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것의 역사 - 개역판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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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자연과학 분야가 아니라 인문과학 분야 서가에 곧잘 꽂혀 있더란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시중에 나온, 대중 대상의 과학사 서적들 중 가장 훌륭한 책이 아닐까 합니다. 이 책에는 두 줄기의 역사가 흘러갑니다. 하나는 136억 년 현 우주의 역사이며 또 하나는 우주의 생성과 물질의 기원과 본질 등을 밝히기 위해 노력한 서양 과학자들의 3-400년 간의 치열한 연구의 역사입니다.

빅뱅에서부터 태양계의 형성, 그리고 우리 지구의 특징과 생명의 발전, 그리고 진화, 종국에 우리 인류에 이르기까지 그 거대한 서사가 이 책에는 빼곡히 담겨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류의 역사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인류가 만들어지기 위해선 빅뱅이 있어야 했을테니까요.

한편 이 모든 것을 밝히기 위해 과학자들, 그리고 과학자는 아니지만 진리에 목말랐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평생을 걸고 학문에 매진했습니다. 여기엔 소설 못지 않은 벅찬 드라마들이 많습니다. 뉴턴, 아인슈타인, 러더퍼드 등 익히 알려진 과학자들의 이야기들은 물론, 지구의 무게를 정확히 측정해낸 과학자이자, 목숨에 위협을 받으면서도 대기 중 납 농도의 치명적인 증가가 유연휘발유 때문임을 밝혀낸 클레어 패터슨 같은 영웅에서부터, 여자란 이유로 과학사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헨리에타 스완 레빗, 메리 에닝 등 중요한 업적에도 불구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학인들의 삶도 조명해냅니다. 맨텔을 평생 괴롭힌 리처드 오언의 만행(?)에 두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하고, 버제스 이판암의 해석을 둘러싼 스티븐 제이 굴드의 견해와 그에 반박하는 리처드 도킨스의 논박은 여느 드라마 못지 않게 흥미진진합니다.

다만 ‘거의 모든 것’에는 다른 문명의 사람들도 포함이 될텐데, 미치오 카쿠 같은 학자들의 인용 약간을 빼면 동양이나 기타 문명의 과학자들은 거의 언급이 없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이해는 됩니다. ‘거의 모든 것’을 밝혀낸 성과는 근대 서양 과학자들이 갖고 있으니까요. 다만 근대 학문을 형성한 바탕엔 다른 문명의 업적이 있을진대 그런 맥락이 약간이라도 주어졌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자연과학에 관한 책이지만 이렇게 풍부한 드라마를 이 책이 갖고 있는 이유는 역시 필자 빌 브라이슨의 힘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는 언어와 여행에 관한 책을 쓰던 저명한 작가입니다. 서문에서 밝혔듯, 하루는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바다의 염도가 얼마인지, 양성자는 무엇이고 준성은 무엇인지 의문을 가지며 자신이 살고 있는 행성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그는 독서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의문을 해결해나갑니다. 인용텍스트만 해도, 제가 정확하게 헤아리진 않았지만 최소한 200편은 넘어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위대한 독서의 기록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거대한 이야기의 끝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그랬듯 성찰입니다, 거의 모든 것을 알아내 가고 있으나, 발달해가는 과학기술로 종말을 굳이 앞당기고 있는 인간에 대한 성찰.

자연과학 도서임에도 불구 놀랍게도 그림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림으로 보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따로 출간되어 있으나, 저자 특유의 유머가 사라지고 정보와 그림만 남아 원래 책만 못합니다. 현재 개역판이 나와 있으나 구판보다 오타가 보이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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