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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뇌과학자의 뇌가 멈춘 날, 개정판
질 볼트 테일러 지음, 장호연 옮김 / 윌북 / 2019년 1월
평점 :
32.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p.30
‘맙소사, 뇌졸중이야! 내가 뇌졸중에 걸렸어!’
그리고 다음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우아, 이거 멋진데!’
일시적으로 황홀한 마비 상태에 빠졌다.
이 책을 읽게 만들어준 장면이 30쪽의 저 내용이다. 뇌과학자가 직접 겪은 뇌졸중은 일반인들이 겪는 뇌졸중과는 다를 거라 생각했다. 더군다나 그는 뇌졸중을 극복하고 뇌의 기능을 어느 정도 회복하여 이렇게 책까지 써낸 것이다. 물론 ‘정말로’ 저자가 이 모든 것을 다 서술했을까 라는 의구심은 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믿기로 한다. 믿지 않으면 억울하고 슬플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믿는 쪽이 좀 더 희망차기 때문에,
p.56
나는 여전히 이곳에 있지만 현재까지 내 삶이 누려왔던 풍성한 감정적, 인지적 연결 능력이 사라졌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나일까?
이 책은 뇌의 손상으로 인해 결여된 저자의 모습을 통해 한 인간이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 ‘나’라는 개인이 특별하고 유일한 개인으로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뇌졸중에 걸린 저자는 일반적인 속도로 말하는 간호사의 말에 잘 반응하지 못한다. 아니, 반응은커녕 제대로 듣는 일 조차 어렵다. 그리고 사실은 제대로 듣는 일이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만큼 뇌의 손상은 우리의 인지 능력을 훼손하고 환경과 소통하게 만드는 일을 어렵게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녀는 ‘그녀’일까?
p.63
크게 소리 지른다고 해서 내가 말을 더 잘 알아듣지 않아! 날 두려워하지 마! 좀더 가까이 와. 부드럽게 대해줘. 천천히 말하라고. 또박 또박 명료하게. 한 번 더! 제발 천천히 또박또박. 거칠게 굴지 마. 안전한 장소가 되어줘. 나는 우둔한 동물이 아니라 상처 입은 동물이야. 무방비 상태로 열려 있어.
p.69
여러분의 타고난 능력이 체계적으로 하나씩 의식에서 사라져가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보라.
만약 그녀가 뇌를 회복하기를 거부하고 우뇌의 세계에 머물러 있었다면 우리는 뇌졸중이 걸린 사람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특성을 잃은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치료를 했고 자신의 원래 모습을 어느 정도 회복했으며 심지어 강연에 오르기까지 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일련의 과정을 이 책으로 출판했다. 그런 그녀 존재의 유일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와 다른 뇌졸중 환자를 가르는 기준은 그녀가 회복을 했다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회복을 하지 못해 여전히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그들의 삶이 끝났다고 말할 수 있는가. 혹 그들도 저자의 어머니처럼 아주 정성스러운 간호인을 통해 회복할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너무 빠르게 그들의 가능성을 포기해버리는 것은 아닌가.
간호사인 어떤 분께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저자처럼 극복하는 케이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한 간호사에게 배정되는 환자의 비율이 너무나 많은 까닭이다. 사실 저자의 경우 훌륭한 어머니가 1:1로 그녀를 전담하여 치료하고 가르쳤기 때문에, 더군다나 그 어머니가 너무나 훌륭한 선생님으로서 가르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특별한 어머니를 두지 않은 일반인에게 뇌졸중을 극복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환자의 치료를 돕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어머니는 환자의 스트레스에, 그리고 끝없는 실패와 좌절에 내몰리고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 사람을 회복하게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지.
p.157
내가 끈질기게 다른 것에 마음을 집중하지 않으면, 원치 않는 이 회로는 힘을 얻어 어느덧 내 마음을 점령한다. 이에 맞서기 위해 나는 필요할 때마다 의식을 집중시킬 수 있는 세 가지 사항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1. 매력적이라 생각해서 더 찬찬히 살펴보고 싶은 것.
2. 내게 대단한 기쁨을 안겨주는 것.
3. 내가 하고 싶은 것.
뇌가 자꾸만 원치 않는 회로의 방향으로 흘러가게 할 때 쓰기 위한 자신만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는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인 줄 알았던 지인이나 친구, 가족들이 나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그럴 때 나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해 어떤 전략을 취할 것인가. 내게는 스트레스 단계별로 내가 취하는 행동이 있다.
1단계: 책 읽기, 음악 듣기, 커피 마시기, 글쓰기, 맛있는 것 먹기(치킨 같은 거..)
2단계: 연주하기, 맛있는 것 먹기(좀 더 많이, 좀 더 비싼 것을 먹는다), 친구 만나기
3단계: 엄마와 통화하기, 웃긴 예능보기(뒹굴거리면서), 엄청 많이 잠자기.
이런 것을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뇌는 내가 원하지 않는 회로로 움직일지도 모른다.
p.180
다행히도 오늘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는 어제의 모습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180쪽의 이 문구는 꽤나 희망찬 이야기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 다르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못났고 아무리 후회되고 실망스러운 일을 했더라도 오늘의 나는 그러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 희망으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