례왕 때 이서국 사람들이 신라에 침입했는데, 이때 한 군대가 홀연히 나타나 신라군을 도와서 싸웠다. 이들은 귀에 대나무잎 귀고리를 달고 있었다. 전투가 끝난 후 이들은 홀연히 사라졌는데, 그들의 자취가 끝나는 지점인 미추왕릉 능침에 대나무잎이 수천장 쌓여있었다고 한다. 이게 바로 傳 미추왕릉 대나무 군사 설화다.



신라 31대 신문왕은 아비 문무왕이 이룬 삼국통일을 물려받은 왕이다. 문무왕은 죽어서도 신라를 지키는 용이 되겠다고 했으며, 실제로 경주에는 문무왕릉 수증릉, 감은사 등 문무왕 전설이 깃든 곳이 남아있다. 여기에 더 하나가 있으니 바로 대나무피리 만파식적 이야기다. 불기만 하면 온갖 파란을 없애고,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대나무 피리, 만파식적. 전설로 치부하기엔 『삼국유사』 속 기록에 꽤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 왕실 보물로 어느 기간까지는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이미 신라시대부터 대나무에 국력강화, 국방에 대한 이미지 형성되었다. 근데 놀랍게도! 현재 우리나라 군대 영관급 계급장이 대나무잎 모양이라고 하니, 대나무에 국방에 대한 이미지가 당연하다는 것을 나만 몰랐나보다.




 


모랑의 집 매화를 먼저 꽃피웠네 - 매화


신라의 금교와 계림은 겨울 같은 날을 보내며 봄의 신이 와서 불교가 꽃피는 시기를 기다리는 상황을 일연은 찬시로 표현하고 있다. 금교는 아도가 미추왕의 허락을 받아 지은 불사가 있는 곳으로 추정한다. 불교의 상징인 연꽃 대신 매화가 등장한 것이 흥미롭다. 연꽃이 여름에 피니 봄철에 가장 먼저 꽃피는 매화를 불법으로 선택하였을 것이다. 매화의 원산지는 중국 쓰촨성으로 알려졌으며 『삼국사기』에서 고구려 대무신왕 24년에 매화꽃이 피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초기나 그 전에 한반도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p 182



강희안은 『양화소록』에서 선비들이 매화를 귀하게 여긴 것은 함부로 자라지 않는 희소함, 아름답게 늙어 가는 모습, 살찌지 않은 자제, 꽃봉오리의 자태 때문이라고 했다. 조선시대의 매화 그림은 단순한 미와 여백을 추구한 특징이 있다. 완벽하기 않고 기교를 부리지 않으며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하던 조선 사람의 정서가 깃들어있다. p 183



매화는 식용 매화와 관상용 매화로 나뉘는데 예전에는 관상용 매화를 주로 심었다. 이른 봄에 피는 매화꽃의 매력은 꽃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그 향기 때문이다. 순천 선암사에는 수령 350~650년으로 추정되는 홍매와 백매 50여 그루가 이른 봄에 꽃핀다. 그 외에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는 화엄사의 화엄매, 백양사의 고불매, 오죽헌의 율곡매가 있다. 이름이 지어진 매화도 있다. 고려 말 우왕 때 정당문학이란 벼슬을 지낸 강희백이 산청 단속사에서 지내며 과거 공부를 하던 소년 시절에 심었다는 매화를 정당매라고 부르며 후손들이 돌봐왔다. 100여 년이 지나 ㄴ훗날 강회백의 증손인 강귀손이 그 매화를 살피러 갔더니 이미 고사하여 그 곁에 매화를 다시 심었다고 한다. 그 후에도 매화는 여러 차례 죽고 다시 심기며 정당매라는 이름을 이어가고 있다. p 185



사찰에 갈때마다 늘 의아했던 점이 있었다. 분명 부처님을 대표하는 꽃은 ‘연꽃’인데, 왜 사찰에는 항상 매화나무가 있을까? 왜 사찰의 꽃은 항상 매화일까? 였다. 심지어 봄만되면 매화명소로 손꼽히는 곳들 또한 대다수가 사찰기도 하고. 그런데 그 시작이 바로 삼국유사였다니!



삼국유사에는 승려 아도가 신라에 불법을 전하는 기사가 있는데, 여기에 매화가 등장한다. 참고로 아도가 신라에 불법을 전할 때는, 마라난타에 의해 불교가 전래되고 약 백년 뒤의 일이다. 하지만 이때도 신라에서 불교는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였다. 불교가 신라에서 자리잡는 시기는 아도가 불법을 전하는 시점에서 1백년이 더 지난, 법흥왕 재위기 이차돈의 순교 때의 일.



즉 불교가 신라에 처음 전래되었을 때는 고관대작들에게 핍박받는 등 서슬퍼런 겨울날을 지나고 있었다. 아도화상은 신라에 자리를 잡은 불교에 따스한 봄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봄을 알리는 전령인 ‘매화’를 차용한 것이다. 그렇게 아도화상에게서 시작된 ‘불법=매화’라는 규칙은 이후 승려들에게 되물림되어, 새로 생기는 사찰마다 매화가 심겨졌다. 흔히들 말하는 ‘천년고찰’에 유서깊은 명품 매화가 있는 이유다.



여기에 조금 더 생각해봤다. 매화는 사군자 중 하나라 조선 선비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꽃이다. 조선은 불교를 억압하고 배척하던 유학의 나라였으며, 실제로 꽤 많은 유학자들이 승려들을 쫓아내고, 사찰을 허물고, 그 자리에 서원을 세우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천년고찰들과 그 속에 자라난 유서깊은 매화들. 어쩌면 이 매화들이 조선시대 불교를 억압하는 유학자들에게서 사찰을 지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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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공부하게 만들 것인가 - 공부에 무관심한 아이를 위한 4가지 유형별 학습 가이드
제니 앤더슨.레베카 윈스럽 지음, 고영태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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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까지만해도 내가 읽은 육아책 이라고는 영유아 뇌발달, 그림책, 0~3세 육아 이런 책들이 대다수였다. 그런데 점점 육아책 장르가 자녀 학습 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내년이면 아이가 유치원에 가야하고, 또 눈 깜빡할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초등학교 입학시기가 오기 때문이다.



내가 맹자 어미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학교만큼은 이 동네에서 보내고 싶지 않아서 이사를 가야하나 싶은 생각을 하곤 한다. 근데 또 경제적인 면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이사라는 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거기다 환경만 생각해서는 안되는게, 이사 여부와 상관 없이 아이가 학업을 못따라갈 수도 있기에 여러 방면으로 고민하는 요즘이다. 결국 제일 중요한건 내 아이가 학업에 대한 의지가 있느냐 인데, 이게 자녀교육에 있어서 제일 어려운일이라는 건 모두가 아는 일이다. 



그렇다면! 손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모두가 포기하는 사태가 오기전에, 떡잎인 지금부터 차근차근 자기주도 학습을 할 수 있는 요소를 만들어주자. 자기주도 학습이 몸에 벤 아이는 환경이 어찌되었든간에 상관없이,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오늘 리뷰하는 『어떻게 공부하게 만들 것인가』는 자녀가 자기주도 학습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책이다. 




어떻게 해야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방송인 정은표의 육아법이 떠올랐다. 정은표 아들이 서울대 간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정은표 부부는 아이들에게 사교육을 시킨적이 없고, 심지어 공부하라는 소리를 한 적도 없다는 것. 그야말로 아이들을 방목하여 키웠는데, 오히려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고 서울대에 떡하니 붙었다. 



정은표는 자녀 자기주도 학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초등학교 졸업 전 까지 스스로 학습하는 훈련을 했고, 실제로 중학교 입학하면서부터는 일체 관여를 하지 않았다고. 여기서 말하는 스스로 학습하는 훈련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날 정해진 학습 양을 아이가 스스로 부모에게 말하고, 아이가 직접 정한 기한내에 학습하도록 하며, 다 한 뒤에는 마음 껏 놀게끔 두는 것. 그것 뿐이었다. 



정은표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아이의 성향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부모가 감독관이 아닌 길잡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으며, 아이 성향에 맞는 동기부여 방법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 내 아이를 자기주도 학습이 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여기를 주목!!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라


내 아이는 문제아가 아니다. 그저 회피하고 있을 뿐이다


부모는 학습 감독자가 아니라, 바람직한 성장으로 이끌어주는 코치다


아이 성향과 현실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다




▶ 위 네가지 사항을 인지했다면, 이제 자녀의 성향에 따른 동기부여 방식을 깨우쳐야 한다. 


마지 못해 떠밀려가는 수동형: 배우는 즐거움을 알려주자


오로지 성적만 보고 날려나가는 목표지향형: 결과가 아닌 과정 중심의 피드백을 해주자


온몸으로 거부하며 저항하는 회피형: 작은 성공 경험을 만들어주자


하나에 빠지면 몰두하는 몰입형: 내적 동기를 지켜주는 환경을 조성하자




수동형은 설렁설렁 학교에 다니면서 최소한의 공부만으로도 아주 가끔 좋은 성적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결코 학습에 온전히 참여하거나 몰입하지 못한다. 많은 아이가 수동적인 자세로 오랜시간을 보낸다. 교단에서 유명한 한 교장은 이런 학생들을 교실에서 보이지 않는 ‘중간층’이라고 불렀다. 문제를 일으키거나 강한 성취욕을 가진 학생들 사이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목표지향형은 참여 면에서는 정상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동기가 확실하고, 학교에 잘 적응하면서 시험에서 최고 점수를 받고, 몇 시간 동안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하니만 이들은 무너지기 쉽다. 이들에게 성취는 오로지 성적을 의미한다. 끊임없는 칭찬에 익숙한 위험을 회피하는 성향이 있다.


회피형은 자신이 지닌 힘을 이용해 부모와 선생님들에게 학교가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린다. 이들은 학습을 회피하거나 방해하고 숙제를 거부하며 수업을 빼먹거나 학교에 가지 않는다. 


몰입형은 네 가지 유형 가운데 실질적인 정점에 있다. 몰입형 하이들은 회복탄력성이 있고 성공에 도움이 되는 능력을 키운다. 이들은 목표를 달성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그 과정에서 장애물에 걸려 넘어져도 좌절하지 않는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사고할 수 있들 정도로 자신감이 있고 학교나 스포츠 경기장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제안하며 창의성을 발휘한다. 몰입형 아이들은 학습에 몰입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힘들게 노력하는 과정에서의 의미를 찾는다.


 - 『어떻게 공부하게 만들 것인가』 中




갓 태어난 모든 아이들은 순수한 도화지와 같다. 하여 부모가 말하는 것은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적절하게 응용하고, 사용한다. 고로 어려서부터 자기주도적 학습을 꾸준히 해온다면, 잠깐의 일탈이 있을지언정 아이든 다시금 본래 자리로 돌아온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이 사실을 생각치 못하고,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는 그 순간부터 돌변하고 만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만해도 아이가 좋아하는 거라면 미술, 음악, 체육, 과학탐구, 숲 체험등 원하는걸 모두 하게해주다가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단방에 끊어버린다. 그리고는 학교 학업 성취가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 마냥 학습 기술에 모든 시간을 사용하게 한다. 그렇게 아이들은 관심분야에 대한 창의적인 탐구활동 기회를 잃어버린다.



창의적인 탐구활동은 자기주도 학습에 있어서 제일 중요하다. 하지만 많은 부모가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학업에 정진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모든 기회를 끊어버리니 아이들은 학교 수업이 지루해지고, 더 나아가서는 학교 자체가 재미없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렇게 아이들은 공부, 학교, 학습 그 모든 것과 멀어진다. 이 모든게 부모, 선생, 학교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교육에서 소외당하고 싶은 아이는 없다. 그래서 공부가 너무 쉽거나 어려워서 제대로 해내지 못하거나 정신건강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주변 사람들과 가치관이 비슷하지 않다는 이유로 아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응한다. 즉, 배움에 관심이 없어진다. 학습에 대한 무관심이 정체성으로 변할 때 아이들의 잠재력과 기회가 단절된다. 아이들은 교과 과목과 기술뿐만 아니라 자신과 타인에 관한 배움의 기회를 완전히 놓쳐버린다. p 018



좋은 학습에 관한 원리와 실천은 참여라고 한다. 그리고 참여는 교육에서 가장 잘 알려지지 않은 비밀 가운데 하나다. 참여는 단순한 투지나 의지력이 아니라 세계에 관한 깊고 진정한 관심을 촉발하는 감정, 사고, 행동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이다. 아이들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때 지치지 않고 활력을 얻으며 능동적 학습자가 된다. (…) 참여도가 높은 학생들은 자기 인식과 내재적 동기 등이 남다르다. 이들은 외적인 기대에 부응하는 것은 물론, 내적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성취하는 경험에서 얻은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 p 019



자기 주도력은 학습에서 매우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내가 가장 잘 배울 수 있을까? 무엇이 나의 집중력을 방해하는가? 나에게 동기를 유발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자기 자신을 이해해야 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관심 있는 목표를 추구함으로써 자기 주도력을 키운다. 이 과정에서 도움을 요청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 누가 조언해줄 수 있을까? 내 앞에 있는 장애물을 극복하는데 누가 또는 무엇이 도움이 될까? 자기 주도력이 있는 아이들은 스스로 헤쳐나갈 힘을 가지고 있기에 학교에서 억압받는다고 느낄 가능성이 적다. 이들은 도움을 요청하거나 다른 방법을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갈 방법을 찾아낸다. p 057



내 아이가 자기주도 학습을 실천할 수 있는 그 날까지,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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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한국사 (20만 부 기념 광복에디션) - 5천 년 역사가 단숨에 이해되는
최태성 지음 / 프런트페이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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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15일 광복절. 어느새 우리나라가 광복이 된지 80주년이 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육아로 인해 답사를 못했지만, 과거에는 이 기간 전후로 독립운동 유적지 또는 독립운동 답사를 다니곤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답사는 어렵기에, 광복절에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한다.


오늘 리뷰하는 역사책은 큰별쌤이 쓴 『최소한의 한국사』. 


제목에서도 보이듯 이 역사책은 한국사 전체를 아우르는 ‘통사’다.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한국사 개념잡기에 딱 좋은 역사책이다. 하지만 광복절 주간인 만큼! 오늘 리뷰는 우리나라 근현대사, 그 중에서도 광복절을 왜 기념해야하는 지를 알수 있는 ‘개항기~ 일제강점기’에 대한 부분만 써보려 한다.


한국사 책을 읽을 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 바로 역사적 사건 또는 인물 평가에 대한 변화다. 과거 학교에서 국사를 가르칠 때는 한국사의 ‘빛과 영광’에 중점을 두어 교육을 했다. 공과 과가 있을 때는 공에 대한 치적은 높이 평가하는 반면에 과오에 대한 부분은 축소하여 가르치거나 혹은 생략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1대 황제 고종이다. 



내가 공교육을 받았던 시대만해도 고종은 ‘개혁군주’ 였다. 심지어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에 맞서 독립을 쟁취하고자 했던 인물로 가르치기도 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건줄 알았고, 그렇게 믿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 스스로 여러 사료와 역사책을 읽고, 많은 유적지를 다니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고종이 상상이상으로 못난 리더였고, 그로 인해 나라가 망국행 급행열차에 탑승했다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생각보다 오랜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 교양서로 나온 역사책들은 조금 다르다. 고종의 과오를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립협회 강제 해산을 시킨 주체가 바로 고종이라는 점과, 자기의 안위를 위해 서양 여러나라에 많은 이권을 팔아먹은 것, 무당 진령군에 국고에 있는 모든 재원을 털어 바친 일 등을 말이다. 


나는 공교육을 벗어난 이후에야 깨우친 사실을, 이제는 공교육에서도 가르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시대가 변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더불어 이제는 역사의 과오를 숨기지 않고, 명백하게 밝힌다는 점에서 어쩌면 서애 류성룡이 애타게 부르짓던 ‘징비’를 이제야 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게 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렇게 역사의 과오를 밝히기 시작하니,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는 매국노들이 들끓게 되었다는 사실!



안으로는 왕권 강화와 민생안정을 도모하고, 밖으로는 통상 수교 거부를 밀고나간 것이 10년간 이어진 흥선대원군의 개혁 내용입니다. 공과 과가 분명히 있지요. 흥선대원군은 개혁에 최선을 다했지만, 미래지향적인 국가를 바라기보다는 과거 왕조의 영광을 꿈꿨습니다. 이것이 흥선대원군의 한계였습니다. p 265


독립협회의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고종은 불편해졌지요. 급진적인 개혁 방안을 황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 거예요. 결국 고종은 독립협회를 해산하고, 백성들의 집회를 금지했습니다. 독립협회는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고종은 마지막 남은 카드조차 불태워버린거에요. 나라보다 자신의 권력을 지키는 일이 먼저였기 때문에요. p 281


손발이 묶인 대한제국은 1910년 8월 29일 결국 국권을 상실했어요. 우리는 8월 15일 광복절만 기억하고 있지만, 일제강점기의 시작이었던 8월 29일도 함께 기억해야 하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날 대한제국은 한국강제병합조약으로 일본 제국에 병합되고 말았습니다. 일본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일병합’ 등의 표현을 사용했으나 우리는 무력에 의해 강제로 당한 일이기 때문에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없지요. 그래서 경술국치라고 합니다. 경술년에 일어난 국가적 치욕이라는 뜻이에요. p 283


8월 15일 광복절. 공휴일이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날이다. 광복절이 무슨날 인지 모르는 국민은 없다고 생각한다(부디 없기를). 헌데, 우리가 광복을 애타게 부르짖게 된 그 날, 광복을 부르짖게 만들었던, 나라가 사라졌던 그 날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바로 이 날 한반도는 일제의 식민지가 되어, 대한/조선/한국/한 등 우리를 지칭하던 그 모든 이름을 잃어버렸다. 



한일병탄이 성공했던 이유는, 일제가 차근차근 국권 침탈을 진행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가 강압으로 빼앗아간 권리도 있었고, 고종이 자신의 안위를 유지하기 위해 넘긴 권리도 있었으며, 일제에 아부하기 위해 친일파가 넘긴 권리들도 있었다. 



20세기 초 대한제국을 배경으로 한 항일의병들의 모습을 담은 드라마가 <미스터 션샤인> 입니다. 드라마를 보면 영국인 종군기자가 의병들을 인터뷰하는 모습이 나와요. 기자는 의병들에게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습니다. 의병들은 이렇게 답해요. 우리는 용감하지만 무기가 너무 부족하다고, 이렇게 싸우다 죽을 것을 알고 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노예가 되어서 사느니 자유민으로 싸우다 죽겠다고 하지요. 실제로도 나이도 직업도 모두 다른 의병들이 목숨을 내놓고 일본에 맞서 끝까지 싸웠습니다. p 286



왕을 비롯하여 돈과 권력을 가진 위정자들이 일제에 아부하던 그 때, 한 쪽에선 일제에 맞서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돈과 권력을 가졌고, 일제에 아부하면 더 큰 부를 가질 수도 있었던 사람들과 나라가 해준 게 하나 없지만, 조국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목숨을 받쳤던 백성들이. 시간이 한참 지난 뒤, 역사는 그들을 ‘항일의병’이라 불렀다.


큰별쌤이 말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속에 나왔던 영국인 종군기자와 의병들은, 경기도 양평에서 있었던 지평의병을 차용한 장면이다. 당시 영국인 종군기자 맥캔지는 지평리에 주둔하던 의병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이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무이한 항일의병 사진이다. 이 사진들은 『지평의병 지평리전투 기념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지평리 의병을 인터뷰했던 맥캔지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은 비겁하지도 않고, 자기 운명에 대해 무심하지도 않다”고.



항일 의병에 대해 좀더 첨언하자면, 전기 의병인 ‘을미의병’과 후기 의병인 ‘정미의병’으로 나뉜다. ‘을미의병’은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 시행으로 인해 창의되었으며, 항일의병보다는 척사의병에 가까운 성격을 띈다. 정미의병은 1907년 정미7늑약으로 인해 창의된 의병으로, 본격적인 항일의병의 시작이다. 




전라도 지역에는 임병찬이 이끌던 독립의군부가 있었고, 경상도 지역에는 박상진이 이끌던 대한광복회가 있었어요. 박상진이라는 인물은 이력이 특이한데 1910년 판사 시험에 합격한 사람입니다. 당시 일본은 한국의 엘리트를 앞세워 나라를 통치하려 했어요. 그러니 직업이 판사라면 분명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을 겁니다. 실제로 그런 길을 택한 사람도 많았고요. 하지만 박상진은 미련 없이 사표를 낸 뒤 “내가 앉을 자리는 판사의 자리가 아니라 이제 피고의 자리다” 라는 믿음 아래 독립운동을 시작합니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뒤에 자신이 했던 말처럼 일본인 판사의 앞에 서서 사형을 선고받게 되었지요. p 290 



엄밀히 따지면 최재형은 조국으로 부터 받은 것이 없었습니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항상 배고품에 떨어야 했어요. 그럼에도 조국을 위해 자신이 번 돈을 전부 써버렸습니다. 한국인 마을에 회사를 차려 사람들을 고용하고, 학교를 수십 개 세웠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 한인들은 최재형 덕분에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어요. 안중근을 후원한 사람도 최재형이에요. 우리는 안중근 의사만 기억하지만, 그 활동 자금이 다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누군가는 총을 사주고, 체류 비용을 내주고, 변호사 비용을 지불해야 했지요. 그 ‘누군가’가 바로 최재형인 겁니다. 그러니 일본이 가만두지 않았겠지요. 그때 최재형도 살해당하고 말았어요. 그곳에 살고 있던 한국인들은 훗날 스탈인에 의해 강제 이주를 당하게 되지요. p 292



연해주 지역에 최재형이 있었다면 북간도 지역에는 김약연이 있었어요. 김약연은 대한제국 시기부터 1910년대까지 독립운동 기지를 만들면서 특히 교육에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가졌던 인물입니다. 김약연이 세운 학교의 이름이 명동학교인데, 밝을 명, 동녘 동 자를 써서 ‘동쪽을 밝히다’라는 뜻이지요. 즉, 명동학교는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해 어두워진 우리나라를 밝힐 인재들을 양성하는 곳이었지요. 명동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말하기와 글쓰기를 집중적으로 가르쳤습니다. 글을 쓸 때는 문장에 반드시 ‘독립’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했어요. 독립이라는 교육 목표가 확실하다 보니까 일제가 이 학교를 굉장히 괴롭혔어요. p 293



서간도 지역에서 활약한 인물은 이회영 집안의 여섯 형제입니다. 이들은 모두 엄청난 부자였어요. 그중에서도 둘째인 이석영의 재산은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섯 형제는 자신들의 가진 땅을 전부 팔고, 가보로 내려오는 책까지 싹 처분한 다음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그렇게 서간도에 와서 신흥강습소를 세웠지요. 그야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립군을 배출하기 위한 교육기관이었던 신흥강습소는 나중에 신흥무관학교로 발전합니다.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고 재정도 열악해지면서 결국 폐교되지만, 신흥무관학교는 1920년대 항일 무장투쟁의 서곡을 울리게 되었지요. p 294



당신이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의 이름은 몇이나 되는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안중근, 김구, 유관순, 안창호 같은 매우 친숙한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말한다. 물론 이 분들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후손들만큼은 독립된 국가에서 살 수 있도록, 독립을 위해 목숨바쳐 싸운 이들이 한둘이 아닐 진데, 그 많은 이들의 이름을 유명한 몇몇 독립운동가의 이름 안에 가둬둔다는 사실이.


그렇기에 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독립운동 역사를 공부하고, 우리가 아는 이름보다 더 많은 이름들이 후손들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을 알기를 바란다. 



한동안 나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던 석주 이상룡 선생의 남긴 어록과 과거에 올렸던 독립운동가 서평을 끝으로 포스팅을 마무리한다.



삭풍은 칼보다 날카로워 나의 살을 에이는데


살은 깍이어도 오히려 참을 수 있고


창자는 끊어져도 차라리 슬프지 않다.


그러나 이미 내 전택을 빼앗고 


또 다시 나의 처자를 해치려 하니


내 머리는 자를 수 있겠지만


무릎 꿇어 종이 되게 할 수는 없다.


-석주 이상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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