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 유쾌한 미학자 진중권의 7가지 상상력 프로젝트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3월
평점 :
081206 진중권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휴머니스트, 2005 * * * * *
대학생 때 미학은 일종의 검은 띠 과정이었다. 차원이 다르고 경지가 높았다. 그 당시 유일한 텍스트였던 까강의 <미학강의>-물론 중도 포기한 책이 되었지만-의 변역자가 진선생이었다는 것은 요새 알았다. 이 양반 정말 선생이라 불려도 손색없다.
나에겐 저 사람이 고수냐 하수냐를 구분하는 아주 손쉬운 방법이 있다. 간단하다. 저 사람이 하는 말이 쉽냐 안 쉽냐이다. 어렵고 난해하다는 건 그 말을 하는 본인 역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진리는 쉽다. 간단하다. 그런 면에서 진선생은 고수다. 고수 중에서도 상위권이다. 그의 말은 쉽다. 쉬우면서도 재미있기까지 하다. 쉽게 가질 수 없는 재주다. 질투나는 개인기다.
카피라이터로 먹고 살고 있는 나도 일종의 상업적 ‘상상력’에 관련된 일에 종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광고를 일처럼 해선 오래 가지 못한다는 업계의 통념에 의한다면 ‘놀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며, 서체의 종류와 폰트를 이리저리 고민하며 레이아웃을 바꿀 때마다 “우리 예술하는 거 아니잖아?” 라는 화두가 종종 거론된다는 점에서 ‘예술’과도 남남은 아닐 것이다. ‘상상력’, ‘놀이’ 그리고 ‘예술’이 어우려졌다고 해서 “노동이 유희가 될 것”이라는 칼 마르크스의 말처럼 살고 있지는 않다. 여기는 대한민국 아닌가. 그렇게 살기에 현실은 너무 척박하다. 우리의 노동이 유희가 되고 진선생의 말처럼 상상력이 생산력이 되는 세상-우리 아들 세대에서는 만끽할 수 있으려나-을 눈에 흙이 들어 가기 전에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책 얘길 잠깐 하면, 본저는 총 일곱 가지 테마로 구성된 놀이동산에서 자유이용권을 마음껏 이용하는 것과 같다고 여기면 된다. 놀이동산은 직접 가서 놀아봐야지 아무리 얘기해도 그 즐거움을 전하긴 어려운 법이라 난 책에 대해서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싶다. 진선생의 말처럼 어느 부문부터 읽어도 되고 거꾸로 읽어도 된다. 어린 시절의 놀이, 그것의 노스탤지어를 꿈꾸는 예술, 그 모든 것의 토대가 된 상상력은 본 놀이동산만의 특별한 쇼일 것이다.
“상상력은 배울 수 없는 것. 배울 수 없는 것은 다만 되찾을 수 있을 뿐” 이라며 “창조적 인간이 되고 싶”다면 “성숙의 지혜를 가지고 어린 시절의 천진함으로 돌아가라.”고 충고한다. 어린 시절의 천진함이란 대목을 곱씹어 보니 문득 떠오르는 일이 있다.
지금 7개월된 아들을 키우고 있는데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녀석은 눈도 제대로 못 맞추고 아무 방향으로나 고개를 돌리며 말 아닌 말을 내뱉을 때가 있었다. 그때 아내가 말하길, “원래 아기 때는 세상의 모든 사물과 얘기를 할 수 있대. 햇볕이랑도 얘기하고, 옷장이랑도 얘기하고, 공기 중의 요정과도 얘기하는 거래. 그런데 사람의 말을 배워가면서 그 말을 잊어버리게 되는 거래.”
혹 상상력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런 운명을 가진 것이 아닐까.
쌔근쌔근 아기는 잘도 잔다.
# 우선순위 없이 생각나는 한 장면만 고르기
“우연과 필연” 광대 편이 인상적이었는데, 광대가 아니고서는 이 미친 세상을 살기가 어렵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들이 예술의 반열에 오르지 않는가. 그래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라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는 고린도전서 3장 18절 말씀이 새삼스레 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