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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 출간 50주년 기념판
에리히 프롬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25.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많은 책에서 에리히 프롬의 글을 인용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프롬의 책을 읽지 않았어도 이상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곤 했는데 그러다 하나의 구절이 나를 사로잡았다.
꽃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꽃에 물을 주는 것을 잊어버린 여자를 본다면, 우리는 그녀가 꽃을 ‘사랑한다고’ 믿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과 성장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 관심이다.” 이러한 적극적 관심이 없으면 사랑도 없다. (p.45)
관심을 기울이는 것과 사랑하는 일을 구분 지었던 과거의 시간 혹은 현재일지도 모르는 시간들이 단숨에 떠올려졌다. 바로 이 책을 구입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의 일상에 관심 갖지 않는다면, 무언가를 잊어버린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 적극적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랑을 하면서 사랑을 갈구했던 시간들이 한스러웠다. 지나고 나면 사랑을 받지 못한 것보다 사랑을 주지 못한 것이 더 아쉬웠던 이유는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였는지도 모르겠다.
합일의 상태에서 떨어져나와 고독한 인간, 현대인들의 의미없는 취미생활과 일상 그리고 대화에 대해 생각해본 시간이었다. 또한 신을 부계적 형태와 모계적 형태로 나누어 설명하는 부분, 아버지로부터 양육방식과 어머니로부터의 양육방식의 차이와 그 결과로 인한 결핍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 특히 흥미로웠다.
빠르게 읽어나가면 잔소리를 듣는 기분밖에는 느껴지지 않는 책이다. 더 살아본 자가 덜 살아본 자에게 훈계하는 느낌도 든다. 그러나 천천히 신경을 써서 읽으면 모든 문장들에 의미가 담겨 있다. 작가인 에리히 프롬이 1900년에 태어났고 현대까지 오면서 심리학 등에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이 책의 모든 내용이 옳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 이런 사유를 펼쳤다는 것은 꽤 대단한 일이다. 늘 그렇듯이 잡아내야할 내용만 잡아내며 읽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조금 더 나이가 어렸을 땐 사랑의 운명론에 대해 집착했던 시절도 있었다. 알랭드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클로이에게 반하는 남자 주인공의 마음에 공감하던 기억도 남아있다. 그러나 지금은 프롬의 말대로, 사랑은 지속적으로 배워나가는 것이며 노력하는 것이라는 의견에 가깝다. 운명적인 두 남녀보다는 서로 애틋한 마음으로 노력하는 두 남녀가 보인다. 그 어떤 두 사람도 완벽하게 맞아떨어질 수는 없으며 그 어떤 사랑도 노력없이 지속되는 것은 없는 법이다.
어색한 문장들이 다소 아쉽다. 나중에 원서로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좋은 구절들을 기록해 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p.13)
사랑에 대해서 배울 필요가 없다는 태도의 배경이 되는 두 번째 전제는 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는 가정이다. (p.14)
세 번째 오류는 사랑을 ‘하게 되는’ 최초의 경험과 사랑하고 ‘있는’ 지속적 상태, 혹은 좀 더 분명하게 말한다면 사랑에 ‘머물러’있는 상태를 혼동하는 것이다.(p.16)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월요일부터 다음 월요일까지, 아침부터 밤까지 모든 활동은 일정하고 기성품화되어 있다. 이러한 상투적 생활의 그물에 걸린 인간이 어떻게 자신은 인간이고, 특이한 개인이며, 희망과 절망, 슬픔과 두려움, 사랑에 대한 갈망, 무(無)와 분리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단 한 번 살아갈 기회를 갖게 된 자임을 잊지 않을 것인가?(p.34)
어린 아이의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원칙에 따르고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는 원칙에 따른다.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이지만 성숙한 사랑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p.62)
두 사람이 서로 그들 실존의 핵심으로부터 사귈 때, 그러므로 그들이 각기 자신의 실존의 핵심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경험할 때 비로소 사랑은 가능하다. 오직 이러한 ‘핵심적 경험’에만 인간의 진실이 있고 오직 여기에만 생기가 있고 오직 여기에만 사랑의 기반이 있다. 이와 같이 경험되는 사랑은 끊임없는 도전이다.(p.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