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산사 순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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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부제 하에 7개 사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가 바로 그 7개 사찰이다. 이를 기념하고자 유홍준 교수는 기존에 책으로 발표했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소개했던 산사 20여 곳을 따로 한 권으로 엮어서 펴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다만 여기서 함정은 이 책에 나와있는 사찰 20여 곳 중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오른 산사는 대흥사, 부석사, 선암사, 봉정사 네 곳이다. 그 외 사찰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그에 준하는 산사의 미학을 보여주는 사찰들에 대해 실려있다.

 

책에 실려있는 사찰은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와 미황사, 고창 선운사, 부안 내소사와 개암사, 예산 수덕사와 서산 개심사, 부여 무량사와 보령 성주사터, 문경 봉암사, 청도 운문사, 창녕 관룡사, 구례 연곡사, 영암 도갑사와 강진 무위사 및 백련사, 정선 정암사, 묘향산 보현사, 금강산 표훈사로 총 22곳 이다. 이런 걸 보면 또.. 나는 어디어디 가보았나 따져보기 마련인지라, 세어보니 몇 군데 안되었다. 아직까지 해당 지역 여행을 못가서가 첫 번째 이유, 두 번째는 해당 지역은 갔으나 더 보고 싶은 다른 것을 보느라 못 갔다. 크흡 과거의 나를 반성할 시간....

 

책 리뷰를 하며 전체적인 내용의 감상을 적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냥 내가 갔던 사찰, 그 중에서도 내 마음에 여운을 남겼던 영주 부석사 한 곳에 대한 답사기를 써보려한다.

 

그나마 갔던 곳 중 한 곳인 영주 부석사. 집에서 새벽같이 나와서 아침 일찍 영주 부석사에 도착했었다. 일주문을 지나 부석사로 오르는 그 길은 너무 빼곡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듬성듬성하지도 않은 적당한 간격으로 은행나무가 심어져있는 가로수 길이었다. 거기에 조금은 경사가 있었던 비탈길. 유홍준 교수님처럼 노란 은행나무잎이 떨어지는 가을은 아니었지만, 봄의 싱그러움을 담은 초록 은행나무잎은 그것대로 좋았다.

 

그렇게 길을 오르다 천왕문 근처에 다다르면 보물로 등재된 부석사 당간지주가 있다. 당간지주가 크고 높을 수록, 그 옛날 이 사찰이 얼마나 컸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데 부석사 당간지주가 바로 그랬다. 무엇보다 이 때는 한창 관통사 자격시험 준비를 하던 때라 사찰에 대한 지식도 달달달 외우고 있었던 상황. 과거에 내가 부석사의 당간지주를 봤다면 아 돌기둥!’이러고 그냥 지나갔을 테지만, 이 때의 나는 부석사의 당간지주를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저 기둥에 걸렸을 당(깃발)은 얼마나 멋졌을까?’. 이래서 사람은 뭘 보든 알고 봐야 한다는 것!

 

천왕문과 안양루를 지나 부석사의 법당인 무량수전에 다다랐다. 옛날에는 사찰의 법당은 당연히 대웅전이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공부하면서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조금은 놀랐더랬다. 사찰별로 법당 모시는 부처님이 각기 다른데, 어떤 부처님이냐에 따라, 법당 이름이 달랐다. 이를 알게된 건 역시나 관통사 공부를 하면서였는데, 정말 이 때 공부했던 내용 중 내 기준 제일 유익한 내용이 바로 사찰과 관련된 지식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모시는 부처님은 서방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부처님이다. 내가 배운 그대로다. 그런데 아주 가끔가다가, 여러 지역의 사찰을 다녀보면 법당의 이름과 그 곳에서 보시는 본존불이 안맞는 경우가 있다.

 

"샌님여, 운문사 대웅보전에 모셔진 불상은 비로자나불 맞지예?"

"그렇지. 지권인을 하고 있으니 비로자나불이지."

"그란데 와 대웅보전이라 캅니까? 대웅보전에는 석가모지 모셔진다고 안했습니까?"

"그러니까 우습지. 조선 후기 들어서면 스님들이 계율보다 참선을 중시한다고 불가의 율법을 등한시 했어요. 그 바람에 저렇게 잘못된 것이 많아요. 굳이 해석하자면 본래는 석가모지 집인데 비로자나불이 전세 살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 될까 보다." _ P 269

 

왜 이 법당에 다른 부처님이 모셔진 걸까? 에 대한 나의 의문이 바로 이 책에서 풀렸다. 그것도 너무 간단해서 허탈할 지경. 뭐 어쩌겠나, 옛 사람들이 불가의 율법을 등한시 한다고 저리 한걸, 이제와서 요즘 사람들이 다시 원래 부처님으로 들여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흠흠. 법당 이야기하다 삼천포로 센 느낌이긴 한데, 뭐 그렇다.

 

부석사에는 위에 언급한 법당들과는 전혀 다른 조그만 전각(이라고 하는게 맞나..)이 있는데, 바로 선묘각이다. 부석사의 창건설화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이곳은 부석사의 이름 부석,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와 정말 큰 연관이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렇다.

 

절친 의상과 원효는 당나라로 유학가는 길에 올랐는데, 원효는 그 유명한 해골물일화로 유학가는 길을 때려친다. 의상은 그대로 유학길에 올랐다. 바다 건너 등주에 도착한 의상은 한 신도 집에 머물렀는데, 그 집에는 선묘라는 딸이 있었다. 이 선묘가 의상대사에가 천 눈에 반해버렸다. 이후 의상은 귀국하기 위해 배를 타고 떠났는데, 의상을 흠모한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지며 의상을 지키는 수호 용이 되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의상은 좋은 터에 절을 창건하려 하였으나, 사교 무리가 이를 방해하니, 용 한마리가 나타나 큰 바위를 들고 사교들을 위협했다. 그 모습에 깜짝 노란 사교들이 도망가니, 의상이 비로소 절을 창건하였는데 그게 바로 지금의 영주 부석사다.

 

! 용이 된 선묘가 들었던 큰 바위는 무량수전 왼편에 남아있다. 이 바위에 신묘한 기운(?)이 남아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바위 틈새 틈새에 동전을 붙이기 위에 안간힘을 쓰고, 동전이 붙으면 기도를 드리길래 나 역시 세속적인 기도를 드리고 왔었다. 내가 알고 있는 부석사는 딱 여기까지였다. 그런데 이 책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발견했다.

 

부석사에는 나로서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둘 있다. 하나는 석룡이다. 절 스님들이 대대로 전하기로 무량수전 아미타여래상 대좌 아래는 용의 머리가 받치고 그 몸체는 자로 꿈틀거리며 법당 앞 석등까지 뻗친 석룡이 있따는 것이다. 이것은 사찰 자산대장에도 나와 있고 일제시대에 보수할 때 법당 앞 마당을 파면서 용의 비늘 같은 조각까지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때 용의 허리 부분이 절단된 것을 확인하여 일본인 기술자에게 보수를 요구했으나 그는 완강이 거부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의 진실성을 의심치 않는다. 다만 그것이 선묘화룡의 전설과 연결되는 것인지 지맥에 의한 건물배치의 뜻이 과장된 것인지, 그것은 모르겠다. P _046

 

석룡이라니. 나도 분명 무량수전 아미타여래상을 보았는데, 대좌 아래 용의 머리가 있었다니! 심지어 그 용이 법당 앞 석등까지 뻗쳤다니!! 당장이라도 땅 파서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이지만, 이런 이야기는 오히려 전설로 남겨야 더 의미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만약이라도 진짜 땅을 팠는데 없으면 ... 그야말로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알고보니 선화공주가 아닌, 사택왕후가 발원했이야기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을테니까 ㅠㅠ

 

책 덕분에 영주 부석사를 다녀왔던 좋은 추억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어서 나름대로 유익한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으며 크게 공감되었던 유홍준 교수님의 이야기를 적어본다.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늘상 시각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대상이기에 별다른 설명 없이도 이 학생처럼 나무 하나는 괜찮다라고 실수 없이 간취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미라는 인공적 아름다움과 문화미라는 정신적 가치는 그 나름의 훈련과 지식 없이 쉽게 잡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아는 만큼 느낀다고 할 수 있다. _P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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