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송령(蒲松齡)은 중국 청나라 초기의 소설가이다. 어찌나 글솜씨가 좋았던지 “붓 끝에 신기가 어리고 글에서는 기이한 향내가 난다”는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가끔 '향기가 나는 글'을 접할 때가 있다. <요재지이>는 향기가 난다고까지는 할 수 없겠으나, 암튼 포송령이 살았던 시절엔 엄청 재미난 이야기였을터. 재주는 좋았으나 시험운도, 따라서 관운도 없었던 그는 젊은 시절 한동안 여기 저기 떠돌며, 나그네 생활을 하다가, 고향에 돌아온 뒤로는 훈장 노릇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혹자는 포송령의 일생을 ‘불우하다’고 하던데, 가난하지만 자유롭고 온갖 다양한 범주의 책들을 섭렵하고 글쟁이로 살았던 그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만약 그가 관직에 매여 있었다면 후세에 두루 두루 읽히는 이런 재미난 이야기들을 생산해 내지 못했을 것은 분명한 일.

어릴 적, 읽을 수 있는 책의 목록이 그다지 다양하지 않았더랬다.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책장에 꽂혀있던 한국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에 마음껏 파묻혀 있었던 시간들이 그립다. 특히 용돈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중딩 시절, 문고판 책은 읽고 싶은 책들의 세계를 발견하고, 그 중에서 마음을 끄는 책을 선택하여 구매하는 즐거움, 어쩐지 자신의 삶에 대한 자율성을 가진 어른이 된 듯한 착각과 함께 잠시 나마 사춘기의 고뇌로부터 놓여날 수 있게 해 주었다.

암튼 한 속에 잡히는 이 문고판으로 요재지이를 읽으니 잠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또한 인간이 요괴(혹은 요정), 여우와 대화를 나누고 인간적 관계를 맺고, 용궁과 천상의 세계를 들락날락 하는 동화적 에피소드들은 물질문명 사회에서 인간이 기계와 점점 가까워지면서 소원해졌던, 혹은 잊어버렸던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 해 준다. 어린 시절, 나는 벽지의 무늬 속에 요정이 살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부모님이 다른 형제들과 나를 차별한다고 여겨 서러운 마음이 들면, 나는 하늘나라 옥황상제의 딸인데 나쁜 짓을 한 벌로 잠시 인간 세상에 내려와 살고 있는 것이라고 상상하곤 했다. 수세식 변기구멍 속엔 아이들만 잡아먹는 요괴가 살고 있고, 내가 숨쉬는 공기, O2라는 산소 입자 속엔 지구 만한 또 다른 미니어쳐 세상이 있다고 상상했다. 다만 과학기술이 아직 발달하지 못하여 과학자들이 아직까지는 그걸 모르고 있을 뿐이라고 혼자 우기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땐 동물, 요정, 또 다른 세상에 대한 상상으로 가득했었네. 요즘 아이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아마 공부하느라 바빠서 상상할 시간이 없을지도. 암튼, 매일 딱딱한 사회과학서적만 읽다보니 ‘전설의 고향’ 류의 이야기를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 아름다운 10월에 개념어로 가득한 사회 과학책에서 잠시 놓여나 온갖 상상이 가득한 옛날 이야기를 읽어보는 것도 아주 맛있었다. 냠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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