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는 오랫동안 인문학에서 금기시 되어왔던 명사들의 사생활을 파헤쳤다. 위에서 언급한 안기영도 그렇지만,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명이었던 박희도의 삶도 그렇다. 당대에는 친일보다 성추행을 더 금기시 했나보다. 박희도의 친일행적은 현대에 들어와서 속속들이 밝혀졌지만, 그가 전 조선을 뒤흔든 ‘여 제자 정조 유린 사건‘의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을 기록한 책은 없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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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귀족 대부분은 작위를 받은 지 겨우 10여년 만에
그 많던 재산을 모조리 탕진하고 심각한 생활고에 허덕였다.
1930년대까지 재산을 유지한 귀족은 토지왕 민영휘 자작,
이완용의 장손 이병길 후작과 차남 이항구 남작,
박영효 후작, 고희경 백작, 윤덕영, 한창수, 이달용, 이풍한 김사철 남작 등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나머지 귀족들은 재산을 송두리 째 들어먹고 오늘은 이왕직, 내일은 총독부로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드나들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깡통만 안 찼을 뿐이지 거지나 진배없었다.
나는 그때 조선의 이혼, 결혼제도에 커다란 불만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이와 정식으로 결혼할 수 없는 비애 !
싫은 아내와 이혼할 수 없는 고민!
이 때문에 젊은 조선 청년 남녀의 고민이 그 얼마나 컸을까요?
-안기영, 김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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