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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헨리 단편선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0
오 헨리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17년 7월
평점 :
2020-19
작년 읽은 책 양의 반도 못 읽었는데 어느덧 2020이 끝난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놀라서 집어 들은 책.
단편이라 바빠도 틈틈이 읽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한 건 오산이었다.
이래서 고전, 고전 하는 건가. 뭔 놈의 문장들이 다 이리도 농축되어있담...?
교도소 복역 중 '오 헨리' 라는 필명으로 단편 소설을 내고 전업 작가로 돌아섰다는 그는
문장의 대가가 틀림없다. 대체 뭐하는 사람이어서 이렇게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이런 다양한 소재로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생각하며 다시 책 날개를 펼쳐보니
제도사, 기자, 약사 등의 직업을 전전하면서 그림을 그리거나 틈틈이 글을 쓰다가 잡지를 창간했다가 폐지했으며 지인의 소개로 은행에 취직해 일하다가 횡령혐의로 고소당했고 재판을 피해 도피생활을 하다가 자수하여 교도소 복역을 한 것이라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선 책을 많이 읽을 게 아니라 세상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했던 그 누군가의 말은 이번에도 입증되었다!반전의 귀재, 묘사의 귀재! 비판적이지만 비관적이지 않고 풍자적이지만 기품이 있다.
난 그가 쓴 글은, 마지막 잎새만 알고 있었던 지라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대부분이 유머스러운 글이었다. (심지어 누가 썼는지 모르고 있었던 몇몇 이야기들이 그의 작품이었음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세상의 웃픈 이야기들을 어디서 그렇게 다 긁어모았는지, 그리고 인물 묘사가 어쩜 그렇게 세세하고 탁월한지. 계절에 대한 언급이 안 되어있는 글에서조차 이상하게 겨울냄새가 난다. 그게 마냥 슬프고 짠내나는 느낌은 아니고, 가끔은 그 짠내에서 아름다움조차 느껴지는데 그게 참 희한하다.
나는 잔에 무언가 채워져있으면 그걸 호로록 빨리 마셔버려야 하는 사람이라서
책도 애매하게 읽는 걸 싫어하는 편인데,
이 책은 왠지 연말까지 아껴 읽고 싶은 생각도 들고
근데 또 빨리 다 읽어서 '오 헨리 책 다 읽었다!' 떠들어대고 싶기도 하고
근데 또 아껴 읽고 싶고 근데 또 끝내고 싶은. 뭔지 알죠, 다들?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건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로망 중 하나인데(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대부분은 실패하기 때문이다. 근데 이 책은 호불호가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설핏 했다.
선물을 해주고 싶다는 잘못된 환상이 또 스물스물 올라오는 중.
이런 유혹에 또 한 번 속아 크리스마스 선물 교환식 같은 것에 이 책을 내는 실책이 있어선 안될텐데............
p.156
젊은 시절의 슬픔과 노년의 슬픔 사이에는 이런 차이가 있다. 젊은 시절의 짐은 다른 사람과 나누면 그만큼 가벼워진다. 그런데 노년에는 나눠 주고 또 나눠 줘도 슬픔이 항상 그대로 남아 있다.
p. 332
카터는 여점원들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는 그녀들이 사는 집이 대개 간신히 살 수 있을 만한 아주 작은 방 한 칸이거나 일가친척으로 넘쳐나는 거주지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녀들에게는 길모퉁이가 응접실이고, 공원이 거실이며, 큰길이 정원에 난 산책로이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태피스트리가 걸린 방에 사는 귀부인이 그런 것처럼 여점원도 앞서 나열한 공간에서는 존중받아 마땅한 집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