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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팔 독립선언
강세영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1월
평점 :
독립 3년 차, 직장인 5년 차, 만 28세 여성. 지은이의 프로필이다. 그녀는 나와 같은 또래였고 나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사는 모든 청춘들이 그렇듯 그녀 역시 지옥철에 힘들어하고, 은행의 노예가 되는 운명을 택했다. 나 또한 자진하여 은행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는 서글픈 인생이다.
내가 생각해도 난 그냥 적당히 잘 자랐다.
엄마는 "작은 딸은 거저 키웠지"라는 말을 자주 하셨는데,
큰 문제 일으키지 않고 자랐다는 뜻이다.
어른들 말에 무조건 순종했던 건 아니었지만,
나쁜 아이 경계선을 밟아본 적은 없다.
나에겐 착한 아이 프레임이 씌워져 있었다.P. 102
우리 엄마 역시 친척 어른이나 지인에게 저런 말을 곧잘 하셨다. 맏딸로 태어나서 그런 것일까?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을 힘들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다. 물론 말썽을 안 피웠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다. 다만 그 말썽이라는 게 남동생과 다투는 정도였고, 그 이상의 말썽을 피운 적이 없을 뿐이다. 또 나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다. 그래서였을까, 나 역시 그녀처럼 적당하게 자라는 착한 아이가 되었고, 그 모든 것이 답답해졌을 때는 이미 그 삶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어릴 때 좀 더 다양한 어른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한다.
자라면서 봤던 어른은 극히 한정적이었다.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을 주축으로 친척 어른들과 부모님의 지인 정도가 전부였다.
그들은 모두 나를 비슷한 인생으로 안내했다.P. 112
요새 들어서 사무치게 후회하는 것이 있다. 황금 같았던 나의 어린 시절, 그저 하라는 대로 공부만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루에 한 시간만이라도 나의 꿈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다면 지금 나의 삶은 1%라도 조금 더 보람 있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았을까. 혹은 늦게나마 알게 된 나의 꿈, 미래를 위해 공부를 해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삶이 아닌 그 꿈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시간만 축내는 것이니, 후회할 시간에 나의 꿈을 위해 조금이나마 공부를 하는 쪽이 더 낫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존과는 다른 어른으로 나이 먹는 거다.P. 115
오늘 거울 속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1%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본다.
사회생활 슬럼프는 3, 6, 9년 차에 온다던 선배들의 말은 어느 정도 적중했다.
오늘 하는 일과 내일 해야 할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이걸 계속 반복한다고 더 나은 사람 또는
더 잘하는 마케터가 될 것 같지도 않았다.P. 137
나는 또래 친구들보다 꽤 빠르게 취업을 하였고 올해 들어 직장인 9년 차에 접어들었다. 사회 초년생 때는 정말 서글펐다. 또래 친구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청춘을 즐기고 있는데, 나는 어쩌다 이렇게 사회에 빨리 내던져졌을까 싶었다.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공부했고 수능도 이 정도면 괜찮지! 싶었는데 원하는 대학에 떨어졌다. 그렇게 2년제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고 나의 대학시절은 2년 만에 끝이 났다. 그리고 바로 취업. 하지만 그런 마음도 길게 가지 않았다.
첫 슬럼프가 온다는 직장생활 3년 차에 슬럼프는 커녕 쾌감을 느꼈다. 나는 소위 대기업이라고 불리는 회사에 자리를 잡았고 적응을 한 반면 또래 친구들은 취업 준비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으니까. 나 스스로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 자신이 얄미웠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그동안 마음고생을 한 나에게 위로를 하고 싶었다. 일종의 자기 위안이었다.
물론 나 역시 3, 6, 9년 차의 법칙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는지 1년이 지난 4년 차에 슬럼프가 왔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가 지루했고, 변화가 없는 일상이 지겨웠다. 어떻게든 슬럼프에서 빠져나와야 될 것 만 같아서 선택한 것이 공부였다. 2년제 졸업이라는 꼬리표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것도 한 몫했다. 그렇게 난 일단 질러보자는 심정으로 4년제 대학에 편입하였고 일과 학과를 병행하였다. 그리고 졸업! 뿌듯했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요?'라고 소리 없이 외쳤던 것들이
모두들 한 번씩 겪는 일이었다는 게,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는 게,
이런 게 그냥 삶이구나, 삶은 이런 거구나,
인간이란 필연적으로 외롭고 힘들 수밖에 없는 거구나 하고 받아들여졌다.P. 237
어느 순간 너무 힘들어서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을 주는 건지 하늘을 원망할 때가 있다. 그런 때에는 이상하게도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전부 행복해 보인다. 이 세상에 힘든 사람은 나 혼자인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사람살이가 다를 리가 있겠는가? 알고 보면 내 앞에서 웃고 있는 저 사람도 죽을 만치 힘든 일이 있었고, 내 옆에서 항상 버팀목이 되어주는 소울메이트도 말을 안 할 뿐 힘든 일을 버티고 있다. 그러니 그저 버틸 수밖에 없다.
다들 그 정도는 아프면서, 견디면서 살아가P.237
어쩌면 냉정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한마디는 힘들어하는 나를 단단하게 해주는 갑옷과도 같다. 물론 가끔은 냉정함이 아니라 위로가 필요할 때도 있다.
나만의 동굴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가끔 그 안에 들어가 숨습니다.
그곳에서 머리를 비우고, 생각이 가득 차오르기를 기다리는 겁니다
.P. 97 (유병욱 '생각의 기쁨' 中 )
그때는 나만의 동굴 속에 들어가자. 동물이 겨울잠을 자듯 나 역시 동굴 속에서 겨울잠을 자는 거다. 모든 상념이 가라앉을 때까지.겨울잠을 깨고 나올 나는 어제의 나보다 한 단계 성숙해져 있을 테니.
내가 생각해도 난 그냥 적당히 잘 자랐다.
엄마는 "작은 딸은 거저 키웠지"라는 말을 자주 하셨는데,
큰 문제 일으키지 않고 자랐다는 뜻이다.
어른들 말에 무조건 순종했던 건 아니었지만,
나쁜 아이 경계선을 밟아본 적은 없다.
나에겐 착한 아이 프레임이 씌워져 있었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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