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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선언서 말꽃모음 ㅣ 말꽃모음
이주영 엮음 / 단비 / 2019년 2월
평점 :
책을 구입한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나온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굿즈'를 얻기 위한 이벤트 도서 중 하나였기도 했고, 무엇보다 제목이 너무 이뻤다. ‘말꽃모음’ 이라니.. 출판사에 따르면, ‘말꽃모음’은 우리 마음에 기둥이 되고, 보석이 되는 인물들의 사상과 말씀의 고갱이를 간추려, 마음을 치고 생각을 열어 주는 빛이 되는 글을 모아 만든 어록이라 한다. 난 이런 이쁜 말에 정말 약한데... 심지어 말꽃모음 시리즈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을 뿐이고! 조만간 시리즈 중 일부인 ‘김구 말꽃모음’, ‘젊은 정약용 말꽃모음’을 구입하리라 마음먹었다 .
이 책에는 총 10개의 독립선언서가 실려있다.
1. 1910년 8월 23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표한 한국국민회 선언서
2. 1919년 7월, 중국 상해에서 독립운동가 14명이 발표한 대동단결 선언서
3. 1919년 2월, 중국 길림에서 활동한 대한독립의군부가 작성한 대한독립선언서 (무오독립선언서)
4.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작성한 기미독립선언서 (또는 3.1 독립선언서)
5. 1919년 3월 17일,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조선국민회 이름으로 발표된 조선독립선언서
6.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조선 유학생들이 발표한 2.8 독립선언서
7. 1919년 3월 1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염상섭을 비롯한 조선 노동자들이 발표한 한국노동자 독립선언서
8. 1919년 4월 8일, 국내/외 각지에 있는 대한부인회에서 발표한 대한독립여자선언서
9. 1919년 3월 13일, 북간도 용정에서 간도에 사는 조선인들이 발표한 독립선언포고문
10. 1919년 10월 30일,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심이 되어 발표한 대한민족대표 선언서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독립선언서가 몇개 안된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알고 있는 독립선언서는 오로지 이 책에 실려있는 대한독립선언서, 기미독립선언서, 2.8독립선언서, 대한독립여자선언서 단 4개 뿐이었다. 심지어 이 4개 중에서도 전문을 읽어 본 건 기미독립선언서 한 개뿐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여러 독립선언서 중 에서도 10개만 추려서 이 책을 쓴 거라고 하니, 내가 모르는 독립선언서가 얼마나 더 있을까?
「독립선언서 말꽃모음」을 읽으면서 묘하게 뮤지컬 신흥무관학교가 떠올랐다. 이유인 즉, 신흥무관학교의 몇몇 넘버들의 가사와 책 속에 있던 각종 독립선언서와 오버랩이 됬기 때문이다. 아마 넘버를 제작할 때, 여러 독립선언서를 참고 한게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조금만 더 일찍 발간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내가 뮤지컬 신흥무관학교 넘버를 들으면서 알아챈 건 기껏해야 석주 이상룡 선생이나 우당 이회영 선생 했던 말들 뿐이었으니까.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뮤지컬 신흥무관학교를 다시 본다면 조금은 더 가사를 곱씹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귀국정부가 한국인이 '합병'을 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귀국 정부가 우리 국민 중에서 쓰레기들인 몇몇 간사한 부랑자들 때문에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바랍니다. 한국인을 옹호해 주십시오. 한국인을 옹호함으로써 귀국은 권리와 정의를 옹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인을 수호해 주십시오. 한국인을 수호함으로써 귀국은 오랜 친구를 구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국민회선언서-
한국 국민회가 세계 각국 정부에 보냈던 이 선언서는 일본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지만, 이후에 나온 선언서에 비해서는 조금은 소극적인 느낌이든다. 뭐랄까, 스스로 쟁취한다! 라기 보다는 강대국이 일본을 제지하여 우리를 도와주기를 바라는, 그런 느낌이랄까? 아마도 다른 독립선언서와는 달리 약 10년 정도 먼저 발표된 되었다는 점에서 후에 나온 선언서들과 큰 차이를 보이는게 아닌가 싶다. 1910년과 1919년, 10년간 한반도는 얼마나 착취를 당했을까. 물론 이후에도 계속 착취를 당한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멀리로는 유학자들이 300년이나 당론이 나뉘어 조선이 멸망하게 되었고, 가까이로는 13도 지사들이 서로 다투느라 새로운 건설을 어지럽혔다. 이 같은 삼분오열로 일어난 비극을 눈앞에서 보고, 그 고통을 맛본 우리는 마음이 바르게 원하는대로 모두 모여서 힘을 합하자고 요구한다. 요즘 러시아에 의지하자, 일본에 의지하자, 중국에 의지하자, 미국에 의자하자 하는 선비와 문(文)이다, 무(武)이다, 남(南)이다, 북(北)이다 하는 의견과 주장이 뒤섞이고 뒤숭숭하여 갈 곳을 모른다.
1910년 8월 29일 융희 황제가 주권을 포기하는 순간, 그 주권은 국민과 동지들이 돌려 받은 것이다. 삼보(三寶)를 상속한 사람은 완전한 통일조직을 만들어야 비로소 그 권리와 의무를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 대동단결 선언서-
어떻게 조선이 멸망하게 되었는 지를 제대로 꼬집었다. 거기에다 날카로운 현실 자각. 그러면서 대한국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국민주권론을 내세웠고 거기에 민주정부를 수립하자고 이야기한다.
일본의 전쟁을 즐기는 나쁜 습관은 자기를 보호하고 자기를 지킨다고 말하더니 마침내 하늘에 반역하고 사람을 거스르면서 보호합방을 강제하고, 일본의 맹세를 어기는 못된 버릇은 영토보존이니 문호개방이니 기회균등이니 떠들다가 금방 의리도 잊고 법도 무시하며 강제로 조약을 맺었다.
아! 일본의 비천한 무인들이여. 작은 벌과 큰 타이름이 너한테는 복이니 섬은 섬으로 돌아가고, 반도는 반도로 돌아가며, 대륙은 대륙으로 돌아갈지어다. 한마음 한 뜻인 2,000만 형제자매여 국민이 본래 갖고 있던 권리를 자각한 독립임을 기억할 것이며 동양 평화를 보장하고 인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자립임을 가슴에 새길 것이며 하늘의 밝은 뜻을 받들어 모든 그릇된 그물에서 벗어나는 건국임을 굳게 믿고 육탄혈전으로 독립을 완성할지어다.
- 대한 독립선언서-
내가 기억하는 한도 내에서, 뮤지컬 신흥무관학교 넘버로 쓰여진 건 대한 독립선언서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문구는 위 딱 두 문장 뿐이지만, 아마 더 많은 가사들이 있을 거다. 아참, 대한독립선언서는 이후 발표된 2.8 독립선언서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일본 군국주의는 지금 중국으로 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양제도(태평양) 역시 장차 그 손톱으로 할퀴고 어금니로 깨물 것이다. 연합국들은 세계 평화유지를 위해서는 극동 평화가 꼭 필요한 조건임을 알아야 한다. 만약 지금 조선 독립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면 앞으로 이번 세계 대전보다 한층 더 가공할 새 전쟁을 일본 군국주의가 일으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조선 독립선언서-
읽으면서 제일 소름 돋았던 선언서다. 1919년 3월에 조선국민회가 발표한 선언서인데, 이 들은 이미 일본의 태평양 침략을 내다보고 있었나 보다. 한반도가 지리적, 전략적으로 동아시아 문제 해결의 열쇠라는 사실을 독립운동가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거다. 당시 강대국이라고 불리던 그 나라들이, 태평양 전쟁 때 일본에게 기습공격을 받았던 미국이 이 선언서에 조금이라고 귀를 기울였다면 역사는 조금 바뀌었을 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게 우리에게 좋았을 거라고는 100% 보장할 수 없지만..
우리 민족은 정당한 방법으로 우리 민족의 자유를 추구할 것이나 만일 이로써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 민족은 생존의 권리를 위하여 온갖 자유행동을 취하여 최후의 한 사람까지 자유를 위하여 뜨거운 피를 흩뿌릴 것이니 우리 민족의 정당한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 우리 민족은 일본에 대해 영원한 혈전을 선언하리라
-2.8독립선언서-
적국의 중심, 일본 도쿄 한 복판에서 조선의 유학생들이 목숨 걸고 발표한 독립선언서다. 이들은 조선인의 신분으로 일본 도쿄에서 공부를 하던 학생들이었을 뿐이었다. 고향인 조선에 있는 위정자들은 나라를 파느라 혈안이 되었던 이 때, 어린 학생들이었던 그들이 나서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것이다. 이후 2.8 독립선언서가 조선으로 비밀리에 넘어 왔고, 이는 기미독립선언서(3.1독립선언서)의 모체가 되었다.
독립선언서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과연 그들은 광복 이후의 한반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을까?’ ‘후대에 들어 한반도가 둘로 갈리고, 갈린 지역에서도 또 서로 할퀴고 물어 뜯는 미래가 올 거라는 생각을 해보긴 했을까?’ 감히 생각해보건데 그들이 바란 미래는 이런 미래가 아니었을거다. 그들이 원하는 결과와는 다르게 되어버린 지금을 생각하면 조금은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