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번 달 회사 북클립으로 읽은 책은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매번 이 책을 읽어야지 읽어야지 했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다른 책을 선택하는 바람에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tvN 「알쓸신잡」으로 그의 말 한마디와 행동이 참으로 멋졌기에, 이 사람이 쓰는 글은 확실히 다를거라 생각했다. 다만, 내가 읽는 소설들은 대게 장르소설이 많다보니, 김영하님의 소설은 아직까지 한번도 읽어보지 못했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랄까. 독서 편식을 고치고 있는 중이라지만, 아직까지 완벽하게 고치지 못했기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김영하 작가의 작품은 「여행의 이유」같은 산문 정도 였다.


이 책의 내용은 총 9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첫번째 챕터는 김영하 작가의 중국 여행 실패기. 읽을 당시에는 굳이 왜 실패기를 적는걸까? 아니 애초에 여행준비 당시 비자발급에 대한 생각은 못했을까?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더랬다. 근데 이게 참 멋 없는, 오로지 내 잣대로만 평가한 무서운 편견이었다. 


대부분의 여행기는 작가가 겪는 이런저런 실패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 P 018


생각해보니 너무 맞는 말이더라. A부터 Z까지 계획한 대로 완벽하게 여행이 진행되었다면, 글쎄. 그 여행은 완성도는 높았을 지언정 재미는 없었을 거다. 내가 다니는 여행도 그렇다. 여행을 가기 전 완벽하게 계획을 짠다고 짜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생각치 못한 상황들이 나를 즐겁게 하고, 때로는 화나게 했다. 그런 상황은 유독 다른 여행보다 유독 머리속에 각인되어 잊혀지지 않는다. 그렇게 잊지 못할 추억을 또 하나 만드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 여행 준비를 하며 비자 준비를 생각치 못했던 그의 행동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린 날 첫 해외 여행지였던 중국에서의 경험이 썩 좋지 않았다는 기억이 남아 있었기에, 잠재의식 속에서 조금이라도 중국을 가지 않으려는 빌미를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그리고 나는 저자의 이 말에 십분 공감했다. 아무리 오래전 기억이라도 나를 아프게 하거나, 힘들게 한 기억은 내가 모르는 기억 저 편에 자리하여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이 오래 흐른 만큼 당시의 일을 기억해내는 건 어렵겠지만, 그 때 느낀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그래도 남아있기에, 무의식중에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게 나를 조정한다고나 할까?참 신기한 일이다.


‘여행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라는 질문은 작가라면 한번쯤 받아보는 것이다. 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기억이 나는 거의 없다. 영감이라는 게 있다면 언제나 나의 모국어로, 주로 집에 누워 있을 때 찾아왔다. (중략) 지금까지 낸 스무 권이 넘는 책들 중에서 단 두권만이 모국어의 영토 밖에서 쓰였다. 심지어 여행기도 집으로 돌아와 썼다. 영감을 얻기 위해서 혹은 글을 쓰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지는 않는다. 격렬한 운동으로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을 때 마침내 정신에 편안함이 찾아오듯이, 잡념이 사라지는 곳, 모국어가 들리지 않는 땅에서 때로 평화를 느낀다. P 080


‘모국어가 들리지 않는 땅에서 평화를 느낀다’는 이 말이 내 가슴에 콕 박혔다. 내가 여행을 떠나고 싶은 제일 큰 이유는 바로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마음에 평화를 얻기 위해서니까. 그래서 해외를 간다면 최대한 모국어가 들리지 않는, 한국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을 찾는다. 국내에서도 동일하다. 사람들이 잘 들리지 않는 장소만을 찾아다닌다. 어쩌면 나는 내가 선택한 그 장소에서, 타인과 관계되고 싶지 않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회사로 대표되는 내 일상은, 여러사람과의 관계로 정말 피곤하고 힘든 일 투성이니까. 물론 간혹 좋은 일도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차라리 아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게, 서로 관계하지 않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그런가, 저자가 스물 다섯에 떠난 유럽 배낭여행에서, 자신이 ‘노바디’, 즉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었던 경험을 이야기 한 부분은 유독 더 와닿기도 했다. 물론 이 책에서 말하는 ‘노바디’는 내가 원하는 ‘노바디’와는 조금 다르다. 이 책에서는 여행지에서 타인의 인정을 어떤 식으로 받고 싶은지, 본인의 정체성을 어떻게 드러내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내가 원하는 건 일상에서 일어나길 바라는 일이니까. 하, 물론 일상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분명 문제가 많아질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까지 하는 것 보니.........나도 정말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긴 했나보다.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P 109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 P 110


보통 누군가가 왜 여행을 떠나냐고 물어보면 나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그 곳에서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역사를 품고 있는지 내 두 발로 직접 딛고, 그 광경을 보고 싶어서 여행을 간다고’. 하지만 이건 그저 허울 좋은 말에 불과했다. 실상은 그게 아닌데, 뭐라 표현해야 할 지 몰랐기에 저런 식으로 대답을 하며, 포장을 하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이 책 덕분에, 내가 왜 여행을 떠나려 하는지에 대한 답을, 비로소 찾았다.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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