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소설가의일 #김연수
.
문학동네에서 일일연재를 할때 일주일마다 하나씩 올라오는 김연수 작가의 글을 보며 일기를 훔쳐보는 기분을 느끼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게 자그마치 2012년의 일이다. 그 얘긴 즉슨 내가 2012년에 방황을 시작했고 아직도 그 방황을 끝내지 못했다는 슬픈 이야기.
어쨌든 그때 올라오던 글들을 이제 책으로 읽는데 기분이 묘하다. 자신의 일상적 기록이 한 권의 책이 되어 다른 이에게 읽힌다니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
미문의 인생을 살고싶다. 내 인생을 읽어줄 소중한 독자인 우리 가족, 애인, 친구를 위한. 하지만 개인주의 및 자발적아웃사이더 인생 거진 30년에 미문인생으로 돌아서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미문은 커녕 상처라도 주지 않으면 다행이련만.
.
.
p.76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와 표현은 앞쪽에 있고,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단어와 표현은 뒤쪽에 있다. 초인적인 염력을 발휘해 남들보다 훨씬 뒤쪽의 단어와 표현을 쓸 수 있다면, 그의 문장은 훨씬 좋을 것이다.
p.128
말은 그 속성상 관계 속에서 속내를 왜곡한다. 진짜 원하는 바가 뭔지 알고 싶다면 ‘표정, 몸짓, 행동‘을 관찰해야 한다. 동공도 확장시키지 않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자들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으랴!
p.172
주인공을 사랑하는 소설가라면 구체적인 단어와 낯설지만 창의적인 표현과 색다르나 생생한 경험들로 자신의 문장으로 채우려 할 것이라는 뜻이 된다.
p.174
흔한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흔치 않은 사람이 되자. 미문을 쓰겠다면 먼저 미문의 인생을 살자. 이 말은 평범한 일상에 늘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는 말이기도 하다. 그게 바로 미문의 인생이다.
p.240
대부분의 관점은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도 상관없다. 문제는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의 시선이다. 그것마저도 무시할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이런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생의 일들은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옳거나 절대적으로 틀리는 일이 없이 중층적이고 복합적으로 재해석된다.
p.256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음의 길을 갈 때,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는 쪽을 택할 때, 꿈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꿈이 좌절됐다는 것을 깨달았으면서도 꿈에 대해서 한번 더 말할 때, 우는 얼굴로 어둠 속에 서서 뭔가 다른 좋은 생각을 하며 억지로 미소를 지을 때, 바로 그 때 이 우주가 달라진다는 말.
p.262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거기에 가 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해하려고, 가 닿으려고 노력할 때, 그때 우리의 노력은 우리의 영혼에 새로운 문장을 쓰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