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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진 1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5월
평점 :
081204 신경숙 <리진>1,2 , 문학동네, 2007 *
이 소설을 읽고 이제 신경숙 소설은 읽지 않기로 했다.
작가노트에서 발췌한 작가의 변을 기초로 싫은 소리 좀 하겠다.
“풍속과 일상을 재현하되 가능한 옛 문법을 따르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을 짐작하게 하고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현대소설로 읽히기를 바라는 뜻이었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시대적 배경과 문체가 따로 놀다 보니까 리진을 신기한 동물 대하듯 쳐다보던 파리 시민들의 시각처럼, 상가집에 반짝이옷 입고 간 것처럼 맞지 않아 보였다. 소설 내내 그게 불편했다. 개화기의 리진이 압구정동에서 커피 마시며 수다 떠는 느낌. 또한 그녀가 처음 본 파리나 처음 읽은 모파상의 소설 등을 말하는 부문은 독자로서 아무리 모른척해도 어쩔 수 없이-다른 관점이 없는 한 지루하게 여겨졌고 어색했다.
“실제로 나는 이 소설을 역사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차라리 역사소설이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신경숙의 변신이니까. 근데 이건 TV문학관 수준이다. 베스트셀러 극장과 뭐가 다른가? 사랑? 통속적이다. 플롯? 뻔하다. 갈등 전개? 진부하다. 인물 캐릭터? 닳고 닳았다. 프랑스 외교관과 조선 최고 무희의 사랑-다니얼 헤이와 김태희의 차기 작품?
“파리에서 그녀의 자취 찾기를 포기하고 한국을 뒤졌다. 마찬가지였다.(…) 남아 있는 자취가 없으니 오히려 작가의 상상력이 파고들 공간이 넓어지는 것 아닌가.”
그 위대한 상상력이 한 게 대체 뭔가? A4 한 장 반 분량을 책 두 권으로 살찌운 것? 정말 놀라운 것은, 프랑스 외교관이 조선에 와서 궁중 무희 리진을 데리고 프랑스에 갔다가 다시 리진은 조선에 오게 되고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 논픽션에 해당되는 부문인데 픽션도 그 내용과 다를 게 없다. 고등어 가지고 고등어 구이를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고등어 스테이크를 하든지, 고등어 전골을 하든지 뭔가 크리에이티브한 요리가, 신경숙이란 작가 정도라면 나와야 할 것이란 기대는 무리인가?
“(…)작가로서의 나는 황후가 지닌 모순을 넘어 그녀의 인간적인 속살을 언어로 일구어놓고 싶은 열망이 움텄다. 죽은 자로서가 아니라 산 자로서, 박제된 황후로서가 아니라,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속을 끓이는 한 어머니로서의 고단한 숨소리를 전달하고 싶었다.”
명성왕후는 재탕 삼탕 너무 우려내서 맛이 없어진지 오래다. 뮤지컬에서 뮤직비디오까지 유행의 쓰나미가 지나갔다. 더욱이 상업적으로 각색되어 역사적 조명보다도 과도하게 화려하고 지나친 연민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당시 조선 민중의 삶은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투쟁의 중심에서 외세를 보디가드 삼은 탈정치 행위로 쓰러져가는 조선에 기름을 부어버린 것이 그녀의 역사적 한계라는 비판은 아랑곳하지 않은 신경숙의 역사 의식은 그야말로 0점에 가깝다. 아, 또 명성왕후라니...
소설을 이끌어가는 필력이나 정감어린 묘사, 인물과 사물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오랜만에 신경숙의 작품을 읽었지만 역시 신경숙이다 라는 긍정적 평가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너무 아쉽다. 그 타고난 재주가 재주에만 그치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그녀가 통속소설을 쓰려고 하는 게 아니라면, 김수현처럼 드라마 작가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면 <리진>이 그런 오해를 받는 마지막 소설이길 바란다.
# 책 속 우리말
리진은 몸을 일으켜 수포석(水泡石)으로 만든 물부리에 당지(唐紙)를 말은 궐련을 꽂고 불을 붙여 왕비에게 올렸다. 물부리엔 누런 빛을 띠는 밀화(蜜花) 장식이 화려했다.(리진2, 223쪽)
● 물부리 : 1. 담배 설대의 입으로 무는 데에 끼운, 쇠나 옥돌로 만든 물건
2. 궐련을 끼워 입에 물고 빠는 물건. 빨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