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의 여로

흑백의 여로 ㅣ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나쓰키 시즈코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2월

책을 다 읽은 후에야 띠지 안에 글자를 읽었다.

"흑백으로 가를 수 없는 존재의 비극"...

이 문장을 읽었다면, 더 빨리 책의 숨겨진 스토리에 다가갈 수 있었을까?

'일본의 애거서 크리스티'라고 불리는 '나쓰키 시즈코'의 "흑백의 여로"를 읽었다.

리카코는 도쿄에 있는 여대 3학년생이지만, 학교에도 잘 나가지 않고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한 채로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술집에서 알게 된 도모나가와는 불륜 관계이다.

회사의 도산 위기로 괴로워하던 도모나가는 리카코에게 동반 자살을 제안하고, 리카코는 그 것을 받아들인다.

깊은 산속에서 자살을 위해 수면제를 과다복용하고 정신을 잃었지만, 리카코는 몇 시간 후 깨어난다.,

그런데, 리카코의 옆에는 칼에 찔려 죽은 도모나가가 있고, 그 칼은 리카코의 손에 쥐어져 있다.

리카코는 이대로라면 자신이 도모나가를 죽인 살인범이 되어 잡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범인을 찾아야 겠다라고 다짐한다.

과연 도모나가를 죽인 범인은 누구일까?

리카코는 도모나가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도모나가의 주변 인물들에게 접근하기 시작하는데,

그러던 중 우연히 자신의 매형을 찾고 있던 다키이를 만나게 되고, 관련이 있는 것 같아 둘은 문제 해결을 위해 서로에게 협력한다.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하나씩 몰랐던 사실들이 드러나고,

그 사실들을 바탕으로 계속하여 그 다음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맞닥뜨린 사실들이 점점 놀라워지고, 그렇게 정말로 놀라운 마지막 진실이 드러난다.

책은 재미있었다. 띠지의 소개처럼, '기막힌 반전'의 묘미를 느꼈다.

아쉬운 점은, 이게 아쉽다고 할 만한 것인지는 사실 모르겠지만 말이다.

문체가 약간 예스럽긴 했는데, 이 책이 1975년작이라서 그런지 요즘 문체같지는 않았다.

또, 일부러 복선을 주기 위해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특정 인물에 대한 대놓고 한 듯한 상세한 묘사 때문에 '비밀'을 독자들이 빨리 눈치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사실, 몇 가지 비밀(진실)은 책을 읽으며 감이 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이 너무 재미있고 놀라운 것은, 정말로 예상하지 못했던 마지막 하나의 진실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정말로 예상하지 못했다.(눈썰미가 좋은 다른 독자들은 혹시 예상했을까?)

작가의 다른 책들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

전체 작품의 수에 비해 아직 번역된 작품이 많지는 않지만, 다른 책들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서울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서울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 쉴 틈 없는 회사의 시간과 숨 돌릴 나만의 시간 사이에서
박인경 지음 / 빌리버튼 / 2018년 3월

[서울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

밥벌이를 하고 산다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고향의 부모님 곁이 아닌, '서울'이라는 낯설고 커다랗게 느껴지는 도시에서는 더더욱 힘겹게 느껴진다.

매일 아침 이 낯선 도시 안에서 꾸역꾸역 눈을 뜨고, 씻고, 지하철을 향해 간다.

사람들이 가득한 지하철 안에서 이러저리 흔들리다 보면, 어느 새 회사 근처 역에 도착하고,

아침부터 사람들에게 치여 피곤한 나에게 괜시리 정신차리라고 아이스 카페라떼 한 잔을 선물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근무를 하고, 오후 5시가 넘어가면 퇴근을 기다린다.

선배님들 눈치를 보며 퇴근할 타이밍을 기다리다가 다시 사람들이 득실득실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서울에서(지금은 경기도에 살지만^^) 지냈던 10년 정도의 생활이 대부분 위와 같은 패턴이라서,

이 책 "서울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봤을 때, 묘하게 많은 끌림이 있었다.

내 생활과 비슷할 거라는 '동질감', 혹은 '공감'과

이런 서울 생활에서 작가는 어떤 감정을 느꼈고, 어떤 생활을 했을까라는 '궁금함'이 그 끌림의 이유가 아니었을까.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나에게 애썼다고 인정해주는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다."

책을 펴고, 프롤로그를 읽는 순간부터 "아, 어쩜 이렇게 같은 생각일까"란 말이 맴돌았다.

나 역시 단 5분이라도 더 자려고 몸을 뒤척이다 머리를 덜 말린 채로 출근길에 나서고,

회사에 들어가기 전, 좋아하는 카페라떼 한 잔을 산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본 거울 앞에서 너무 지치고 우울해 보이는 표정의 나를 본 후, 애써 무의식적으로라도 웃으려고 노력하곤 했었다.

주말에도,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우고 싶어 이것저것 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

결국 밀린 잠을 자고 책을 읽고 친구를 만나다 보면 그냥, 갑자기... 일요일 밤 9시가 되어 버린다.ㅋ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직장인으로 매일매일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 안에서 보람과 희망도 느낀다".

큰,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 안에서 소소한 보람과 희망을 느끼고,

힘든 어느 날은 퇴근 후에 동료들과 함께 마시는 맥주 한 잔에 잠시 내 안에 머물던 시름도 날려 버린다.

바쁘고 금방 지나가 버리는 듯한 주말이지만,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행복함과 여유도 잠시 즐긴다.

책을 보면 작가는 어린이집 교사인 것으로 보인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근무 시간 내내 아이들을 돌보고, 수업 준비를 위해 야근도 한다.

체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스스로 체력을 지키기 위해 약도 챙겨 먹지만, 갑자기 아픈 날들도 생긴다.

가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직장에 계속 다녀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다잡기 위해 12개월 할부로 물건을 구매한 경우도 있다.

퇴근 후 지하철역으로 가는 중, 열 발자국 앞서 걸어가는 선배님을 보았지만, 아무 생각없이 혼자 멍하게 있고 싶어 느린 걸음으로 걸은 적도 있다.

확신이 없는 삶에 대한 고민을 친구에게 털어놓기도 하는 등 고민도 많지만,

퇴근 후 집 근처의 카페에서 익숙한 음악을 들으며, 일기를 쓰면서 힘든 마음을 회복하고,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비단 '서울'에서 사는 직장인 뿐만 아니라, 모든 '직장인'들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그래서 읽는 내내, 작가의 문장들이 따뜻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

오늘도 수고했어요...

내일은 좀 더 수월하게 보낼 수 있기를...

뭐 어때, 떠나도 괜찮아

뭐 어때, 떠나도 괜찮아 - 이기적 워킹맘의 자아찾기 나홀로여행
티라미수 지음 / 더블유미디어(Wmedia) / 2018년 2월

 뭐 어때, 떠나도 괜찮아   (이기적인 워킹맘의 자아찾기 나홀로여행)

이 책은 9년차 워킹맘 & 16년차 직장인인 작가의 '여행' 이야기이다.

사실, 나도 결혼하기 전에는 여기저기 여행을 다녔다. 떠나고 싶으면 그냥 떠났다.

처음의 여행은 친구 등 누군가와 늘 함께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혼자라도 떠났다.

그만큼 자유로웠고, 여행을 떠나는 데 있어 고민하고 신경써야 할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이게 왠 걸...

결혼을 하고 나니, 확실히 여행을 떠나는 빈도가 줄었다.

매년 휴가에 맞춰 신랑과 비행기를 타고 낯선 곳으로 떠나기는 하지만,

확실히 예전처럼 그냥...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훌쩍 떠날 수는 없었다.

책을 보면, 작가님은 학생 때 파리와 뉴욕으로 떠났던 것을 시작으로,

스물아홉에는 밀라노로 유학을 떠난다.

특히 스물 아홉살에는 결혼을 한 후였지만, 유학을 떠났다.

남편과 친정 부모님의 든든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었다.

결혼 후에 혼자 유학을 떠나다니 정말 멋지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까 말한대로, 남편과 친정 부모님의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또 작가님의 말대로, 평생을 함께 살 건데 일 년 정도 떨어져 산다고 무슨 큰일이냐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책을 통해 느껴지는 작가님은 굉장히 열정적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정말 좋아하고, 또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과감하게 (남들이 보기에) 좋은 직장을 그만두기도 한다.

주변을 보면 맞벌이 부부임에도, 집안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아내쪽이고, 집안일 때문에 휴가를 내는 사람도 대부분 아내쪽이다.

물론 요즘에는 육아휴직을 하는 남자들도 많다지만, 여전히 경력단절을 겪는 워킹맘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이니, 워킹맘이 자아실현을 위해, 잠깐의 여유를 위해 혼자 여행을 떠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아내'들이 이 책을 읽고, 용기를 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안일과 일을 병행하면서 자신을 놓아버리지 않도록, ○○엄마가 아니라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아가도록,

그리고 일과 집안일이 상충했을 때 '아내'들만 희생하지 않도록 말이다.

그리고 말해주고 싶다.

"뭐 어때? 떠나도 괜찮습니다."라고...

당신이 내게 최면을 걸었나요

당신이 내게 최면을 걸었나요?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8년 2월

"사랑에 빠진 사람은 가끔 미치고 만다"

최면술사인 여자, 엘런은 혼자서 아들을 키우고 사는 측량사 패트릭과 데이트를 하게 되고,

그에게서 그가 전 여자친구에게서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보통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스토커가 있다라고 하면 무서워하거나 불쾌하게 느껴질 법도 한데,

엘런은 묘하게 스토커인 그녀에게 관심이 간다.

한편, 패트릭을 스토킹하는 전 여자친구인 사스키아는 그를 여전히 사랑하고, 그의 아들인 잭 역시 여전히 사랑해서 그의 주변을 맴돈다.

자신이 하는 것은 스토킹이 아니라 '토킹'을 하고 싶다라고 하면서 말이다.

엘런, 패트릭, 사스키아는 결국 어떻게 되는 걸까?

이야기는 엘런의 시점과 사스키아의 시점으로 나누어져 전개된다.

새롭게 사랑하게 된 패트릭의 스토커에게 묘한 관심을 보이는 엘런,

전처 콜린을 무척 사랑했고, 사스키아 역시 사랑했지만 지금은 자신을 맴도는 사스키아를 무척 싫어하는 패트릭,

여전히 패트릭과 잭을 잊지 못하고 그들의 주변을 맴돌고, 엘런의 일상에마저 끼어들어 버린 사스키아,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스토킹이라는 것이 굴절된 사랑의 형태이다. 그래서 단순히 스토킹의 내용만 들을 때는 '미친 거 아냐'라고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소설 속의 사스키아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 참 안타깝다.

자신은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가 헤어지자고 이야기를 한다.

헤어진 이유를 전혀 알 수 없고, 안타깝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원래의 '일상'이었던 그 '생활'이 익숙해서,

내가 빠진 그들의 생활이 궁금해서 그 주변을 맴돈다.

또 새로운 사랑을 만나 이번엔 실패하지 않으려고, 그의 마음을 알기 위해, 그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많은 생각을 하는 엘런 역시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캐릭터였다.

사랑에 빠진 딱 그대로의 모습이었으니까.

엘런과 사스키아를 생각하느라, 계속해서 전처 이야기를 꺼내는 패트릭이 사실 나는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을 정도였다.

계속적으로 엘런과 사스키아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진행되었고,

이 이야기의 마지막은 어떤 결론이 날지 궁금했다.

모두가 행복한 결론을 맺을 수 있을까?

궁금하다면 책을 읽어 보도록!!!!

p.s. 주인공인 엘런이 최면술사이다 보니, 엘런에게 최면요법을 받는 내담자들의 가지각색 사연들도 나오는데, 그것으로 인해 전체적인 이야기가 더 풍성해진 느낌도 있다.

p.s. 사스키아~ 지난 사랑에 집착하기에는, 주변에 좋은 사람이 너무 많고, 앞으로 사랑할 날도 너무 많아요.

 

잊혀진 소년

잊혀진 소년
오타 아이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2월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소설을 만났다.

이 책은 원죄로 인해 모든 삶이 무너져버린 가족의 이야기, 또 소년의 이야기이다.



23년 전, 당시 13살 소년이었던 나오가 사라진다.

나오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에는 특이한 표시 '//=ㅣ(슬래시, 슬래시, 이퀄, 버티컬 바)'가 남겨져 있었다.



23년이 흐른 현재, 전직 차장검사의 손녀인 '도키와 리사'가 도서관 앞에서 실종되고, 그 현장에는 '//=ㅣ'라는 표시가 남아 있다.



23년 전 나오의 친구였던 소마는 현재 교통과 형사로, 위 도키와 리사의 사건에 지원을 나갔다가 위 표시를 보게 된다.

소마는 나오의 실종과 도키와 리사의 실종이 관계가 있음을 직감하지만, 사건을 맡은 지휘부는 소마의 말을 듣지 않는다.

지휘부는 도키와 리사의 납치범으로 소아성애 전력이 있는 '데라이시 다카유키'를 주요 용의자로 보고, 그를 체포한다.



두 사건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또 23년이 지난 현재, 도키와 리사를 납치한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

사건 관련자들은 두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p. 423



"현재 일본의 재판 현장에서 '열 명의 진범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지 말라'는 격언은 그림의 떡이지.

 수사관은 자신이 세운 가설에 맞춰 용의자를 체포하려고 혈안이고,

 검찰관은 기소한 피고인에 대해 유죄판결을 얻어 내려고 기를 쓰고,

 재판관은 사건 처리 건수를 올리는 데 급급하고,

 그 결과 어쩌다 원죄가 발생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책임을 묻지도 않아."





 

p. 423



"아무 죄도 없는데 누명을 뒤집어쓴 사람은, 그때까지 인생에서 쌓아 온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고요.

 일이며 신뢰며, 전부 다요. 사람을 그 지경으로 몰아놓고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니, 그게 말이 돼요."



 옳은 말이라고 소마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씁쓸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책을 읽을수록,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씁쓸하고 안타까운 현실에 슬펐다.

현재도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 때 형사소송법 공부를 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왜 범죄 피해자보다 피의자의 권리 보장에 대해서 이렇게 많이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의아했다.

하지만 이런 원죄에 관한 책을 읽을 때면, 한 사람의 무고한 사람을 만드는 것보다는 피의자의 권리 보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또 하게 된다.



나는 피의자보다는 피해자의 권리가 더 소중하고 지켜져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또 진범 열 명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무고한 피해자를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무죄추정의 원칙' 등이 잘 지켜지는 우리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소설이지만,

소설 속 나오의 가족처럼 안타까운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