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탄생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4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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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8년 10월 7일자 경향신문의 “21세기 한․일의 ‘사대주의’”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개번 매코맥 교수는 강대국에 의지하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의존적 민족주의를 ‘사대 민족주의’라고 표현했다. 민족주의와 사대주의의 이율배반적 결합은 한국과 일본 민족주의의 특성인데, 이로 인해 한일 양국 정부는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에 철저히 무능하고 불안정한 대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석훈의 책, 『촌놈들의 제국주의』와 『괴물의 탄생』은 동아시아 개별 국가들이 놓여있었던 포스트-식민적 조건이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신자유주의적 ‘괴물’이 탄생하게 된 상황을 명료하게 그리고 있다. 사대주의와 민족주의의 기묘한 결합, 이러한 한국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가져온 ‘괴물’이라는 메타포는 아마도 이 기묘한 결합을 잘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미덕은 강자에 대한 약자의 동일시 메카니즘에 의해 추동되어온 ‘대한민국건설’의 기획이 정치경제적 차원에서, 그리고 일상적 삶의 차원에서 서로 맞물리면서 신자유주의의 ‘초고속 질주 글로벌화’라는 드라마에 강력한 동의의 기반이 되어 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었다는 점일 것이다. MB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제도적․정치적 차원과 일상적 차원에서 일제히 공공성이 무너지는 것을 무력하게 목도한지 한참 후에야, 이러한 공공성의 붕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말,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구호, 노무현 정부의 ‘선택과 집중’ 시나리오, 저자는 이미 오래전에 이러한 수사들이 일상화되고 규범화되면서 국가와 기업에 의해 주도된 한국의 괴물화가 가능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2. 농지와 토지 문제, 수도권 집중, 지역 토호, 수도권 집중 문제, 지방 자치 문제 등 해외 경제를 분석할 때 사용하지 않던 개념을 사용하여 한국 경제를 분석한 것은 유효했다고 본다. 그러나 저자의 화법에서 몇 가지 논쟁적인 부분이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기업과 시장의 개념적 구분이다. 저자는 양자 간의 구분을 정확히 하지 않은 채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이 기업과 시장을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인지,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그렇게 보고 있는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아마도 이는 저자가 한국적 상황에서 ‘기업’을 ‘국가’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대립항으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인 듯한데, 그렇다면 좀 더 면밀히 그 개념을 정교하게 설명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또한 제국주의, 괴물 등의 상징적 메타포를 통해 대중들의 현실 이해력 혹은 현실 포착력을 높이는 것은 좋지만, 그러한 화법의 효과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어야할 것 같다.

3. 그리고 제3부문에 대한 이야기에서 짚고 넘어갈 부분은 그것이 성찰적 공동체로 간주되는 '시민사회'라는 개념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낳은 또 다른 '괴물'이 '시민사회'가 아니던가? 저자는 '사회'가 살아있는 경제공동체를 '제3부문'으로 보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이 어떤 이상적 공동체가 아닌 한 구체적인 범례를 제시하면서 설명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신자유주의 바깥에서 사유할 수 있는 사회라는 것, 어쩌면 잃어버린 상상적 세계에 대한 허구적 노스텔지어일 수도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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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ians, Cyborgs, and Women : The Reinvention of Nature (Paperback)
Donna J. Haraway / Routledge / 199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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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시스트 페미니스트인 해러웨이(자기 스스로는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고 있다)의 학문적 궤적은 좀 남다르다. 생물학, 동물학, 철학을 공부했고, 글의 참고문헌도 사회과학의 계보만을 고수하지는 않는다. 특히 1980년대 초반에 씌여진 유명한 논문 "사이보그 선언문"을 보면, 여타의 사회과학적 글쓰기와는 그 형식 면에서, 인용의 실천(citational practice) 면에서 매우 독특한 스타일을 보이고 있다. 이 유명한 해러웨이의 저서는 페미니즘 아카데미 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과학 아카데미에서도 자주 인용되며, 폭넓은 영향을 미친 바 있다. 이 책은 번역본으로도 나와있긴 하지만, 나의 주관적 경험에 따르면 (영어 독해 능력이 무척 딸리는 나로서도) 번역본으로 읽는 것보다 원서로 읽는 것이 훨씬 더 빨리, 쉽게 읽힌다. 왜 그런지는 구태여 설명하지는 않겠으나 어쨌거나 원서로 읽는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이 리뷰에서는 이 책의 8장 "사이보그 선언문"만을 언급하겠다. 8장을 숙독하는 것 만으로도 비싼 돈 주고 원서로 살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다.

“사이보그 선언문 - 20세기 말의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주의-페미니즘”은 ‘사이보그’라는 익숙하지 않은 메타포와 사회 과학자들과는 사뭇 다른 방식의 지식의 계보학을 펼쳐 보인다. 생물학, 자연과학, 동물학, 철학 등을 공부한 저자는 문학 텍스트와 테크놀로지, 생물학에 대한 지식들을 교차시키면서, 지극히 낯선 방식으로 정치적 상상력과 감각을 만들어내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주디스 버틀러가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앎의 가능성의 영역(intelligibility)'의 경계를 확장시키는 수사적 전략을 택했다면, 해러웨이는 ‘불경스러움(blasphemy)’과 ‘역설(irony)'의 화법을 구사한다. 이는 자신의 텍스트와 언설을 숭배나 동일시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인 동시에, ‘모순적인 것과 양립 불가능한 것들 간의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일종의 책임의식의 발로인 듯하다. 또한 저자는 자신의 텍스트를 일종의 ‘허구’나 ‘신화’로 위치시킴으로써, 그것이 일종의 ‘규범’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그것은 저자 스스로 만들어낸 이론의 지위를 탈중심화하면서 이론의 생산 역시 사회의 변화와 맞물리는 실천이 되어야 한다는 의도로 읽힌다.

이 글이 씌여진 1980년대는 레이건 정부가 이른바 ‘별들의 전쟁’이라고 불리는 미사일 공격망의 구축을 통해 전 세계에 패권주의적 권력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군사주의에 입각한 정책을 펼쳤고, 컴퓨터와 전자공학, 생명공학 등의 발달이 후기 자본주의로의 진입을 알리고 있었다. 한편 페미니스트 아카데미아에서는 ‘페미니즘 제2물결’이 만개하면서, 여성주의 내부에서 인종, 계급, 성별 등의 ‘차이 범주’들의 통약불가능성이 서서히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해러웨이는 ‘사이보그’라는 메타포를 1980년대의 사회적․유물론적 현실의 지도를 그려내는 허구로서, 그리고 서구의 ‘인간’ 규범을 재생산하는 동일성의 정치, 인정 투쟁의 정치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적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상상력의 원천으로서 삼고 있다.

사이보그로서의 인간

헤러웨이는 “우리는 모두 사이보그이다”라고 주장한다. 사이보그란 인간과 유기체 간의 잡종이며, 서구적 의미에서 기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이보그는 자연과 문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다. 해러웨이가 정치학과 존재론의 기초로서 ‘인간(Man)’을 거부하면서 ‘사이보그’를 택한 이유는 일차적으로는 20세기 후반의 사회적 상황에서 인간과 동물, 유기체와 기계, 물리적인 현실과 비물리적인 현실 간의 경계가 와해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고, ‘인간’ 개념에 의존한 정치학은 결국 서구적 전통에서 규범화된 인간 범주 이외의 모든 존재들을 타자화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무화하고 삭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진보적 정치가 ‘사이보그 신화’를 채택할 것을 제안하는 방식 또한 독특하다. 저자는 ‘사이보그 존재론’을 유일한 정치적 대안으로서가 아니라 모순적 가능성으로서 제안하고 있다. 해러웨이가 ‘사이보그 신화’에 거는 기대는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정치적 선택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정치적 상상력과 욕망의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해러웨이는 진보 정치의 기반은 ‘혈연’이건 ‘억압의 경험’이건 어떤 기원을 갖는 정체성이 아니라, ‘선택’ 혹은 ‘대항적 의식’에 의해서 연결되는 제휴(coalition)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거를 펼치기 위해 어떤 단일하고 특권적인 사유의 범주, 혹은 ‘정체성’에 기반한 정치학들의 실패의 사례를 페미니즘의 역사 속에서 개괄한다. 맑시즘은 ‘노동’ 개념을 사회 변화에 필수적인 특권적 범주로 사유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이 ‘노동’이라는 개념적 범주를 여성에게 확장하여 ‘재생산, 모성, 양육행위’를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반면, 인간과 사회를 설명해내기 위해 래디컬 페미니즘은 ‘계급’이나 ‘노동’이 아니라 ‘성별’을 특권적 범주로 삼았다. 외관상 사뭇 다르게 보이는 이 두 가지 방식이 해러웨이에게 모두 문제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양자 모두 ‘통합된 여성’이라는 범주를 총체적으로 구성하면서, 그 외에 다른 범주들(예를 들면 인종)을 배제하거나 삭제한다는 점이다. 해러웨이는 버틀러와 다른 방식으로 ‘여성’이라는 범주가 왜 정치학의 기반이 될 수 없는지, 실패하는 정치학이 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지적한다. 해러웨이가 ‘사이보그’라는 메타포를 통해 시도하는 정치학은 분명하다. ‘동일화’에 근거한 정치학이 아니라 ‘선택’에 의한 정치학, ‘대항적 의식(oppositional consciousness)’ 근거한 정치학이다. 이러한 정치학이 가능하기 위해서 ‘분절된 정체성’이 그 기반이 되어야 한다.

“그녀는 무엇이 ‘여성의 경험’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성폭력을 명명하는 것, 실제로는 ‘여성’이 관계될 수 있는 한 성 그 자체를 명명하는 모든 것)에 대해 강력하게 주장하는 의식 이론을 발전시킨다. 페미니즘의 실천은 이런 형태의 의식, 즉 자신이 아닌 것에 대한 자기 지식의 구성이다.” (p159)

“여성은 여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성적 전유에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욕망에 의해 구성된다는 것은 노동자가 자신의 생산품으로서 폭력적으로 분리되면서 소외되는 것과 동일하지 않다. 그녀의 이론은 다른 모든 여성의 정치적 발화와 행동의 권위를 주변화한다기 보다는 무효화한다.” (p159) 

지금이야 페미니즘 내외부에서 맥키논에 대한 비판(MacKinnon Bashing)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저자가 이 글을 쓰던 당시 맥키논에 대한 해러웨이의 비판은 매우 도발적인 것이었을 것이다. 해러웨이가 지적한 바, 맥키논식의 정치적 의식화가 갖는 문제점은 맥키논이 ‘여성의 경험’으로 구성해 내고 있는 것 이외의 여성의 경험을 배제한다는 점, 그 이외의 ‘차이’를 삭제하거나 검열한다는 점 보다 더 근본적인 한계를 내포한다. 즉 페미니즘을 가능케 하는 여성의 존재론과 인식론(being female, women's experience)는 남성의 욕망의 대상이 될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폭력의 희생자, 가부장제의 성적 전유의 대상으로서만 그 정치적 존재론을 설정하고 있는 이러한 이론은 그 이외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아예 삭제해 버리는 전체주의 담론이라는 것이다.

사이보그 정치학

페미니스트들은 정치적 연대를 위해 서로의 유사성 혹은 동일성을 필사적으로 추구해왔었다. 그것이 억압의 경험이건, 타고난 재생산 능력이건, 여성의 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건 간에 페미니스트 정치학을 위한 토대로서 늘 특정한 ‘동질성’과 ‘전체성’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해러웨이는 사이보그 신화가 페미니스트들로 하여금 이러한 소모적인 노력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줄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해러웨이가 ‘지배의 정보과학’이라고 부른 무엇보다도 20세기 후반의 현실 속에 이미 인간은 성별이라는 단일 범주에 포섭되기에는 너무나 잡종적인 존재가 되어 버렸다. 특히 ‘유색 여성’의 경험을 통해 보면, 여성의 노동과 재생산, 몸, 섹슈얼리티가 이미 중첩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고, 이들의 삶 자체에 이미 테크놀로지가 들어와 있다(김은실 선생님). 해러웨이가 예로 들고 있는 제3세계 여성들, 미국의 흑인 여성들, 치카노 여성들, 한국의 10대 여성들의 노동은 이미 공/사, 문화/자연, 인간/자연, 유기체/기계 간의 구분이 모호한 영역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테크놀로지의 영향으로 국제적 노동 분업이 이뤄지고 있는 현실, 복지 국가의 붕괴와 여성의 빈곤화, 그로 인한 가족 형태의 변화 속에서 사회주의-페미니즘의 정치학을 어떻게 재구축할 것인가?

만약 우리가 이러한 권력망과 사회적 삶을 읽어내는 방법을 배운다면, 우리는 새로운 짝짓기, 새로운 제휴를 학습해야할 것이다. 동일시(identification)라는 관점, 통합적인 자아의 관점에서는 이를 읽어낼 수 없다. 쟁점은 흩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과업은 디아스포라(diaspora) 속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p170)

이른바 정보(information)가 권력과 통제전략을 구축하는 현실 속에서 해러웨이는 ‘동일화’가 아니라 ‘디아스포라’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20세 후반에 권력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정보를 주고받는 의사소통의 방해라는 점, 고도의 과학기술로 인해 사회관계가 재구성되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해러웨이가 사이보그 정치학의 방법론으로 제안하는 것은 글쓰기인데, 그것은 글쓰기야 말로 인간과 유기체, 기계 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들에 대한 정보를 부호화하고, 부호화를 통한 정보의 생산, 의미화 과정, 정보의 교환을 통한 제휴야말로 다양한 정치적 목소리를 가능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미국 쇠고기 반대를 위한 촛불 집회에서 다양한 정치적 주체들이 인터넷이라는 관계망을 통해, 다양한 의미의 구성과 재부호화과정의 주체로 구성되는 과정을 떠올렸다.

이 글이 1985년에 씌여졌다는 게 매우 놀라웠다. 이 글은 기존의 사회과학과는 매우 다른 인용의 실천(citation practice)을 통해, 서구의 휴머니즘이 제시하는 견고한 틀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방식의 인식론과 정치적 상상력을 가능케 한다. “새로운 테크놀로지 기술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적 생활’을 근절시키는 데 기본적인 역할을 한다”는 해석의 오류는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은 당시의 시대적 한계였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제외하고는 해러웨이가 1980년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자신의 언어로 ‘부호화’해서 보여준 언어들은 2008년이라는 현재의 시대적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놀라운 예측력을 갖고 있다.

또한 이 글이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읽혀지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설명하는 사회과학의 남근중심적 설명체계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점 역시 당혹감에 가까운 놀라움을 느끼게 한다. 이는 Bare Life, '죽음으로 포함되지 않는', '정치적인 존재로 간주되지 않는' 생명들에 대한 사유를 확장해주는 아감벤의 개념이 전혀 새로운 것으로, 놀라울 정도의 통찰력을 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유행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과 자못 대조적이다. 아감벤의 책은 1985년 사이보그 마니페스토가 씌여진 지 10년이 지난 후에 나온 책이다. 그 10년의 시간 적 차이는 페미니스트 아카데미아에서 축적된 지식이 주류 지식 체계에서 '주변화'가 아니라 '무화'된 그 시간의 깊이를 상징하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처럼 여겨진다. 그 유명세에 비해서, 사이보그 마니페스토는 아카데미아에서 '매우 독특한 인식론적, 정치적 사유'로만 남아있었던 걸까? 학문의 경계들 간의 이 소통되지 않는 간극은 참으로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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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소리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2
미시마 유키오 지음, 이진명 옮김 / 책세상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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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정신 세계는 참으로 묘한 구석이 있다. 무릇 파시즘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왠지 근본이 폭력적일 것 같고, 슈퍼울트라초특급 마초일 것 같고,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낭만적이라거나 감수성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을 것 같지만,

이 책을 읽고는 나의 그런 생각은 일종의 미신일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파시스트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면 어째 깔끔한 기분이 들기 때문에 혼자 그런 결론을 내리게 된지도 모르겠다.

당대의 엘리트 관료 집안 출신의 미시마 유키오는 1970년 45세의 나이로 자위대의 각성을 요구하며 할복 자살했다고 한다. 작가에 관해 이 놀라운 사실을 알고 이 소설을 읽었기 때문일까? 아름다운 섬마을을 배경으로 지극히 낭만적이고도 수려한 문체로 써 내려간 청춘 남녀의 러브스토리는 나로 하여금 이 잘생기고 매력적인 파시스트 작가에게 묘한 호감에 가까운 호기심을 갖게 했다.

물론 혹자는 이 소설의 질서와 균형미의 미학을 추구하는 작가의 계몽주의적 세계관을 잘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쨌건, 히틀러 역시 미술과 음악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아티스트 아니었던가?
강력한 천황제를 부르짖으며 할복으로 생을 마감한 미시마 유키오 역시 감수성이 풍부한 인간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잘생기고 매끈한 그의 얼굴 역시 그것을 의심케 하지는 않는다.
오직 무언가 허공의 한점을 뚫어지게 의식하는 듯한 그의 집요하게 번득이는 눈빛 만이 무언가를 추구하는 그의 범상치 않은 열정을 추측하게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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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inted Veil (Paperback)
서머셋 모옴 지음 / Vintage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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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읽고 나서 재밌다고 준 책. 소설이 영화화되고 나서 표지를 바꿔 다시 낸 모양이다. 그런데 나는 예전 표지가 더 맘에 든다.

암튼,

나는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나중에 훑어보았는데, 영화는 소설과 내용도 사뭇 다를 뿐더러, 인종주의와 식민주의 관련해서 살짝 불쾌해지는 부분도 있더라.

어릴 적 성문 종합 영어에서 봤던가 아님 당시 유행하던 빨간색 표지의 영한 대역 문고에서 봤던가.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를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내용은 거의 기억이 안 나지만 문장과 문체가 매우 깔끔하고 수려하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동생은 이 책을 읽고 서머셋 모옴을 일컬어, '모파상에 버금가는 섬세한 인물의 심리 묘사'라고 극찬하더만. 모파상이야 뭐 스토리텔링의 강자이지만, 서머셋 모옴은 인물의 내면 심리 묘사와 인간의 내면에 대한 상상력과 이해에 있어서 모파상보다 한 수 위인듯.

"서머셋 모옴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야 여자!"

이 책을 읽고 나서 동생의 한 말이다. 그렇게 표현한 법도 한 것이, 이 소설은 1920년대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과 중국이 배경. 얼굴은 아름답되 영국의 중산층에서 천방지축 암 생각없이 사교 생활이나 누리며 자란 한 철딱서니 없기 그지 없는 한 젊은 여성이 사색적이고 내성적인 남편과 만나 결혼하고, 남편이 근무하는 홍콩으로 따라간다. 그녀가 사랑없이 결혼한 이유는 미모야 자기 보다 무척 딸리지만 '더 어린 나이'라는 자원을 가진 여동생이 잘 나가는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자, 더 이상 부모에게 얹혀살 수 없게 되었고,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기 때문. 파티 문화를 좋아하는 사교적인 그녀는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서 참을 수 없는 지루함을 느끼게 되고, 폴로와 각종 스포츠로 근사한 몸매를 가꾼 한 중년 남성의 유혹에 넘어가 불륜을 저지르게 된다. 아내의 불륜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은 남편은 콜레라가 창궐하는 오지로 일부러 발령을 받아 아내와 함께 가게 되고, 그곳에서 병에 걸려 죽게 된다. 이 과정에서 철딱서니 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소녀적인 나르시시스트였던 그녀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고독과 고통, 외로움, 소외감, 원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리다가 콜레라로 인해 사람들이 파리 목숨처럼 스러져가는 그곳의 풍경과 세상의 비참, 그리고 이제껏 자신의 고통에만 빠져서 보지 못했던 다른 사람의 고통(남편)에 눈뜨게 된다. 영화는 뒷부분에서 남편과 이 여자의 로맨스에 초점을 맞추지만, 소설은 완전 다른 얘기.

남편이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걸 알지만, 남편이 자신의 불륜으로 인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서서히 알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니었다. 살다보면 마음이 혹은 몸이 자신의 의지나 뜻과는 다르게 움직이는 순간들이 많다. 그게 삶의 딜레마이자 비극의 씨앗이 아니겠는가. 자신과 바람을 핀 남자가 개차반이라는 걸 알면서도 몸으로는 끌리는 걸 어쩔 수 없는 게 그녀의 현실이자 딜레마. 그 남자에 대한 '사랑'이라는 콩까풀이 완전 벗겨졌는데도 성적인 이끌림은 그녀를 원하지 않는 상황으로 몰고 간다.

Kitty: Do you despise me?
Walter: No, I despise myself

하기야, 인생사 자기 뜻대로 안되기는 그녀의 남편도 마찬가지. 콜레라 전염 지역에서 불륜을 저지른 아내를 완전히 외면한 채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는 남편에게 그녀는 "나를 경멸하냐?"고 묻지만, 그녀의 남편은 "경멸하는 건 나 자신"이라고 대답한다. 그녀의 남편이 바람핀 그녀와 깔끔하게 이혼하고 갈라서면 될 것을 구태여 복수하겠다는 심정으로 혹은 "너죽고 나죽자"는 심정으로 콜레라 전염 지역이라는 사지로 제발로 아내를 끌고 들어간 걸 보면, 개차반인 바람둥이인줄 알면서도 다른 남자에게 끌리는 여자나, 아내가 철딱서니 없는 경박한 여자라는 걸 알면서도 사랑할 수 밖에 없기에 그런 자신을 경멸할 수 밖에 없는 그녀의 남편이나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다만 진정 안타까운 것은 그녀의 남편과 그녀 모두 그러한 공통점을, 그런 약점을 지닌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갑작스레 죽어버렸다는 것일 뿐.

소설은 이 여자의 관점에서 쓰여졌고,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알 수 없을 것 같은 내면의 풍경들을 어찌나 기가 막히게 꿰뚫어보고 있는지, 중간 중간에 나도 모르게 '호오오오....'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모파상의 화법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좋아하게 될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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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송령(蒲松齡)은 중국 청나라 초기의 소설가이다. 어찌나 글솜씨가 좋았던지 “붓 끝에 신기가 어리고 글에서는 기이한 향내가 난다”는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가끔 '향기가 나는 글'을 접할 때가 있다. <요재지이>는 향기가 난다고까지는 할 수 없겠으나, 암튼 포송령이 살았던 시절엔 엄청 재미난 이야기였을터. 재주는 좋았으나 시험운도, 따라서 관운도 없었던 그는 젊은 시절 한동안 여기 저기 떠돌며, 나그네 생활을 하다가, 고향에 돌아온 뒤로는 훈장 노릇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혹자는 포송령의 일생을 ‘불우하다’고 하던데, 가난하지만 자유롭고 온갖 다양한 범주의 책들을 섭렵하고 글쟁이로 살았던 그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만약 그가 관직에 매여 있었다면 후세에 두루 두루 읽히는 이런 재미난 이야기들을 생산해 내지 못했을 것은 분명한 일.

어릴 적, 읽을 수 있는 책의 목록이 그다지 다양하지 않았더랬다.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책장에 꽂혀있던 한국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에 마음껏 파묻혀 있었던 시간들이 그립다. 특히 용돈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중딩 시절, 문고판 책은 읽고 싶은 책들의 세계를 발견하고, 그 중에서 마음을 끄는 책을 선택하여 구매하는 즐거움, 어쩐지 자신의 삶에 대한 자율성을 가진 어른이 된 듯한 착각과 함께 잠시 나마 사춘기의 고뇌로부터 놓여날 수 있게 해 주었다.

암튼 한 속에 잡히는 이 문고판으로 요재지이를 읽으니 잠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또한 인간이 요괴(혹은 요정), 여우와 대화를 나누고 인간적 관계를 맺고, 용궁과 천상의 세계를 들락날락 하는 동화적 에피소드들은 물질문명 사회에서 인간이 기계와 점점 가까워지면서 소원해졌던, 혹은 잊어버렸던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 해 준다. 어린 시절, 나는 벽지의 무늬 속에 요정이 살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부모님이 다른 형제들과 나를 차별한다고 여겨 서러운 마음이 들면, 나는 하늘나라 옥황상제의 딸인데 나쁜 짓을 한 벌로 잠시 인간 세상에 내려와 살고 있는 것이라고 상상하곤 했다. 수세식 변기구멍 속엔 아이들만 잡아먹는 요괴가 살고 있고, 내가 숨쉬는 공기, O2라는 산소 입자 속엔 지구 만한 또 다른 미니어쳐 세상이 있다고 상상했다. 다만 과학기술이 아직 발달하지 못하여 과학자들이 아직까지는 그걸 모르고 있을 뿐이라고 혼자 우기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땐 동물, 요정, 또 다른 세상에 대한 상상으로 가득했었네. 요즘 아이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아마 공부하느라 바빠서 상상할 시간이 없을지도. 암튼, 매일 딱딱한 사회과학서적만 읽다보니 ‘전설의 고향’ 류의 이야기를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 아름다운 10월에 개념어로 가득한 사회 과학책에서 잠시 놓여나 온갖 상상이 가득한 옛날 이야기를 읽어보는 것도 아주 맛있었다. 냠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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