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클락 댄스
앤 타일러 지음, 장선하 옮김 / 미래지향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난 책을 좋아하지만 명실상부 비문학파였다. “A는 B다, B는 C다. 그래서 A는 C다” 같은 내용을 비문학 책을 참 많이도 읽었다. 반면 “A는 Z다”라는 문학 책은 솔직히, 조금은 어려웠다. 분명 문자, 즉 텍스트를 읽는는 것 자체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해설서나 설명문 형식의 문자일 뿐,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텍스트는 어려웠다. 아마 역사 서적을 주로 읽다보니 생겨난 일종의 독서편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뭐 물론 장르소설 같이 예외가 있기는 했지만, 대체적으로 비문학 서적을 선호했다.
그러다 작년부터 제대로 된 문학 소설을 하나, 둘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대체 어떤 시각으로 이런 책들을 읽어야 하는지 도통 감이 안왔다. 그래도 무턱대고 읽기 시작하다보니, 문학 소설을 대하는 자세가 조금은 변했다. 과거에 문학 소설은 읽기가 어려워 섣불리 다가설 수 없었다면, 지금은 조금은 어렵지만 막상 다가서면 곁을 내주는 존재랄까? 우와, 새삼스럽지만 놀라운 내 모습! 조금만 더 읽다보면 문학소설과 완전히 친해질 날이 올지도.

이번에 읽은 책은 항상 수동적인 삶을 살았던 한 여성 윌라 드레이크가 처음으로 본인의 의지에 따라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따라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선다. 정확히는 새로운 삶을 찾아 나가기까지,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녀의 삶 속에 들어가 어린시절부터 노년의 모습까지를 보여준다.
11살 어린아이였던 1967년, 한창 미래를 꿈꿀 청춘인 1977년, 갑작스레 남편이 사고로 떠난 뒤 자식들과 혼자 남겨진 1997년. 그리고 현재 2017년.
책의 시작은 11살의 윌라부터 시작한다. 어린아이의 눈에 보이는 가족의 모습은, 이 아이가 어째서 수동적인 삶을 살수밖에 없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언젠가 아빠는 “생각할 시간”이라고 말했었다. 엄마는 아빠에게 소리를 지르고 발을 쿵쿵 구르거나, 윌라의 뺨을 때리거나(뺨을 맞는 건 정멀 얼얼하고 수치스런 경험이었고, 당사자에게는 말도 못하게 무서운 일이었따) 아니면 일레인을 붙잡고 누더기 앤 인형처럼 마구 흔들고 나서는 양손으로 자기 머리를 쥐어 뜯을 것처럼 세게 잡아당겼다. 그래서 손을 놓은 후에도 양쪽 머리가 부스스하게 그대로 일어나 있었다. 그러고 나면 엄마는 충격에 빠져 쩔고 있는 온 집안을 뒤로한 채 혼자 사라졌고, 그럴 때마다 아빠는 “신경쓰지 마라, 엄마는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한 것 뿐이야”라고 말했다. P 032
“달걀 프라이를 해줄까, 스크램블, 아니면 삶아줄까? 어떻게 해줄까, 공주님?”
불같이 화를 내는 순간이 지나고 나면 늘 이런식이었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엄마. 다짜고짜 혼자 집을 나가버렸다는 사실은 중요하지도 않고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마치 아무 일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P 044
그래도 몇 번은, 정말 무자비하게 화를 냈던 몇 번(엄마가 음식을 나누어주는 서빙 수저로 윌라의 뺨을 갈겨서 눈에 멍이 들었을 때, 그리고 일레인의 인형을 벽난로에 집어 던졌을 때)은 그러고 나서 마치 영화 속 여주인공처럼 둘을 양팔로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다. (중략) 옛날에는 엄마가 그러면 윌라도 따라 울면서 엄마에게 매달려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고 쏟아놓으면서 당연히 용서한다고 말했었다. P 045
11살 윌라는 가족이라는 미명하에 가정폭력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누가 봐도 화목한 가정이지만, 그 속은 이미 썩을 때로 썩어 문드러져버린 가정. 엄마는 감정 조절이 안되었고, 그 때마다 윌라와 여동생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그러다 정신이 돌아오면, 본인이 후드려 팬 딸들에게 울며 사과를 한다. 이렇게 길 잃은 엄마의 분노는 딸들에게만 뻗친게 아니라, 남편에게도 향했다. 딸들과는 달리 성인이었던 남편은 그런 엄마의 분노를 받아주지 않았고, 분에 못이긴 엄마는 수시로 가출을 한다. 윌라는 이런 가정에서 자랐다. 수시로 분노를 표출하는 엄마와, 분란이 생기면 언제나 조용히 넘어가길 바랬던 아빠. 어떤 가정에서 자라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의 삶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진대. 다 큰 성인이 된 윌라가 어째서 수동적인 삶을 살수 밖에 없었는지, 이미 11살의 윌라에게 그 해답이 있었다.
“윌라, 난 자기를 사랑해. 맨 처음 봤을 때부터 자기와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했는걸. 난 곧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할 텐데 자기만 학교에 남겨놓고 가는 건 상상할 수도 없어. 자기도 나와 함꼐 가야지”라고 데릭이 말했다.
“나는 졸업도 안하고?”
“캘리포니아에 가서 학교를 마쳐도 되잖아.” P 053
“그냥 그 남자가 장난을 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서요.” 데릭이 말했고, 윌라를 보며 얘기했다. “사실 자기가 총이 있다는 그 남자 말을 그냥 믿은 거잖아. 어쩌면 그 남자가 가만히 앉아 있기 지루해서 ‘심심한데 옆에 앉은 도도한 여대생에게 장난이나 좀 쳐볼까’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P 066
“제가 윌라에게 청혼했고 윌라가 청훈을 받아주었습니다. 전 올해 여름이 좋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윌라는 졸업을 할 때까지 가디라고 싶어 해요. 물론 전 키니에서와 마찬가지로 캘리포니아에 가서도 학업을 마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윌라를 설득해서 마음을 돌리길 바라지만, 아무튼…….” P 086
여대생 윌라의 남자친구 데릭, 그는 윌라가 결혼하고 싶어했다. 정확히는 윌라가 학업을 포기하고, 결혼해서 자기를 따라 타 지역으로 가기를 바랬다. 누가봐도 좋은 남편감이 아닌 데릭이다. 그런 데릭이지만 윌라는 그를 좋아했기에, ‘약혼’으로 끝내자고 이야기한 뒤 부모님께 데릭을 소개시켰다. 하지만 그자리에서도 데릭은 윌라가 결혼을 받아들였으며, 오로지 자기 편한대로 윌라가 학업을 포기하고 자기를 따라 나서기를 바랬다. 그러니까, 데릭은 윌라의 의견은 안중에도 없었다. 윌라를 본인과 동등한 사람으로 본게 아니라, 자기 소유권 하에 있는 아랫사람으로 본거다. 저런 발언을 윌라의 부모님 앞에서도 개의치 않게 한 데릭이었는데, 윌라의 부모님은 글쎄. 엄마는 기분파였고, 아빠는 그저 조용히 넘어가려했다.
아마 정상적인 부모에게 자란 윌라라면, 제대로 된 애정을 받고 자란 윌라였다면 저런 남자를 선택하지 않았으리라. 윌라는 비정상적인 애정을 받으며 자랐고, 본인 스스로도 부모님의 그런 행동이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어느정도 크고 나서였지만. 결국 이런 환경으로 인해 윌라는 하루라도 빨리 부모에게서 벗어나려는 선택을 하게끔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분란을 일어나지 않도록 그대로 둔 아빠를 보고 자란 윌라는 어쩔 수 없이, 데릭과의 분쟁을 피하기 위해 이 결혼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결국 윌라의 불완전한 어린시절은 인생을 바꾸는 일생 일대의 선택까지 영향을 미쳤다.
“괴팍한 엄마 밑에서 시달리는 아이들을 보면 제일 슬픈 게 뭔지 알아? 그런 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은 또 엄마에게 두 팔을 벌리고 나가가 위안을 얻어야 한다는 거야, 정말 불쌍하지 않아?” P 101
윌라는 아들들이 집에서 나간 후에도 계속 엄마에게 연락을 할지 궁금했다. 두 아들이 어린 시절을 좋았다고 기억할까, 아니면 엄마를 향해 어떤 불만을 쌓아 놓고 있는 건 아닐까? 윌라는 늘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녀가 생각하는 좋은 엄마는 언제나 ‘예측 가능한’ 엄마였다. 자식들이 엄마 기분이 어떤지 몰라서 노심초사하지 않게 하겠다고, 아침마다 방문을 살짝 열고 엄마의 기분을 살피며 오늘은 어떤 하루가 될까 불안해하거나 걱정하기 않게 하겠다고 윌라는 굳게 다짐했었다. P 110
이 책을 소개하는 문구 중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희망과 자기 발견, 또 다른 기회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퓰리처상 수상작가 앤 타일러의 매혹적인 소설!”
희망과 자기 발견이라, 분명 윌라는 노년에 희망과 새로운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처음으로 본인을 위한 선택을 했다. 하지만 조금은 씁쓸해졌다. 윌라의 어린 시절이 가정폭력으로 점철되어 있지 않았다면, 혹은 윌라의 아빠가 딸들을 위해 무언가 조치를 취했다면, 윌라의 엄마가 스스로 본인의 잘못을 깨닫고 바뀌려 노력했다면, 윌라는 조금 더 빨리 희망을 찾았을 거고, 자기 자신을 찾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
"괴팍한 엄마 밑에서 시달리는 아이들을 보면 제일 슬픈 게 뭔지 알아? 그런 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은 또 엄마에게 두 팔을 벌리고 나가가 위안을 얻어야 한다는 거야, 정말 불쌍하지 않아?" - P101
윌라는 아들들이 집에서 나간 후에도 계속 엄마에게 연락을 할지 궁금했다. 두 아들이 어린 시절을 좋았다고 기억할까, 아니면 엄마를 향해 어떤 불만을 쌓아 놓고 있는 건 아닐까? 윌라는 늘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녀가 생각하는 좋은 엄마는 언제나 ‘예측 가능한’ 엄마였다. 자식들이 엄마 기분이 어떤지 몰라서 노심초사하지 않게 하겠다고, 아침마다 방문을 살짝 열고 엄마의 기분을 살피며 오늘은 어떤 하루가 될까 불안해하거나 걱정하기 않게 하겠다고 윌라는 굳게 다짐했었다. - P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