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고전 소설에 등장하는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가 있다. 정확히는 로마시대 시인 오비디우스가 지은 『변신 이야기』 속 한 챕터의 주인공이다. 피그말리온 효과의 그 피그말리온이 맞다. 고전 속 피그말리온의 일화에서 파생된거니까. 고전 속 피그말리온 이야기는 대략 이렇게 진행된다.
키프로스에는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가 살았다. 그는 몸을 파는 여성들을 혐오했다. 여성혐오가 심했던 그는 집안에 틀어박혀, 자기 이상에 딱 들어맞는 여인상을 조각했다. 그 여인상은 새하얀 상아로 조각했다. 피그말리온은 언제나 이 여인상과 함께했다. 여인상을 ‘연인’으로 대했다. 피그말리온은 연인에게 옷도 갈아입히고 입맞춤도 했다. 하지만 이 연인은 어디까지나 조각상, 상호작용은 단연 없었다. 결국 피그말리온은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여인상을, 진짜 여자로 변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아프로디테는 피그말리온의 사랑에 감동하여 소원을 들어주었다. 여인상이 생명을 얻어 진짜 여인이 되었고, 그 여인은 피그말리온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의 이름은 ‘파포스’다.
이 이야기는 ‘진실한’ 사랑 이야기 대표주자가 되었고, 수많은 예술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 심지어 여인에게 이름도 생겼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은 후대사람들이 붙인 이름일 뿐, 원전에는 여인의 이름이 없었다.
고대에는 피그말리온 이야기가 각광받았다. 아니 고대를 지나서 중세. 중세를 지나서 근세까지도 쭈욱. 이런 피그말리온 이야기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반대로 이야기해보자. 피그말리온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각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부계사회(남성중심사회)다. 피그말리온이 쓰였던 로마시대는 남성이 권력을 쥐고 있었고, 그것이 정당하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던 시대였다. 부계사회가 시작되기 이전, 그러니까 철기 문명이 들어서기 전까지만해도 전 세계적으로 모계사회였다는 역사적 흐름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확실한 건 그런 사회적 환경에 힘입어 피그말리온 이야기가 아주 오랜기간 사랑을 받았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지금은 21세기다. 2천년이 흐른만큼 사회상도 바뀌었고, 가치관도 달라졌다. 여기저기서 피그말리온이 진정한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지, 그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요즘 말로 피그말리온을 해석해보면 이렇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인 관점에서!
여성혐오가 지나쳐 집안에만 틀어박혀 살던 피그말리온. 심각한 여성혐오자였지만 사실상 집안에서 그가 만들었던 건 하얀 살결을 표현하기 위해 대리석으로 조각한, 아름다운 여인상이었다. 심지어 그 여인상을 실제 여인이라 생각하며, 자기 연인이라 생각했다. 옷갈아입히고, 포옹하고, 입맞추고, 같이 자고.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 하나. 피그말리온의 여성혐오는 ‘선택적’ 여성혐오라는 사실이다. 즉 피그말리온이 혐오하는 여성은 ‘자기 주장이 있는 여성,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여성’인 것이다. 피그말리온은 그저 자신이 만든 여인상처럼 자기에게 순종하는 여인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남성우월주의자다. 아니, 그 뿐만이 아니다. 피그말리온은 자기에게 순종하면서, ‘새하얀’ 피부를 가진 아름다운 여자를 좋아했다.
아름다우면서 자신에게는 순종적인 여자를 원했던 피그말리온. 주변에 그런 여자가 없어서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찌질이. 피그말리온은 그저 찌질한 남자였다.
피그말리온은 여신 아프로디테 은혜로 여인상이 정말 여인이 되었을 때도, 그녀에게 이름하나 주지 않았다. 아니, 이름을 주었을지도 모르지만, 원전 속에 이름이 없었다. 그리고 이 소설은 2천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아주 유명하고 진실한 사랑이야기 중 대표작이 되었다. 심지어 후대 사람이 이 여인상에게 ‘갈라테이아’라는 이름까지 지어주었다.
갈라테이아.
과연 이 이야기는 모두가 인정한 진실한 사랑이야기가 맞을까?
누군가에게만 듣기 좋은 사랑이야기는 아닐까?
매들린 밀러도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매들린 밀러, 그녀는 고대 고전 연구를 전공자였다. 그녀는 익히 알려진 고전 『갈라테이아』를 다시 썼다. 시점을 바꿔써. 원작이 누군가에게만 좋았던(예컨데 ‘피그말리온’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 시점이었다면, 저자가 쓴 『갈라테이아』는 이름도 없었던 여인 시점이다.
원작에는 없었지만, 분명히 있었을 상황. 하지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는 주제를 위해 생략된 현실적인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이 이 책에서 살아났다. 무엇보다 원작에서는 생략되었던, 하지만 누구나 추측가능한 피그말리온의 찌질함이 고스란히 살아났다.
내가 탄생된 이후에 남편은 기를 쓰고 나를 안에 가두어두려고 했지만 하인들 보는 눈도 있었고, 게다가 사람들이 조각가의 아내를 두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특이한지 모른다는 둥, 그런 미모는 신이나 빚어낼 수 있다는 둥. 그걸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지만 갑자기 너도나도 남편의 작품을 갖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남편은 돌을 깎고 또 깎아 처녀를 만들었고, 어느 날 나는 물었다. 그 중에서 살아 움직일 작품이 하나라도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p 15
돌이었지만 사람이 된 여인. 그녀는 항상 침대 위에 누워서, 남자가 고용한 사람들의 감시를 받는다. 남자가 방에 들어왔을 땐 항상 남자가 원하는 말과 행동을 해야한다.
“자고 있나?”
그가 물으며 방으로 들어왔다.
“이 무슨 바보 같은 질문이야. 이 여자는 대리석에 불과한데.”
그는 침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두 손을 들었다.
“오, 여신이시여! 어찌하여 저는 이런 베필을 찾을 수 었는 것일까요? 이토록 완벽한 여인이 어찌하여 인간이 아니라 대리석이라야 합니까? 만약 그녀가-” p 17
“하지만 분명해, 따뜻하다고 내 목숨을 걸고 맹세할 수 있어. 오 여신이시여, 이것이 꿈이라면 깨지 않게 하여주소서.”
그는 잠시 후에 자기 입술을 내 입술에 대고 눌렀다.
“살아나라. 살아나라, 내 생명, 내 사랑이여. 살아나라.”
나는 바로 이 순간, 이슬을 머금은 새끼 사슴처럼 눈을 떠 마치 태양처럼 나를 내려다보는 그를 보고 경외와 감사가 담긴 탄성을 조그많게 터트려야 한다. 그러면 그가 나를 따먹는다. p 19
그가 손으로 뭔가를 가리키며 얼굴을 찡그렸다.
“저게 뭐지?”
나는 내 배를 내려다보았다. 희미한 은색 실금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우리 아이가 남긴 흔적이잖아요. 살이 튼 자국이요.”
그가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언제 생긴 거야?”
“아이가 태어났을때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이었다.
“보기 싫구먼. 당신이 돌이라면 깎아서 없애버릴텐데.” p 25
생략되었던 고전 속 피그말리온의 찌질함. 그가 정말 이랬을지는 모른다. 그저 가정일뿐. 하지만 적어도 고전 속 피그말리온 이야기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가 절대적으로 여인상에게 친절했던 남자로는 보이지 않는다. 추측되는 찌질함의 정도가 달라질 수는 있어도, 뭐. 진실한 사랑이야기의 남자 주인공이라고 보기엔 좀 문제가 있어보인다는 것.
물론 이것도 요즘 시대 가치관에 빗대어 하는 말일 뿐, 기백년 흐르면 피그말리온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평가가 달라진다 한들,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까 싶은?
역시 고전소설은 비틀어 읽어야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