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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의 사람들
발레리아 루이셀리 지음, 엄지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무중력의 사람들>이라는 제목이 풍기는 뉘앙스는 어떤 걸까?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 든 생각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부유하는 사람들의 이미지였다.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으니까 어딘가에 고정될 수 없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게다가 책 표지의 이미지도 이런 생각에 힘을 더한다. 흐릿하게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 엿보인다. 이런 나의 추측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작가 발레리아 루이셀리라는 이름이 낯설다. 파격과 혁신을 통해 글쓰기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 멕시코의 작가라고 하는 데,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한 때 서울에서 지냈다는 설명에 왠지 모를 친밀감이 들기도 한다.
친밀하게 느낀 작가의 이미지는 소설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깨져버렸다. 소설의 구조도, 소설의 내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멕시코시티에서 소설을 쓰는 나의 이야기, 그녀가 쓰는 소설 이야기, 그러다 힐베르토 오웬의 이야기가 다시 끼어들면서 시간과 공간이 얽히고설키기 시작한다. 그러다 돌고 도는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면서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소설의 구조가 쉽지 않다보니 스토리를 따라가기도 벅찼다. 소설 속 소설이라는 액자식 구조가 이제는 더 이상 독특한 구조는 아니지만 이 소설은 액자식 구조가 액자 밖으로 튀어나와 소설 속 현실과 이어진다. 색다르다. 또한 소설 속에서 말한 수직으로 이야기하는 수평적 소설이라는 구성도 상당히 파격적이다.
내용도 만만치 않다. 다양한 작가, 아티스트들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귀에 익숙한 이들이 아니다. 누군가 싶어서 책 뒤편에 수록된 옮긴이의 주를 읽다보니 자꾸 흐름이 끊긴다. 게다가 유령의 존재도, 죽음이라는 현상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계속해서 곱씹게 된다.
삶을 버리자. 모든 걸 다 부숴버리자...... 누구든 다른 삶을 시작하기 위해 기존의 삶을 버릴 수 있다는 걸 제대로 이해하는 이는 거의 없다. (p.107)
이 소설에서 가장 강하게 다가온 부분이다. 어쩌면 지금 내게 필요한 내용이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걸 버리고 모든 걸 새롭게 만드는 것. 소설에서 말하는 예술의 세계도 그렇지만 일상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만만치 않은 책이지만 여운이 끝없이 이어지는 책이다. 깨어지고 다시 이어지는 그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