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의 말들 - 이 땅 위의 모든 읽기에 관하여 문장 시리즈
박총 지음 / 유유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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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읽기의 말들

책을 읽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가면서 책을 선택하는 데에도 약간의 기술이 늘었다. 어쩐지 표지가 마음에 들어 집어 들고 내용을 조금씩 읽어보면 이 책이 나와 잘 맞을 놈인지 아닌지 어느 정도는 분간이 된다. 소개팅을 할 때조차도 첫인상에 어느 정도의 인상이 결정되고 조금의 대화만 나누어도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라고 확신이 되는 순간이 있는데 이런 인연의 맺힘은 책에서도 다를 바가 없는 모양이다.

조금만 읽어보려는 마음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읽게 되어서 대체 이 사람은 뭐야, 하고 작가를 검색해보니 목사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인격화된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나로서는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이 없지 않아 있다. 평소라면 바로 내려놓았을 법한데 이 책은 그런 이유로 내려놓기엔 꽤나 괜찮은 책이었다. 일단 책의 구석구석에 책덕후같은 느낌이 솔솔 풍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세상을 사랑하는 저자의 시선이, 그리고 그 와중에 세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 또한 지니고 있는 모습이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수많은 인용과 넘쳐나는 지혜 또한 한몫한다.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이들이 이 좋은 책을 놓칠까 아쉬운 마음이다. 결과적으로는 기독교에 대한 생각마저도 아주 조금은 개선된 기분이다.

짧은 글들로 이루어져있어 간편하게 읽기가 좋고 많은 문호들의 글이 인용되어 있어 내용이 풍성하다. 특히나 책읽기에 빠진지 얼마되지 않은 사람들이 읽기에 좋다. 이 책의 말마따나 평생 읽을 수 있는 책은 한정되어 있으니 좋은 책을 골라 읽는 것이 중요한데 내 마음에 콕 박히는 구절들이 자꾸만 나오니 그야말로 ‘가성비 갑’인 책이라고나 할까. 물론 저자는 ‘가성비’라는 말 조차도 책에 적용할 수 없다는 의견일 테지만 말이다.
또 하나 마음에 콕 박힌 부분이 있는데, 다른 건강보조식품은 먹지 않아도 책을 오래 읽기 위해 루테인은 섭취한다는 작가의 말이다. 그러니까 오늘은 루테인을 주문해야겠다👀

# 좋았던 구절들🌸
살풍경한 현실을 24시간 365일 내내 직면할 만큼 강한 이는 많지 않다. 나같이 유약한 사람은 가끔 책으로 달아나기도 해야 엄혹한 생을 지속할 수 있다.

문학을 함으로써 우리는 서유럽의 한 위대한 지성이 탄식했듯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며, 물론 출세하지도, 큰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가만히 글로 쓰인 텍스트는 독자에게 가 닿으면 폭죽처럼 터져서 표현으로 피어난다”고 멋들어지게 말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거기서 이웃의 고통을 덜어 내려는 몸짓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공감이란 것은 타자의 고통 앞에 나의 결백함을 주장하는 윤리적 알리바이가 된다. 공감하는 자아는 성찰하는 자아를 은폐하고, 연민하는 자아는 행동하는 자아를 차단한다.

연민의 눈물을 떨구는 위치에너지가 변화의 몸짓을 유발하는 운동에너지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공감하는 책읽기는 부르주아지 윤리를 확대, 재생산하는 기제로 전락한다.

처음엔 그녀를 오독해서 사랑에 빠졌다고 쳐도 강산이 세 번 바뀐 지금도 여전히 오독 중이다. 나는 어쩌면 그렇게 한 사람을 창조해 가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 역시 그녀에 의해 새로 쓰이고 있겠지.

빈민, 노숙자, 재소자 등과 함께 인문학 과정을 꾸려온 얼 쇼리스는 가난한 이들이 인문학적 사유로 시민의 자유와 책임, 권리의 의미를 깨닫게 될 때 기존 체계를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가 된다고 했다.

가장 안전한 사랑 속에 충분히 머물렀던 이가 가장 큰 위험을 감내하는 용기를 감행한다. 실제로 목숨을 내주는 사랑을 받았던 이는 제 목숨을 내주는 선순환을 만든다.

베스트셀러는 좋은 책이되 적당히 좋은 책이기 쉽다. 독자의 사유를 버리고 삶을 담금질해 주는 책, 그 과정에서 독자를 버겁게 하고 걸려 넘어지게 하는 진짜 좋은 책은 아무래도 많이 팔리기가 어렵다.

간직하고 싶은 문장을 타이핑해서 모아 두시라. 뛰어난 통찰이나 표현을 담은 문장, 나중에 기억해 뒀다 인용하고 싶은 문장, 새로운 어휘의 용례로 기억해두고 싶은 문장 등 어떤 것이라도 좋다. 그렇게 모인 구절을 자신이 관심있는 주제로 파일이나 폴더를 여러 개 만들어서 모아 두고 거기에 자신의 생각도 첨언해 보라. 그런 과정에서 사고가 종합적으로 발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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