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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33.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과학책이지만 역사서에 가까운 책이다. 현재의 과학 발전에 오기까지 이를 위해 공헌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주, 지구, 생물학, 화학 등 과학 전반에 대한 역사를 훑어보고 싶은 사람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빌 브라이슨의 재치있는 언변이 두꺼운 책을 읽게 만드는 동력을 준다. (난 두꺼운 책이 정말이지 싫다. 웬만한 두꺼운 책들은 얇게 만드는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쉽게 쓴 책처럼 느껴진다.) 이 책의 경우 아주 두껍고 무식하게 크며 표지가 정말 못생겼기 때문에 나 같은 30대 초의 여자 사람에겐 너무나 매력 없게 느껴지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완독한 것은 물론이고, 이 거대한 두께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심지어 지금 추천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방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고 인간 역사의 재밌는 부분들이 다루어졌다.
과학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모든 과학적 사실이 우리와는 다른 천재 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졌을 거라는 추측이다. 이 책을 읽으면 알겠지만 때로는 우연에 의해, 그리고 아주 할 일 없는 사람들에 의해, 혹은 논쟁과 반박의 과정에 의해 과학적 사실이 밝혀지는 경우도 많다. 물론, 현재는 많은 과학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새로운 사실을 얻는 과정이 어려울 수도 있겠으나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그리고 일반인에 의해 밝혀질 부분들 또한 많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인슈타인이나 뉴턴같은 천재들에 의해 이미 대부분의 과학이 밝혀졌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제 더 이상 밝혀질 것이 없다고 불평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위대한 발견은 항상 우리가 확실하다고 믿은 것들을 의심하는 데에서 시작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는 시간은 절대적일 것이라는 불변의 진리처럼 여겨지던 것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었고 또 양자역학은 우리가 아는 모든 것들이 고전 물리학의 원리를 따를 것이라는 믿음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이미 밝혀지고 확실하다고 믿었던 것들을 의심해보는 과정을 거친다면 우리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그간 밝혀지지 않은 우주의 비밀이 밝혀질 수도 있는 것이고, 생명의 비밀이, 지구 구조의 비밀이 밝혀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인상 깊었던 부분 중에 하나는 인간이 비교적 가까운 해양이나 지구 내부 구조에 대한 지식보다도 저 멀리 우주에 있는 것들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바다 깊숙한 곳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 지도는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 지구 내부에 대한 이해 또한 그렇다. 지진이나 해일 같은 천재지변에 완벽하게 대비하기 어려운 것도 무지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지질이나 해양학보다 우주론에 관심을 갖는 과학자가 더 많은 걸까.
어쩌면 과학자들의 허영심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다. 가까운 것을 연구하는 것보다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것을 연구하는 일이 더 신비롭고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어려운 문제야말로 천재들의 학구열을 불타오르게 만드는 것이겠지만, 어쩌면 우리 곁에 있는 것이 더 어려운 문제일 수도 있다. 아직 시도조차 하지 않아 방치된 것일지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좋아한다면 강력하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