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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과 전체 - 정식 한국어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지음, 유영미 옮김, 김재영 감수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1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 다양한 인물들
물질을 계속 쪼개어가는 과정에서 불연속성과 만날 것임을 일찍부터 예상한 친구 로베르트(이 문장만 보면 양자역학은 필연적인 결과인데 왜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질까? 자연은 연속적일 것이라는 우리의 막연한 고정관념 때문일까?), 새로운 과학을 받아들이는 것에 어려움이 없으며 그 실용적인 측면에 집중하는 실용물리학자 바튼, 핵분열을 발견했으나 그것이 원자폭탄의 발명으로 이어짐을 깨닫고 절망하는 오토 한, 독일의 절망적 상황에 내몰려 나치의 끔찍한 자행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를 추종하는 젊은 나치 대학생, 전쟁의 위기 속에서 미국으로 망명할지 독일에 남을지 고민하는 하이젠베르크, 독일에 남아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해야하며 미국으로 떠나는 것은 유대인 과학자의 자리를 뺏는 것이라고 냉철하게 이야기하는 막스 플랑크, 상대성 원리라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역전시키는 이론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인정하지 않았던 알버트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의 영특함을 일찍 눈치채고 그를 이끌어준 스승 닐스 보어, 자신이 믿었던 공산주의에 대한 이념이 무너져내리자 이에 절망하여 자원입대하고 전장에서 사망하는 한스 오일러, 핵무장의 위험성을 알고 괴팅겐 선언을 이끌었던 이성적이며 세심한 후배 카를 프리드리히, 서로 가깝게 지내면서도 물리학 연구의 충돌에 있어선 신랄한 비판과 논쟁을 서슴지않았던 그러나 (아마도 병으로 인해) 연구를 포기하게 되는 친구 볼프강 파울리.
그들의 이야기 하나 하나가 너무나 많은 울림을 주었다.
2. 양자역학과 철학
고전 물리학의 세계에서는 지각의 대상이 관찰가능했기 때문에 그것이 어떻게 우리의 머릿 속에서 표상으로 만들어지는가라는 철학적 논제에 집중하면 됐다. 세상을 이루는 것은 아주 작은 사물이고 그 사물은 당연히 입자라고 생각한 시대였으니 비교적 쉬운 철학적 논제들만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전자가 직접 관찰할 수 없는 대상이 되기 때문에 지각의 대상이 표상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고(하이젠베르크의 말대로 전자는 사물이라고 보기 어려워진다.) 그러면 결국 표상이 세계를 만드는 건가 대체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것은 뭘까 라는 물질의 근원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러니 이 책에서처럼 새로운 과학이론의 등장에 철학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3. 시대의 어려움 속 개인의 역할
양차대전이라는 독일의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고민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이러한 인물들의 선택들을 두고 우리 시대에 비춰보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우리 개인의 선택 만으로는 하이젠베르크의 말마따나 큰 흐름을 바꿀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국사회에서 작은 움직임으로 큰 흐름을 만들어낸 기적같은 경험이 있다. 그러니 각자의 역할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이행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4. 왜 <부분과 전체> 인가
하이젠베르크를 살려내 그 이유를 묻지 않는 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답을 짐작하기에 충분한 단서들이 책에 가득하긴 하다.
국가라는 전체와 그 안의 부분인 개인, 원자라는 부분과 그것으로 이루어지는 전체인 세계, 행렬역학과 파동방정식 등 부분적인 상으로 그려지는 원자에 대한 이해, 부분적인 질서와 중심 질서, 자연과학만이 아니라 정신과학과 더불어 이해되어지는 전체의 세계, 단순한 과학적 발견이라는 부분과 그로인해 일어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관망해야하는 즉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하는 과학자로서의 책임감, 코앞에 닥친 전쟁이라는 부분만이 아니라 그 후의 전체적인 모습을 내다봐야하는 개인, 전체를 중시하는 프로이센적 입장과 개인을 중시하는 영국의 입장 등. 이 많은 글들의 주제가 제목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런 글을 과학자가 썼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5. 상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자연과학과 정신과학이 모두 인간이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시작하여 마지막에는 그의 추억으로 남아있는 아름다운 상을 이야기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1장에서 물체를 표상으로서 지각하는 방식에 대해 논하며 원자는 그러한 물체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했다면 서문과 마지막 장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을 통해 원자라는 ‘부분’을 이해할 수 있고 삶이라는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던 것 같다.
우리의 삶에서도 어느 한가지 해석으로만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저자의 말대로 자연과학과 정신과학의 관계가 그렇고 종교, 정치, 역사 등 사실은 대부분의 것이 그렇다. 그것들은 하나의 상에 혼재되어 존재하고 우리는 그러한 상으로서 대상을 인식한다. 부분을 인식한다고 느끼지만 결국 우리의 뇌가 인식하는 것은 상인 셈이다. 책의 마지막 장처럼 어쩌면 아름다운 하나의 장면으로, 분위기로, 또는 시로, 그리고 음악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