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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현듯 다가온 초가을에는 앞당겨 일어나는 사건처럼 어둠이 빨리 내려앉기 때문에, 마치 하루 일과가 더 늦게 끝나는 것처럼 느꺄진다. 이럴 때면 나는 날이 어두워지고 있으니 곧 일이 끝날 거라는 기대감을 일하는 도중에도 즐긴다. 어둠은 밤이고 밤은 곧 휴식, 귀과, 자유를 의미하니까. 어둑해진 넓은 사무실 안을 밝히는 불이 켜지고 다가오는 밤을 느끼며 하던 일을 계속할 때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기억에 속하는 것 같은 터무니없는 안락함을 느끼고, 숫자들을 써내려가는 작업은 마치 잠들기 전에 하는 독서처럼 편안하다.

 우리 모두는 외부 환경의 노예다. 태양이 환한 낮은 좁은 골목길의 카페에 앉아서도 넓은 들판에 있는 것처럼 느끼고, 하늘이 흐린 날은 야외에 있어도 문 없는 집 같은 우리 자신 속으로 몸을 웅크린다. 아직 낮의 사물들 안에 있을지라도, 밤의 왕림은 이제 쉬어야 한다는 내밀한 의식을 천천히 펴지는 부챗살처럼 펼친다.

 

 

 

 

 

 

 

 

 

외국의 할머니 할아버지 행복한 얼굴로 햇살 맞으며 강변을 거니는 동안, 저 위 공원에서 강과 책을 번갈아봤다. 읽고 있으니 리스본으로 가야할 것만 같았지만 그건 미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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