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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안시내 지음 / 푸른향기 / 2022년 5월
평점 :
안시내.
그녀의 이름을 처음 본 건, 몇년 전 우연히 페이스북을 검색했을 때였다.
참으로 작고 어여쁜 얼굴을 가진 한없이 젊은 청춘은 아르바이트를 한 돈을 모아 세계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정말로 부러웠다. 그녀의 여행기를 보는 시간은 참으로 즐겁고 부럽고 기뻤다.
그리고 이후 그녀의 여행기를 담은 책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 역시 재미있었다.
그녀의 네번째 책이 나왔다.
이번에는 에세이다.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이라는 제목마저 어여쁘다.
아름답고 멋진 여행 사진 속에서 보아왔던 '겉'이 아닌 그녀의 '속'이 엄청나게 많이 담겨져 있는 문장 하나하나는,
때로는 이렇게 솔직해도 된다고... 라는 걱정과 놀람을 주었고, 때로는 그 깊고 단단하고 따뜻한 말들로 나를 매료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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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162)
나는 종종 일상을 치르다 그 겨울을 떠올린다.
가장 물렁했던 순간. 내가 보내던 비슷한 하루하루가 얼마나 특별했는지 알아챘던 긴 겨울을.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묵묵히 버텨가는 사람들의 커다란 위로를.
눈물에 담긴 진심을.
다정한 목소리의 힘을.
잠이 주는 온기를.
바람이 불고 지나간 겨울나무의 흔적을.
너무도 특별한.
보통의 하루를 떠올린다.
문장 속에서 그녀는 솔직하고 따스하고 정겹다.
세계의 여러 곳을 여행하는 그녀가 엄청 부러웠는데, 그녀는 여행을 하고 글을 쓰는 삶에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그런 그녀는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을 그냥 두지 않고 해결하기 위해 동네의 허름한 정신의학과 병원을 찾는다.
그리고 그 곳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씩 증세는 호전되어 간다.
이 에피소드를 읽으면서도 안시내 작가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의 검은 이야기를 매일 듣는 선생님에 대한 걱정으로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기도 한다.
★
(p. 142)
매순간 느낀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내 스스로가 아니라 내가 만나고 느낀 것들이자 회피를 물리쳐낸 용기였다.
타이키는 문장 속에서 계속해서 말을 건다.
결국 나를 향한 아름다운 말들과 포옹의 따뜻한 온도를 의심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버겁고 힘들겠지만, 사랑을 온전히 받는 사람만이 진정한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될 것이라며 화요일의 그는 여전히 글 속에 있다.
여행의 어느날 그녀를 좋아한다며 고백해 온 타이키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다.
사실 먼저 데이트 약속을 한 건 그녀였지만, 자신을 좋아한다는 타이키를 그녀는 좋아할 수 없었다.
지금의 감정에 충실한 타이키와는 달리,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의심하고, 감정을 회피하고, 사랑 후에 남겨질 것들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용기있게 계속 자신이 마음을 고백하는 타이키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와의 만남은 짧았지만, 그에 대한 기억들과 마음은 언제가 그녀의 곁에 남아 있었다.
★
(p. 246)
어쩌면 빈도와 온도가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그도 나처럼, 그리운 걸지도 모르겠따.
비록 그때처럼 서로를 온전히 다 알지는 않더라도 서로의 가장 생기 있던 순간을 이미 마음 한켠에 간직한 채로, 적당히 미지근하게 지낼지라도.
모든 것이 사무치게 외로운 밤, 나는 생각한다.
아직도 당신들의 오래된 친구로 남아 있길 바란다고, 나를 영영 지우지는 말아 줬으면 한다고.
여전히 당신들에게서 졸업하고 싶지 않다고.
위 문장들을 읽는 내내 나와 내 오랜 친구들이 생각났다.
자주 연락하지 않는 성격이라 일년에 한두 번 통화하거나, 어쩌면 만나지 못할 때도 있지만 늘 마음 속에 이 오랜 친구들이 들어 있다.
매일 보고 자그만 일에도 깔깔 웃고 행복해 하며 속마음을 숨김없이 다 이야기하던 그 시절 같지는 않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들은 나의 소중하고 하나뿐인 친구들이다.
작가의 저 문장처럼, 적당히 미지근하게 지낼지라도...
나 역시도 이 친구들이 나의 오래된 친구로 남아 있어 주길, 나를 영영 잊지 말길, 여전히 서로와 관계가 이어지기를 바라고 바라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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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을 읽기 전에 조금은 걱정도 되었다.
여행기가 아닌 오롯이 그녀의 문장들로 이루어진 에세이도 재미있을까... 나의 마음을 건드릴 수 있을까... 라고 말이다.
하지만 기우였다. 그녀의 솔직한 문장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또다시 그녀의 문장들을 만날 날을 기다려본다.
그녀의 모든 것을 응원하면서 말이다.
*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