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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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단으로써 읽은 책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이 책은 지금까지 읽어온 책과 그 느낌이 많이 다르다. 보통 책을 받으면 제목과, 띠지나 표지에 적혀있는 내용을 보며 대충 어떤 장르인지 추측을 한다. 헌데 이 책은 일반적인 에세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설도 아니며, 자기계발서는 더더욱 아니다. 대체 이 책의 장르는 무엇인가 갸웃 거리다가, 책을 쓴 작가를 보았다. 이 책의 작가는 제목에 쓰여있듯, 우리나라 문학의 거목이라 일컬어지는 박완서님이다. 저자는 문학의 대가 박완서 님인데, 장르는 추즉하기가 애매한 그 무언가라고 해야할까. 물론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생각이 달라진다.


내 개인적으로, 이 책의 장르는 ‘박완서’라는 한 사람의 일대기를 짧은 글에 담은 ‘수필’이라고 감히 말하려 한다.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 하기 전에, 우선 이 책의 저자인 ‘박완서’님에 대한 정보를 옮기려 한다. 보통은 작가에 대한 정보를 쓰지 않는 편이지만 말이다. 이번 만큼은 예외다. 박완서 작가님은 한국문학의 대가로 불렸던 분이었다. 그녀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부터 일반 문학까지 정말 수 많은 작품을 남겼다. 아마 문학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살면서 그녀의 작품을 하나 정도는 읽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박완서 (1931 ~ 2011)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작품으로 장편소설 『미망』 『휘청거리는 오후』 『목마른 계절』 『도시의 흉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아주 오래된 농담』 『그 남자네 집』 등이 있고, 소설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엄마의 말뚝』 『저문 날의 삽화』 『너무도 쓸쓸한 당신』 『친절한 복희씨』 『기나긴 하루』 등이 있다. 그 밖에도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한 길 사람 속』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등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대산문학상,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호암예술상 등을 수상했고, 2006년 서울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1년 12월 타계한 후 문학적 업적을 기려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박완서님의 따님인 호원숙 님은 어머니의 작품들을 보며, 정확히는 그 작품들에 실린 어머니의 서문과 후기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어머니 책의 서문을 모아 이런 책을 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은 김윤식 선생님의 서문집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중략) 놀랍게도 서문을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리기도 하고 불끈 용기가 솟기도 하고 눈물이 어리기도 합니다. 타인을 생각하고 전체 속에서 자신을 낮추는 가식이 아닌 겸양, 진실과 책임과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반성이 밑받침이 된 오만은 쉽게 흉내 낼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고개를 숙이게 합니다. P 4~6, 들어가는 글 中



그렇기에 이 책이 만들어졌다. 오로지 박완서, 그녀만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박완서 작가의 타계 9주기을 맞이하여, 한국문학의 대가인 그녀가, 그녀 식으로 독자들과 특별한 끝인사를 할 수 있도록 이 책이 나온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목차도 조금 특별하다. 박완서 작가가 발표한 수 많은 작품의 제목들이 들어있다. 한 작품에 여러 판본이 있을 경우에는, 각 판본의 서문과 후기를 별도의 페이지에 실었다. 예를 들어 그녀의 데뷔작인 『나목』은 3개의 판본이 나왔기에, 3개의 서문이 실려있는 식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아무리 유명한 작가라지만, 서문집이라니 별거 있겠어?’라는 생각이었다. 왠걸, 별거가 많았다. 정말 많았다. 보통 한 작품의 ‘서문’이라 하면 그 작품을 소개하거나, 작품을 이해를 돕기 위한 정보전달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박완서님의 서문은 그렇지 않았다. 음... 뭐라고 말해야할까? 물론 작품의 이해를 돕기위한 정보도 분명 있었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서문에는 ‘박완서’라는 사람이 있었다. 


책을 다시 꾸밀 때마다 좀 손을 보려고 다시 읽어보게 된다. 지금의 안목으로 눈에 거슬리는 표현의 과장이나 치졸이 자주 눈에 띄어서 고치려면 어쩐지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못 고치고 만다. 유치함조차 그것을 썼을 당시의 젊고 착하고 순수한 마음의 나타남 같아서 소중한 생각이 들곤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처녀작을 느즈막이 사십 세에 썼지만 이십 세 미만의 젊고 착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섰다고 기억된다. 그래 그런지 그것을 썼을 당시가 암만해도 사십 세 같이 않고 아득하고 풋풋한 젊은 날 같다. P 22 『나목』 재출간


혼자 사는 여자는 다만 혼자 산다는 이유만으로 불행하기만 한 것일까? 아내가 남편 외의 외간 남자에게 한눈 판 건 두말할 여지도 없이 부도덕하고, 이구동성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반면, 남편이 아내 외의 여자를 장난삼아 범한 것에는 그도록 관대하고 떳떳하다고까지 부추기는게 과연 미풍양속일까? P 67 『서 있는 여자』


이 이야기를 꾸민 나의 첫 번째 소망도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 마음이 되어 아이들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리려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복동이 또래의 막내 손자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중략) 이 이야기를 꾸민 내 욕심도 재미 말고 또 하나 있는데 그건 아이들이 자기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남의 생명의 가치도 존중할 줄 아는 편견 없는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고 감사하며 신나게 사는 것입니다. P 162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나는 이 서문에서 인간 ‘박완서’의 내면을 조금이나마 훔쳐보았다. 자기의 첫 작품을 너무나 소중히 생각하여, 그 작품을 썼던 과거의 자신까지도 소중히 하는 한 사람, 미풍양속이라는 미명하에 폭력을 눈감는 사회를 고발하고자 했던 한 사람, 이 땅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편견없이 살아가길 바라는 한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인간 ‘박완서’였다.


곧 6.25가 났다. 오빠와 숙부님이 비명에 죽고, 고향 땅은 북쪽 땅이 되었다. 전쟁의 와중에 죽었으되 전사도 폭사도 아닌, 사상의 대립이 초래한 동족 간의 전쟁이라는 특구성에 희생된 고통스럽고 값 없는 그들의 죽음은 그 후 오랫동안 나에게 악몽으로 남아있다. P 38 『창밖은 봄』


6.25 때의 체험은 하도 여러 번 욹궈먹어서 6.25 때 내가 어떻게 지냈나는 많이 알려진 셈이다. 그러나 1.4 후퇴 후 텅 빈 서울에 남아서 겪은 일은 유일하게 이 작품에서만 울궈먹었다. 실은 이 경우 울궈먹었단 말도 합당치가 않다. 내가 울궈먹었다는 말을 쓸 때는 체험에다 적당히 소설적인 허구를 가미한 경우인데 이 소설 중에서도 그 시기(이 소설은 1950년 6월부터 다음 해 5월까지의 얘기를 월별로 엮어놓았다)는 의식적으로 허구를 배제하고 철저하게 사실 묘사만 했다.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지금까지도 나는 그때 내가 과연 그 일을 꿈이 아닌 생시로 겪은 걸까 문득문득 의심스러워질 적이 있다. 이 거대한 도시가 하룻밤 새 텅 비고 인기척의 완전한 진공상태가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그대는 상상할 수 있는가. P 46 『목마른 계절』 재출간


여기 모인 글들은 내 개인의 흔적인 동시에 내가 작가로서 통과해온 70년대, 80년대, 90년대가 짙게 묻어나 있는 글들이다. 우리는 앞만 보고 달리다가도 우리가 살아낸 시대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문득 뒤돌아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무의미한 현실도 좋은 추억이 있으면 의미 있는 것이 되고, 나쁜 기억도 무력한 현재를 고양시킬 수 있는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저절로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P 142 『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


이 서문들은 인간 ‘박완서’가, 작가 ‘박완서’가 되기 전에 겪었던 그 사건들이, 훗날 작가 ‘박완서’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 가를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준다. 분명 ‘간접적’으로 나타낸 것이겠지만, 이 역시 작가 박완서가 직접 겪었던 이야기이기에 생각보다 강하게 와닿기도 한다. 그래서 그럴까, 나는 이 서문집이, ‘박완서’라는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일기 내지는 수필이라고 말하고 싶다. 




책 뒷편에 실린 작품 화보는 작가 박완서의 역사 뿐만 아니라, 각 출판사의 역사도 담겨있다. 물론 이 책을 출간한 〈작가정신〉도 포함해서! 


내가 읽은 박완서님의 작품은 몇 권 안되지만, 이 서문집을 읽으면서 느꼈다. 박완서님 작품은 하나 하나가 버릴게 없고 허투루 읽을 게 없다는 것을. 고로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박완서님 전집을 구매하여 완독에 도전하는 것을 내 독서 목표로 삼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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