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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 비틀어 보기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2008.8.19
움베르토 에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 * * *
제목이 다소 긴 이 책은 낙성대 헌책방에서 먼저 구입했다. 에코라는 네임 밸류와 목차만 보고 집었는데 읽다 보니 의외의 대어를 낚은 것 같은 생각에 헌책에서 나오는 지워지지 않는 담배 냄새를 영원히 없애기 위해 알라딘에서 새 책을 주문해서 끝까지 읽게 됐다.
다작인 에코의 책에서 유일하게 ‘장미의 이름’을 읽은 나로선 작가의 위트와 풍자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박학다식한 이야기꾼 정도로 치부했던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본작은 대단하다는 칭찬이 오히려 멋쩍을 지경이다.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일들을 ‘세관을 통과하는 방법’, ‘도둑맞은 운전 면허증을 재발급받는 방법’등으로 실날하게 풍자한 에코는 ‘말줄임표를 사용하는 방법’, ‘TV 사회자가 되는 방법’ 등으로 풍자의 영역을 확장하며 ‘성조기’, ‘카코페디아 발췌 항목’ 등에서는 특유의 상상력이 아우토반을 시원하게 달려간다. 놀랍다. 그리고 부럽다.
예를 들어 “세계 어느 곳을 가든 택시 운전사를 알아보는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다. 잔돈을 일절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 그가 바로 택시 운전사이다.”(37쪽)라고 일갈하는 그의 냉소적 풍자는 애교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에 출몰하고 있다.>(…)만일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하나의……유령이 유럽에 출몰하고 있다.>라고 썼다면 어땠을까? 그것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았을 것이다. 고작해야 공산주의가 유령처럼 무시무시하고 실체를 포착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을 테니 말이다.(…)<유럽에 하나의 유령이…… 출몰하고 있다.>그랬다면 여러 가지 의문이 생겨났으리라. 유령이 나온다는 것일까 안 나온다는 것일까? 그 유령은 어느 한곳에 머물러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거기가 어디인가?(…)<하나의 유령이 출몰하고 있다……유럽에.> 그랬다면 그들은 자기들이 과장하고 있다는 뜻을, 유령은 그저 독일의 트리어라는 도시에 나타날 뿐이니 다른 곳 사람들은 마음 푹 놓고 잠을 자도 된다는 뜻을 그 말줄임표에 담으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109쪽)
다소 장황하게 인용한 이 부분에서 그의 냉철한 풍자는 칼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어떻게 지내십니까>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279쪽)에서는 “이카루스, 한바탕 곤두박질을 치고 난 기분입니다. 탈레스, 물 흐르듯 살고 있습니다. 칸트, 비판적인 질문이군요.” 등등 한 가지 대답으로 그 사람의 전체를 꿰뚫는 위트의 진수를 보여준다. 세어 보진 않았지만 거의 200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아래 각주를 읽지 않고 에코가 대신한 대답이 이해가 된다면 당신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위트와 풍자, 유머와 진실을 얄미울 정도로 완벽하게 표현했다. 에코가 밉다. 부러울 정도로 밉다. 그의 지식이 부럽다기 보다 그걸 요리할 줄 아는 실력과 통찰력이.
애프터서비스 :
‘<어떻게 지내십니까>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은 무한히 응용 가능한 질문 방법이다. “이명박, 거짓말하는 사람 물대포 쏘고 있습니다. 강만수, 환율 이 너무 낮아 걱정입니다. 이건희, 차명계좌 차라리 스위스로 돌릴까 생각 중입니다. 이용대, 한 쪽 눈 감고 살아요. 박태환, 축구장 물 찰 때까지 기다려요” 등등. 한번 해 보기 바란다. 은근히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