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조명하는 글들을 찾아 읽다 보면 새로운 개념과 분석들이 너무나 다양해서 길을 잃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무릇 이론이라는 것이 끊임없이 변화되는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사유의 지도이기에, 새로운 용어와 이론의 등장은 당연할 터. 산업 자본주의에서 후기 자본주의로의 전환이 인간의 삶에서 무엇을 어떻게 바꿔놓았는가, 특히 노동의 성격과 인간의 정체성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설명하는 최근 이론들에서 가장 먼저 발견하게 되는 사실은 노동 개념의 다양성이다. 학자 마다 사회 구조와 행위자 간의 관계에서 ‘노동’을 위치시키는 방식, 분석하거나 주장하고자 하는 지점에 따라 노동을 정의하고 개념화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최근 학술적으로 조명을 받거나 새롭게 등장한 개념들은 비물질 노동, 정동 노동, 돌봄 노동, 상호서비스 노동, 친밀 노동, 체현 노동, 하이-테크 노동, 하이-터치 노동, 감정 노동 등이다. 노동 개념의 다양성은 어쩌면 그만큼 후기 자본주의 사회가 복잡해졌다는 것을 뜻일 수 있다.
이 책 『일하는 몸: 상호서비스 고용과 작업장의 정체성』의 저자인 린다 맥도웰은 ‘신경제’에서 노동의 변화를 젠더의 관점에서 ‘장소성’의 모티브로 설명해온 영국의 여성주의 지리학자이다. 맥도웰은 서비스 경제에서 고객-노동자 간의 인간적 상호작용 속에서 이뤄지는 임금 고용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러한 유형의 서비스 노동을 이해하기 위해 ‘체현’과 ‘정서’를 핵심 개념으로 제시한다. 노동자 개인의 체현된 속성들, 예를 들면 고객을 대하는 그 사람의 태도, 말투, 자세, 옷차림, 피부 색깔, 몸무게 등이 직접적인 방식으로 교환 과정에 포함되었으며, 노동자의 정체성에서 중요해졌다는 것.
이 책에서 가장 독특하고 흥미로운 부분은 저자가 “high-touch servicing work”라는 범주로 묶어낸 다양한 대인 서비스 노동 현장 연구 사례들이다. 젠더의 관점에서 후기 자본주의 노동을 설명하는 논의들의 공통점은 ‘불평등’에 대한 관심이다. 저자 역시 다른 여성주의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후기 산업사회에서 성별, 인종, 민족, 출신 국가, 피부색 등 다양한 ‘체현적 속성’들이 글로벌 노동시장에서 상호 교차하면서 어떻게 경제적 불평등의 지형을 구축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론적 관심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의 초점은 신경제, 혹은 지식 경제의 상층 회로인 “하이-테크 직업”이 아니라 그 반대급부로서 “하이-터치 직업”이다. 이 직업군의 특징은 저임금에, 사회적 지위가 낮고, 주로 여성들이 분포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한 노동자의 몸과 감정이 서비스 교환에서 판매되는 것, 즉 서비스의 일부라는 점이다. 맥도웰의 질문은 구조적인 측면에서 “누가 이러한 직종에 적합한 노동자인가?”, 노동 과정의 측면에서 “서비스에서 무엇이 교환되는가?”이다. 이러한 질문을 통해 저자의 논의를 따라가 보면, 저자가 주장하는 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일(work)와 노동 혹은 고용 간의 전통적 경계가 해체되고 있다는 점에 동의하게 된다. 이 책의 미덕은 서비스 경제에서 통계적으로는 유의미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조명 받지 못했던 “하이-터치 직업”을 새로운 분석틀로 조명했다는 점이다.
이 책의 서론과 이론적 배경에 해당되는 1장부터 3장까지는 서비스 경제에서 몸의 상품화에 대한 저자의 이론적 틀을 제시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맥도웰은 제조업 고용의 쇠퇴와 서비스 고용의 확대로 전환된 ‘서비스 경제’에서 고용과 노동, 그리고 정체성을 사유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1부에서는 서비스 경제에서의 임금 노동을 이해하기 위해 제시한 ‘체현’ 개념을 설명하고 관련된 이론적 쟁점들을 정리한다. 서비스 경제에서 ‘체현 노동’의 성격을 설명하는 3장에서는 상호 서비스 고용에서 노동자의 인간적 속성이 중요해졌으며, 서비스의 일부로서 노동자의 몸과 감정이 상품으로서 판매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최근 노동 시장이 복잡해지면서 이러한 복잡성을 이론적 논쟁의 지평을 이해할 수 있는 가이드를 몇 가지 개념을 통해서(신체성, 체현, 정서, 섹슈얼리티와 욕망) 설명하면서, 이러한 개념들이 노동 시장이 다양하게 차별화되는 방식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는지 개괄하고 있다. 2부와 3부는 다양한 상호 서비스 작업장 현장 사례 연구들을 1부에서 제시한 분석적 틀을 통해 설명한다. 지리학자답게 맥도웰은 작업장의 유형을 공간적 스케일에 따라 나누어 2부에서는 가정에서의 친밀 노동, 성 노동, 복서나 도어맨 등의 체현 노동 등 가장 ‘로컬한’ 경험 연구들을 배치하고, 3부는 병원, 케어 홈, 호텔 등 고전적 의미에서 ‘직장’이라고 불릴 수 있는 공적 영역에서의 경험 연구들을 배치한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평등이 인간의 몸을 통해 어떻게 재구성되고 심화되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일독해 볼 만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