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다니엘 튜더 지음, 노정태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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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60여명의 명사 면접 자료에 기반하고 있는데, 그보다는 11년간 한국에서 살았던 저자의 경험에 천착했더라면 더 좋은 글이 나올 수 있었을 것 같다. 저자는 한국에 대해 서구 언론이 보이는 피상적 시각을 비판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별다른 통찰력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게다가 천안함 사건과 같이 정확한 진상 규명과 판단이 필요한 사건에 대한 정보는 읽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 책이 한국 사회, 한국사에 대해 무지한 서구의 독자를 겨냥한 것이란 점에서 외국인에게는 유의미한 텍스트일 수 있다. 그러나 이방인의 눈을 통해 한국 사회를 낯설게 바라보고자 이 책을 선택했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겠다. 외국인이 한국에 대해 쓴 책 중에서 아직까지 좋은 책을 발견하지 못했다. 외국인이 한국에 대해 말하는 방식에서 흔히 발견되곤 하는 피상성이 이 책에서도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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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죽는다는 것
김형숙 지음 / 뜨인돌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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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되었을 때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다. 기대했던 것 이상이다. 19년간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한 바 있는 저자의 미덕은 ‘삶/죽음’에 대한 근본적 질문에서 나온다. 이 책을 읽다보면 ‘살아 있는 것, 살게 하는 것’을 절대 선, 혹은 ‘인간다움’의 에센스로 삼았던 근대 윤리에 의문을 갖게 된다. 삶에 대한 결정권에서 배제된 채, 가족, 지인, 그리고 자신의 삶과 제대로 이별할 기회를 상실한 채, 중환자들이 외로이 죽음을 맞이하는 풍경. 삶의 결정권이 법, 제도, 의학에 양도된 채 죽어가는 신체에 가해지는 의학적 처치들. 저자는 그러한 폭력적 풍경 속에서 ‘살아있게 하는’ 역할을 배당받는 의료인으로서 딜레마를 경험한다. 그리고 그러한 딜레마는 인간의 삶과 죽음이 유의미하게 연결되어 있던 유년기 기억으로 인해 더욱 첨예해 진다.

 

책의 서두를 경남 거창의 시골 마을에서 소를 몰면서 보낸 유년기로 시작한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다. 저자에게 있어서 사유하는 힘은 상당 부분 할머니로부터 사랑받으며 자랐던 기억, 자연과 공동체 속에서 죽은 자와 이별했던 유년기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이 책은 병원에서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최첨단 기계들 속에서 죽음을 맞게 될 우리의 미래가 과연 정당한 것인지 질문하게 한다. 어린 시절 “애도하면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던 저자가 들려준 이야기는 현대 의학으로 인해 증폭된 생명 연장의 욕망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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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ing Bodies (Paperback)
Linda McDowell / Blackwell Pub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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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조명하는 글들을 찾아 읽다 보면 새로운 개념과 분석들이 너무나 다양해서 길을 잃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무릇 이론이라는 것이 끊임없이 변화되는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사유의 지도이기에, 새로운 용어와 이론의 등장은 당연할 터. 산업 자본주의에서 후기 자본주의로의 전환이 인간의 삶에서 무엇을 어떻게 바꿔놓았는가, 특히 노동의 성격과 인간의 정체성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설명하는 최근 이론들에서 가장 먼저 발견하게 되는 사실은 노동 개념의 다양성이다. 학자 마다 사회 구조와 행위자 간의 관계에서 노동을 위치시키는 방식, 분석하거나 주장하고자 하는 지점에 따라 노동을 정의하고 개념화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최근 학술적으로 조명을 받거나 새롭게 등장한 개념들은 비물질 노동, 정동 노동, 돌봄 노동, 상호서비스 노동, 친밀 노동, 체현 노동, 하이-테크 노동, 하이-터치 노동, 감정 노동 등이다. 노동 개념의 다양성은 어쩌면 그만큼 후기 자본주의 사회가 복잡해졌다는 것을 뜻일 수 있다.

 

이 책 일하는 몸: 상호서비스 고용과 작업장의 정체성의 저자인 린다 맥도웰은 신경제에서 노동의 변화를 젠더의 관점에서 장소성의 모티브로 설명해온 영국의 여성주의 지리학자이다. 맥도웰은 서비스 경제에서 고객-노동자 간의 인간적 상호작용 속에서 이뤄지는 임금 고용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러한 유형의 서비스 노동을 이해하기 위해 체현정서를 핵심 개념으로 제시한다. 노동자 개인의 체현된 속성들, 예를 들면 고객을 대하는 그 사람의 태도, 말투, 자세, 옷차림, 피부 색깔, 몸무게 등이 직접적인 방식으로 교환 과정에 포함되었으며, 노동자의 정체성에서 중요해졌다는 것.

 

이 책에서 가장 독특하고 흥미로운 부분은 저자가 “high-touch servicing work”라는 범주로 묶어낸 다양한 대인 서비스 노동 현장 연구 사례들이다. 젠더의 관점에서 후기 자본주의 노동을 설명하는 논의들의 공통점은 불평등에 대한 관심이다. 저자 역시 다른 여성주의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후기 산업사회에서 성별, 인종, 민족, 출신 국가, 피부색 등 다양한 체현적 속성들이 글로벌 노동시장에서 상호 교차하면서 어떻게 경제적 불평등의 지형을 구축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론적 관심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의 초점은 신경제, 혹은 지식 경제의 상층 회로인 하이-테크 직업이 아니라 그 반대급부로서 하이-터치 직업이다. 이 직업군의 특징은 저임금에, 사회적 지위가 낮고, 주로 여성들이 분포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한 노동자의 몸과 감정이 서비스 교환에서 판매되는 것, 즉 서비스의 일부라는 점이다. 맥도웰의 질문은 구조적인 측면에서 누가 이러한 직종에 적합한 노동자인가?”, 노동 과정의 측면에서 서비스에서 무엇이 교환되는가?”이다. 이러한 질문을 통해 저자의 논의를 따라가 보면, 저자가 주장하는 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work)와 노동 혹은 고용 간의 전통적 경계가 해체되고 있다는 점에 동의하게 된다. 이 책의 미덕은 서비스 경제에서 통계적으로는 유의미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조명 받지 못했던 하이-터치 직업을 새로운 분석틀로 조명했다는 점이다.

 

이 책의 서론과 이론적 배경에 해당되는 1장부터 3장까지는 서비스 경제에서 몸의 상품화에 대한 저자의 이론적 틀을 제시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맥도웰은 제조업 고용의 쇠퇴와 서비스 고용의 확대로 전환된 서비스 경제에서 고용과 노동, 그리고 정체성을 사유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1부에서는 서비스 경제에서의 임금 노동을 이해하기 위해 제시한 체현개념을 설명하고 관련된 이론적 쟁점들을 정리한다. 서비스 경제에서 체현 노동의 성격을 설명하는 3장에서는 상호 서비스 고용에서 노동자의 인간적 속성이 중요해졌으며, 서비스의 일부로서 노동자의 몸과 감정이 상품으로서 판매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최근 노동 시장이 복잡해지면서 이러한 복잡성을 이론적 논쟁의 지평을 이해할 수 있는 가이드를 몇 가지 개념을 통해서(신체성, 체현, 정서, 섹슈얼리티와 욕망) 설명하면서, 이러한 개념들이 노동 시장이 다양하게 차별화되는 방식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는지 개괄하고 있다. 2부와 3부는 다양한 상호 서비스 작업장 현장 사례 연구들을 1부에서 제시한 분석적 틀을 통해 설명한다. 지리학자답게 맥도웰은 작업장의 유형을 공간적 스케일에 따라 나누어 2부에서는 가정에서의 친밀 노동, 성 노동, 복서나 도어맨 등의 체현 노동 등 가장 로컬한경험 연구들을 배치하고, 3부는 병원, 케어 홈, 호텔 등 고전적 의미에서 직장이라고 불릴 수 있는 공적 영역에서의 경험 연구들을 배치한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평등이 인간의 몸을 통해 어떻게 재구성되고 심화되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일독해 볼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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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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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는 후기 근대 사회의 풍경을 노동하는 인간 주체의 특성에 초점을 맞추어 조명한다. 근대의 규율 사회는 외부의 권위에 의해 해서는 안 된다는 금지와 명령에 복속된 복종적 주체로 이뤄진 사회라면, 후기 근대의 성과 사회는 “Yes, We Can”이라는 내적 동기를 통해 자신을 닦달하는 성과 주체, 즉 자기 착취적 주체로 이뤄진 사회이다. 저자의 미덕은 이러한 주체가 인간에게 가져다준 대가, 즉 병리학적 상황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인문학적인 화법으로 명쾌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것.

 

오늘날 스스로에게 폭력을 가하며 자기 자신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성과 주체의 심리적 기구에 관한 묘사” p.81

 

근대 사회에서 인간을 공격하는 것은 외부의 적이다. /, 친구/, /남의 구분이 명확한 면역학적 도식에서 이질적이고 낯선 것은 폭력의 원천이며, 따라서 면역학적 주체의 방어 대상이다. “적의 계보학에서 근대 사회의 적이 늑대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후기 근대 사회의 적은 자기 자신이다. 자기 착취의 주체인 동시에 적,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후기 근대의 인간을 형상화한 것이 바로 프로메테우스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죄로 인해 결코 완결에 도달할 수 없는 끝없는 노동의 형벌을 받았다. 저자는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먹는 독수리를 성과 주체와 전쟁을 벌이는 제2의 자아로 분석한다. 즉 근대의 면역학적 도식에서 낯선 것으로부터의 폭력은 인간에게 배제와 박탈을 행사하며, 그 결과 광인과 범죄자가 발생한다. 반면 후기 근대의 신경성 폭력은 같은 것으로부터의 폭력이자 시스템에 내재된 폭력이며, 우울증과 낙오자를 만들어낸다는 것.

 

우울한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로서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물론 타자의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p.27

 

피로는 폭력이다. 그것은 모든 공동체, 모든 공동의 삶, 모든 친밀함을 심지어 언어 마저 파괴하기 때문이다.” p.67

 

이러한 유형의 노동으로 인해 인간이 치러야 할 대가가 바로 우울과 탈진상태(burn out)을 초래하는 극단적 피로이다. “피로사회”, 혹은 우울사회라는 후기 근대적 풍경에서 저자는 깊은 심심함피로에서 구원의 단초를 발견한다. 한트케(피로에 대한 시론)에 따르면 피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너무나 심한 피로 때문에 인간에게서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영혼이 다 타버린상태는 인간을 분열시키는 피로이다. 반면, 너나 할 것 없이 피로해진 개별자들이 동일한 시공간 속에 나란히 있는 상태는 무차별성의 시간, 우애의 시간으로서 화해시키는 피로”, “치유적 피로라는 것. 저자는 후자가 개별적 고립화 경향을 해소하고 친족관계에 의존하지 않는 공동체를 만들어 내며, 우애와 연대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분열시키는 피로개념에 비해 치유적 피로개념은 잘 와 닿지 않는다. 한트케가 제시한 두 가지 피로 개념이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것은 피로를 둘러싼 삶의 조건이 바뀌지 않는 한 인간이 느끼는 피로에는 그다지 차별성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건 저자의 솔루션은 헤라클레스가 독수리를 죽이고 나서야 프로메테우스는 자기 착취의 형벌에서 놓여날 수 있었다는 그리스 신화의 플롯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하지만, 저자는 피로를 느낄 줄 모르는 자아에서 피로를 느낄 수 있는 자아로의 전환이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오히려 서사적 삶의 회복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자기-착취적 인간의 해방 혹은 구원에 대한 논의가 더 풍부해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분명 서사적 삶의 상실이 벌거벗은 노동, 벌거벗은 생명을 만들어낸다고 진단하고 있다. 후기 근대의 자아는 완전히 개별적으로 고립되어 있고, 탈서사화되어 있기 때문에, “호모사케르보다 더 벌거벗겨진 것은 오늘의 삶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논의는 여기서 더 나아가지 않고 피로의 회복을 제시하는 것에서 멈춘다.

 

그렇다면 여기서 어떻게를 상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프로메테우스가 자기 착취적 관계에 고립되어 있는 한 천형에서 놓여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떻게든 그는 자신의 상태를 외부의 존재에게 알렸고, 헤라클레스는 누군가가 보내는 이 미약한 신호를 감지했다. 어떻게 고립된 자아가 사회와 접속할 것인가. 헤라클레스가 가진 힘은 알 수 있음의 능력이었고, 프로메테우스가 가진 힘은 이해받을 수 있는능력이었다. 그것을 이어주는 고리가 바로 이야기가 아닐까. 발터 벤야민이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꿈의 새로 명명했다는 깊은 심심함이 하이퍼-어탠션의 상태로부터 이완된 시공간을 뜻한다면, “귀 기울여 듣는 재능을 가진 주민들로 이뤄진 귀 기울여 듣는 자의 공동체가 또 하나의 치유 및 해방 공간이 아닐까 싶다. 후기 근대의 주민들이 겪는 폭력은 피로뿐만 아니라 사회로부터의 고립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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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카리아트,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
아마미야 가린 지음, 김미정 옮김 / 미지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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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빈곤층(working poor)’을 지칭하는 용어에는 학자에 따라, 그리고 특정 국가의 정치경제학적, 문화적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용어가 선호되는 듯. ‘워킹 푸어는 빈곤 문제에 방점을 두고 있다면, ‘불안정한(precario)’노동자계급(prolatariat)’을 합성한 신조어인 프레카리아트(precariat)는 삶의 불안정성과 계층화에 초점을 둔 용어.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을 미국에서는 워킹 푸어라고 불리지만, 일본에서는 프리터라 불린다.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뜻이 담긴 이 프리터라는 용어는 일본의 불안정노동, 노동빈곤의 문화적 측면을 역설적으로 포착하게 해 준다. 당신의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한 일이라는 신념은 가난뱅이끼리 치열하게 헐값 경쟁을 하면 할수록 부자가 득을 보는 시스템”(p.84)을 은폐하고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도구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면, 이러한 자유주의 문화정치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곳이 아마도 일본이라는 생각이 든다. (, 한국 사회도 크게 다를 것은 없지만)

 

-빈곤 활동가인 아마미야 가린이 프리터라 불리는 일본의 불안정노동자들을 인터뷰해서 쓴 이 책의 미덕은 물론 우울한 노동의 디스토피아를 적확하고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일 게다. 하지만 일본의 반-빈곤 활동가 지식인들, 특히 이 책의 저자 아마미야 가린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부조리한 노동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정당화하는 문화정치의 논리를 포착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어디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 없이 그저 표류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그들은 아주 손쉽게 국가라는 공동체와 접속하게 된다. p.103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롭게 읽혔던 지점은 많은 프리터들이 자신의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이었다. “사회 탓은 하고 싶지 않다는 태도, 꿈을 가진 프리터와 그렇지 않는 프리터를 나누는 등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동일시하지 않거나 외면하는 태도 등 일견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분노할 줄 모르는 착한 근성의 기저에 놓인 프리터들의 심리적 상황을 매우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불안정노동 속에서 살아갈 공간도, 인간관계도 상실한 채 사회를 잃어버린 수많은 일본 젊은이들이 사회와의 접속감을 찾아서 우경화되고 있다는 해석도 설득력이 있었다. (이 부분에서 우리나라의 어버이연합의 어르신들이 연상되기도 했다.)

 

약자가 자기보다 더 약자인 사람들을 증오하게 만드는 구조의 사회. 이런 곳에서는 아무도 구출되지 못할 것이다. p.104

 

저자는 이런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일본 젊은이들에게 분노할 것을 제안한다. 나는 분노라는 처방을 접할 때마다 조금 뒷걸음치게 된다. 본디 분노라는 정서는 미움과 닮아있고, 에너지의 특성 상 환부의 원인을 어딘가에 돌리고자 하는 흐름이 강하게 나타난다. 분노라는 에너지는 당면한 상황을 극적으로 전환시키는 데는 큰 힘을 발휘하지만, 이미 나눠질 대로 나눠진 사람들 사이의 틈을 더욱 벌어지게 만들고, 분노의 주체들을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자기 책임론이라는 신자유주의 함정에서 우리 모두가 구출되기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을 덮고 나서 그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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