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의 미술관
최정표 지음 / 파람북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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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개개인이 부를 쌓기 이전까지, 미술작품은 왕이나 귀족같은 전통적인 부자들의 수집품이었다. 이는 어느나라나 비슷하다.  그러다 여러 이유로 왕실이 사라지거나, 과거보다 그 힘이 줄어들면서 왕실이나 귀족들이 소유하던 미술작품들이 대거 민간에 공개되기 시작했다. ‘국립미술관’ 또는, 신흥 부자들이 건립한 ‘미술관’을 통해서. 


‘미술관’은 대표적인 문화시설이다. 이런 문화시설은 흔히들 말하는 선진국에 많고, 유명 미술관들 역시 우리가 말하는 선진국에 자리하고 있다. 또한 미술관은 돈 많은 나라에 있는 시설이며, 미술은 돈이 많은 사람들이 수집하는 수집품이라는 인식이 꽤 널리 퍼져있다. 왜 그럴까?


‘미술’은 고고하고 독창적인 예술 분야라 생각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의 원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왜? 미술관 같은 문화시설은 기본적으로 방문객이 많아야 유지된다. 대내외 방문객이 많아야 그만큼 미술관 수입원이 늘어나고, 수입원이 늘어나야 더 많은 미술작품을 사들이고, 그 미술작품에 걸맞는 수준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 뿐인가? 외국 관람객이 많은 미술관을 보유한 나라는, 외국 관람객이 체류하며 사용하는 관광비까지 +@의 수입원이 생긴다. 이렇게 늘어난 수입원으로 다시 질 좋은 미술작품을 사고, 그에 걸맞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로 미술관은 그 자체로 규모의 경제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소재이기도 하다. 


작품을 만드는 화가(또는 조각가 등) 역시 자신의 작품을 팔기 위해선, 작품을 사는 고객의 니즈를 맞춰야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권력을 지닌 독재자를 찬양하는 작품을 만들곤 한다. 미술을 뿐만 아니라 음악가, 건축가 등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작품을 팔아야 ‘돈’이 되고, ‘돈’이 있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 



물론 한평생 자기만의 길을 예술가들도 분명 있다. 워낙 가진게 많아서 남의 ‘돈’이 필요치 않은 사람, 또는 ‘돈’이 없어서 생계가 막막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내 갈길 가는 사람. 아이러니하게도 후자에 속하는 예술가들이 남긴 작품들은, 후대에 가면 엄청난 값어치가 매겨지곤 한다. 예컨데 고갱이나, 이중섭 같은..


결과적으로 ‘돈’과 미술은 뗄레야 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가? 한 경제학자가 미술관에 꽂혔다. 바로 이 책 『백야의 미술관』의 저자 최정표님이다. 이 경제학자가 미술관에 꽂혔고, 그렇게 북유럽 미술관 답사를 다녔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카를스베르 미술관 in 덴마크


카를스베르미술관은 칼스버그 맥주로 유명한 카를스베르 가문에서 만들었다. 창업자 야콥센의 아들 카를 야콥센이 미술관 설립의 주역이다. 카를 야콥센은 수집광이라고 불린 당대 최고의 미술품 수집가였다. p 040




아버지 야콥센도 미술품 수집에 조예가 깊었지만, 그의 아들 아들 카를 야콥센의 미술품 수집은 아비를 능가했다. 심지어 그의 아내 역시도 미술품에 조예가 높았다고 한다. 그렇게 2대에 걸쳐 수집한 미술품을, 돌연 국가에 기증했다. ‘좋은 장소에 미술관은 만들어야 한다’라는 조건을 내세우며. 어떠한 연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들의 미술품 기중은 덴마크 국민들은 물론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에게 유명 미술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렇게 카를 가문의 미술품 기증으로 시작된 ‘카를스베르 미술관’. 그 곳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 중 유독 눈에 띄는 작품이 있다. 프랑스 대표 화가인 에드와르 마네의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과 <압생트 애주가>. 특히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은 전쟁이 주는 폭력이 얼마나 잔혹한지를 알려주는 그림이기도 하다. 마네는 스페인 화가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이라는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이 그림을 그렸고, 이후 후대 화가들이 이런식의 전쟁 폭력을 고발한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유럽 화가들이 그린 전쟁 폭력을 고발하는 그림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아주 유명한 화가도 있다. 바로 피카소. 피카소가 전쟁 폭력을 고발한 작품의 이름은 <한국에서의 학살>. 이 그림은 6.25전쟁 당시 황해도 신천군에서 벌어진 미군의 민간인 학살사건을 그린 것이라 한다. 하지만 이 그림에 대해 알고 있는 한국인이 얼마나 있을까.




오르드룹고르미술관 in 덴마크


어느 나라나 새로운 산업이 일어나면 큰 재벌이 생겨난다. 미국은 석유가 나오면서 록펠러 재벌이, 자동차가 나오면서 포드 재벌이 만들어졌다. 한센 재벌은 덴마크에 보험업이 들어오면서 만들어진 재벌이다. 덴마크 보험업계에서는 그의 족적이 매우 크다. 보험회사 두 개를 일구어 덴마크의 대표적 보험회사로 키워냈다. p 89


 보험업은 현금 유동성이 가장 높은 사업이다. 보험료는 계속 들어오는 데 보험금은 미래에 지급하기 때문에 돈이 계속 쌓여간다. 그래서인지 보험업으로 성공하면 재벌로 등극하고, 다른사업으로 재벌이 되어도 보험업을 시작한다. 우리나라도 삼성그룹이 ‘삼성생명보험’과 ‘삼성화재보험’을 가지고 있다. p 90


 

한센은 선구안을 가진 사업가였다. 무엇보다 그는 어려서부터 친구의 영향으로 그림을 좋아했다. 그의 아내역시 그림을 좋아헀다. 한센 부부는 한평생 미술 작품을 사모았고, 그 작품들을 전시하기 위해 지은 대 저택이 바로 ‘오르드룹고르미술관’의 시작이다. 그렇게 보험업으로 재벌에 등극하며, 멋진 작품들을 사모으던 한센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그때 한센은 자신이 모은 프랑스 작품 82점을 팔아야만 했다. 그가 판 작품에는 지금도 유명한 세잔, 마네, 고갱 등의 작품이 포함되어있었다.


한센은 눈물을 머금고 프랑스 작품 82점을 팔았는데, 이 작품들을 산 사람은 놀랍게도 일본인 사업가였다.1922년에 일본엔 이미 훌륭한 미술작품을 사모으는 컬렉터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는 점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동시대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잃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던 우리나라 미술사는 어땠나. 매우 뼈아픈 대목이다. 한센이 판 이 작품들은 현재 도쿄 국립서양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노르웨이국립미술관 in 노르웨이


복지가 넘사벽이라는 노르웨이. 사회안전망이 워낙 탄탄하며, 국민들의 행복지수도 높다는건 유명하다. 하지만 그런 노르웨이도 약점은 있다. 독립 역사가 짧다보니,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할때 미술계가 약한게 사실이다. 실제로 우리가 알고있는 유명한 화가들은 대게 프랑스를 필두로 그 주변 유럽국가들이 주를 이룬다. 당연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들도 해당 국가들이다. 그렇기에 노르웨이 정부는 더욱 문화시설에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그래서 노르웨이 정부는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을 개관하며 문화 인프라 사업에 열중했다.



문화시설은 인구가 많아야 만들어질 수도 있고 유지될 수도 있다.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소장품을 보유하면서 높은 수준의 미술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방문객이 많아야 한다. 따라서 기본적인 내수가 확보되면 훌륭한 미술관을 키워나가는 데 유리하다. 노르웨이는 수도 오슬로의 메트로폴리탄 지역인구가 170만 명으로 노르웨이 전체 인구의 1/3이나 된다. 이런 인구 밀집에도 국가 자체의 인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오슬로는 파리나 런던 같은 대도시가 될 수 업사. 그런 약점에도 정부는 문화 인프라를 서유럽의 대도시에 뒤지지 않게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p 131



다행스럽게도 19세기 말 즈음, 노르웨이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가 배출된다. 모두가 알고 있는 그 화가, 바로 에드바르 뭉크다. 에드바르 뭉크의 탄생은 후대 노르웨이 사람들에게 많은 문화적 자산을 물려주었다. 실제로 노르웨이에 있는 노르웨이국립미술관을 찾는 사람들 대다수가 뭉크의 그림을 보기 위함이다. 


또한 노르웨이에는 뭉크미술관이 따로 있을 정도로, 뭉크는 노르웨이 미술계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간과한 사실 하나. 사실 노르웨이에는 뭉크 이전에 크리스티안 달 이라는 걸출한 화가가 있었다. 뭉크가 나타나면서 잠시 주춤했지만, 크리스티안 달 역시 걸출한 화가임에는 틀림없다. 무엇보다 크리스티안 달은 노르웨이국립미술관 창립멤버이자, 자신의 작품을 전부 이 미술관에 기증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보통 유럽 미술관의 시초는 왕가 또는 귀족들의 소장품에서 시작이 기본이다. 하지만 노르웨이 미술관은 조금 달랐다. 노르웨이 정부가 세워진 뒤 정부에서 나서서 미술관을 세우고, 정부에서 미술품을 수집하거나 민간의 기부에 의존했다. 실제로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에 있는 뭉크 작품 80%는 민간의 기증이라고 한다. 왜그럴까 생각해봤는데, 노르웨이 역사를 생각해보면 생각보다 답은 간단했다. 


노르웨이는 꽤 오랜기간 덴마크와 한 몸이었다. 연합이라고 해야하나? 지배국이라고 해야하나 뭐 여튼 그러다가 19세기 초가 되어서야 노르웨이가 독립을 한다. 즉 노르웨이가 독립을 하기 전까지, 노르웨이를 지배한건 덴마크 왕실. 덴마크 왕실에서 수집한 미술품은 당연히 덴마크 미술관에 기증할테니, 당연하게도 노르웨이 몫 왕실 미술품이 없는 것이다. 


문득 일제강점기 때가 떠오른다. 일제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수집한 많은 미술작품들을 일본으로 무단반출을 했다. 실제로 일본 내 있는 박물관, 미술관에는 우리나라에서 약탈한 작품들이 많다. 물론! 덴마크 - 노르웨이와는 다른 환경이긴하다. 어찌되었든 덴마크 - 노르웨이는 연합이었으니까. 그리고 덴마크 왕실이든 귀족 부자들이든 지들 돈으로 수집품을 사모은거니, 무분별한 약탈을 일삼은 일제와 비교하면 안된다. 아 괜시리 덴마크에 미안해지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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