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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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을 읽게 된 계기

 

이 책을 당장 읽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저자의 ABC 인터뷰 영상을 본 후였다.

 

http://blog.naver.com/banbibooks/220755255509

 

수 클리볼드. 1999년 콜럼바인 사건 가해자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다. 이 인터뷰에서 당시 17세였던 아들이 살았던 시간만큼 시간이 흐른 후 이 책이 나오기까지의 경위를 밝히고 있다. 사건 발생 후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자신이 유방암에 걸린 것을 알았다고 한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을 때, 차라리 죽는 것이 그 모든 상황에서 놓여나는 유일한 출구일 때, 그녀는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를 찾아냈다.

 

도대체 내 아이가 왜 그랬을까?”

 

이 책은 오로지 그 질문을 붙들고 살아온 17년의 기록이다.

 

내가 이 책에 끌린 가장 큰 이유는 외로움이다. 상식적인 수준의 도덕 감정을 가진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의 여성이, 자신이 키운 아이가 총기 난사 살인을 저지르고 세상을 떠난 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극단적인 형태의 고립감과 고독을 어떻게 살아냈을까. 그런 호기심으로 이 책을 읽었다. 서천석 님의 추천글을 통해 내가 읽고 싶었던 유형의 텍스트일 것이라는 예감이 강해졌다.

 

이 책은 어둠이다. 어둠에 뛰어든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저자가 위험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어느 날 멀쩡한 바닥이 무너지며 갑자기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그는 어둠 속의 희미한 빛과 촉각에 기대어 그 어둠을 통과해나간다. 그 힘은 아이에 대한 사랑에서 나왔다. 나는 이 책에서 어떤 메시지를 읽고 싶지 않았다. 인생이란 많은 부분이 설명할 수 없기에 평소엔 살짝 가려져 있을 뿐 막막함은 본질이다. 그 막막함을 통과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책이다.” 서천석-추천의 말 중에서

 

2. “도대체 내 아이가 왜 그랬을까?”에 대하여

 

그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그녀는 치열하고도 필사적이었다. 살기 위해 알아야했고, 알아야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청소년기의 우울증에서 그 대답을 찾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끝까지 가설로 남는다. ‘아이는 이제 이 세상에 없고, 그가 남긴 일기나 메모로만 짐작할 뿐이고, 그나마 그 견해를 뒷받침할만한 결정적 자료는 없다. 우울증이 원인이라면 대체 왜 언제부터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더욱 알 길이 없다


이 책은 질문의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해답을 찾는 과정, 그 오디세이의 기록이다. (이 책의 원제는 엄마의 추측 A Mother’s Reckoning’이다.) 그 여정에서 그녀는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도움을 받는다. 다음은 누군가가 이메일에 옮겨 적어 보내주었다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편지글 중 일부다.

 

가슴속에 풀리지 않는 채로 있는 것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라...그 질문을 잠긴 방이나 외국어로 쓰인 책처럼 여기고 그 자체로 사랑하려고 애쓰라. 답을 찾으려고 애쓰지 말라. 그 답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이 경험하는 게 관건이다. 지금은 그 질문을 살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먼 날에, 점차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답을 경험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245.

 

그녀는 그 답을 경험하고 있을까? 저자는 내 아이는 아마도 우울증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하지만, 그녀 역시 자신이 찾은 것이 진실인지 확신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3. 몇 가지 단상 중 - 저주받은 자의 위로

 

책에서 받은 인상 중 가장 강렬하게 남은 것은 위로. 오이디푸스의 비극이 주는 추락을 통한 구원과 카타르시스와 유사한 경험이라고나 할까.

 

일하러 가는 내내 꿈 때문에 울었다. 꿈에서 딜런이 인형 크기의 아주 작은 아기였다. 딜런을 눕히려고 하는데 안전하게 뉘일 만한 곳이 없었다. 나는 기숙사에 있었는데 시체안치소나 납골당처럼 서랍이 줄줄이 있는 방을 찾았다. 그 방에 있는 여자들 모두 아기를 놓을 자리가 있는데, 나만 서랍에 딜런의 이름을 적어놓지 않아서 딜런을 눕힐 자리가 없었다. 딜런이 피곤해서 쉬고 싶어하는데 나는 딜런이 안전하게 쉴 자리를 마련하지 못했다. 20034월 일기” 409

 

이 대목에서 책을 덮고 한참 엉엉 울었다. ‘가해자의 엄마라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저주 속에서 그녀에게, 그렇게 떠난 아이에게도 영영 쉴 자리는 없다. 참담하게 무너지고, 짓밟히고, 산산조각이 난 한 인간이, 구원과 평화를 찾아 방랑의 세월을 보낸 후 돌아와 손에 쥔 것을 내밀며, “이것이 내가 찾던 것이었소라고 말하지만 결국 눈에 보이는 것은 한줌의 모래.

 

저주받은 느낌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할 때, 평생 이 그 끔직한 감정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그럴 때는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이 책이 내게 준 독특한 위로는 저주 이후의 삶에서 참담과 공허 그 사이 어디에서 경험되는 것인 듯하다.

 

두고두고 곱씹으며 꺼내어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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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나라 부탄의 지혜 - 97퍼센트가 행복하다고 느끼다
사이토 도시야 외 지음, 홍성민 옮김, 양승규 사진 / 공명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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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도서관에 가곤 한다. 서가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책들을 돌아보며 걷다보면, 시선이 머무르는 곳이 있고, 그곳에서 내 삶의 키워드가 무엇인지 발견하게 된다. 막바지 폭염에 혼미해진 정신을 붙잡기 위해 도망치듯 찾아간 도서관의 서가에서 발견한 키워드는 행복이었다.

 

<행복의 나라 부탄의 지혜>는 일본의 한 출판사의 기획 하에 2명의 작가들이 부탄을 취재하여 만들어진 책이다. 이 책을 구상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후쿠시마의 비극인 것으로 보인다. (저자 중 한명이 후쿠시마 출생이다.) 방사능으로 고향을 잃은 이방인의 눈에 비친 부탄의 풍경. 그 배경을 알고 나니, 간결하고도 명료한 언어로 작성된 이 민족지(ethnography)에서 간절한 그리움 같은 것이 읽혀진다.

 

"개인적인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이란 철저히 사람 간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 23

 

알려진 바와 같이 부탄은 인도와 중국 사이 히말라야 산악에 위치한 작은 왕국이다. 국민의 97%가 행복한 나라 부탄, 그것은 왕과 소수의 핵심 싱크 탱크이 주도한 국민행복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이들은 나라의 발전과 성장은 국민의 행복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신념하에 <국민행복지수위원회>를 만들고, ‘국민총생산(GDP)’이 아닌 국민총행복(GNH, Gross National Happiness)’을 국가의 기본 개념으로 설정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국민 가이드라인 4가지. 1)지속가능하고 공평한 사회경제발전, 2)히말라야 자연 환경 보호, 3)유형, 무형 문화재의 보호와 추진, 4)좋은 통치. 이 요소들 중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좋은 통치. 부탄의 좋은 통치는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상식을 깬다. 부탄의 정치인들은 근대화를 서두르지 않고, 오랜 기간 다른 나라의 근대화 과정을 관찰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얻어진 결론, “지금의 삶은 잠깐이며, 누구도 죽을 때는 아무 것도 갖고 갈 수 없다”, “인간관계가 돈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불교적 가치관과 글로벌 경제는 양립 불가능하다는 것.

 

도시에 사는 젊은이들은 좋은 자연을 모릅니다. 예를 들면, 그들은 완벽한 어둠을 몰라요. 인간이 잠을 잘 때는 완벽한 어둠이 필요합니다. 경작되지 않은 땅, 맑은 공기도 정신적인 발달을 위해 필요하죠. 올바른 사고방식을 갖기 위해서는 때로 정적도 필요한데, 대도시의 사람들은 그 완벽한 정적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근대화로 인해 깨끗한 환경-맑은 물과 빛, 완벽한 어둠, 완전한 정적 같은 것들-을 경험할 수 없게 된다는 겁니다. 근대화는 이런 인간의 신성한 감각을 파괴합니다.” <부탄연구센터 카르마 우라 소장의 인터뷰, 94-95>

 

미국 여행 중 캘리포니아에서 목격한 거대한 경작지, 그 과도함에서 알 수 없는 결핍감을 느낀 적이 있다. ‘경작되지 않은 땅’, ‘완벽한 어둠’, ‘완전한 정적이라는 표현에서 그 결핍감의 정체를 깨닫게 됐다. 그것은 아마도 저 분이 언급한 신성한 감각의 상실이 아닐까 싶다. “인간의 신성한 감각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책에 실린 사진, 아이부터 어른까지 부탄 사람들의 미소띤 얼굴에서 그것을 짐작해 보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좋은 통치에 대한 생각이 좀 달라졌다. 왕정이건, 민주주의건, 그 어떤 정치 체계이건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리더십이다. 부탄에서 근대화의 목적은 부의 축적이 아니라 빈곤 완화, 빈부 격차 해소다. 그 목적을 위해 부탄의 정치인들은 미국 같은 초강대국과는 관계를 맺지 않기로 결정했고, 교육 및 의료의 공공성을 확대했다. 국민들이 부자를 꿈꾸지 않을 때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신념, 그 가치관이 지금의 부탄을 가능케 했다.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의 목록에 부탄을 추가했다. 부탄의 한 정치인이 언급한 인간의 신성한 감각”, 그것을 경험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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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7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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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추리소설 한권 정도는 읽어줘야 한다. 찬호께이의 <13.67>. 2013년에서 1967년까지 시간을 거슬러 홍콩 경찰인 등장인물의 활약상을 다룬 총 6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무슨 소설이 무려 650페이지가 넘는다. 이걸 언제 읽겠나 싶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면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눈을 떼기 어렵다.

 

1. 단상

 

전성기의 범죄 영웅 서사 홍콩 영화를 보면서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으로서, 뒤로 갈수록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는 것처럼 그 시공간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이 친숙했다. 다 읽고 나면 주인공과 함께 그 시기의 홍콩을 통과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책을 읽고 나면 주인공의 일생이 마치 홍콩이라는 도시에 대한 은유처럼 느껴지기도한다는 번역자의 말에 공감! 작가가 탁월한 이야기꾼이면서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강력 추천!

 

2. 밑줄 긋기

  

다른 사람들이 평온하게 백색의 세계에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관전둬는 계속 흑과 백의 경계를 떠돌았다. ...흑과 백 사이에서 정의를 찾아라. 이것이 바로 뤄샤오밍이 관전둬에게서 이어받은 사명이다.” 112<1. 흑과 백 사이의 진실> 중에서

 

나는 197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성장한 세대다. 그때 홍콩의 꼬마들에게 경찰이란 미국 만화에 나오는 슈퍼히어로와 동급이었다. 강하고 공정하고 정의롭고 용감하며 시민을 위해 온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이었다....오늘의 홍콩은 작품 속 1967년의 홍콩처럼 똑같이 괴상하다. 우리는 멀리 한 바퀴 돌아서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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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의 고양이 - 고양이를 사랑한 젊은 예술가를 만나다
고경원 글.사진 / 아트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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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감 때문에 마음이 힘들었을 때 도서관을 산책하던 중 발견한 책 무엇인가 예술적 아우라가 솔솔 풍기는 제목에서 딱 끌렸다. ‘작업실고양이의 조합이라니, 뭔가 있을 것 같았다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금속공예가, 사진가, 화가, 도예가, 인형작가, 설치미술가, 조각가 등 고양이와 함께 생활하거나 고양이를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는 15명의 예술가들의 일상을 취재하여 묶어낸 책이다. 작업실 풍경도, 작품 활동의 소재나 주제도, 작가와 고양이의 관계도 모두 달라서 보고 읽는 재미가 있다

 

단상 1. 가장 눈 여겨 보았던 작업실 풍경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어디든 자기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 책에 소개된 작가들의 작업실은 집 근처 따로 마련된 작업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의 방, 작가의 생활공간인 길거리 등 다양하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작가의 경우, 생활공간이 곧 창작공간인 경우도 있는데, 어쨌건 이들의 작업실은 예술적 분위기로 가득하다

 

부러웠다. 예전부터 근사한 작업실을 갖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가장 부러운 것은 그 공간 자체가 아니라 그 공간에 미학적인 숨결을 불어넣은 작가들의 정신세계가 아닐까 싶다

 

당신은 나이가 들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불안 때문에 죽어가는 것이다. 당신의 삶을 죽이는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렇게 싫어하는 불안을 누가 당신에게 주었는가? 불안의 정체가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하지 않는다면 불안은 평생 당신을 따라 다니며 삶을 망칠 것이다.”

- “고양이 스승님의 말씀”, 64

 

책에 실린 작업실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아름답고 풍요로운 세계 속에 들어간 느낌이 들었다. 내 삶이 이렇게 공허한 에너지로 가득 채워진 것은 자본주의적 불안/욕망 때문인 듯. 이 책은 그것을 돌아보게 했다.

 

단상 2.

 

작가들이 고양이에 매료된 동기, 고양이를 소재로 한 작품 세계나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의 결이 다양하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15명의 고양이 작가들 중 여성들이 많다는 것. 이 책에 소개된 4명의 남성 작가들 역시 규범적 남성성에서 벗어나 있거나 그것에서 자유로운 영혼인 것으로 보인다

 

어린 시절 즐겼던 인형놀이에서 작품활동을 이어가는 일러스트레이터 유재선, 신문배달을 생업으로 하는 생활사진가 김하연, 무료함을 견딜 수 없어 떠난 인도 여행지에서 무심한 듯 여유로운 고양이에 매료된 작가 박활민, 위트와 재치로 가득한 일러스트레이터 이소주

 

이들 모두 한국 사회의 남자 어른캐릭터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 이들이 고양이라는 동물에서 아름답고 창조적인 것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래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소주 작가의 작품 달리는 예술버스가 마음에 든다. 내 작업실에 걸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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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
제29대 고대원총 이음지기 지음, 김채영 그림 / 북에디션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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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캐나다로 유학 간 지인이 들려준 에피소드. 지인은 석사 학위 과정 중에 조교를 했는데, 학기 중에 조교 노동조합이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대규모 파업 및 시위를 했다는 것이다. 조교 노조의 요구인 즉, 교직원과 동등한 노동조건을 보장해 달라는 것. 지인이 보기에 그곳 조교들은 매우 좋은 대우를 받고 있어서 대학 측에 그런 요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고 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요구가 결국 받아들여졌다는 것. 지인은 교직원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면서 안정적으로 학업을 마쳤다.

 

이 책을 읽으며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방시>가 지방대학의 인문계 연구자-시간 강사의 이야기였다면, 이 책에는 주로 이공계 대학원생들의 경험담이 담겨 있다. 한국 사회는 사방이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 같다. 책에 실린 에피소드를 다섯 개쯤 읽었을 때, 나도 모르게 책을 잠시 덮고 심호흡을 했다. 무슨 하드 고어 호러 물을 읽는 것처럼 버거웠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지인들의 감상인 즉, 이 책의 내용보다 현실이 더 하드 고어라는 것.

 

고통스러운 경험을 나눠준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 여러 대학에서 경험담을 수집하고 웹툰으로 만들어 묶어준 <29대 고대대학원총학생회 이음지기>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렇게 이야기가 모이면, 대학원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좀 더 거시적인 그림이 보이고, 구조적 차원의 대책이 모색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한국 사회가 최악으로 치닿는 만큼, 이와 같은 연대와 나눔을 더욱 소중히 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책을 덮고 나서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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