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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과 전체 - 개정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지음, 유영미 옮김, 김재영 감수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2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코펜하겐>이란 연극이 있다. 실제로 하이젠베르크가 스승인 보어를 찾아가서 만난 41년 10월의 사건을 토대로 연극을 만든 것이다. 연극에서는 보어가 얼마나 제자로서 하이젠베르크를 사랑했고, 그를 양자역학계로 이끌고 코펜하겐 학파에 포함시켜 명망을 얻게 되었는지가 보어의 입장에서 설명된다. 이후 나치가 등장하고 하이젠베르크가 나치에 협조하는 것이 매우 부정적인 것으로 그려진다. 보어가 유태인이었기고, 뚜렷한 반 나치 입장을 표명했기 때문이 이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하이젠베르크가 당대 과학지성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자서전처럼 쓴 <부분과 전체>는 이 연극과 비교하면 훨씬 흥미진진해진다. 청년시기부터 전체-사회-공동체를 생각하는 입장과 부분-개인-순수과학을 중심에 두는 측면을 비교하면서 1차대전, 양자역학학계, 청년운동, 2차대전, 원자핵 연구 등의 굵직한 사건들을 다룬다. 지성들과의 대화이므로 주제는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아인슈타인과의 대화), 과학에서 예측과 이해의 차이(닐스 보어), 과학자로서의 사회적 윤리와 책무(칼 프리드리히), 정치적 입장, 논리실증주의와의 관계 등 지성사를 모두 아우를정도로 광범위하다.
하이델베르크의 통찰과 견해에 대부분 동의했고, 특히 실증주의를 다룬 장에서 구체적 증명으로 보여줄수 없어도(현실적 한계로) 과학=진리란 훨씬 더 광범위하고 총체적이어서 과학적 이론을 은유, 비유 등의 형이상학적 언어로 표현할수 있고 심급에 가서는 종교와도 통할수 있다는 주장을 곱씹어 보았다. “명확함은 충일함에서 비롯되고 진리는 심연에 있다”는 실러의 싯귀가 마음에 와 닿았다.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원자연구-원자폭탄에 대한 변명같았지만 충분히 납득이 되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과학도 그 이후 우리 삶에 적용 됐을때의 편리성이나 획기성
보다는 통제와 합의과정에 대한 사회적 장치가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연극 <코펜하겐> 얘기로 돌아가면 보어의 입장에서 아끼고 키워준 제자인데, 스승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발전해서 결국 나치에 부역하는 하이젠베르크가 부각되었다면, <부분과 전체>에서는 그에 대한 자기변명 일색이라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아무리 봐도 자신을 이끌어준 위대한 스승인데, 그런 존경심이나 그의 영향에 대한 감사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나치의 원폭 개발 요구에 대해 외면하고 그냥 원자연구만 했다고(그것도 전후 독일 재건을 위해서) 썼지만 어쨌든
지식인으로서 나치를 위해 복무한건 맞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는 없는듯 하다.
하지만 지기 변명도 이렇게 멋진 대화형식을 빌어 시대상, 철학, 종교, 정치 등을 모두 다루며 통찰력있게 썼다면 들어줄만 하다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한국도 일제나 미국, 자본가를 위해 협조한 사람들이 변명일지라고 솔직한 이런 멋진 회고록을 남겼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서정주 뭐 이런 이들은 필력도 좋으니 말이다. 한국근현대사야 말로 얼마나 다룰 얘기가 많은 사건과 이념의 보고인가.
오랫만에 깊이 있는, 과학과 철학, 역사 등을 모두 다룬 책을 읽느라 머리가 좀 아팠지만 뿌듯한 독서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