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춘천은 많은 추억이 있는 도시다. 내 할머니가 살고 있는 곳이며, 우리 아빠가 태어난 도시이고, 우리 엄마와 아빠가 결혼한 도시다. 뿐만아니라 주민등록초본에서 떡하니 보이는, 내 본적, 그 본적이 바로 여기, ‘춘천’이다(하지만 서울 태생이라는게 함정). 그래서 춘천은 나에게 여러모로 마음이 많이 가는, 그런 애틋한 도시다.



춘천에 가면 어느 겨울에는 논에다 조성한 얼음 썰매장에서 아빠랑 동생이랑 신나게 놀았고, 어느 봄에는 큰아빠와 아빠 손을 잡고 동생과 함께 육림랜드를 갔다. 어느 여름 날에는 아빠 친구들과 함께 여름휴가를 떠났었고, 어느 가을 날에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춘천인형극제를 보러 가기도 했다. 내 어린시절, 춘천은 이토록 즐거운 추억으로 가득했다(물론 아픈 추억들도 있지만).

이 글은 ‘사라졌다’고 말하는 대신 낼 수 있는 내밀한 목소리다. 동시에 아직 남아 있거나 남아 있어야 하는 공간에 덧붙이는 간절한 목소리이기도 하다. 더 많은 공간을 담아내지 못한 아쉬움도 함께 담았다. 그 목소리가 닿아 나의 춘천이 어느새 당신의 춘천이 되고, 서로 번져 결국 우리의 춘천이 되길 바란다. - P3

오래전부터 닭갈비는 서민과 가까운 음식으로 싸고 푸짐했다. 1970년대 닭갈비는 1인분씩 팔지 않고 1대씩 팔았다. 닭갈비 1대 가격은 100원이었따. 1978년 삼양라면과 초코파이가 50원 이었고, 1979년 서울 지하철요금이 60원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닭갈비는 갈비라는 이름치곤 무척 저렴한 편이었다. P 075 - P75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200m 남짓한 춘천 명동 닭갈비 골목은 그대로 남아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한자리에 있던 닭갈비집이 수두룩하다. 어지간하면 50년 전통이고 2대째나 3대째 이어져 오고 있는 곳도 많다. P 079 - P79

댐의 크기만큼이나 수몰 규모도 컸다. 춘천시를 비롯한 양구군과 인제군에 걸쳐 수몰 지역이 생겼다. 6개 면, 38개리가 잠기는 바람에 이주한 주민만 해도 1만 8,000여 명에 이르렀고 수몰된 집과 건물도 4만 5,000여 채에 달했다. P 041 - P41

콧구멍다리 아래는 소양강댐의 차가운 물이 보여있어 한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맴돌았다. 그래서 여름에는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이, 겨울에는 빙어를 잡으려는 낚시꾼들이 콧구멍다리를 찾았다. P 220 - P220

콧구멍 다리는 철거를 앞두고 있다. 낡은 다리 대신 소양7교가 그 역할을 할 것으로 전해졌다. P 221 - P221

시기를 잘 맞추면 청평사로 들어서난 내내 사방에서 쏟아지는 낙엽에 걸음마저 무뎌진다. P 245 - P245

1,000년이 넘는 시간을 품은 청평사는 명승 제70호로 춘천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절터는 강원도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어 있다. 청평사는 고려 광종 24년에 영현선사가 세운 백암선원으로 시작되었다. P 247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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