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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와 천조의 중국사 - 하늘 아래 세상, 하늘이 내린 왕조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단죠 히로시 지음, 권용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3년 8월
평점 :
정말 오랜만에 중국사책을 읽었다. 요즘 서양사 관련 세계사책만 읽어서 그런가? 중국사책을 읽으니 너무나 익숙한 기분과 함께 분노가 치솟는 건 내가 동양사람이어서 그런가^^....
우리나라 사람에게 옆나라 중국은 양가적 감정을 들게 하는 나라다(일본과 비슷하달까?). 심지어 우리나라 고대 역사부터 현재사까지 중국은 필수 등장인물이다. 매 역사적 시기마다 중국이 긍정적인 의미로 등장하면 참 좋겠지만, 위에서도 말했듯 중국은 ‘양가적’ 감정을 들게하는 나라다. 즉, 부정적인 의미로도 엄청 자주 등장했다는 이야기!
‘동북공정’, ‘문화전쟁’, ‘일대일로’ 등 당장 떠오른 키워드만해도 그렇다. 이 키워드들은 중국이 현재 진행하는, 지들만 좋은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이 키워드를 한데 모으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바로 ‘중국몽’. 중국몽이란 중국이란 나라의 부강과 민족 진흥, 인민행복을 내세운 중국 공산당의 선전 문구다. 중국몽을 위시한 중국의 프로젝트는 시진핑 정권과 함께 시작되었다.
-동북공정: 중국의 민족 진흥을 위한 중국사 연구▶ 대한민국의 고대역사(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는 중국에 속한 이민족들의 역사라고 하는 중
-문화전쟁: 중국의 우월한 문화를 뽐내기 위한 원조 경쟁▶ 김치도 지네꺼, 태권도도 지네꺼, 한복도 지네꺼라고 우기는 중(비슷한 상황으로 이탈리아의 피자도^^..)
-일대일로: 중국의 ‘새로운 실크로드 전략’▶ 현실은 대규모 자금을 동원하여, 세계 여러나라에 정치적 영향력을 넓혀서 중국의 꼭두각시 만들기
중국의 해양 진출이 이제 와서 시작되었던 것은 아니고, 그 방향성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2005년 4월 ‘정화의 서양 진출’ 600주년을 기념하여 중국 정부는 7월 11일을 중국의 ‘항해일’로 결정했다. (…) 정화는 방문국에 도착하면 그 국가의 왕에게 많은 증여품을 하사하고, 이것과는 반대로 명으로의 입공을 요구했다. 이 요구를 받은 아시아, 아프리카의 30여 개 국가들이 사절단을 파견하여 명과의 사이에 조공관계가 성립되었다. (…) 무엇보다도 정화는 가는 곳마다 그 국가에 조공을 독촉하고 있었고, 결단코 대등한 국교를 맺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명과 해당 국가와의 사이에는 군신 관계를 설정했고, 이를 통해 안정된 국제 질서를 확립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명의 요청을 거절하고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국가에게는 무력을 사용해서 국왕을 교체하는 것조차 서슴치 않았다. p 012~013
대체 중국은 왜이럴까?
지금의 중국을 이해하려면, 과거의 중국을 알아야 한다. 예컨데 명나라 때 ‘정화의 원정(대항해)’를 기억하는가? 서양의 신항로 개척보다 70여년 빠른, ‘최초’의 대항해로 세계사 시간에 필히 배우는 내용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 정화의 원정으로 시작된 건 무엇인지는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
정화는 영락제의 명을 받아 7차례 대항해를 하면서, 도착했던 모든 나라에(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대규모 선물을 주었다. 물론 공짜가 아니다. 선물을 준 댓가로 중국에 입공을 독촉했다. 입공을 하지 않으면, 무력을 사용해서 왕을 교체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지들보다 약한 나라에 강제로 선물을 안기고, ‘나를 형님으로 모셔라’ 시전했다는 이야기.
이거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현재 시진핑 정권에서 진행하고 있는 일대일로 프로젝트. 동남 아시아 일대에 대규모 자금을 동원해서 막대한 건설공사를 하고, 그 댓가로 지들의 영향력을 챙겨먹고 있지 않은가! 아, 물론 요즘은 그로 인해 중국경제가 휘청해지는 엄청난 후폭풍을 맞는 것 같긴 하다만. 유럽권도 중국의 일대일로에 손절치는 분위기고.
뭐 여튼! 한마디로 지금 중국이 하는 짓거리를 보면, 21세기에 들어서 ‘유독’ 유별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와 과거, 중국에서 했던 모든 일들이 묘하게 겹쳐지는 이유! 그 이유를 바로 중국 역사 속에서 찾고자 하는게, 이 세계사책 「천하와 천조의 중국사」의 목적이다.
현대 중국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전통적 중화 제국의 행동 원리를 추적하고 탐구하여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를 ‘천하’와 ‘천조’라고 하는 키워드를 통해 역사적으로 동해해보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다. p 014
천조라는 것은 글자에서 읽히는 것과 같이 ‘천자의 조정’을 가리킨다. 동아시아의 중심 국가였던 중국은 전통적으로 스스로를 높이는 의미를 집어넣어 자국을 그렇게 불렀다. 이 단어 자체는 역사 용어인데, 아마도 기원 전후의 한나라 때에 생겨난 것으로 여겨진다. 그 이후 역대 왕조에서도 보편적으로 사용되어 최후의 왕조인 청나라 시대에 서구 열강의 침략이 활발해진 이후에도 청은 천조대국으로서의 긍지를 완강하게 계속 지켜나갔다. p 18
저자는 중국사를 연구하면서, 중국사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제시한다. 바로 ‘천자’, ‘천조’, ‘천하’다. 이 세 가지 키워드와 유교의 합치는, 역대 중국 황제들에게 일종의 면죄부를 주었다.
천자는 천명을 받아 천하를 통치하는 자, 천조는 천자의 조정을 말한다. 천조가 통치하는 공간이 천하다. 여기에 유교를 지들의 입맛대로 변형해서 합쳤다. 그렇게 탄생한 명제가 있으니, “중화제국 영역 확장은 천자의 덕이 높다는 증거”. 이러한 논리는 중국 대륙의 주인이 바뀌든 말든 상관없이 지속되었으며, 덩달아 중국 황제의 부도덕한/억압적인/폭력적인 정치도 정당화했다.
<지금의 중국을 규정하는 키워드: 중화제국, 한족>
일반적으로 중국, 중화(중하), 화하, 제화(제하) 혹은 단순히 화(하) 등으로 칭해지는 이러한 용어들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 하夏와 중국인데, 이들은 모두 서주 시대(기원전 11세기~기원전 8세기)부터 존재했다. 하라고 일컫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하왕조를 가리키는 것인데, 하의 다음 왕조인 은을 지나 주 시대가 되어서도 주나라 사람들은 스스로 하라고 칭하기에 이르렀다. p 025
주는 동맹을 맺은 여러 국가와 동족의 여러 국가와의 사이에서 군사적 협력관계를 구축했는데, 이 여러 국가들 속에서 점차 강렬한 일체감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 일체감은 자신들을 같은 부류로 보는 의식으로 승화되었고, 그것을 톡별한 용어로 표현했다. 이것이 제하, 제화, 화하 등의 용어였던 것이다. 이전에는 주의 직할지만을 하라고 부르고 있었지만, 춘추시대 이후가 되면 주와 동맹한 여러 국가들을 모두 하라고 부르게 되었다. (…) 하는 하 왕조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화는 ‘화려함’이라는 글자의 뜻이 바뀌어 문화가 우월하다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여러 국가들이 자신들을 그렇게 불렀음은 당연한 것이었고, 당시 주 및 주와 동맹한 여러 국가들은 중국의 중심부, 즉 문화적 선진 지역인 황화 중류와 상류유역에 위치했다. 이른바 중원 지역에 존재했던 것이다. p 026
본래 중원이라고 하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고, 마땅히 중국의 중심부=문화적 선진 지역=중원=화(하)라고 하는 관념이 춘추시대 즈음에 생겨났다고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과 관련하여 그 땅의 주인만이 훗날에 ‘화하족’이라고 이름이 붙여져 중국 최초의 종족이 되었고, 그들은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주변의 여러 민족과 접촉하고 융합하면서 훗날의 한족으로 성장하고 발전해나갔던 것이었다. p 028
중화라고 하는 용어는 중국과 제화가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다. 문자 그대로 세계의 중심에 있으면서 문화가 가장 발전한 지역을 의미한다. 후한 말기, 삼국시대의 중국에는 이민족인 오호가 대두하고 있기도 했고, 중국의 주변에는 이적의 세계가 넓게 자리하고 있어서 화와 이의 구분이 강력하게 의식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 아래에서 탄생한 것이 중화라고 하는 신조어로, 중국의 국토와 문화의 중심성이 그 말 속에 함축되어 있다. p 033
<그리고 유교(유가사상)>
얼마 후 국내의 혼란도 수습하면서 왕조의 기반도 확립되었고 차차 유교는 정통 사상으로 인정되었다. 통설에서는 7대 황제인 (한)무제가 유학자 동중서의 의견을 채용하여 오경박사를 설치했던 것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이른바 ‘유교의 국교화’이다. 다만 국교화의 시기에 대해서는 요즘에는 무제보다 약간 훗날의 일이라고 여겨지고 있고, 왕망의 시대라고 하거나 혹은 후한 시대가 되어서부터라는 등 여러 학설이 분분하고 확실히 정해진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한 왕조에서 유교에 의한 지배의 정당화를 시도했고, 최종적으로 유교가 체제 교학으로서 중국 사회를 규정했다는 점이다. p 052
유가 사상에서는 지상의 주재자는 천자이고, 천자란 천명을 받아 하늘을 대신해 백성을 통치하는 덕을 갖춘 사람이었다. 천자는 어디까지나 하늘의 아들이고, 하늘 그 자체는 아니다. 즉 유일무이한 절대 권력자로서 지상의 하늘에 있는 황제와 유가 사상에서 말하는 하늘의 대리자는 본질적으로 입장이 다른 것이다. 황제와 천자를 어떻게 동일화, 일체화할 것인가? 유가가 황제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p 054
대한민국은 많은 면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는다. 이건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국이 어퍼컷을 날리면 무방비하게 맞는다. 문제는 그게 매번 반복된다. 이쯤되면 무엇이 문제인지도 눈에 뻔히 보이는데, 그럼에도 예방을 못한다. 대체 왜그럴까?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중국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게 아닌가 싶다. 뭐, 당장 국내 현실문제 이해도도 부족한 나라인지라, 옆나라에 대한 이해도를 말하는게 맞는건가? 싶기는 한데.
여튼! 지금의 중국의 행태를 이해하기 위해선, 중국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