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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 신드롬
제임스 트위첼 지음, 최기철 옮김 / 미래의창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언제부터인가 누군가의 인상에 대해서 평할 때 “럭셔리하다”는 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럭셔리하다’는 단어는 ‘섹시하다’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최근 우리 사회에서 그 사람의 인격과 품격에 대한 긍정적 함의를 내포하는 것으로 변환되었다. 이 책은 미국에서 사회 현상으로 정착된 호사 취향, 나아가 ‘호사스러움의 대중화 혹은 민주화’라는 범지구적 현상을 ‘호사스러움’의 역사, 저자 자신의 개인적 체험, 라스베가스라는 도시공간에 대한 분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럭셔리 신드롬’이라는 문화 현상을 조명하는 방식에는 대학에서 영문학과 광고학을 동시에 가르친다는 저자의 학문적 배경이 반영되어 있다. 저자는 소설과 영화 텍스트, 광고 기법, 게다가 도시 공간까지 넘나들면서 분석을 시도한다. 그래서 좀 지루하고 산만한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이 책이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이유는 ‘명품을 소비하는 대중’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면서, ‘호사 취향’이 어떻게 대중적 현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에 대해 저자 자신의 현장 체험과 라스베가스라는 도시공간에 대한 분석을 통해 풀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원제 "Living it up : Our Love affair with luxury"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소비 주체인 인간이 명품과 맺고 있는 관계를 일종에 ‘연애’에 비유한다. 뷰캐넌 증후군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위대한 개츠비』의 여주인공 데이지 뷰캐넌이 개츠비의 셔츠 더미 앞에서 넋을 잃고 매혹되는 심리적 현상을 지칭하기 위해서 저자가 만들어 낸 말이다. 저자는 스탕달이 뛰어난 미술품을 관람하다가 “무릎에 힘이 빠지면서 황홀경을 경험했다”는 데서 유래한 ‘스탕달 증후군’처럼 어떤 매혹적 대상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 경험, 그것이 바로 명품이 인간 정서에 미치는 영향이라고 본다.
명품 소비가 사회 현상으로 정착된 건 단지 명품 브랜드에 대한 지식 및 소비 행동과 관련된 양식들이 미국인의 상식으로 자리잡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명품 브랜드를 통해 소속감을 느끼고, 명품의 로고가 마치 신분의 상징물 노릇을 하게 된 데에는 단순히 이성적 소비 주체의 ‘합리적 소비’로만 설명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이고 비이성적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첫 눈에 반해버린 매혹적 상대를 만났을 때처럼,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마력. 저자의 딸과 아내가 ‘호사스러움이라는 문화적 현상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 명품 브랜드숍 현장을 방문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에는 멀쩡한 사람이 이 호사열병(Luxury Fever)에 감염되는 과정이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프리디 우먼”의 여주인공이 명품샵 점원으로부터 모욕과 멸시를 당했던 것처럼, 저자의 딸과 아내는 점원으로부터 상처 받고, 전시된 명품들을 보면서 “신고 있는 신발과 입고 있는 옷들이 창피하게 느껴지는” 심리적 현상을 경험한다. 이러한 모욕과 상처와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 바로 “갖고 싶다”는 욕구, “나도 이것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미국은 애초에 귀속적 신분과는 거리가 먼 뜨내기 이민자들의 나라이고, 자본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자본과 마케팅 능력, 그리고 새롭게 탄생한 거대한 (중산층) 대중의 거대한 구매력, 그리고 과시를 통한 계급 경쟁이라는 거대한 욕망이 꿈틀대고 있었다. 반면 서구 유럽 대륙은 산업 자본주의 이후에도 계층 간의 문화적.상징적 질서가 유지된 바, 이른바 ‘upper class'의 아비투스, 호사에 대한 취향 감각이라는 자원이 남아 있었다. 미국의 마케팅 능력과 대륙의 호사 취향의 유산, 이 두 가지가 만나서 만들어낸 것이 사치 호사품이고, 마케팅의 힘 덕분에 호사품은 필수품이 되었다는 분석은 적절하고도 흥미로웠다.
트위첼은 “사치는 나쁜 거야”라는 계몽적 언어와는 처음부터 거리를 둔다. 그는 다만 명품 소비를 통해 인간이 어떤 의미의 교환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안에 포섭되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아마도 명품 소비에 대한 도덕적, 계몽적 시각을 일단 접어두었기 때문에, “(사람이) 살아온 인생 역정에 의해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소비하느냐에 의해 평가되는” 현상, 즉 명품의 소유가 인격 판단의 기준이 되는 현상에 대한 탁월한 분석이 가능했을 것이다.
‘호사에 대한 은근한 변론’이라는 제하의 결론에서 저자는 호사품 소비에 대한 찬반 의견,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나열하면서, 명품 소비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유보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저자의 ‘모호한’ 결론은 ‘호사스러움의 민주화’가 갖는 양가적이고 복잡한 함의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한다. 우선 이러한 입장은 호사스러움의 민주화가 갖는 양가성에 대해 포착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장점이 있다. 귀속 신분에 의해서 먹고 마시고 살 수 있는 것들이 정해져 있는 신분제 사회와는 달리, 근대 소비 자본주의 사회는 누구나 다 돈만 있으면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다. “사치 호사품은 저속하고, 천박하며, 역사도 없고, 기억도 없고, 보존할 가치도 없다. 그러나 기이하게 민주적이고 결속력이 있다.”는 저자의 말처럼, 소비의 민주화 덕분에 지구촌은 “지금까지 존재한 어떤 체제보다도 더 공평하게 신분을 분배하는데에 가까이 다가간 공동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유형의 민주화가 가속화될수록, 그렇게 명품 소비를 통해 상징적으로 구매한 신분은 누군가의 모멸감과 상처, 가난한 사람의 노동력과 자원에 대한 착취를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도덕적인 판단을 유보한 채 ‘호사스러움의 민주화’라는 문화적 현상을 고찰하겠다는 저자의 기획은 그 자체로 이 책을 양가적 텍스트로 만들어 버린다. 그 이야기를 지난 봄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는 한 다큐 영화라는 텍스트를 통해 풀어가도록 하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성형수술 담론이 성형 및 미용 산업을 통해 구축되고 실천되는 과정을 추적한 [오버 더 힐]이라는 다큐가 반복적으로 오버랩되었다. 써니 베리만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서 소위 ‘아름다움의 민주화’라는 가지고 있는 ‘양가성’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아름다움은 선천적으로 혹은 귀속적으로 특정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 있는 어떤 것이 되었지만, 비현실적인 미의 기준들이 미디어와 성형의학 담론을 통해 ‘정상성’을 획득하여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를 부자연스럽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포샵질이나 성형수술로 수정이 가능해진 외모, 이 다큐를 통해서 써니 베리만이 하고자 했던 작업은 성형수술을 하는 여성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지 않으면서, ‘아름다움의 민주화’가 가져온 역설적 결과들을 가시화했다. 그러나 이 다큐는 그 자체로 역설을 내포하고 있고, 역설들을 만들어 내었다. 우선 다큐에는 성형 수술의 담론과 실천의 구조적 과정에 개입하고자 했던 감독 자신도 그 담론에 포섭되었던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다큐에는 ‘모델과 비교해서 당신의 엉덩이와 가슴과 아랫배와 소음순까지 얼마나 못생겼는지'를 설파하며 부위당 4000달러의 성형수술을 권유하는 '잘나가는 의사’의 논리에 감독 자신도 서서히 위축되고 설득당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한, 미디어와 성형 의학 담론에 의해 포샵질과 성형으로 변형된 외모가 정상성과 규범적 아름다움의 지위에 등극하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던 이 영화가 네덜란드에서 상영된 후 오히려 ‘질 성형 수술’ 붐이 일어났다.
성형수술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계몽의 언어는 집어치우고, 차라리 성형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가시화해 보자는 기획. 좋다. 어차피 지금은 “진보의 '계몽'을 압도한 보수의 '욕망 정치'”가 대세이고, 그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러한 기획 역시 양가적 효과를 만들어낸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 같다. 문화 분석에서 계몽적, 도덕적 시각의 배제는 필요하긴 하지만 이러한 입장이 한편으로는 또 다른 양가적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문제는 [오버 더 힐]이 소음 성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소음 성형이 급증한 것, [미녀는 괴로워]가 “어쨌거나 성형은 하고 볼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고, 성형 수술에 대한 욕구를 부추긴 것처럼, 『럭셔리 신드롬』이 명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호사병’에 대한 도덕적 알리바이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데에만 있지 않다. 아마도 이 책은 광고 마케팅 기법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도 대단히 인기가 있을 것 같다. 그것은 광고학을 가르치는 저자가 이 책 여기 저기에서 광고 마케팅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실제로 저자의 인문학적 능력이 ‘대중적 상품’을 ‘명품’으로 둔갑시키는데 활용된 바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연 ‘도덕적 판단’의 유보가 문화 연구자에게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가? 바로 그런 점에서 비판적 지식을 생산하는 문화 연구자로서 “명품 소비를 무조건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분명 ‘문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