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출간된 지 3년이 흘렀 것만, 그 때와 지금 뭐 하나 달라진 게 없다. 모든 문제는 지금까지도 계속 ‘한일기본조약’에 의해 막혀있고, 일본은 그때 보다 훨씬 더 우경화 되었다. 우리나라는? 겉은 한국인이지만 매일 광화문 앞에서 미국 성조기를 흔들며 일본을 대변해주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다. 참 이상한 나라다.

일본정부는 1951년 4월 미 국무부 고문 덜레스가 방문하였을 때 "한국은 일본과 전쟁상태에 있지 않았기 댐누에 연합국의 일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 한국이 (강화조약의) 조인국이 되면 한국인들은 연합국과 동등한 재산청구권과 배상금을 주장할 것이다. 재일한국인이 100만 명이나 되는데 이 사람들기 과도한 배상청구를 하면 일본은 혼란을 피할 수 없다." 라고 하면서 한국이 강화조약 체결에 참여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 P13

예를 들면 한일기본조약 제2조에는 1910년 8월 22일 이전에 체결된 조약·협정은 ‘이미 무효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은 일본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강요된 한일병합 이전의 모든 조약이 무효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체결은 합법이었으나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무효가 되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 P16

청구권협정으로 일본이 한국에 제공한 무상 3억달러, 유상차관 2억달러의 성격에 대해서도 한국은 배상금이라고 주장하지만 일본은 ‘독립축하금’이라고 하여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한일 간의 재산·권리 등에 대한 청구권에 대해서도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음을 확인한다’라고 하여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에 따른 한국국민들의 개인청구권 문제를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나마 일본군 위안부, 사할린 한인, 원폭피해자 문제 등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B·C급 전범으로 몰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한국인들에 대한 피해보상에 관해서도 일본 측은 한일청구권협정을 내세우며 한국 측에 보상책임을 떠넘겼습니다. 졸속으로 체결된 재일한국인협정은 재일한국인의 법적 지위와 민족차별 문제를 매듭짓지 못하였습니다. 어업협정에서는 독도문제를 협정문에 명기하지도 않았고, 문화재 협정에서는 협정 이후 새롭게 드러나는 일본인 개인이 소장한 한국 문화재의 환수에 대해서 한국정부에 ‘기증되도록 권장‘한다고 하여 이후 약탈당한 문화재 환수에 적극적으로 나서가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 P16

"일본만 가면 학교도 보내주고 돈도 벌 수 있다고 했어. 그래서 갔는데 월급이 다 뭐야, 아무것도 못 받고 개돼지처럼 일했어. 월급을 달라고 하니까 니네들 월급은 우리가 잘 보관하고 있다. 귀국할 때 다 주겠다고 하는 거야. 일본 사람들 정직하고 착하다길래 그말만 빋고, 정말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가면서 일을 했는데 …. 99엔이 뭐야, 99엔이 뭐냐고!" 열 네살에 끌려갔던 양금덕 할머니는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후생연금 탈퇴수당 99엔을 갖고 미쓰비시에 반성과 사죄를 촉구하러 가는 길에 이렇게 외쳤습니다. - P77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배상금 중에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보상금이 포함되어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개별 보상을 충분하게 하지 않고 포항제철공장(現 포스코),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경제개발 사업에 활용하였습니다. 따라서 국내의 청구권 수혜 기업들도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습니다. - P86

"한국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조국입니다. 조국은 어머니 입니다. 아이가 밖에서 머리가 터져서 들어오면, 어머니는 된장을 바르고 헝겊으로 싸매는 것이 급합니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어머니는 어떻게 했습니까? 사할린의 동포들이 머리가 터져서 피를 철철 흘리는데, 어머니는 냉정하게 ‘누구의 잘못인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뿐, 자식의 상처에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이게 어머니가 할 짓입니까?" - P119

당시 전쟁포로에게 강제노역을 시키는 일은 국제조약으로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육군성은 조선인 포로감시원 교육 시 포로관리에 관한 국제조약은 일절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은 조약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 채, 국제조약을 위반하는 일본군 포로정책의 최전선애 베치되어 포로들을 직접 접촉하고 명령하고 통솔했습니다. 게다가 일본군은 계약기간 2년이 지나도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을 조국으로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들은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 계속 일했습니다. 일본군 지위체계의 최말단으로서 무조건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했던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은 자기도 모르게 국제조약을 어긴 범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 P136

일본인들은 가해자로서의 기억은 멀리한 채 전쟁의 희생자, 피해자라는 의식에 갇혀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들을 심판한 도쿄재판을 지켜본 일본 국민들은 전쟁에 대한 책임은 군인을 중심으로 한 국가 지도자에게 있고 자신들은 ‘국가 지도자들의 잘못된 정책의 희생자’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전후 냉전체제가 강화되는 분위기 속에서 미국이 일본을 반공의 교두보로 삼고자 피해 국가들과의 문제 해결을 재촉하면서 일본국민들은 과거 일본의 침략과 전쟁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했습니다. - P18

2013년 1월 보수정당 소속의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는 폴란드 방문 당시, 42년 전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가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들을 기리는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한 것 처럼, 바르샤바의 유대인 게토 묘지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폴란드 사람들은 독일을 향해 말했습니다. 너무 계속 사과하는 것 아니냐고. 메르켈 총리의 대답은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당신들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계속할 것입니다. 나치의 범죄는 무한책임이기 때문입니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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