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천년의 가르침 - 산다는 것은 곧 배운다는 것이다
오카다 아키토 지음, 이수형 옮김 / 올댓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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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참 부러웠던 것 중에 하나는 오랜 역사를 지닌 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의 연대의식이었다. 잘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더라도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도 하나 되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 좋아보였다. 그들을 하나로 만드는 건 단순히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유 때문일까?

 

<옥스퍼드 천년의 가르침>을 읽고 나면 단순히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하나 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수많은 졸업생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건 기나긴 시간 동한 그들의 의식을 형성해 가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인 오카다 아키토이다. 낯선 이방이었던 그에게 옥스퍼드는 그들 속에 흐르는 천년의 지혜와 교육을 심어주었다.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방황하고, 때로는 넘어질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 옥스퍼드는 삶을 살아가는 최고의 지혜를 선사했다고 한다.

 

OXON이라고도 불리는 옥스퍼드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튜토리얼이라는 교육방식이다. 지도교수가 1대1 혹은 1대 2-3명의 형태로 학생들을 교육하는 튜토리얼을 통해 서로 간의 연대감을 형성하고 올바르게 학문을 추구하는 기초 소양을 쌓는다.

 

이런 교육 형태가 참 부럽다. 내가 졸업한 학교도 지도교수님이 계셔서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셨지만 옥스퍼트의 튜토리얼처럼 학문적으로 치열하게 공방전을 펼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대학원은 어떤 구조인지 잘 모르지만 학부에서는 그랬다). 그런 기회가 있었다면 삶을 바라보고, 학문에 대한 관심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저자는 이런 교육 방식을 통해 옥스퍼드에 흐르는 천년의 지혜를 신념, 학습, 용기, 대화, 결단, 애정, 운명이라는 7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각 주제별로 저자가 배운 옥스퍼드의 가르침을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명사들의 어록과 옥스퍼드의 곳곳을 보여주는 사진과 함께 들려준다.

 

한 꼭지마다 2-3페이지의 길지 않은 내용들이지만 그 속에 담긴 깊은 지혜는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게 한다. 수많은 지혜들이 있지만 이 모든 지혜를 관통하는 것은 책 표지에 담긴 말이 아닐까 싶다.

 

산다는 것은 곧 배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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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복음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나
조나단 도슨 지음, 김재영.박일귀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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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만 기독교인이라는 말이 옛말이 된지 오래다. 기독교 인구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2005년에는 840만 정도까지 떨어졌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표본집계 결과 다시 967만 명으로 증가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교회에 나가지는 않지만 스스로를 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이단으로 분류되는 사람들도 포함한 수치라 실제적으로 기독교인은 2005년보다 줄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기독교인이 줄어드는 추세는 그만큼 기독교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나 관심이 줄어들었다는 의미이고 그만큼 전도가 어려워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전도가 어려워진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1부에서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비인격적인 접근, 설교조로 잘난 체한다는 오해, 하나님께 이르는 다양한 길이 있다는 사상, 잘 알지 못하기에 전도할 수 없다는 마음 등이 전도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이유들을 더욱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 전도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이다. 전도하는 사람들은 그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전도를 통해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기에 그들을 그저 프레젠테이션 대상으로만 바라본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저자는 무엇을 전해야 할지, 또한 각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를 세세하게 설명한다. 저자는 복음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여러 은유들로 복음을 다루는 능력을 다각화시켜야 하며 각각의 문화적 상황에 적절한 복음 전달 구사 능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복음은 그 자체로 힘이 있어서 사람들을 다시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오게 한다. 이런 능력의 복음이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복음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이 책은 바로 씨 뿌리는 방법, 즉 이 시대에 어떻게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이 담겨있다.

 

우리의 할 일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오직 그 분을 전하는 일에 매진하는 것이다. 그 이후의 일은 모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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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으로의 초대 세계기독교고전 53
리차드 백스터 지음, 박문재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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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다니는 교회에서 매 반기마다 성경공부를 진행한다. 가장 먼저 101 성경 공부를 통해 성경에 대한 기초적인 내용을 배운다. 이는 모든 교인들이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과정이다. 그 후 102부터는 신약, 구약 등을 다루면서 점점 더 성경의 내용을 깊이 있게 다룬다.

 

교회에서 진행한 성경공부 중에서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서 나를 늘 묵상하게 만드는 내용이 있다. 바로 회개(혹은 회심)에 대한 것이었다. 그 때 성경공부를 진행한 강도사님이 ‘회개란 돌아서는 것’이라는 한 마디로 설명하셨다.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이 설명이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돌아선다는 것이 가진 의미 때문이다.

 

저자 리처드 백스터도 <회심으로의 초대>에서 회심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회심을 일곱 가지 교훈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회심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회심은..... 죄를 향한 마음을 끊어 버리고, 그리스도께로 피하여 피난처로 삼고..... 그의 마음의 성향과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서, 지금까지 행복으로 여겨 왔던 것들을 부인하고,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을 행복으로 여기고,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p.94)

 

돌아선다는 것은 이처럼 큰 사건이다.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그렇기에 회심 혹은 회개하였다면 그 사람의 삶 자체가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내 모습을 돌아보면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여전히 세상적인 욕심을 버리지 않은 채 나의 길을 가고 있는 모습을 본다.

 

회심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열 가지 지침에서 말하듯이, 회심은 결단이다. 조건부로 그리스도께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100%로 돌아서는 것이다. 조금 있다가가 아니라 바로 지금 주께로 돌아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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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 인문학 -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비상구
안성민 지음 / 책읽는귀족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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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나 기업의 관심은 점점 사라져가는 시대이다. 인문학을 전공한 이들은 이공계 전공자들에 비해 취업도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는 달리 인문학을 전공하거나 이를 공부하는 이들이 실제적으로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실생활에서 인문학이 천대받는 상황에서 저자는 인문학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것도 단순히 지적인 만족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말 그대로 생계를 위해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문학이 바탕이 되어야 앞으로 다가올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뒤처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급속히 변해가는 사회에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삶을 심플하게 정리하고, 집단주의 병폐에서 빠져나와 자신을 돌아보고 세워나가는 개인주의적인 삶을 살면서, 특정한 가치나 이데올로기, 정해진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노마디즘의 삶을 살기 위해 인문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문학은 말 그대로 인간에 대한 생각이나 사상을 일컫는다. 인간에 대한 생각과 관심은 바로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렇기에 저자가 주장하듯이 시간이나 소비나 모든 분야에서 개인주의적 성향을 키워야 한다. 그렇다고 이기주의적인 삶을 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자신을 올바르게 세우고 사랑하는 개인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또한 언제나 예스만을 말하는 분위기에서는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이제는 개인주의가 대세를 이루며 미래를 열어갈 것이다. 이런 개인주의는 인문학의 발전을 가져온다. 인문학은 집단주의가 아니라 개인주의와 연결되는 단짝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주장이 반복해서 이어지기 때문에 조금 지루한 감도 없지는 않다. 또한 깊이 있는 인문학 얘기라기보다는 일상에서 인문학을 즐겨야 할 이유를 설명하는 책이기에 학문적으로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보다는 삶의 방향성을 잡고자 하는 사람이 읽으면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사람을 알아가는 인문학은 어느 시대나 필요한 분야이다. 세상을 이루고, 삶을 이루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인문학이 선행되지 않은 사회는 결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다시 새로운 지평을 여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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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m3388 2017-03-18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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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의 사람들
발레리아 루이셀리 지음, 엄지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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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의 사람들>이라는 제목이 풍기는 뉘앙스는 어떤 걸까?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 든 생각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부유하는 사람들의 이미지였다.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으니까 어딘가에 고정될 수 없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게다가 책 표지의 이미지도 이런 생각에 힘을 더한다. 흐릿하게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 엿보인다. 이런 나의 추측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작가 발레리아 루이셀리라는 이름이 낯설다. 파격과 혁신을 통해 글쓰기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 멕시코의 작가라고 하는 데,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한 때 서울에서 지냈다는 설명에 왠지 모를 친밀감이 들기도 한다.

 

친밀하게 느낀 작가의 이미지는 소설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깨져버렸다. 소설의 구조도, 소설의 내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멕시코시티에서 소설을 쓰는 나의 이야기, 그녀가 쓰는 소설 이야기, 그러다 힐베르토 오웬의 이야기가 다시 끼어들면서 시간과 공간이 얽히고설키기 시작한다. 그러다 돌고 도는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면서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소설의 구조가 쉽지 않다보니 스토리를 따라가기도 벅찼다. 소설 속 소설이라는 액자식 구조가 이제는 더 이상 독특한 구조는 아니지만 이 소설은 액자식 구조가 액자 밖으로 튀어나와 소설 속 현실과 이어진다. 색다르다. 또한 소설 속에서 말한 수직으로 이야기하는 수평적 소설이라는 구성도 상당히 파격적이다.

 

내용도 만만치 않다. 다양한 작가, 아티스트들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귀에 익숙한 이들이 아니다. 누군가 싶어서 책 뒤편에 수록된 옮긴이의 주를 읽다보니 자꾸 흐름이 끊긴다. 게다가 유령의 존재도, 죽음이라는 현상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계속해서 곱씹게 된다.

 

삶을 버리자. 모든 걸 다 부숴버리자...... 누구든 다른 삶을 시작하기 위해 기존의 삶을 버릴 수 있다는 걸 제대로 이해하는 이는 거의 없다. (p.107)

 

이 소설에서 가장 강하게 다가온 부분이다. 어쩌면 지금 내게 필요한 내용이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걸 버리고 모든 걸 새롭게 만드는 것. 소설에서 말하는 예술의 세계도 그렇지만 일상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만만치 않은 책이지만 여운이 끝없이 이어지는 책이다. 깨어지고 다시 이어지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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