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인저
할런 코벤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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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상에 누구보다 믿어야될 존재가 가족이 아닐까요, 나를 알아주고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존재는 가족말고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 근래 작고한 가수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자살이냐, 타살이냐,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남겨둔 가족, 단 하나뿐인 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자꾸만 의심이 생깁니다.. 모르겠습니다.. 당사자의 마음을 알지 못한 체 찌라시같은 정보들이 넘쳐나는 인터넷과 뉴스를 통해서 일방적인 이야기만 전달받아서 오히려 피해자일 사람을 멋대로 오해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지만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더라도 남편은 그렇다 칩시다.. 전 알지 못하니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남은 모녀의 삶과 어느날 삶을 놓쳐버린 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엄마로서 부모로서 물론 전 아빠로서 과연 자식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담담함과 냉정함의 내면에 얼마나 많은 고통과 아픔과 슬픔과 눈물이 간직되어 있는 지는 모르지만 겉으로 드러내는 이야기의 모양새는 세상속에서 모든 것이 굳어버린 돌덩이마냥 감정을 빼버린 듯 해서 저로서는 이해를 하지 못하겠더군요, 하지만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 이 의심이란 녀석은 정말 기하급수적으로 머리를 잠식해들어갑니다.. 대단히 무서운 암세포와 마찬가지죠,


    2. 그토록 중요한 가족이고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아내이지만 저 역시 간혹 의심이 들때가 있습니다.. 물론 불륜이나 뭐 같잖은 의심등이 아니라 나라는 남자와 살아가는 삶의 이면에 홀로 삼켜야 할 아픔이나 비밀이나 힘듬이 있음에도 굳이 드러내지 않는 그런 모습속에서 제가 한번씩 다툼이 있을때 나는 이런 생각인데 이 여자도 다르지 않을텐데, 왜 이럴까라는 뭐 그런 의심적 의심입죠, 인간은 누구나 개인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자식들에조차 이런 개인적 본능을 드러내는 인간들이 허다한 데 부인이라고 다르겠습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은 나 같지가 않죠, 함께 평생을 살아가는 부부이지만 모든 것을 공유하고 이해하고 인정하고 양보하고 보듬어주고 살아가진 못합니다.. 말그대로 부부는 무촌이니까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지만 한순간에 세상에서 가장 멀어지는 존재로 느껴지는 경우도 우린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누군가가 나의 아내가 나에게 숨겼던 추악한 비밀을 폭로해버린다면, 그리고 그 말같잖은 비밀이 사실로 드러났다면, 난 과연 어떻게 대처할까요, 솔직히 부부로서 십수년을 살아오면서 우린 서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배려해줄 수 있을만큼 전혀 문제없는 사랑을 여전히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할런 코벤은 이런 가족에게 불어닥친 겉으로 보이는 행복한 삶의 이면의 가려진 어둠을 이번에도 따갑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낯선 자가 누군가를 나락으로 밀어넣은 추악한 진실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제목이 "스트레인저"입니다..


    3. 뉴욕 근교의 조용하고 조금은 부유한 이웃들과 함께 하는 곳에서 애덤 프라이스와 그의 아내 커린은 두 아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애덤은 토지수용 전문 변호사로서, 아내인 커린은 교사로서 충분히 여유로우면서도 행복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죠, 그리고 두 아들은 지역 라크로스 선수로서 평범하지만 누가 보기에도 부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아이의 경기운영과 선수로서 뽑히기를 원하며 아내 대신 애덤은 지역 모임에 참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낯선 자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자신의 아내가 자신을 속였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임신을 하지 않았는데 가짜로 임신한 척 그게 거짓말을 한 것이죠,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달받은 애덤은 낯선 자가 남긴 뜬금없는 폭로가 사실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출장을 떠났던 아내가 돌아오자 애덤은 추궁을 하죠, 아내는 당황해하며 애덤에게 잠시 시간을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조만간 사실을 알려주겠다고 하면서 사라져버립니다.. 그리고 며칠만 시간을 달라, 혼자있고 싶다라는 문자만 남긴 체,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다.. 애덤은 아내가 사라져버린 일을 어떻게 대처해야될 지 고민입니다.. 그런 아내의 행방을 찾아나서던 애덤, 그리고 또다른 상황에서 낯선 자는 또다른 누군가에게 추악한 진실을 폭로하며 협박과 함께 돈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폭로로 인해 살인사건이 발생하게 되죠, 애덤에게 닥친 아내의 실종과 추악한 비밀을 폭로하는 낯선 자와의 관계는 과연 어떤 것인 지, 그리고 예상치 않게 벌어지는 살인사건으로 인해 애덤과 그의 가족에게 닥치는 위험은 과연 무엇인 지, 코벤 횽님은 끝없는 이야기의 미로를 독자들에게 선사합니다..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녀,


    4. 코벤의 단행본들은 대체적으로 가족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과거의 비밀이 현실속에서 어떻게 변질되고 추악하게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가를 보여주곤 합니다.. 생각하지도 못한 나와 가장 가깝다고 느끼고 살아왔던 가족이나 형제와 이웃의 비밀을 드러내는데 일가견이 있는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어라, 이거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네라는게 그가 만들어가는 이야기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꼬을 수 있을만큼 꼬아서 독자들로 하여금 도저히 헤어나지 못하게 이야기속에 잡아둡니다.. 마지막에 이를때까지 독자들은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마무리가될 지 도저히 감도 못잡게 만드는거죠, 이번 작품 "스트레인저"도 이런 방식적 진행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중간정도에 이야기의 중요한 단서를 모두 드러냄에도 진작 필요한 진실은 마지막이 되어서야 알게 되는 것이죠, 그의 소설은 평범한 사람이 주인공입니다.. 하지만 대단히 강직하고 책임감과 서민적 정의감이 넘치는 일반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죠,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삶을 위해서는 진실이 무엇인 지 꼭 밝히고 말겠다는 집념이 강한 인물을 언제나 등장시킵니다.. 이 소설에서도 애덤 프라이스라는 인물을 통해 그런 모습을 적절하게 보여주죠,


    5.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주변의 이웃들의 추악하고 비밀스러운 과거와 진실을 드러내는 이야기는 할런 코벤이 쵝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그토록 믿고 사랑했던 자신의 아내마저 자신을 속이는 추악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시작하죠, 하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있기 때문에 시작에서 보여준 표면상의 진실이 진정한 삶의 이면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코벤 형님 역시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하질 않습니다.. 여태껏 수많은 그의 작품에서 추악한 진실은 늘 사랑앞에서 굴복하고 언제나 우리와 같지만 약간의 책임과 정의감이 있는 주인공을 통해 보듬고 배려하면서 마무리를 하죠, 하지만 이번에는 그동안 그가 보여준 작품과는 그 마지막의 의도가 많이 다릅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점수를 주어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깜짝 놀랬어요, 그동안 수많은 복선과 반전을 상황 곳곳에 드러내고 마지막에 그 끈의 이음새를 하나씩 끊어내던 코벤식의 서사가 이번에는 중간중간 그 이음새를 풀어가면서 마지막에 예상치 못한 결말을 선보여주기 때문에 오히려 더 층격적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러운 진실은 늘 남겨진 이들에게 상처를 남기죠, 그리고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만약 나라면 저렇게 했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주어진 감정을 조금만이라도 이성적인 판단으로 고민을 해봤더라면, 과연 이 아픔이, 이 상처가 생기지 않았을까, 작가는 독자들에게 되묻는 듯 합니다..


    6. 할런 코벤의 스타일은 미국식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중산층이나 부유한 전문직종을 가지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현실적인 주인공들의 삶을 그려내면서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드러내죠, 그렇기 때문에 대단한 공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영미식의 사고방식속에 동양적 감성도 상당히 묻어납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삶의 방식이나 사고의 흐름은 동양적이진 않죠, 그런 면에서는 우리네 인생의 모습과는 다르기 때문에 여느 일본소설들이 주는 공감적 흐름은 따라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작가의 작품들이 스릴러를 사랑하는 우리나라 독자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이유는 바로 스릴러가 주는 흐름의 서스펜스와 상황이 주는 긴박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헐리우드식의 스타일에 길들어져버린 우리의 영화적 이미지도 한몫했지 싶습니다.. 그의 작품은 그런 스릴러의 모든 잔재미가 가득한 선물박스같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단행본으로 국내에 선보이는 모든 작품들이 나름의 즐거움을 주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이럴진데 미국애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좋아하겠죠, 현실의 일반적인 평범하고 평화로운 삶이 얇은 얼음처럼 한순간에 깨어져버리는 상황적 현실감은 아마도 스릴러작가중의 최고라고 감히 평가해봅니다.. 그리고 이런 스타일은 수많은 독자들을 공감적 즐거움으로 이끄는 장점이기도 하죠, 만약 이 작품 "스트레인저"의 마지막이 여느 작품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결말로 이어졌다면 개인적으로 이렇게 평가했겠죠, 재미는 있는데 이번에도 전작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코벤은 가독성 하나는 죽여준다 뭐 이런 단편적 이야기를 주절주절거리며 독후감을 썼겠지만 이번 작품은 마지막에 주어진 진실의 무게가 상당히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코벤이 보여준 결말의 무게감이 이 작품의 품격을 조금 더 올려주었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허구는 허구로 남는게 좋습니다.. 아무리 현실적이라 하더라도, 근데 난 지금 아내를 믿고 있나,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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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의 도시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8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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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정폭력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세상이 많이 바꼈죠, 제가 어릴때만해도 동네에서 가정폭력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었음에도 동네 어른들은 그다지 신경쓰시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술드신 아버지들이 부인과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더라도 정말 심한 경우가 아니라면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았을뿐더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도 남의 가정사에 감놔라 대추놔라 하기 그렇다면서 주의만 주고 돌아가는 경우도 허다했을겁니다.. 언제나 폭력이라는 것은 힘을 가진자가 힘이 없는 자에게 행하는 아주 비열한 방식의 감정적 행동입니다.. 보통은 이유가 없죠, 자신이 가진 힘을 이용하여 누군가에게 감정을 풀어버리려는 행동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특히나 술을 먹게 되면 이런 감정의 통제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술 취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그런 범죄(전 범죄라 단정합니다)를 저지르지 않나 싶습니다.. 여전히 우리가 모르는 단절된 환경속에 놓인 수많은 아이들과 힘없는 사람들은 지금도 누군가의 폭력에 두려움에 떨고 살아가고 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그시절 저녁 늦은시간 술 취한 아버지가 잠들때까지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동네를 하릴없이 왔다갔다하던 친구의 서글픈 표정이 떠오릅니다.. 동네 어른들께서는 그런 아이의 사정을 알고 쯧쯧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당신의 집으로 가서 밥을 멕여서 보내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언듯 따뜻한 이웃의 모습이지만 그 아이에게는 눈치밥일 수 밖에 없는 아물지 않는 상처를 감당해야할 그런 고마움이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2. 세상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사회란의 뉴스에서는 매일같이 폭력이라는 아주 지랄같은 사회악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과거와 같은 가정폭력의 행태가 줄어든 반면 학생들의 삶속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폭력의 행태는 시간이 지날수록 심화가 되어지는 듯 합니다.. 굳이 이 독후감에서 언급할 필요도 없는 것이 어떻게보면 그런 모습들이 우리의 일상과도 같이 자연스럽게 보여진다는 것이죠, 과거처럼 숨겨지고 감춰지고 외면하던 시절의 폭력이 아닌 버젓이 눈에 보이게 드러내는 폭력의 모습은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일입니다.. 이들에게 폭력이라는 것은 일종의 권력이자 허세의 일부같은 자연스러운 현실속의 생활의 일부처럼 보여지는게 너무나 무서운 일인거죠, 또래의 아이들은 자신의 아주 단순한 이기적 감정과 욕심때문에 폭력을 행사하고 스스로 합리화를 시키는 모습까지 보입니다.. 수많은 매체에서 쏟아져나오는 법적 정보들로 인해 아이들은 자신의 비겁하고 저열하고 정신나간 행동에 대해 방어를 할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사실 그렇게 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구요, 자식을 둔 부모로서 너무나 무섭고 두려운 일이죠, 여하튼 이번에 읽은 작품에서도 수많은 폭력으로 양산되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시간날때마다 꾸준히 읽어오고 있는 울 코넬리횽아의 해리 보슈 시리즈입니다.. 이번에는 여덟번째 작품 "유골의 도시"입니다..


    3. 새해 첫날 근무중이던 해리에게 신고가 접수됩니다.. 헐리우드 외곽의 언덕에서 발견된 어린아이의 뼈와 관련된 신고였던거죠, 출동한 해리는 뼈를 발견한 지역에서 은퇴한 의사와 그의 반려견과 함께 현장으로 향하죠, 늦은 시간 힘겹게 오른 산중턱에서 발견된 어린아이의 뼈는 수십년은 지난 것으로 보이고 해리는 바로 지역을 통제하고 다음날 현장 발굴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전날 현장에서 만난 순찰경관 줄리아 브래셔라는 여성에게 호감을 가지고 현장에서 도움을 받게 되죠, 발굴된 아이의 뼈들을 법의학국에서 검시를 하는 동안 여러가지 정황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뼈에서 발견된 학대의 증거로 인해 어린시절부터 사망 당시까지 폭행으로 인한 수많은 아픔들이 뼈에 그대로 기록되었던 것이죠, 심지어 마지막 죽음에 이르기전까지 두개골에서 발견된 심각한 폭행의 흔적은 해리로 하여금 이 사건의 진실을 꼭 밝혀내게끔 만듭니다.. 뼈 이외에는 단 하나의 단서도 없는 상황에서 법의학국에서 제시한 나이대와 실종시기에 대한 기본적인 기준으로 단서를 얻기위한 조사가 진행되고 그 사이 해리는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줄리아와의 사이에서 그동안 힘들었던 삶의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보상받게 됩니다.. 그리고 제보조사를 받던 중 뼈가 발견된 지역의 탐문수사를 하던중 알게된 니콜라스 트랜트라는 인물에 대한 과거 범죄기록을 확인한 해리와 에드가를 트랜트를 만나러가게 됩니다.. 트랜트는 아이의 실종될 당시에 아동 성추행 전과를 가진 인물이었죠, 하지만 그는 범행사실을 부인하고 경찰의 업무와는 무관하게 현장을 방문했던 기자들은 유력한 용의자로서 트랜트의 과거를 들먹이며 그를 수사선상에 올려놓게 됩니다.. 결국 트랜트는 자신의 무죄와 결백을 주장하며 자살을 하게되면서 사건은 어지러워지기 시작합니다..


    4. 늘 그렇듯 변함없습니다.. 군더더기도 없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제목에 부합하는 유골에 대한 사건의 진실찾기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늘 조직과의 외로운 싸움을 벌이는 해리와 LA경찰조직과의 딜레마도 있죠, 해리에게 우선은 늘 범죄에 대한 진실과 정의입니다.. 그걸 위해서 조직이나 환경은 부차적인 문제인거죠, 하지만 조직을 그렇지가 않습니다.. 아주 단순한 문제로 인해 발생되어지는 여러 상황에 대한 대처가 중요한 곳이죠, 조직을 위해서 개인에게 주어진 권리나 소소한 책임은 묵살되어질 수 있는 것이죠, 특히나 사회적 비판에 직면했을때에는 그러한 부분이 정의와 진실과는 별개로 적용될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물론 해리 보슈는 그런 조직적 의도에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이 작품에서도 기본적인 전제는 수십년전에 일어난 사건에서 정확한 진실을 발견해도 본전인 경우 굳이 들춰낼 필요가 있을까라는 사회적 관행을 바탕에 깔고 해리는 진실을 찾아 나서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분란이나 문제점은 조직은 쉽게 받아들이질 못하고 해리로서는 사건의 단서, 아이의 학대와 숨겨진 죽음의 진실에 대한 정의를 위해서는 직진하는 방법을 이전과 같이 그대로 따릅니다.. 그리고 여전히 해리는 사건을 해결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와 진실에 대한 접근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죠, 소설속에서 누군가는 해리 보슈를 향해 대단한 수사관이라 칭하고 종결자로서의 지위를 부여하지만 여전히 해리는 스스로 불완전한 인간임을 알고 있습니다.. 늘 그는 시행착오와 오판을 거쳐서 진실에 다가가니까 말이죠,


    5. 또 늘 그렇듯 코넬리가 그려내는 서사적 이야기는 그렇게 어렵질 않습니다.. 꼬아놓질 않아요, 하나의 사건을 제시하고 그 사건을 진행함에 있어서 현실적으로 닥치는 여러 문제점과 함께 시간적 흐름에 따른 발품파는 사건 해결기를 내놓습니다.. 독자들은 어렵지않게 이야기를 따라가는 즐거움이 있죠, 문장이나 흐름이나 전반적인 구성이 상당히 딱딱해보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재미가 있는 이유가 단순함속에 묻혀있는 수많은 현실적 꼼꼼함과 섬세함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해리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감정적 페이소스 역시 독자로서 주인공의 감성에 자연스럽게 다가설 수 있게 작가는 심리적 묘사나 표현등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죠, 벌써 여덟번째 작품이나 어느정도 작가의 숙련된 사건의 진행과 프로적 문장력은 말 할 필요도 없이 집중력을 발휘합니다.. 그러니 재미가 없을 수가 없는 것이죠, 하지만 늘 변함없다는 것이 장점이자 일종의 단점의 모양새를 보이는 부분을 감안한다면 일종의 전형적 흐름이 누군가에게는 지루함을 선사할 지도 모를 일이긴 합니다.. 아무래도 뛰어난 크라임 스릴러소설의 모습을 가진 좋은 시리즈이지만 늘 평균 이상의 즐거움이라도 하더라도 각 작품마다의 임팩트가 전형성이라는 딜레마를 가지게 되면 조금 타성에 기댈 수도 있을테니까 말이죠, 그래서 이 작품 "유골의 도시"는 아주 뛰어난 시리즈의 연속선상에서 매력적임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작품이 주는 큰 충격적 이미지가 남겨지는 그런 작품은 아닙니다.. 물론 후반부와 중간에 벌어지는 상황적 아픔은 대단히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인식되어지지만 코넬리의 작품, 특히 해리 보슈라는 캐릭터에서는 이런 아픔서린 인식적 감성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니 자체가 부각되지는 않더라구요,


    6. 하지만 이 작품은 해리 보슈의 전체 시리즈를 잇는 작품의 영역에서는 절대 배제하면 안될 작품입니다.. 물론 시리즈를 연속적으로 읽어나가는 독자들에게는 그럴 일이 없긴 하겠지만 워낙 시리즈가 많다보니 띄엄띄엄 읽게 되더라도 전체의 윤곽을 위해서는 중간 지점에 위치하는 듯한 이 작품 "유골의 도시"는 이전의 보슈와 이후의 보슈로 나눠지는 전환점이기 때문이죠, 제목처럼 "유골의 도시"와도 같은 범죄와 폭력과 정의가 사라진 현대의 LA라는 도시의 모습속에서 홀로 정의를 찾고자 하는 외로운 코요테와 같은 해리 보슈에게 그동안 정의를 위해 그가 추구하고 견뎌온 수많은 고통과 진실의 아픔은 또다른 자신의 모습을 찾기위한 이상과 현실적 한계속에서 방황하고 또다른 목적성을 부여하는 것이죠, 그런점에서 이 작품이 주는 의미는 상당히 지대하다고 또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의 사건이 결과나 진행과정상에서 보여주었던 수많은 딜레마와 현실적 문제에 대한 작가적 입장의 피력도 그동안 그가 말하려 했던 것과 앞으로 그가 보여줄 의도를 대강 짐작할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 이후의 작품들을 어줍잖게 미리 읽어본 바가 있어서 이후의 해리가 만들어갈 사회적 정의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스포일러를 스스로 한 셈이긴 하지만 이어질 9번째 시리즈인 "로스트 라이트"에서 길잃는 불빛이 찾아갈 진실의 결과를 다시한번 느껴봐야될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또 다시 늘 그렇듯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는 크라임스릴러의 진리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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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나 스토리콜렉터 56
마리사 마이어 지음, 이지연 옮김 / 북로드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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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큰딸이 태어나고 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주었는 지 이루 말로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가족중에서는 처음으로 태어난 아이다보니 삼촌이고 이모고 부모님들도 마찬가지고 쳐다만봐도 행복했던 것이지요, 아마 엄마 젖을 먹으면서도 아이는 자신이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자라고 있는 지 본능적으로 알았지 싶습니다.. 심지어는 돌잔치도 현수막까지 내걸고 호텔 부페에서 멋지구리하게 수많은 하객들을 모시고 했으니까요, 그렇게 오로지 혼자만이 독차지한 사랑이 둘째가 태어나면서 조금씩 옮겨가기 시작합니다.. 하물며 이런 말하면 남녀평등이 우짜니저짜니 하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둘째가 아들이라는게 문제였던 것이죠, 저희들이야 큰넘이나 작은넘이나 동일하지만 가족들은 또 그렇지 않았던가 봅니다.. 그동안 혼자 독차지했던 가족들의 사랑이 동생에게 옮겨가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큰아이는 무척이나 힘들어 합니다.. 가족들은 누나가 양보해야쥐, 누나니까 동생을 챙겨줘야지 뭐 이런 말을 스스럼없이 하지만 부모된 입장에서는 큰아이의 심리적 불안감에 대해서 걱정할 수 밖에 없었죠, 예민하단 아이를 달래고 어르고 심지어 애기 엄마는 큰딸을 위해서 갓 태어난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질 못했습니다.. 안그래도 적은 양인데 아들에게 먹일 모유까지는 힘들었던거죠, 딸은 그게 자신의 생명줄인냥 절대 양보하지 않더라구요, 결국 아들은 엄마의 심장소리보다는 자신의 뽁뽁거리는 분유먹는 소리에 익숙해져버렸고 그로 인해 저의 새벽 수유가 많이 늘어버려 아침마다 비몽사몽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부모로서는 큰아이가 일종의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오히려 둘째의 양보를 부추기는 상황이 커가면서도 늘 일종의 습관처럼 되어버렸음에도 여전히 큰넘은 동생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제법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부모는 자신을 챙기지만 가족들(특히 할매, 할배)은 동생에게 양보하고 동생이 착하고 동생이 점잖고 동생이 누나를 챙기는 것에 대한 칭찬을 수도없이 늘어놓으니 그러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잡아주는 균형적 사랑이 있었으니 나름 잘 자라고 있는 것 같긴 합니다.. 그 균형적 사랑을 만들기 위해 쌍둥이가 다시 태어났으니 참 대단한 부모죠, 허얼


    2. 이거이거 갈수록 주절거림이 길어져서 큰일이네요, 근래들어 부쩍 말이 많아졌습니다.. 이래선 아무도 독후감 안읽어주실 것 같은데 우짜나 싶기도 합니다.. 여하튼 중년 아저씨가 가족이야기하는 수다는 끝이 없습니다.. 특히 자식과 관련된 이야기는 구구절절 흘러나옵니다.. 이래선 안되는데 말이죠, 제가 가진 취미라고는 책읽는 것 말고 참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긴 하지만 늘 그렇지만 책에서 -그중에서 전 장르소설만 집착하는 경향이 짙음- 만나게되는 허구의 세상속의 인간의 이야기는 늘 가족과 자신에 대한 모습들이죠, 그래서 내 삶과 주변의 인생을 결부시켜 생각하고 인식화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혼자 떠올리고 생각하고 기억하고 파생시키는 수많은 생각의 편린들이 제가 살아가는 재미없는 삶에서의 하나의 즐거움인 것이죠, 어떨때는 화가나고, 또 다른책에서는 슬프하고, 고통받고, 즐거워하는 이 작은 책속의 무한한 삶의 모습들이 너무나도 절 행복하게 하곤 합니다.. 그중에서도 간혹 읽게되는 판타지소설의 상상속의 세상을 다룬 작품들에게서 받게 되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습니다.. 얼마전까지 읽었던 마리사 마이어 여사의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가 그중 하나이죠, 동화속의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상상의 세상에 대한 로맨스 판타지소설이었는데 정말 대중적 재미가 가득한 작품이었습니다.. 신데렐라를 모토로 한 "신더"로부터 시작해서 빨간모자를 다룬 "스칼렛"과 라푼젤을 본딴 "크레스"까지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대망의 동화 결정판 백설공주가 등장하는 "윈터"로 끝을 맺죠, 그리고 이번에는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이자 대척점인 악녀의 중심 레바나 여왕의 숨겨진 삶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일종의 프리퀄적 스핀오프의 느낌으로다가 출간되었습니다.. 늘 그렇듯 제목은 "레바나"입니다..


    3. 아시다시피 이 시리즈는 달과 지구의 전쟁을 다루고 있죠, 그래서 시리즈도 루나 크로니클이라 명명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 소설은 과거 지구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달의 지배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모든 시리즈의 중심인 레바나라는 루나 여왕에 대한 성장기를 다루고 있죠. 자신의 부모가 죽음을 맞이하고 남겨진 자매 채너리와 레바나는 달의 지배자가 됩니다.. 장녀인 채너리가 여왕이 되고 레바나는 공주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과거 불로 인해 화상을 입은 레바나는 언제나 자신을 감추고 마법으로 치장을 하게 됩니다.. 아직 열다섯의 어린 공주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만족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순수한 사랑을 택하고자 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근위병인 에브렛을 사모하고 있죠, 하지만 그는 결혼을 한 몸입니다.. 그가 레바나의 부모님의 장례식에 데려온 아내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인이었죠, 그리고 그녀는 만삭의 몸이었습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엄청난 질투심을 느끼게 되는 레바나이지만 아직 그녀는 순수하고 어린 여성일 뿐입니다.. 그러나 에브렛의 부인은 딸을 낳자마자 죽게되죠, 레바나는 그런 에브렛에게 죽은 아내의 모습으로 그를 유혹하고 마법을 걸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만들어진 사랑의 결과는 어떨까요, 그리고 루나의 여왕 채너리는 악녀로서의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줍니다.. 도대체 이 자매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리고 어느날 레바나는 에브렛의 딸 윈터를, 채너리는 자신의 딸 셀린을 낳게 되고 이들은 루나 크로니클의 중심이 되죠, 근데 레바나는 왜 채너리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최악의 여왕이 되어버린 것일까요,


    4. 일반적인 동화적 모티프를 차용한 SF판타지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이 작품 "레바나"는 대단히 자극적입니다.. 대중적인 악녀적 상상력과 권력와 음모와 욕망을 다룬 장르적 취향이 모든 설정된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싶습니다.. 가족간의 시기와 질투와 죽음에 대한 정신적 장애를 가진 인물들의 사이코적 발상이 이 작품의 전반에 걸쳐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럴 수 있죠, 특히나 악녀를 상징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목적이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는 존재들을 걷어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작품에서 존재하는 두 여인의 모습은 대단히 이질적입니다.. 물론 작품의 전반적인 구성을 위해 캐릭터의 설정이 대단히 악의적으로 진행되었던 점에 대해서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작가는 레바나라는 인물에 대한 성장기적 고통을 일종의 합리적 방법론으로 그녀의 악녀적 변화를 이끌어내려고 한 듯 싶습니다.. 물론 전작들에서 제가 느꼈던 흥미와 자극적 상상력이 가미된 속도감 넘치는 장르적 취향이 정말 좋았다고 말씀을 드린 것 같은데 이 작품에서 "레바나"를 통해서 드러나는 캐릭터의 모습은 너무 과장되고 오버스러운 심리적 불안감이 전면에 내세워져 읽는 내내 감정적으로 불편함이 끊임없이 일었던 것 같습니다.. 채너리라는 인물은 말 할 것도 없고 레바나가 보여주는 그녀의 성장통과 숨겨진 심리적 갈등은 현실감이 너무나도 떨어지는 감성적 악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5. 물론 사악한 존재감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그려내려했으니 당연히 자극적이고 악한 느낌이 지배적으로 작용했겠죠, 뭐 이해합니다.. 하지만 전작들에서 제가 느꼈던 즐거움이 있기에 이런 감성적 불편함은 조금 달리 다가왔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대중적 재미와 취향적 스토리의 존재감은 이 작품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으로 적용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긴 했습니다.. 아무래도 대중들은 전작의 시리즈에서 대단한 존재감과 이질감을 드러낸 레바나라는 악녀적 인물에 대해 궁금했던 부분이었으니 말입니다.. 작가도 이런 부분을 인식해서인지 이야기를 길게 끌진 않고 딱 적당한 분량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 보여주는 시리즈 전반에 걸친 이야기의 프리퀄로서는 충분한 궁금증에 대한 보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단순하게 프리퀄 형식의 이 한 작품에 대한 독후감은 사실 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독자분들께서도 만약 이 시리즈를 읽어시려고 하신다면 가장 마지막에 이 작품을 읽어보시는게 작품에 대한 즐거움에 도움이 되시리라 믿고 또 그 궁금증으로 인해 오히려 이 작품의 즐거움이 배가되시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사실 흥미로 따지자면 판타지소설만큼 재미가 가득한 장르소설도 드물죠, 그만큼 이런 류의 장르적 취향은 많은 독자분들이 즐거워하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이 시리즈는 여성의 캐릭터를 극대화한 히로인적 역할에 충실하기 때문에 독자들이 더욱 선호할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레바나" 또한 이런 빌런스러운 악녀적 히로인의 역할에 충실했던 것 같구요, 결국 하나의 작품으로 "레바나"라는 프리퀄을 평하기 보다는 전반적인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를 기준으로 이 작품집은 아주 즐겁고 매력적인 판타지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돈과 권력은 많으면 많을수록 탐하게 되고 그로인해 인간은 악하게 되어진다고 하더만, 그래도 난 돈이나 권력이 좀 있어봤으면 싶다..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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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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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헌신이라함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누군가를 지켜내거나 사랑을 하거나 뭐 이런 아주 거룩한 말인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타인에 대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서라도 그를 위해 많은 것을 해주거나 그러질 않습니다.. 뭐 직업상 헌신도 있을테고 가족적 헌신도 있을테고 애국적 헌신도 있을테지만 일반적으로 우린 함부로 이런 헌신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거나 하지는 않죠, 아무래도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기적인 자아에 집착하는 경향이 짙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또 이 이기적인 본성이 어느순간 그 영역을 확장하게 되죠, 특히 사랑이라는 감정이 매개가 되는 연결의 울타리속에서 존재하는 가족이라는 공간에서는 더욱 이런 헌신의 단어가 와닿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나와 다르지 않지만 나보다 더 중요한 존재들이라는 감정적 인식이 어느순간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리를 잡게 되죠, 나 하나 희생하더라도 나의 사랑하는 누군가를 제대로 지켜낼 수만 있다면,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막상 그런 상황에 부딪힌다면 그 생각의 결론을 정확하게 알 수 있겠지만 일단 우린 그런 상황을 미리 예상할 필요는 없으니 생각과 책임적 헌신의 마음가짐만으로 충분히 고귀한 인간의 헌신을 가진 대단한 존재라는 사실에 스스로 감격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령 아이와 아내가 물에 빠졌는데 둘다 구하다가는 나는 죽는다고 하면 웬만한 아부지들은 다들 죽음을 택하고 자신의 가족을 살리지 않을까하는 고귀한 헌신을 떠올릴겁니다.. 그것으로 된겁니다.. 실제 우리가 그런 일을 당하지 않고 살면 되니까요,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세상의 헌신은 충분한 값어치를 가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님 말고


    2. 하지만 이 헌신의 영역도 대개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 국한된 경우가 대다수의 우리의 삶의 모습입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헌신의 경우는 대체적으로 종교적 신념과 관련된 경우가 가장 많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헌신의 개념적 예를 드는 경우에는 늘 종교와 관련이 있습니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경우를 보면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아무리 종교적 신념이 있다손 치더라도 쉽지 않은 일이죠, 특히나 재난이라 사회적 어려움에 처한 경우에 국민에게 봉사하는 수많은 직업군의 헌신적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나름 살만한 세상이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오늘도 수많은 누군가는 자신의 본능과 욕망을 위해 타인을 해하는 동안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을 버리고 타인을 구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용의자가 어떠한 범죄를 숨기기 위해 타인에게 헌신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단순한 상황적 도움이라고 하기에는 그 헌신이 너무나도 계획적이고 주도면밀하기 그지 없습니다.. 또한 누군가를 향한 자신의 일방적인 마음의 표현이라고 하기에도 범죄를 숨기고 묵인하고 알리바이를 조작하는 범죄행위를 우린 과연 헌신이라고 볼 수 있는 지도 의문이기도 합니다.. 제목만으로 우린 아하, 이거이거하는 작품이기도 하죠, 워낙 유명해서 딱히 드릴 말씀도 없는 히가시노 게이고 센세이의 "용의자 X의 헌신"입니다.. 여기에서 용의자 X는 천재 수학교사인 이시가미라는 인물이죠, 그리고 이 소설은 갈릴레오 시리즈라는 유가와 마나부라는 천재 물리학자가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천재와 천재의 만남이라고 보시면 아주 멋지구리한 시작점이 될 듯 싶습니다..


    3. 이시가미는 변함없이 허허로운 삶의 외로움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출근길에 마주치는 노숙자들이 생활하는 강변로와 도시락을 사러가는 옆집 여인이 근무하는 벤텐테이로 일상을 시작합니다.. 그는 한결같이 야스코라는 여인이 있는 도시락 가게를 이용합니다.. 그가 그녀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그런 그녀는 얼마전까지 밤업소에서 호스테스로 일하다가 현재는 중학교를 다니는 딸아이와 함께 이시가미가 사는 연립주택으로 이사를 와서 힘겹게 살아가는 중이죠, 하지만 과거 그녀의 남편이었던 도가시라는 인물이 야스코를 찾아옵니다.. 그는 그녀와 이혼한 후에도 그녀에게 치근대며 백수로 돈을 뜯어가는 질이 안좋은 인물입니다.. 야스코는 그를 뿌리치고 집으로 향하지만 어떻게 알았는 지 도가시는 그녀의 집까지 찾아옵니다.. 그녀의 집에서 행패를 부리던 도가시는 마침 집으로 돌아온 미사토에게까지 안좋은 모습을 보이고 그런 그가 야스코에게 함부로 대하는 모습에 미사토는 그에게 달려듭니다.. 도가시는 그런 미사토에게 폭력을 행사하다가 야스코가 그의 목에 감은 전선줄로 인해 죽음을 당하게 되죠, 갑자기 벌어진 이 상황에 모녀는 당황하고 어떻게 해야할 지 모릅니다.. 그러던 와중에 옆집의 이시가미는 이 곳에서 벌어진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고 이 모녀가 궁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완전범죄의 방법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이시가미의 논리적 판단에 따라 야스코 모녀가 살인범이 되지 않는 빈틈없는 알리바이와 완전범죄의 계획이 완성됩니다.. 뒤늦게 발견된 도가시의 사체에서 용의자로 지목된 야스코는 천재 수학교사 이시가미가 미리 만들어놓은 계획에 따라 경찰의 수사에 협조하는 척 하지만 경찰은 사건의 중심으로는 나아가질 못하죠, 여기에서 수사를 하던 구사나기는 늘 그렇듯 자신을 도와주는 유가와 교수에게 이시가미가 그들이 다녔던 데이토 대학 동창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유가와는 여태껏 살아오면서 자신과 필적할 수있는 유일한 천재인 이시가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천재와 천재의 만남이 이루지면서 이시가미가 염두에 두었던 완전범죄의 틀은 조금씩 유가와로 인해서 깨어질 듯 보이나 유가와 또한 아무런 의미없은 타인을 위한 그의 역할이 무엇인 지 정확하게 꿰뚫지를 못합니다.. 과연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4. 모든 것을 이성적 판단의 논리적 근거에 대한 완벽한 계획을 만들어놓은 이시가미와 그 완벽함의 논리속에서 그가 아는 이시가미의 감정선을 찾는 유가와의 대결이 무척이나 즐겁습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결론적으로 로맨스라고 보셔도 될 듯 싶습니다.. 치열한 삶의 헌신을 다룬 가슴 시린 로맨스입죠, 초반과 중반에 걸쳐 우린 단순하게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천재의 일방적인 사랑의 행동으로 생각하며 이 소설의 논리적 추리를 따라가게 됩니다.. 그렇게 때문에 중간에 야스코라는 여인의 행동에 열불이 터지기도 하죠, 게이고센세이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대중적 공감과 추리적 즐거움과 상황적 묘미를 너무나도 잘 적용시킨 멋진 추리소설 작품을 만들어 냈으니 말이죠, 전 수년동안 책장에 꽂힌 이 작품을 언제 읽지 하면서 바라보다 이번 기회에 뒤늦게 읽게 되었지만 무척이나 즐거운 추리소설이었다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왜 사람들이 게이고게이고하는 지 이 작품을 통해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으니 말이죠, 저 역시 게이고 센세이의 작품을 제법 많이 읽었지만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경향이 짙은 것은 알지만 이 작품이 주는 즐거움은 아주 대단했습니다.. 유가와가 등장하는 작품도 몇 읽어본 기억이 나지만 아마도 제 머리속에서 앞으로 가장 뚜렷하게 기억되는 작품 역시 이 작품 "용의자X의 헌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만큼 천재와 천재의 만남이 주는 캐릭터의 시너지 효과는 극대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가와의 고뇌와 이시가미의 마지막 고통의 모습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듯 합니다..


    5. 이 작품은 이시가미라는 용의자의 시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이어집니다.. 그렇다보니 대중독자들 역시 이시가미가 계획해놓은 완전범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에 따라가게 되죠, 경찰 수사를 담당하는 구사나기는 자신에게 주어진 단서속에서 끊임없이 사건 용의자인 야스코를 의심하고 그 틀속의 미로에서 헤매게 됩니다.. 무엇보다 늘 그렇듯 머리를 담당하는 유가와 교수는 구사나기와는 다른 이시가미의 머리속에 들어가보려고 노력하죠, 자신가 대등하거나 오히려 자신보다 더 뛰어난 천재적 논리를 보유한 이시가미이기에 유가와는 긴장하며 이시가미의 논리의 틈을 찾아보려고 하면서 과거 자신이 알던 이시가미와 현재의 이시가미의 감정적 변화를 중심으로 감정보다 논리가 중요하던 이시가미가 왜 변화되었는가에 대해 집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논리로서는 그를 이길 수 없을 지도 모르니까요, 그만큼 이시가미는 단순한 완전범죄의 구성적 계획을 넘어선 모든 추리적 진입로를 차단하거나 방향을 틀어버리는 대단한 계획을 만들어 놓습니다.. 충격적인 반전이라고 할 이유도 없는 것이 이시가미가 아니 게이고 행님이 만들어놓으신 추리적 논리와 그 계획은 이 작품이 가장 성공적인 게이고의 장편 추리소설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주기에 조금의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지요, 이 소설의 후반부에는 뭔가 상황적 뜬끔포나 충격적인 반전이 갑자기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시가미라는 인물이 자신이 가진 천재적 논리와 수없이 많은 변칙적 수식까지 예상한 완벽한 시나리오가 등장하니까요, 그리고 그가 단 하나 예상하지 못했던 논리는 다름아닌 감정이었습니다.. 휴,


    6. 워낙 유명해서 과거 일본소설을 처음 읽기 시작한 무렵 누군가의 추천으로 가장 먼저 산 작품중에 이 작품이 있습니다.. 그리곤 읽어야지하면서 여태껏 먼지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번에 새로운 완역본으로 재출시 되지 않았다면 여전히 먼지만 후후하고 불어내며 언젠가는이라고 되풀이하고 말았겠죠, 좋네요, 많은 게이고 센세이의 좋은 작품들도 있지만 추리소설로서의 장르적 재미만 놓고 본다면 가장 재미진 작품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네요, 물론 딱딱한 추리적 방법론에 포진한 감정적 격정도 이 작품의 퀄리티를 높여주는 것중 하나이죠, 치밀하고 속도감 넘치는 상황적 변환이 독자들로 하여금 가독성과 집중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하죠, 늘 그렇듯 작품이 재미지고 재미없고를 떠나서 읽어나가는 문장의 맥을 이어나가는 가독성 하나는 제가 아는 모든 대중소설작가중의 탑에 들어간다고 장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의 즐거움까지 독자들에게 선사한다는 것은 두 말 할 것 없는 최고의 추리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으실 만 하다는 것이죠, 물론 저는 이번에 그런 느낌을 만끽했지만 버얼써 십년도 더 전에 이 작품으로 독자들은 대단한 즐거움을 맛보셨을 거라고 생각하며 이 참에 새로운 완역 출간작으로 다시한번 그때의 즐거움을 만나보셔도 나쁘지 않을 듯 싶습니다.. 아무래도 추리소설들은 어느순간 머리속에서 잘 잊혀지는 휘발성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기 떄문에 새로이 경험해보셔도 새로운 느낌이 드시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요즘 과거 독자들의 즐거움을 주었던 게이고 센세이의 작품들이 재출간되는 경향이 있어 보이던데 역시 좋은 작가는 시대와 상관없이 늘 사랑받는 이유가 있나 봅니다.. 난 내가 논리적이지 않아서 좋고 외로움을 잘 잊어먹어서 좋습니다.. 아무렴, 집에 들어가도 외로움에게 정신이 기댈 틈이 없으니 당연하지, 그들이 잠들때까지, 휴우..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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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꽃 엔시 씨와 나 시리즈 3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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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이상하게도 기억나는 학창시절이라하면 고등학교때가 가장 선명합니다.. 중학교때의 이미지도 머리속에 많이 남아있긴한데 모든 학창시절의 중심은 고등학교 3년인 것 같아요, 그 뒤의 대학교 시절의 이미지도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옅어져만 가는데 희한하게도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들은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아마 여지껏 변함없이 만나고 허물없이 욕을 해대는 친구들이 그때 그친구들이기에 그런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늘 똑같은 시절의 똑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그때에 치기어린 행동들에 대해 웃으면 이야기할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행복속의기억입니다만 다들 나와 같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한번씩 많은 동기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때면 그때 그시절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없던 행동들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상처로 자리잡고 있는 듯한 느낌도 받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잊혀져가긴 하지만 그당시 아무렇게나 무시하고 함부로 대했던 끼리들의 배타적 행동들이 뒤늦게 상처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지요, 물론 아직까진 그런 기억으로 인해 누군가가 오랫동안 그 상처가 덧난 경우는 없는 듯 하니 다행이기는 한데, 끼리들의 치기어른 행동들로 인해 누군가가 외로움을 당한 사실을 뒤늦게 안다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도 조금 부끄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정시에 입학한 저로서는 굳이 학교를 다시 방문할 일이 없었지만 재수를 하는 친구들과 1년 후 학교를 방문했을때에는 참 많은 생각을 하던 기억이 오롯이 떠오릅니다.. 일년이 지난 시점에 학교의 교정에 앉아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보낸 3년의 시간을 간직한 이 공간이 1년만에 이렇게 생소하게 느껴지는데 나중에 나이가 들어 이 학교를 올 일이 있어면 얼마나 이 시절을 떠올리게 될까, 그때까지 학교는 변함이 없을까, 변함이 없었습니다.. 수십년이 지나 우연히 들른 학교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더군요, 교정의 한쪽을 차지하던 살구나무는 여전히 든든히 그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몇몇 건물이 다시금 들어서긴 했지만 그시절 그때 울타리 건너의 개구멍이 있던 담장 근처에서 숨어서 태우던 담배꽁초의 연기가 아직도 제 콧구녕으로 스며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그시절의 기억은 절대 잊혀지지 않는 듯 합니다..


    2. 딸아이가 초딩때부터 붙어다니던 친구가 여름방학동안 아주 멀리 이사를 가면서 전학을 했습니다.. 거의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는 친구였는데 부모로서 걱정이 많았죠, 사실 방학동안 그 친구가 이사간 곳으로 딸아이와 함께 가족들이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자동차로도 3시간이 훨씬 넘는 곳을 방문하면서도 걱정은 유일한 친구처럼 보이던 아이를 떠나보낸 딸이 많이 외로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구요, 그렇게 생각하고 부모로서 침울하고 외로움을 더 타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역시 부모는 자식을 제대로 모른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습니다.. 호들갑이었죠,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달라져서 떨어져도 떨어진 것이 아닌 것 같은 세상이었고 무엇보다 그동안 몰랐던 친구가 새롭게 등장하더라구요, 새로운 친구가 놀러와서 너무 친하게 딸과 어울리는 모습에 그동안 걱정하고 고민했던 호들갑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더라구요, 중학생이 된 후로 이젠 아이가 아님에도 여전히 제 눈엔 아이로 보고 있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과 소통하고 만들어나가는 것임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과 같은 아주 무서운 범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중학생들의 행동을 보면 또 부모로서 참으로 힘들고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이제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들이지만 여전히 보호받아야하는 존재들이기에 부모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또 그들만의 세상속에서도 얼마나 많은 고통과 아픔이 내재들어 성장해가는 지 이 시대의 어른으로서 눈치를 채고 살아가야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딜레마가 있는 것이지요, 뭐 이런저런 생각이 들고 가슴이 너무 아픈 작품을 읽다보니 저의 학창시절과 딸아이의 현재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되네요, 얼마전에 무척 행복하게 읽었던 기타무라 가오루 작가의 "밤의 매미"에 이은 장편소설 "가을꽃"입니다.. 일상 미스터리적 형식을 취한 소소한 삶의 이면을 다루고 있죠, 하지만 이번에는 상당히 무게감이 나가는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사람이 죽습니다..


    3. 마침 우리네 계절 감성과 딱 맞아 떨어지는 시간적 배경입니다.. 가을이 짙어가는 시점에 대학교 3학년을 무난하게 넘기고 있는 '나'에게 찾아온 여고 후배의 죽음은 안타깝기만 합니다.. 쇼코와 함께 자신의 집에서 얼마전 학교 옥상에서 떨어져 죽음을 당한 쓰다라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죠, 과거 같은 동네에 살던 쓰다와 이즈미는 '나'와 함께 초등학교에 통학을 했습니다.. 나와는 3년 차이가 나지만 같은 동네다 보니 아이들이 나름 의지하는 선배정도 되었던 모냥입니다.. 그렇게 지내온 이즈미와 쓰다는 초중고를 함께 다니며 떨어질 수 없는 친구사이가 됩니다.. 그러던 와중에 학교 축제를 위해 학생회 활동을 하던 중 밤 늦은 시간에 홀로 학교 옥상에 올라간 쓰다가 떨어져버린 것이죠, 옥상문을 바깥쪽에서 잠겨 있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구조임에도 어떻게 올라갔는 지, 그리고 자살과는 전혀 무관한 대단히 재능이 뛰어난 긍정적인 아이인 쓰다가 어떠한 이유도 없이 죽음을 맞이한 것인 지 모두들 당황해하게 되죠, 무엇보다 그런 쓰다의 죽음을 바로 겪었던 이즈미의 고통은 말 할 수도 없이 괴로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쇼코와 함께 있던 날 '나'의 집으로 과거 쓰다가 쓴듯한 교과서의 한쪽을 복사한 문서가 전달됩니다.. 정치경제를 다룬 책의 복사본은 애덤 스미스에 대한 내용중의 일부로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문장에 덧칠된 미스터리한 단서가 남겨져 있었습니다.. 정황으로 봐서는 이즈미가 보낸 듯한데,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힘든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이즈미와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그 교과서가 쓰다의 다른 유품들과 함께 태워져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누가 보냈을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홀로  남겨진 이즈미의 삶은 어떻게 될까요, 세상 누구보다 서로를 의지했던 한명의 죽음이 남겨둔 고통을 이즈미는 어떻게 감당할까요, 잔잔하지만 이런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주변사람들의 삶과 함께 '나'는 주어진 미스터리의 단서를 찾아나가고자 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후반부에는 라쿠고가 장인인 엔시 다이노스팬이신 엔시 씨가 등장하면서 사건의 미로에 빠진 사건의 정황을 잘 풀어주지 싶습니다..


    4. 그렇죠, 이 작품은 일명 '엔시 씨와 나"라는 시리즈로 불리우는 작품입니다.. 국내에는 이번 장편 "가을꽃"을 비롯해 전작들 단편집 두권인 " 하늘을 나는 말"과 "밤의 매미"가 출간되었습니다.. 이 시리즈는 여느 미스터리소설들과는 조금 다른 감성적 느낌이 전반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일상 미스터리라는 설정으로 주인공인 '나'의 생활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삶의 이면을 다루고 있죠, 전작들은 말그대로 사소한 미스터리의 생활적 측면에서 드러나는 잔잔한 감동적 반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극적이지도 그렇다고 대단히 드라마틱한 구성도 없지만 작품이 주는 독특한 대중적 공감은 상당히 오랫동안 머리와 가슴에 남게 만드는 장점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두번째 단편집인 "밤의 매미를 읽었지만 상당히 행복한 감성적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에는 장편으로 하나의 죽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전작들과는 사뭇 다른 진지하고 조금은 무거운 삶의 아픔을 다루고 있죠, 죽은 이의 미스터리에 집중하기보다는 남겨진 이에게 주어진 삶의 모습에 우린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아직까지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질 수 있을만큼 성숙하지 못했지만 조만간 그들만의 자신감으로 성인이 될 수도 있었던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를 우린 보게 됩니다.. 이젠 조금은 자신의 삶을 그려낼 수 있는 '나'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대중들은 들여다보게 되죠,


    5. 이야기는 무리없이 남겨진 단서를 중심으로 주변의 상황과 그동안 알지 못했던 이야기의 틈을 조금씩 메꿔가면서 진행이 됩니다.. 그러면서도 이즈미라는 아이가 감당해야하는 상실감을 대단히 구체적으로 보여주죠, 작가는 이런저런 이야기와 함께 '나'의 시선으로 주변에서 벌어지고 엮어지는 생활의 모습속에서, 기억속에서 조금씩 진실이 뭔지 되짚어나가고자 합니다.. 이 소설속에서는 우리의 일반적인 삶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냥 우리와 동일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어느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툭 튀어나와버리는 아픔을 단조롭지만 가슴시리도록 그려내고 있는 것이죠, 아직 미래의 삶의 모든 것을 가늠하지 못하고 만들어나가려 노력하는 한 아이의 죽음을 다룬 설정은 무척이나 무겁게 느껴지지만 작가는 변함없이 주변의 이야기와 따뜻한 인간들의 배려적 감성을 곳곳에 배치하여 편안함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아이의 죽음을 감내하기도 힘든 어머니에게 남겨진 아이의 아픔과 고통을 다독거리고 걱정하는 인간적 따스함도 보여줍니다.. 살아남았으니 어떻해서든 우린 견뎌내어야한다는 이야기이죠, 그리고 '나'에게 주어졌던 단서의 미스터리를 정리하면서 엔시 씨와 주고받는 문답의 결론적 마무리는 그리고 그 해결적 방식은 개인적으로는 상당한 감동이었습니다.. 작위적이고 꾸며낸 소설적 감성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우리의 삶과 직면한 현실적 인간의 모습으로 이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 잠들었어요" 이 한마디가 주는 감성은 이 작품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6. 전작인 "밤의 매미"를 읽으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긴한데, 저같은 장르소설 취향의 속도감 넘치고 자극적이고 조금은 과장된 폭력적 감성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스릴러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어떻게보면 이런 소소한 일상 미스터리를 다룬 잔잔한 작품은 재미적인 측면에서 크게 어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 작품만은 조금 달리 보고 싶습니다.. 단순한 코지스타일의 추리소설의 측면이 아니라 감성적인 느낌이 더 강하게 자리잡는 편안하면서도 감동이 느껴지는 작품이라는 것이지요, 저 역시 중간중간 이어지는 주변의 이야기의 몇갈래의 가지들은 쳐내고 싶었습니다만 그럼에도 작가가 그려내기 위해 설정한 삶의 모습은 상당히 중요해 보였습니다.. 단지 라쿠고가라는 장르를 캐릭터에 부여한 상황적 의도와 일본의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저에게 뭐랄까요, 그들의 생활의 공감을 전적으로 얻어내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없진 않았습니다만 그렇다고 일일이 주석이나 해설을 달았다가는 흐름에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겨야될 듯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보다 이 작품의 인간미와 작가가 그려내는 소소한 일상의 감성들이 주는 감동이 너무나 좋아서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네요, 그럼 좋은 느낌으로 한 곡조, 베고니아 화분이 놓인 우체국 계단~ 어디엔가 엽서를 쓰던 그녀의 고운 손~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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