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역사냐, 평범한 삶이냐? 선택의 기로에 선 우리들에 대해

 

 선술집은 항상 시끄럽다. 이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교수, 노동자, 대학생, 노숙자 등을 모두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들은 모두 술을 마시고, 철학을 논한다. 이야기의 주제는 모두 같다. 러시아의 운명과 공산주의에 대해…….

 

 - 난 주정뱅이요. 왜 내가 술을 마시냐고? 난 내 인생이 참 마음에 안들어요. 그래서 알코올의 힘을 빌려서 불가능한 순간이동이라도 해보고 싶은 겁니다. 어떻게든 다른 곳으로 옮겨졌으면 좋겠단 말이에요. 아름답고 좋은 일만 가득한 곳으로.

(48쪽)

 

 

 선생님께서 만나야 할 사람은 우리 아버지였는데……. 하지만 아버지는 지금 안 계시죠. 수용소 생활이 아버지의 수명을 단축시켰고, 게다가 페레스트로이카도 한몫했지요. 아버지는 매우 고통스러워하셨어요. 나라 안에, 당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하지 못하셨어요. 수용소에서 6년을 지내는 동안 우리 아버지는 사과, 온전한 양배추, 홑이불, 베개가 무엇인지 잊어버리셨어요. 그곳에서는 하루에 세 번 멀건 죽을 배식했고, 식빵 한 덩어리를 25명이 나눠 먹어야 했대요. 주무실 때는 베개 대신 장작을, 매트리스 대신 나무판을 깔고 주무셨어요. 우리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들과 달랐어요. 말이나 소를 때리지도 못하셨고, 똥개를 발로 차지도 못하셨죠. 전 항상 아버지가 가여웠어요. 그런데 다른 아저씨들은 우리 아버지를 비웃었죠. "고추가 달린 건 맞아? 완전 계집애가 따로 없어!" 어머니는 아버지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이유로 매번 눈물바람이셨어요. 아버지는 양배추 한 통을 쥐고는 오랫동안 세세하게 살피곤 하셨어요. 토마토도요……. 돌아오신 후 얼마간은 우리와 대화도 하지 않으시고, 늘 조용히 계셨어요. 10년 후에나 말문을 여셨죠. 맞아요, 10년 후에나요. 그 전까진 아니었어요.

(59쪽)

 

 

(……)

 진실은 누가 갖고 있는 걸까요? 전 진실은 진실을 찾기 위해 특별히 교육받은 사람ㄷ르, 즉 판사, 학자, 성직자들이 찾아야 하는 거라고 봅니다. 그 밖의 사람들은 모두 다 자신의 야욕이나 감정의 지배하에 놓여 있기 마련이니까. (침묵) 선생께서 쓰신 책을 저도 읽어보았습니다. 선생께선 사람을, 사람의 진심을 지나치게 신뢰하시는 것 같더군요. 괜한 짓을 하시는 겁니다. 역사는 사상의 인생입니다. 사람들이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역사를 기록하는 겁니다. 그 가운데서 인간의 진심은 못 같은 역할을 합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모자를 걸어두는 그런 못이요.

(165쪽)

 

 

(……)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고방식 또는 잠재의식 속에는 차르의 나라가 내재되어 있어요. 유전자 코드에 삽입되어 있어요. 모두가 차르를 필요로 해요. 유럽에서는 폭군으로 평가되는 이반 뇌제, 러시아 도시들을 피바다로 만들고 리보니아 전쟁에서 패배했던 그 왕을 러시아인들은 공포와 경외심을 갖고 회상합니다. 표트르 대제, 스탈린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농노제를 폐지했던 해방자 알렉산드르 2세는 어떻게 되었나요? 러시아에 자유라는 것을 선사했던 그 왕을 러시아인들은 살해했어요. 체코 사람들이나 바츨라프 하벨(체코의 극작가이자 인권운동가로 공산독제 체제를 무너뜨리고 대통령이 됨)을 필요로 하지 러시아 사람들은 아니에요. 러시아인들에게는 사하로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차르가 필요합니다. 만백성의 아버지인 차르가! 우리나라에서는 총서기장이건 대통령이건 직함에 상관없이 그냥 차르인 겁니다.(오랫동안 침묵한다.)

(170쪽)

 

 

(……)

 공기 중에 돈 냄새가 배어 있었다니까요. 큰 돈의 냄새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절대적인 자유가 있었죠. 당도 없었고 정부도 없었어요. 모두가 '쩐'을 만들고 싶어 했고, '쩐'을 만들 줄 모르는 사람은 만들 줄 아는 사람을 부러워했어요. 장사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있었고, 뭔가를 숨기는 살마이 있는가 하면 그런 사람의 뒤를 봐주는 사람들도 있었죠. 제가 처음으로 돈이라는 걸 번 날, 전 친구들과 함께 레스토랑에 갔어요. 마티니와 보드카 로열을 주문했죠. 그땐 그걸 제일 높이 쳐줬거든요! 손에 술잔을 들고 뽐내보고 싶었어요. 우린 말보로도 피웠어요. 레마르크의 책에 묘사되어 있던 모든 걸 해봤죠. 우린 참 오랫동안 그림 속에서 보던 걸 하며 살았어요. 새로운 가게, 레스토랑들……. 그건 마치 남의 인생에서 가져온 장식품 같았어요.

(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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