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 매드 시리즈
클로이 에스포지토 지음, 공보경 옮김 / 북폴리오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주변에 쌍둥이를 둔 부모님들이 많으십니다.... 아무래도 아이를 낳는 연령층이 예전보다 높아진 연관성도 있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만 여하튼, 생전 쌍둥이라고는 구경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살아오다가 어느날 처제가 일란성 쌍둥이를 낳더군요, 좀 신기했어요, 완전 똑같은 아이들을 낳다니요, 근데 보통 쌍둥이는 가족력이 중요하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처갓집이나 동서의 집안을 눈을 씻고 봐도 쌍둥이는 처음이었답니다.. 너무 예쁘고 고마운 신이 주신 생명이어서 참 좋더군요, 처제의 아이들은 아들들이었습니다.. 근데 한참의 시간이 지나 이런, 저희 가족에게도 쌍둥이가 탄생합니다.. 그렇지만 저희집에는 이란성이더군요, 쌍둥이지만 완전 다른 생물학적 존재들이죠, 여기서 잠깐, 생물학적 쌍둥이의 탄생과 관련하여 일란성은 하나의 수정란이 어떠한 과정에서 두개로 분열된 것이라고 일컬어지죠, 이란성은 애초부터 두개의 수정란이 애기집에서 잉태되는 것입니다.. 이해했다고 보고, 여하튼 그렇게 생전 한번 보기도 힘든 쌍둥이들을 우린 연달아서 일란성, 이란성으로 직접 경험하게 됩니다... 이란성인 저희 아이들의 경우에는 쉽게 말해 두번할 임신을 한번에 둘을 낳아버린 택이니 각각의 생물학적 특성을 가졌습니다만(심지어 남녀라지요,) 처제의 아이들은 생김새나 유전학적, 생물학적인 특성이 상당히 비슷합니다.. 머리의 형태나 얼굴윤곽과 대체적인 외모가 그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아이들이 가진 성향은 현격한 차이가 납니다.. 외모를 제외한 전형적인 특성은 완전 다른 가치관과 생각과 성향을 가졌다고 보여지더군요,


    2. 이런 성향이라는 것이 가정환경과 주변에서 벌어지는 각각의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사고적 방법의 영향이 큰 것인지는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동일한 유전자와 생물학적 공통성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이지만 그 자신만의 고유한 인격과 성향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들은 다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동일한 유전학적 특색이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각각의 존재성을 오롯이 그만의 것이라는 것이지요, 한걸음 떨어져 그들을 바라보는 주변인들은 너네는 쌍둥인데, 왜 그렇게 틀려라고 반문하곤 합니다.. 자주 그러죠, 심지어 이란성인 저희 아이들에게조차도 그렇게 말씀하시곤 합니다.. 하지만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누구나 각각의 고유한 특성을 가진 유일무이한 존재가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체들인 것이죠, 인간은 말할 것도 없을테구요, 그들은 다릅니다.. 그렇기에 소중하죠, 세상에 태어나서 그들에게 주어진 생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속에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습니다.. 뭐 그렇다구요, 쌍둥이와 관련된 소설을 보니 쌍둥이를 가진 부모로서 쌍둥이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소설은 상황이 엉망진창입니다.. 어휴, 이렇게 정신없는 쌍둥이는 또 처음 봅니다.. 왜 얘네들은 이렇게 엉망이 되어버렸을까요, 클레이 에스포지토라는 영국작가의 3부작 시리즈중 첫권인 "매드"입니다.. 쌍둥이 자매중 주인공인 엘비나 나이틀리 시리즈라 보시면 됩니다..


    3. 쌍둥이 자매 앨비나와 엘리자베스는 극단적인 생활적 차이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죠, 태어나면서부터 베쓰와 달리 앨비나는 쌍둥이로서 천대받은 존재였습니다.. 엄마는 자신의 모든 사랑을 베쓰에게 쏟았고 그런 베쓰는 모든 사랑과 관심을 홀로 받았습니다.. 언제나 천덕꾸러기로 주변의 암울한 시선을 독차지헀더 앨비나는 늘 한결같은 문제아였습니다.. 그런 자신의 인생과 삶에 대해 앨비나는 늘 베쓰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언니의 탓으로 돌리고 있죠, 심지어 지금 시칠리아섬에서 세상 멋진 이탈리아 남자인 부자 남편 암브로조와 아들 어니와 귀족처럼 살아가는 베쓰의 삶은 앨비나에게 증오와 질투와 점철되어 있죠, 그런 베쓰가 앨비나에게 이메일을 보내 자신의 집으로 초대를 합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만나기조차 싫은 앨비나는 거부하죠, 온갖 허세를 들이대며 자신은 굳이 널 만나려가지 않아도 잘 살고 있으니 신경 끊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짤까요, 지금 앨비나의 삶은 거지보다 못한 비루한 인생인데다가 하필이면 회사에서도 잘려버립니다.. 게다가 살던 집에서도 쫓겨날판이죠, 앨비나에게 남은것은 세상살이에 아무런 도움도 안되는 빌어먹을 자존심과 허세와 악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언니의 제안처럼 그 옛날 자신이 반했던 암브로조를 다시금 떠올리며 언니의 집으로 떠납니다.. 언니는 귀족처럼 시칠리아섬의 대저택에서 멋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죠, 다비드같은 몸과 매력을 지닌 언니의 남편 암브로조는 여전히 그녀를 미치게 만듭니다.. 비록 형부라 할지라도, 그렇게 언니의 집에서 그녀의 삶은 더욱더 비교되고 그런 언니에 대한 질투와 시기는 커져만 가는데, 그런 언니가 앨비나에게 이상한 부탁을 하죠, 쌍둥이로서 자신을 대신하 몇시간만 자신으로 있어주라는 말입죠, 누구와도 바꿀 필요가 없는 다 가진 언니의 삶을 몇시간 얻게된 앨비나는 과연 무슨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일까요,,,


    4.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지만 이 작품의 문장이나 내용이나 표현적 상황에서 느껴지는 단어는 '똥꼬발랄'입니다.. 앨비나라는 인물의 1인칭 시점으로 보여지는 수많은 상황과 혼란들이 너무나도 가볍고 정신이 없습니다.. 초반부의 앨비나의 모습은 말그대로 지저분하면서도 자유롭죠, 거지발싸개같은 그녀의 인생과 되먹지못한 철없는 그녀의 모습이 대단히 흥미롭게 등장합니다.. 이어 언니의 집으로 초대되어 언니와 함께 벌어지는 상황과 그녀의 심리적 혼란성은 아주 정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불안함을 넘어선 말그대로 사이코패스의 전형처럼 펼쳐집니다.. 그녀가 쏟아내는 수많은 단어와 문장과 심리적 표현들은 말 그대로 똥꼬발랄합니다.. 아주 자극적이고 암울하고 비참한 상황에서조차 그녀는 그녀만의 세상속에서 그 현실을 파괴해버립니다.. 정신병자처럼 말이죠, 일종의 광란적 폭주가 줄기차게 이어져나오는 모양새가 이 작품이 의도한 부분이 무엇인 지 적확하게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것이죠, 이 작품은 전혀 인간적이지가 않습니다... 현실적이지만 공감적인 부분이 거의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주는 장르적 몰입감은 그 어떤 작품보다 뛰어납니다.. 아무래도 앨비나라는 인물이 본연적으로 지닌 똘아이적 성향의 소시오패스적 사고방식이 독자들에게 처음부터 어느정도 주입된 작가의 구성적 의도때문일겝니다.. 그녀에게 펼쳐지는 상황은 어떠한 경우에도 의도하거나 계획된 부분이 이 작품속에서는 단 한순간도 없습니다.. 모든 상황은 우연과 즉흥성과 상황적 판단에 따라 대단히 순간적인 판단의 혼란속에서 자신만 바라보는 소시오패스의 전형적인 심리적 욕망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인간이 가진 대단히 악의적이고 자신의 욕구에만 집착하는 근원적인 욕망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거부감속에서 일종의 통쾌함마저 느끼게 되는 것이죠,


    5. 앨비나가 쏟아내는 심리적 감성이나 표현들은 대단히 혼란스럽습니다.. 어느것 하나 사회적 적응자로서의 인간적 표현으로 공감을 이루는 부분이 하나도 없습니다.. 말그대로 사회적 부적응자로서의 전형성을 우린 보게 됩니다.. 심지어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의 불안한 현실과 사회적 거부반응을 자신의 탓이 아닌 주변의 탓, 무엇보다 자신보다 나은 삶과 세상과 보살핌과 사랑을 받아온 엘리자베쓰라는 쌍둥이 언니의 탓으로 돌리죠, 그리고 그런 그녀의 성향은 나름 이유가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손 치더라도 소설속에서 펼쳐지는 지옥같은 상황적 혼란과 패륜적인 행위의 정신병적 행위들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동양적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냥 서양적 과장으로 드라마틱한 상황적 연결고리로서 반전과 긴장감을 위한 영화적 미장센같은 느낌도 지울 수는 없지만 이러한 모든 것이 아주 감각적이라는 점은 무시못할 것 같습니다.. 이런 느낌적 느낌을 위해 작가는 앨비나를 통해서 쏟아내는 무수한 단어와 심리적 표현을 아주 욕망적 배설물처럼 만들어놓았습니다.. 처음부터 시작된 가벼움은 작품이 이어지는 내내 조금도 그 무게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아마도 이러한 감성적 가벼움은 시리즈를 이루는 3부작에 걸쳐 하나의 감성적 표현으로 이끌어나가지 싶은데 개인적으로는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분명 혼란스러운 상황이나 자극적 장르로서의 장치적 설정들은 감안되겠지만 끊임없이 상황을 철없고 정신병자와 같은 분위기로 이끄는 앨비나의 독백과도 같은 표현들은 공감하기 어렵더라구요, 전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애초부터 그런 의도로 집필된 작품인것처럼 보이니, 그럼 제가 바꿔야되지 않을까요, 안됨 말고


    6. 표지와 제목이 전체를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제목과 같이 미칠것 같은 혼란적 상황들이 끝없이 펼쳐지는 아주 속도감 넘치는 한순간도 놓칠 수 없는 반전과 생각지도 못한 상황들이 펼쳐지는 작품입니다.. 재미있어요, 아주 자극적이고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한 여성의 심리를 통해 독자들에게 이 작품은 아주 재미난 허구적 상상력으로 이루어진 작품이에요라고 하는 듯 합니다.. 게다가 영화적 이미지조차 강하게 느껴지는 공간적인 배경과 인물적 입체감이 가득한 뛰어난 장르소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분명 앨비나라는 인물을 통해 얘가 조금은 철이 없구나라고 생각하실텐데, 뒤로 갈수록 이러한 애초의 생각은 그 기본적 거부감을 유지한 체 끝없이 변화되어 나갑니다.. 심지어 읽다가 '아이고, 얘 어떻해'라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의 불안한 동조가 이루어지기도 하죠, 대단히 가볍지만 대단히 집중적인 장르소설의 자극성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중반부를 넘어서서 후반부로 넘어가는 반전적 전개에서 펼쳐지는 인물적 변화의 변곡점에서는 앞으로 이어질 앨비나 시리즈의 나머지 작품에서의 캐릭터적 설정을 확고하게 굳혀버린 듯 합니다.. 대단히 감각적이고 안티히로인의 자기 주체적 모습으로 악과 선의 구분조차 모호한 상황들이 이어지지 싶습니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장르소설의 권선징악이나 악과 선의 구분선에서 자유롭고 자기 중심적이고 소시오패스적 사회 부적응자로서의 자기 주체적 이상성격자의 매력을 앨비나로 통해 독자들에게 선보여주는 참 거북스럽지만 무척 재미진 스릴러소설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시리즈의 후속작에서도 그녀의 쌉싸부리하고 똥꼬발랄하고 정신머리없는 소시오패스적 이야기에 궁금증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기다려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여성 대단히 무서워합니다.. 땡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세 번째 배심원 스토리콜렉터 72
스티브 캐버나 지음, 서효령 옮김 / 북로드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서양의 사법제도같지 않은 합의 재판부의 판결을 위주로 재판이 이루어지고 있죠, 배심원제도가 있긴 하지만 아직까진 그 제도적 개혁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사실 이 사법적 제도의 문제는 지금 그대로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도 합니다.. 사법적 독립을 떠들어대는 판사들중의 일부가 사법부의 기득권을 이용하여 자위적 판단이나 사회적 문제점에 대한 법적 테두리를 벗어난 작위적 해석과 말 그대로의 사법농단을 저지르는 것이죠, 무소불위의 권한을 위임받은 법의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의도에 따라 사회적 물의나 이슈를 만들 요지의 재판이나 범죄적 사실들을 자신들의 이권과 상황등을 고려하여 법의 우위에서 스스로 판단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습니다.. 단순한 적폐로 몰아 이들 몇몇에게 그 죄를 묻는다 치더라도 사회적으로 이 기득권의 유기적 조합은 한순간에 무너지지 않은 끈끈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그들의 울타리내에 배심원이라는 제도적 개선으로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의 하나인 국민이 재판에 참여하는 부분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아직까지는 소원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사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인 소송에 참여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사실 모든 사법적 영역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수많은 소송자료를 몇몇의 판사가 판단하고 처리하죠, 물론 합의부의 경우에는 재판 기일을 기준으로 증거자료와 원고, 피고의 주장을 다투고 판사가 판결을 내리지만 결국 판단은 판사, 즉 모든 법적 권한의 위임은 오롯이 판사의 개인적 잣대가 가장 큰 부분입니다..


    2. 굳이 누군가를 지칭해서 근래 벌어진 판결의 모순된 부분을 지적하지 않더라도 여지껏 이러한 사법적 농단과 테미스의 저울에 들어가지않은 체 칼로만 단죄된 수많은 사례를 우린 지금까지 접해오고 있습니다.. 과거의 잘못, 진상조사, 전수조사, 적폐청산, 정치적 공세, 음모론, 이런 말들이 흔히 말하는 국민소득 3만불을 넘긴 이른바 선진국의 경제대국인 우리 나라에서 매일같이 미디어에서 쏟아내는 문구들입니다.. 부끄러운 민낯이죠, 그건 그렇구요, 넘어갑시다.. 맨날 나라탓, 정치탓, 기득권자탓, 없은 대중의 무지몽매, 무전유죄는 해도해도 끝이 없으니... 하지만 미국은 말그대로 자기들 나라내에서는 나름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곳이죠, 국제적으로 하는 짓거리는 또 넘어갑시다.. 학교짱한테 덤벼봐야 남는건 멍밖에 없으니, 서양은 그중에서도 흔히 경험해본 대중적 이미지속의 미국의 사법제도는 배심원이라는 아주 민주주의적 절차를 따르는 사법제도를 가지고 있죠, 전 그런 내용으로 대단히 매력적인 스릴러의 진수를 보여주었고 또 보여주고 있는 존 그리샴이 떠오릅니다.. 그리샴형님은 과거 제가 영미스릴러를 좋아하게 만든 장본인들중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시는 분입니다.. 대단했죠, 엄청났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거의 30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운 법정스릴러의 진수를 선사한 분을 만나게 되는군요, 스티브 캐버나의 "열세 번째 배심원"입니다.. 뉴욕시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재판을 다룬 아주 뛰어난 법정스릴러소설입니다.. 근데 이 분 미국분 아니시고 영국 옆의 북아일랜드 분이십니다.. 그쪽에서 유명한 분이 문득 떠오르는 존 코널리와 켄 브루언이 있네요, 느와르적 감성이 충만한 분이신데, 캐버나 작가의 법정스릴러가 주는 감성도 아주 죽입니다..


    3. 케인이라 불리우는 인물은 누군가를 미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한 남자 집배원에게서 어떠한 정보를 얻기 위해 노숙자로 위장하여 접근하죠, 집배원은 법원에서 송달되는 우편물을 담당하는 직원입니다.. 그리고 그 직원에게 노숙자로 다가간 케인은 우편물에 담긴 배심원 소환장을 확인하게 되죠, 케인이라는 인물은 대단히 파괴적인 살인자처럼 보입니다.. 유희적 살인의 감성을 가진 사이코패스처럼 타인의 죽음을 동전으로 결정하는 대단히 잔인한 인물이죠, 그렇게 케인이 확보한 배심원 소환장속의 사건이 6주로 열릴 예정입니다.. 6주후 첫날 이 소설의 주인공 에디 플린은 형사사건 변호사로서 지역 경찰의 입장을 끊임없이 난처하게 만들며 꾸준히 자신에게 변호를 맡긴 죄없는 피해자들에게 승소를 안겨줍니다.. 그는 과거 어떠한 일로 인해 밑바닥까지 내려간 후 자신이 판단한 무죄의 판단이 서는 피해자의 변호만 맡고 있죠, 그런 그에게 명망과 변호사로서 최고의 지위에 있는 루디 카프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에게 세기의 이슈인 로버트 솔로몬의 재판에 차석변호인으로 부탁하죠, 로버트 솔로몬은 그의 아내 아리엘라와 더불어 헐리우드의 유명커플이고 이번에 새로운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영화로 새로운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는 대박난 배우입니다.. 그런 그가 어느날 자신의 아내와 경호원을 살해한 사건이고 그 사건의 증거자료는 넘쳐납니다.. 솔로몬은 빠져나갈 방법이 없이 유죄의 틀안에 갇혔습니다만 형사소송분야에서 나름의 성과와 능력을 보여주는 에디를 그의 변호를 맡게 루디는 그를 찾아온거죠, 하지만 에디는 자신의 판단으로 솔로몬이 유죄라는 느낌이 들면 변호를 맡지 않겠다고 하고 결국 에디는 솔로몬의 무죄적 직감으로 재판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앞서 배심원 소환장을 확인했던 케인은 배심원중의 한명의 인상착의를 위장하여 배심원으로 침투하기에 이릅니다.. 대단한 설정이죠, 아주 기가 맥힙니다.. 우찌될까요,,,,


    4. 이 작품이 주는 법정스릴러소설로서의 긴장감과 속도감은 아주 대단합니다.. 또한 상황적 연결로 이어지는 작가의 장르적 문법의 대중적 적응력도 대단히 뛰어납니다.. 독자로서 간만에 법정스릴러소설의 매력에 한껏 취해버렸습니다.. 과거 초창기의 존 그리샴행님의 작품의 매력을 다시 맛보는 듯 합니다.. 하지만 캐버나 작가는 그러한 매력위에 크라임소설의 흔한 설정중 하나인 연쇄살인범과 관련된 구성을 더했습니다.. 아주 파괴적이고 매력적인 범죄적 스릴러의 서스펜스와 더불어 법정에서 다투어나가는 재판의 영역까지 이 작품이 독자들에게 주는 즐거움은 상당합니다.. 근래들어 이런 가독성이 끝까지 묻어나는 작품을 자주 못 만나봐서 더욱 이 작품이 개인적으로 더 재미었었던 것 같기도 하구요, 이 작품의 주인공인 에디 플린이라는 인물은 과거에 어떠한 시리즈적 역할로 국내에서는 모르지만 국외에서는 나왔지 않을가 싶은 생각이 듭디다.. 소설 중간중간 과거에 대한 이야기에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부분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가족과 관련되고 에디가 변호사가 되기까지의 과거의 이야기들이 있지 싶은데, 여하튼 이러한 과거를 가진 한 인물인 에디 플린의 활약은 이 작품이 주는 가장 큰 매력입죠, 그는 대단히 뛰어난 영웅적 면모를 가진 변호사입니다.. 그의 활약으로 이 소설이 처음과 끝을 이룬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그와 거의 동일한 비중으로 대척점에 위치한 조슈아 케인이라는 인물의 빌런으로서의 악한 이미지 또한 장난이 아니죠, 이러한 성향의 극단적 대조로 이어지는 불꽃 튀는 대결의 구도는 스릴러소설에서 절대적인 즐거움을 선사하곤 하죠, 전형적이되 익숙하고 자극적이되 거부감이 없는 작품으로 작가가 적절한 공을 들인 노력이 스토리 곳곳에 묻어난다고 전 봤습니다..


    5. 사실 스릴러소설을 좋아하시는 독자분들이시라면 법정스릴러는 일단 동네에서 요즘은 한 30% 먹고 들어가는 장르입죠, 그렇지만 또 이게 읽다보면 80%를 넘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체적으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재판의 구성과 증인과 반전을 끊임없이 선사해야함에도 그 상황적 연속성이 어느 순간을 넘기다보면 대동소이하고 지리해지는 일면이 있습니다.. 존 그리샴 행님 역시 초창기의 작품적 성향에서 어느정도 시점을 넘어서면 이러한 대중적 적응력에 새로운 신선함을 전달해주지 못해꺼덩요,, 일종의 타성과 같은 법정스릴러의 전형성이 문제인데, 이번에는 작가의 영민한 설정으로 법정 스릴러의 긴장감을 유지하되 크라임소설의 연쇄살인과 관련된 사이코패스적 영역의 스릴감을 덧붙여서 독자들은 한순간도 상황적 서스펜스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영미 스릴러소설을 살앙하시는 독자분들에게는 근래들어 가장 즐거운 독서로 즐거움을 만끽하시리라 개인적으로는 믿어 의심치 않고 존 그리샴 소설이나 영화 한번 정도 접해보지 않으신 장르 독자분들은 없으시리라 여겨집니다.. 그동안 딱히 관심이 없으신 분들이시라도 이 작품은 매우 재미지고 가독성이 뛰어난 작품이니 한번 접해보시면 다시금 법정스릴러가 이런 맛이구나라는 점을 떠올리시지 싶습니다.. 다만 전 이 작품의 번역적 느낌에 있어서 이름에서 비롯된 애칭들은 원서에서도 당연히 나오는 것이겠지만 덜커덕거리는 느낌이 들었구요, 시점의 변환에 대한 부분 역시 자연스러운 면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한 중간중간 문장의 흐름과 대사의 맛이 짧고 간결하게 정리하신 느낌이지만 끊기는 부분도 어색하더군요,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원서의 문구를 그냥 있는 그대로 옮겨놓은 느낌, 그래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6. 한마디로 법정스릴러의 매력이 업그레이드된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역시 영미스릴러의 진수는 크라임소설과 법정스릴러에서 맛보곤 합니다만 이 작품은 두가지의 맛을 한데 어우러져 더욱 시너지효과를 극대화시킨 작품처럼 느껴집니다.. 단지 이러한 설정과 구성으로 인해 인간적인 부분과 감동적인 감성적 매력까지 완벽하게 이루어내진 못했지만 대중스릴러소설이 주는 즐거움의 최대치를 간만에 이 작품 "열세 번째 배심원"에서 맛볼 수 있었습니다.. 대강 판단하시겠지만 서양분들, 특히 미국 분들에게 13이라는 숫자는 상당한 의미가 있죠, 단순하게 우리에게 주어진 4라는 숫자가 주는 죽음과 불길함의 대명사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소설속에서는 13이라는 숫자과 관련된 대단한 분석적 설정이 등장합니다.. 리 차일드의 잭 리처가 사실은 작가가 미국사람이 아님에도 미국을 휘젓고 활약하듯이 스티브 캐버나 역시 미국, 그것도 빅애플인 뉴욕을 배경으로 아주 미국적인 법정스릴러소설의 매력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주는 스릴러작품으로서의 몰입감은 상당히 뛰어납니다.. 그렇기에 가독성은 말할 것도 없고 가독성이 좋다는 것은 재미가 많다는 것이겠죠, 나름 난다긴다하는 유명 스릴러작가분들께서 찬사의 글을 아끼지 않으신 이유가 여기 있구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립서비스처럼 저도 읽기전에 온갖 미사여구는 다 가져다붙였네, 했거덩요, 하지만 진짭니다.. 재미져요, 리 차일드가 자신을 믿어라고, 이 작가는 물건이라고 했으니 믿어보죠, 전 가능하면 앞으로 에디 플린 시리즈의 처음부터 만날 수있으면 좋겠습니다.. 땡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이드 인 강남
주원규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언제 나라가 혼란스럽지 않은 때가 있었겠습니까만, 요즘은 전방위적으로 나라가 지랄맞습니다.. 트럼프한테 팽 당한 김정은이때메 국제정세는 어지럽고 쪽바리들은 변함없이 쪽바리답게 즈그 나라 쪽팔리는 짓은 끝없이 해대고 정치권은 이런 씨덥잖은 세상 흐름에 우파보수라는 족속들은 같잖은 태극기 휘날리며 애국충절을 들먹이는 친일, 반미, 종북의 울타리속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는데, 우리 주변의 세상의 모습은 더욱더 엉망이네요, 단순한 밤문화의 꽃이라 불리우는 춤추는 그들만의 흥청망청의 온산지, 클럽의 폭행 불상사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저희 젊은 시절이라고 다를 바가 있었겠습니다만 그래도 우리는 우루루 떼거지로 몰려서 노는 나이트클럽 문화였습니다만 요즘은 사람 봐가면서 받아주는 클럽문화가 안그래도 짧은 밤의 시간속에서 기세등등하다가 그속에 담긴 수많은 범죄의 고리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꿰여 올라오는 모양새가 정말 눈 뜨고는 못봐줄 정도죠, 게다가 연예인이라는 이 빌어먹을 인간들이 해대는 행우지는 뭐라 해야할 지, 도대체 아이들이 바라보는 쟤네들에 대환 환상이 얼마나 심하게 왜곡되어 있는 지 다시한번 경험해봅니다.. 알지만 모른 척, 누구나 해왔던 어두운 곳에서의 범죄적 행위들이 한순간에 터져나오는 모양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자로서, 사회인으로서, 또 방관자로서 반성을 해보면서 무엇보다 내 아이의 부모로서, 앞으로 살아가야할 이 시대의 중심이 되는 어른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부터 제 스스로 바꿔봐야할 듯 싶네요,


    2. 저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남자들끼리 모이고 사회인으로서 사회적 접대문화에 익숙한 저로서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범죄적 모습과 유착의 사회적 유기관계를 모르지 않습니다.. 돈이 지배하고 천민 자본주의가 세상을 움직이는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동안 수천번의 경험을 방관자로서 언젠가는 그 주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본 일인으로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바꿔야되는 근원적인 문제가 이번에 드러난게 아닌가 싶습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천민 자본주의가 안겨주는 불로소득으로 자본에 잠식당한 우리 사회는 그들 기득권이 놓지않는 권력의 테두리속에서 그 영향력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죠, 그들에게 권력과 돈의 위력은 군림이라는 사회적 속성에서 힘을 발휘합니다.. 그 사회적 속성의 배경이 되는 지역이 모든 경제적 욕망이 덩어리인 대도시이고 그속에 집약된 곳이 우리나라에서는 강남이죠, 월세 수십만원의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누군가는 수십억원씩 하는 아파트를 몇재씩 보유한 체 살아가는 곳이 서울이고 강남입니다.. 그들의 세상은 우리와 다르죠, 매월 기백만원으로 대출 이자 갚고 더런 피자 한판 아까워서 고민하고 시키는 그런 세상에서 사는 우리는 하루 술값 기천만원씩 던져대는 강남의 밤문화와는 별개의 세상인거죠, 하지만 그런 세상도 버젓이 우리의 삶입니다.. 이번에 읽은 작품은 같은 공간, 다른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내가 사는 이 곳에서 벌어지는 더러운 인간의 욕망과 탐욕으로 물든 강남의 민낯을 리얼하게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주원규 작가의 "메이드 인 강남"입니다..


    3. 오늘도 민규는 제대로 잠이 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늘 불면에 시달리는 그는 굴지의 로펌의 변호사입니다.. 그런 그에게 전화가 걸려옵니다.. 설계라는 명칭으로 그에게 의뢰된 사건을 처리해야될 일이죠, 그 일이란게 개장 준비중이 호텔의 펜트하우스에서 발생한 사건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강력계 형사 조재명이 있습니다.. 그는 경찰조직내에서 움직이는 비자금으로 도박을 벌이고 잃어버린 돈을 만회하기 위해 또 다른 도박으로 수억의 빚을 한순간에 지게 됩니다.. 그런 그에게 정보원의 입질이 던져집니다.. 이렇게 민규와 조재명은 동일한 사건에 대한 설계를 마주하게 되죠, 그들에게 던져진 사건이란 것이 펜트하우스에서 10명의 남녀가 칼로 난도질을 당한 체 죽음을 당한 것이죠, 남자들은 나름 이름값이 있는 사회 고위층이고 여자들은 성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여인들이죠, 굳이 설계까지 필요치 않은 상황이지만 그중 유독 한 인물인 잘나가는 힙합가수인 몽키라는 인물이 죽은 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당한 영향력과 인기를 가진 인물이라 사회적 파급력이 커질 것을 대비해서 로펌에 의뢰해서 몽키의 죽음을 자살로 만들어보려고 민규를 보낸 것이죠, 하지만 조재명은 이러한 사실을 정보원에게서 듣고 민규와 함께 설계에 참여하게 됩니다.. 자살로 위장한 사건을 설계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민규는 사건의 현장에서 사라진 한 여인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서 사건에 대해 함구하는 조건으로 돈을 제시하죠, 그렇게 사건은 일반적인 죽음으로 묻혀버릴 상황이지만 조재명에게 새로운 의뢰인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건의 내막이 조금씩 그 진실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4. 시의적절한 작품입니다.. 온나라를 휘젓고 있는 지저분한 사회적 이슈를 보면 이 작품이 주는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연예인과 관련된 강남의 한 클럽에서 벌어진 범죄의 파괴력이 이렇게 과하게 확장될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경찰과의 유착관계도 마찬가지고 무엇보다 과거 법무부 차관이라는 지위를 이용한 권력층과 사회적 부유계층의 대단히 지저분한 성접대 사건의 문제점도 마찬가지죠, 소설은 허구이고 상상속의 산물로서 현실화 시킨 이야기지만 이 작품속의 이야기는 엄연한 현실의 비열한 민낯과 다르지 않습니다.. 보다 과하고 자극적이고 파괴적인 사회적 속성에 대한 확장된 과장성을 가졌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시간속에 버젓이 행해지는 사회적 작태의 모양새로 보근데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현실감을 가진다는 것이지요, 이 작품은 단순한 사회적 욕망의 근원지인 강남에서 살아가는 일반적인 우리의 삶과 다른 세상의 어두움을 드러내고 있죠, 말그대로 하루밤에 수천만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날려버리는 그러한 부유층의 권력집단의 모습들이 아주 적나라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들이 흔하게 먹어대는 와인 한병의 가격으로 한달을 버텨내는 우리같은 대중의 대부분은 그런 세상을 인정하기 싫지만 세상은 그들의 방식을 중심으로 우리를 얽매놓습니다.. 언제나 천민자본주의의 사회는 돈이 돈을 먹는 비열한 세상이라는 사실을 이 작품은 적나라하게 펼쳐내고 있는 것이지요,


    5. 아주 짧은 중편 정도의 단순한 이야기의 쾌적함이 있는 스릴러소설입니다.. 또한 대단히 자극적이고 파괴적인 범죄적 이야기를 담고 있죠, 흔하지 않은 스토리를 통해서 사회의 피라미드 구조의 끝에 도달한 최상층의 삶의 방식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다 그렇진 않겠죠, 하지만 이제는 다 그런 것 같아요, 돈 많은 연예인은 섬을 통째로 빌려서 하룻밤에 6억이라는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뿌려대고 사회의 고위층 관료는 돈많은 부유층과 유착하여 성접대를 변태적으로 받고 아무렇지도 않게 풀려나고, 잘나가는 연예인은 여성을 성도구 이상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성행위를 촬영하여 동료들에게 뿌려대고, 우린 이 작품이 자극적이고 변태적이고 파괴적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를 현실에서 마주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길게 이어가지 않고 깔끔하게 단순한 상황의 구성으로 하나의 스토리로 그 자극적 설정을 임팩트있게 정리해버린 작가에게 점수를 더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사실 할 말이 많을겁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갈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 작픔의 설정과 스토리상으로 좀 더 길게 상황을 이어나가더라도 독자로서 나쁘게 받아 드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주원규 작가님은 딱 생각한 그 감성적 끝자락에서 작품을 끝냅니다.. 저로서는 그 이유를 단순한 소설로서 대중적 재미를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리의 현실은 소설처럼 잘 정리하고 마무리가 되는 삶이 아니라는 점을 작가님이 소설속에 담으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권선징악과 도덕적 관념의 세상의 해피엔딩은 현실에서는 꿈같은 이야기죠, 돈은 언제나 돈을 위해 돈을 움직이고 돈은 그런 사람들에게만 집중된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깨우치게 됩니다..


    6. 짧고 임팩트가 강한 작품이라서 그런지 그 재미가 상당합니다.. 길게 끌지 않고 상황에 맞는 임팩트를 곳곳에 담아서 이야기를 빠르게 진행하는 방식과 마무리는 대단히 뛰어나게 느껴집니다.. 자꾸 말씀드리지만 지금 딱 우리 사회의 민낯과 마주치는 이 작품의 묘미는 굉장히 공감적입니다.. 이 작품은 부드럽고 대중적인 공감이 사회적인 비판속에서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작품은 아닙니다.. 시작부터 대단히 자극적이고 파괴적인 설정과 구성으로 후욱하고 독자의 거부감을 이끌어낼 공산도 큽니다.. 하지만 스릴러소설의 묘미와 함께 이 작품이 안겨주는 사회적 비판의 자극적 이슈는 현실과 잘 맞물리죠, 미디어나 매체에서는 실제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진실의 강남의 비열하고 위선적인 어두운면에 대해서 우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전 이 작품이 단순한 작가의 상상력에서만 기인된 설정이라고 보진 않습니다.. 그렇기에는 현실이 이야기와 너무 닮아 있으니까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니겠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지는 공유적 특성에서 기인한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어느 나라나 이러한 사회 권력집단의 행우지는 변함없이 은밀하게 행해질테니까요,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 그런 더러운 족속들의 모습은 티브이에서 매일같이 접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초딩들도 그들의 속성을 이제 낱낱이 알고 있습니다.. 우린 그런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200페이지가 채 안되는 작품입니다.. 매우 임팩트가 강한 스릴러소설의 키치적 취향이 잘 드러나는 장르소설이더군요, 개인적으로는 과하지만 현실적인 이 작품의 이야기에 찬사를 보내고자 합니다.. 단지 캐릭터가 주는 감성적 취향에서 조금 가벼움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무척 즐거운 작품이었습니다.. 땡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로 K
돈 드릴로 지음, 황가한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나의 삶, 아버지의 인생, 엄마의 세상, 우리의 삶, 그들의 삶,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의 삶, 생명이라는 것은 유한하고 그 생명의 끝은 누구에게나 주어집니다.. 끝은 있죠, 인간이라는 존재로 세상속에서 빛을 바라보는 순간 자의든 타이든 인간의 생명은 끝을 맺을 운명입니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명체들은 모르겠어요, 걔들이 어떤 생각이 있는 지도 모르겠고 인간처럼 사색이나 존재에 대한 나름의 고민이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를 인간처럼 생각하진 않으니까요, 저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니 인간만 생각해봅니다.. 세상에는 60억이 넘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을 하는 인간들이 있습니다.. 이 모두는 삶과 인생과 스스로의 존재적 이유른 어떠한 방식으로든 고민을 할겁니다..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않았든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타의에 의해 탄생합니다.. 그러나 죽음은 선택적이죠, 하지만 왜 이런 죽음에 대한 선택성이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일까요, 자신의 존재성에 대한 고민을 수십억의 인간들은 끊임없이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들의 존재적 이유와 그 가치를 어떠한 방식으로든 이어나가고 싶어하는 근원적인 욕구를 가지게 됩니다.. 끝을 가진 인간이라는 존재의 유한성에 대한 반항적 대처방법은 대체로 자신이 가진 권력적 도구로 그 영역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인간들은 믿습니다.. 그만큼 이 지구상의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들의 삶이 다른 모든 생명체의 존재성보다 우월하도고 자만하고 자신하고 있으니까요,


    2. 불치의 병에 걸리고 현시대에서는 절대 치료할 수 없는 병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변화되어가는 것을 우린 봅니다.. 인간이기에 앞으로 우리가 얼마나 더 똑똑해질 지 예상 가능한 것이죠, 그래서 우린 가능하면 오래 살아서 나에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똑똑한 인간이 만들어낸 삶의 연장 도구를 사용하고 싶어 하는거죠, 생명 연장과 관련된 이야기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닙니다.. 시장경제의 자본이 세상을 잠식한 이 세상속에서 가장 중심인 권력은 돈입니다.. 돈이면 인간이 할 수 있는 많은 부분을 이뤄나갈 수 있습니다.. 후대에 다시 자신의 생명을 맡기고 싶은 부자들은 그렇게 자신을 냉동보관하며 미래의 세상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명 연장의 방법은 점차 발전되어 영화속에서나 상상하던 세상들이 조금씩 현실화되는 것이 일반적인 돈없는 세상의 99%의 끝을 가진 인간들에게도 보이는거죠, 근데 왜 인간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왜 자신이 가진 권력과 재력으로 피라미드의 정점에 선 인간들은 자신들의 끝을 연장하고 종말론적 세상의 현실속에서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찾아 생명을 끝을 뒤로 미루는걸까요, 그들은 먼 훗날의 세상에서도 지금의 그들만큼의 기득권을 유지할 것이라 믿는 것이겠죠, 그리고 한계를 가진 자신들의 육체의 불멸을 믿는 것이겠죠, 대단히 존재의 유한성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머리속에서 맴도는 문학작품이라꼬 생각되는 돈 드릴로의 "제로 K"입니다..


    3. 금융재벌인 로스 록하트를 아버지로 둔 제프리 록하트는 아버지와 의붓어머니인 아티스가 자신들의 생명을 연장하고 미래의 세상속에서 다시금 태어날 목적으로 비밀리에 참여한 프로젝트의 현장으로 갑니다.. 일명 컨버전스라고 불리우는 지구상의 메마른 곳의 황량한 공간에 내린 제프는 아버지와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의 부인 아티스를 만납니다.. 아버지는 생명의 끝에 대한 유한성을 거부하고 새로운 인생과 생명의 연장을 연구하는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고 존재적 가치의 무한성을 위해 투자한 억만장자죠, 그리고 그 끝과 시작을 그가 투자한 비밀 단지에서 아티스와 함께 하려하며 그 모습을 자신의 아들인 제프에게 보여주려고 합니다.. 이곳에서 제프는 그들의 집착적 생명연장의 꿈의 증인이 되려 하는이죠, 애초에는 불치병에 걸린 아티스만 참여하기로 했지만 로스마저 그녀와 함께 하려 합니다.. 하지만 제프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딱히 감명을 받진 못합니다.. 그리고 이 곳 컨버전스의 비인간적이고 감성이 메마른 모습에 거부감을 느끼죠,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의 모습은 세상을 달관한 철학자나 종교주의자마냥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들처럼 행동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육체를 절대온도인 제로 K속에 보관하여 세상이 종말이 오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미래의 신생아가 될 것이라 굳게 믿는 인물들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아티스를 떠나보내는 날 로스는 마음을 바꾸고 제프와 다시 세상으로 돌아옵니다.. 과연 몸을 떼어버린 아티스의 영혼과 정신은 과학이라는 도구속에서 그 내면이 떠내려가지 않고 억겁의 시간동안 유지될까요, 아버지를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는 제프- 아버지는 제프와 그의 어머니인 매들린을 외면하고 그의 삶속에서 내팽개쳤습니다 - 와 자신과 아티스와의 삶의 유한성에 대해 집착하며 자신만 바라보는 로스는 그 삶의 끝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그의 주장을 끊임없이 아들에게 세뇌시키고 그 현장의 증인으로 아들을 내세우는 비인간적인 아버지의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그런 아버지에게서 제프는 처음부터 혼란스러워하고 그가 보여주는 세상과 이 삶의 혼재적 가치관에 대해 깊게 관여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고 뉴욕으로 돌아온 그들에게,,,,,,


    4. 여기까지 써내려온 내용을 혹시라도 읽으신 분들께서는 아이고, 머리야.. 하실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작품은 대단히 철학적인 존재적 가치의 시니컬한 현실적 부정과 삶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부적응에 대한 작가적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제프리라는 한 인물을 통해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가족과 주변인의 이야기와 무엇보다 제프의 개인적 이야기를 그려내면서 인간의 삶의 중요성과 그 내면의 존재적 물음을 던져주는 것이죠,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이기에 불멸의 꿈을 소원하는 근원적인 욕망의 심오한 내면적 공감을 일종의 현실적 불안과 사회적 시스템의 종말론적 인간의 악함등으로 인해 초 단위로 사라져가는 세상속의 인간의 죽음에 대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을 있는 자, 가진 자, 그리고 원하는 자라는 기득권자들의 모습의 이중성에서 그들에 속하지만 그들에게서 벗어난 혼란스러운 한 인물의 모습속에서 보여주려하는 인데, 적고 있는 이와중에도 이 말이 뭔지 고민하게 됩니다.. 여하튼 왜 꼭 문학성을 인정받고 대단한 가치적 문장으로 칭송받는 작가의 작품들은 왜 이렇게 어려운 문장들로 도배를 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긴 합디다.. 일반적인 대중소설이라는 포장지를 씌우고는 있지만 그 속의 문장들은 대단히 고급집니다.. 제프라는 인물이 내놓은 말들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나 주변의 상황이나 이미지로 보여지는 공간속의 장면들에 대한 표현이나 묘사들속의 메타포들은 일반적이고 키치적 취향에 물든 저로서는 단박에 이해하긴 쉽지 않더군요,


    5. 하지만 고급지고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는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의 근거를 조금이라도 고민해볼짝시면, 작품속에서 제시하는 문장과 이야기와 내용적 문맥의 행간속에는 일반적이되 곱씹을 가치가 있는 혼재된 철학적 향유가 곳곳에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죠, 단순하게 흘려 넘길 줄거리의 상황적 이야기가 아니라 수많은 고민과 고찰과 생각을 다듬은 문장들의 사견들이 끊임없이 드러난다는 것이죠, 돈 드릴로 작가를 전 잘 모릅니다.. 그리고 그가 이 작품에서 뭔가를 어떻게 말하고 어떤 철학적 공감을 독자들에게 이끌어내고자 한 것인지도 전 잘 몰라요,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단순한 소설적 측면보다는 조금 더 공부하는 자세로 들여다본다면 그의 의도가 조금은 눈에 띕니다.. 한번 쏴악 훑고 지나갈 문장도 한번 더 읽어보면 이 할배가 이런 생각으로 이 문장을 끄집어내셨구나라는 생각을 약간은 하게 되는거죠, 아무래도 전 수능세대가 아니라서 학력고사상의 객관적 사고에 적합한 교육방식을 접한 아저씨라 수능과 복합적 사고의 멀티적 사고능력을 장착하신 분들이시라면 저보다 더 많은 매력을 느끼실 작품이 아닌가 싶은 생각은 했습니다.. 아무래도 이 작품의 구성은 전반부의 죽음이라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도를 내보인 컨버전스상의 세상과 인간과 삶이 적용된 현재의 우리의 대중적 공간인 뉴욕에서의 모습을 다루는 후반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보다 극적 공감이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현실세계다 보니 그 후반의 소설적 영역에서 작가의 의도를 조금 더 편하게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이야기의 중심은 소설 전반부의 공간과 죽음과 맞닿는 세상의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6. 전 이렇게 봤습니다.. 전체를 아우르는 주인공인 제프 록하트라는 인물은 상당히 대중적이고 현실적이면서 사회적 객관성을 띈 현실주의자이면서 시니컬한 반항아이기도 합니다.. 기득권의 중심에 선 아버지를 둔 아들이지만 그와 그의 어머니는 일반적인 삶과 생을 살아가는 인물입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삶의 끝과 단순하고 대단하진 않지만 나름의 인생을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를 자신의 삶과 죽음으로 끌어들이는 아버지는 그런 주인공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런 그를 이해하고 감응하고 동조하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는 이런 제프의 모습과 생각과 고민에서 우리의 삶과 세상의 이야기와 죽음이라는 자연적 끝의 인간적 거부감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세상은 무한한 죽음으로 끊임없이 미래로 달려나가고 있습니다.. 그가 목격하고 경험하고 감응하는 세상은 여전히 불안하고 공포스럽고 두렵기까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멸의 이간의 존재적 가치에 대한 환멸은 여전합니다.. 삶이라는 개념과 존재적 가치의 유한함과 그 개념적 거부감은 대중이라는 인간의 불멸적 욕구와 삶에 대한 무집착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것이죠, 모르겠습니다.. 작품 자체가 쉽지않은 텍스트다보니 독후감마저 어렵고 뭔 말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아무렇게나 끄적댄 것인지도 모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읽고나서 느낀 생각에 대해 정리하자면 삶이라는 이 유한한 존재적 가치에 대해서 잠들기 전 딸아이가 한 말, 한마디로 정의해보고자 합니다.. "아빠, 내가 20살 되면 아빠는 몇살이야?, 어, 60살정도.. 그럼 그때 아빠 죽을 수도 있어?.. 그럼 사람은 언제 어떻게 죽을 지는 몰라, 단지 이순간 니가 잠들때 아빠가 팔베개해주는 이러한 지금이 가장 중요한거지, 아빠도 가능하면 오랫동안 니 옆에서 팔베개해주고 오래 같이 있고 싶어", "그럼 아빠는 절대 죽지마, 내가 같이 살아줄께"........ 땡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마의 놀이 펜더개스트 시리즈 2
더글러스 프레스턴.링컨 차일드 지음, 신윤경 옮김 / 문학수첩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제가 독후감에도 자주 언급하는 옛날 이야기, 제가 살던 어린시절의 삶에 대한 주변환경에는 동네라는 개념이 생활의 중심이었습니다.. 골목을 통해 수많은 주택들이 다닥다닥 벽과 벽을 이어 붙어서 이웃사촌이라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던 시절이었죠,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네 집에서 자고 아침에 학교를 가더라도 전혀 부담이 없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골목으로 이어진 동네는 누구네 집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모르는 어른들이 없었죠, 소일거리가 없으신 어른들은 군데군데 모여앉아 힘들고 지치고 고통스러운 일상을 서로 공유하고 힘을 얻거나 아픔을 덜거나 했죠, 말그대로 이웃이었습니다.. 요즘하고는 판이한 세상이었죠, 도시생활마저 그럴진데 시골에서는 오죽했겠습니까, 읍내 마실까지 나가는 길이 천길만길이면 동네 어른이나 마을 사람들은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 받으며 옆집의 숟가락, 밥그릇이 몇개인지 조차 알 수 있었던 시절이었죠, 집 잔치가 있으면 모자른 식기는 옆집에서 얻어서 손님을 맞이하고 했으니까요, 그러니 이집저집에 구석구석 모르는게 없을 정도였죠, 그렇다보니 좋은 일도 많지만 안좋은 일은 소문은 소문을 만들고 이야기는 쉬쉬하면서 조심스럽게 집집마다 이어지게 됩니다.. 아무리 조심스러운 가정의 사생활이라도 이런 이웃과 함께라면 사실 조용할 일이 없는게 맞습니다..


    2. 그렇죠, 이웃이라 좋은 점도 많지만 이러한 개인적 사생활과 숨기고 싶은 부분마저 어쩔 수 없이 드러나면 누군가는 이에 대한 상처를 받기 십상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편견은 한번 경험하게 되면 누구라도 그러한 사람처럼 인식되어 버리기도 하지요, 아직도 그런 경우는 허다하죠, 제가 살던 시절이 그리 오래된 시절도 아닙니다.. 친구가 아직 장가를 안갔습니다.. 못가는게 아니라 안가는게 맞습니다.. 혼자라는 생활이 너무 좋아서 그냥 때를 놓친김에 굳이 안달복달하며 결혼이라는 걸 하려 하지 않은 주의죠, 그런 친구가 명절이 되면 본가로 가질 않습니다.. 동네 어른들은 여전히 그 동네에서 골목을 지키며 서로의 삶과 생활을 논하고 계시니까요, 그리고 친구에 대해 무슨 병이 있는 건지, 아님 다른 문제가 있는 건지, 궁금해하며 동네 이웃들은 쉬쉬하면서 창원댁 큰아들은 와 아직 저라고 살꼬, 하시면서 조용히래라, 저짜 창원댁 온다,, 그리고 눈치를 채신 모친께서는 득달같이 달려와서는 와 느무 아들 혼사길 망칠일 있냐고 하시면서 같잖은 소문이나 퍼트린다고 난리난리를 치시니 이제는 민망해서라도 더이상 본가에는 잘 안간다고 하더군요, 이제 마을 어른들조차 스맛폰을 사용하시는 곳이지만 여전히 그곳은 도시와 동떨어진 산속 동네이니 아직은 그들의 삶속에서 살아가시는 모냥입니다.. 이번에 읽은 작품은 이러한 시골적 인간적 풍경과는 사뭇 다른 미국의 광활한 들판속에 고립된 한 지역의 무서운 연쇄살인을 다루고 있죠, 펜더게스트시리즈의 2편격인 "악마의 놀이"입니다.. 그러니까 펜더게스트라는 인물이 어떤 지는 전작인 "살인자의 진열장"에서 대강 다루었으니 소설의 감성이 어떠한 지는 짐작하시리라 여겨집니다.. 모르시면 줄거리 함 더 읽어보시고,


    3. 미국의 캔사스주는 미국 영토의 딱 중간쯤 위치한 지역입니다.. 상당히 메마르고 건조한 지역에다가 불볕더위가 기승인 곳이죠, 캔사스주하면 먼지와 옥수수가 떠오를 정도로 척박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지역은 고립되고 쇠퇴가 진행되고 젊은이들은 다들 도시로 떠나버리는 그런 곳입니다.. 그리고 메디슨 크릭이라는 이번 작품의 배경이 되는 소도시는 특히나 이런 고립된 상황으로 거의 소멸 직전의 지역입죠, 주변의 조금 큰 마을까지 가는데 조차도 30키로가 넘는 주변의 환경속에서 고립된 변화가 없는 퇴락해가는 작은 마을에서 옥수수밭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수십년이 지나도록 한건의 살인사건조차 발생하지 않던 곳에서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하죠, 그런데 전작에서 뉴욕에서 큰사건을 해결한 펜더게스트가 이 마을을 찾아옵니다.. 살인사건을 조사할 목적으로 휴가차 들렀다고 하니 전작처럼 여전히 본연의 임무인 FBI수사관이 공식임무가 아닌 개인적 차원의 호기심이 발동한 이유인 듯 합니다.. 하지만 펜더게스트가 나타나면 전작에서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그가 등장하면 단순한 살인사건은 대형 연쇄살인사건이나 큰 이슈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이죠, 넵, 역시나 펜더게스트가 나타나고 그가 살인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모든 마을 주민이 서로를 아는 이곳에 살인사건의 범인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고고학과 역사적 미스터리의 이야기에 방점을 둔 작가들답게 과거 인디언의 삶과 그들의 고통속에 비롯된 복수와 폭력적 죽음의 이면에 담긴 역사적 사실에 살인이 어떠한 영향이 있는가를 조금씩 파헤쳐나가기 시작하는거죠, 그러던 와중에 동네 주민이 또다시 엽기적인 것을 뛰어넘은 잔인하고 기괴할 정도의 폭력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메디스 크릭의 주민들은 공포의 현장속에서 죽음의 소용돌이가 자신들을 덮칠까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과연 진실은,


    4. 이 두명의 공저가가 보여주는 장르적 취향은 여느 영미스릴러작가의 감성과는 좀 다르죠, 대단히 입체적이고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기괴한 고고학적 미스터리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시리즈의 주인공인 펜더게스트라는 조금은 신비스러운 인물이 자리잡고 있죠, 이번 작품에서도 뜬금없이 그는 나타나 하나의 살인사건이 어떠한 방향성으로 번져나가는지를 보여줍니다.. 소설속의 장소와 살인사건의 엽기적 형태는 가공할만한 상황으로 변화되어갑니다.. 전편에서는 상황이 주는 긴장감과 고고학적 미스터리의 이야기를 다룬 반면 이번 작품에서는있는 그대로의 살인사건의 중심에서 사건의 내막을 파헤쳐나가는 정통적 수사미스터리의 방식이 두드러집니다.. 그리고 고립된 지역이라는 대단히 황폐하고 메마른 감성이 이 작품의 장르적 취향에 불을 붙여주죠, 작품은 현실과 일반적이지 않은 비현실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듭니다.. 누군가는 현실속에서 대단히 엽기적인 비현실적 살인사건을 저지르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은 공포감이 극단적으로 치솟게 되죠, 그리고 작가는 그러한 대중적 불안감을 토대로 상황을 더욱 긴장감 넘치게 펼쳐냅니다..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사건의 진실이 어느정도 드러나 상황속으로 거침없이 들어가는 구성속에서 작가가 만들어낸 상황적 표현과 디테일한 긴장감의 면면은 이 작품이 왜 뛰어난 스릴러소설인가를 전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시나 전작에서도 후반부의 이러한 스릴러적 속도감은 매우 뛰어났지만 이번 작품 "악마의 놀이"에서는 말그대로 악마에게 쫓기고 그에게 놀아나는 힘없는 인간의 공포감이 극대화되어 있죠, 그 이유는 읽어보시면 앱니다... 진짜루,


    5. 재미진 스릴러소설임에도 이 작품은 초중반에 걸쳐 이루어지는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의 이야기와 이를 진행해나가는 이야기의 방식이 상당히 말이 많습니다.. 후반부의 속도감을 생각하면 초중반은 지리하기 짝이 없는 그런 구조이기도 하죠, 굳이 이렇게까지 길게 끌어서 상황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형적인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사실 전작에서도 이러한 구성적 지리함은 조금 있었죠, 초중반은 여차저차, 이런저런 이유와 상황을 들며 암시와 복선과 낌새를 만들어내는 여러가지 장치를 했더랬습니다.. 물론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구요, 하지만 전작에서는 여러 장르적 소재가 복합적인 느낌이 좀 들어서 그런지 그런 지리함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고립된 한 지역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역의 과거의 역사속에서 등장하는 인디언과의 양키들의 싸움을 제외하고는 단순한 지역내 엽기적 살인사건을 휴가온 펜더게스트가 호기심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 밖에는 없죠, 그러니 전작보다 지리한 상황이 생각보다 일찍 머리속에 자리잡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후반부의 상황이 훅하니 다가오는거죠,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요, 밥상 차릴때 나물류를 하나로 좀 뭉치고 튀김류를 좀 줄이고 고등어조림과 삼겹살중 하나만 올려서 마지막 김치찌개 나왔을때 집중해서 조금 빨리 맛남을 즐겼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말입니다.. 아님 말고,


    6. 그렇지만, 하지만, 스릴러미스터리독자라면 펜더게스트는 꼭 읽어야되는 매우 재미진 작품입니다.. 특히나 이번 작품에서는 이러한 스릴러적 긴장감이 폭발하기 때문에 매우 재미집니다.. 후반부의 상황적 이야기는 여태껏 읽어본 뛰어난 스릴러소설의 박진감적 독후감과 비교해서도 전혀 딸리지 않을 정도로 작품의 상황속으로 깊이 빠져듭니다.. 이 두분의 작가들은 얄팍한 스케일의 이야기가 아닌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와 여러 비현실적 현상이나 고증을 바탕으로 매우 뛰어난 고품질의 스릴러소설을 만들어내는 느낌을 받습니다.. 조금 아쉬운 이러한 스토리텔링의 전초전도 후반부에서 펼쳐지는 매력이라면 충분히 참아낼 수 있는 그런 즐거움입죠, 솔직히 이 작품 역시 출간된 시점이 아닌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 읽었지만 원작이 발매된 거의 15년전의 시점에서 이 작품속의 매력적인 스릴러의 향연이라면 깜짝 놀랠 수 밖에 없는 영화적 입체감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는 이 작품을 읽어보셔야지만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죠, 저로서는 확하고 저를 잡아 당기는 극단적인 매력은 없지만 이어지는 작품속에서 어떠한 이야기가 또다시 펼쳐질까하는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다만 영미스릴러에 대한 부담과 약간의 장광설의 흐름에 거부감을 가지신 일본쪽 적성의 독자분들이라면 개인적으로는 큰 재미를 못느끼시지는 않을까하는 의문은 듭니다.. 반면 영미스릴러에 적응하시고 이러한 서양적 이야기에 편안함을 가지신 독자분들시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글자로 이루어진 실감나는 3D 입체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 나쁘지 않아쓰.. 땡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