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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만의 꽃을 피워라 - 법정스님의 무소유 순례길
정찬주 지음 / 열림원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는 30여 년 동안 특유의 구도적 문체로 불교적 사유가 담긴 산문과 소설을 발표해온 작가 정찬주가 법정스님의 행적과 그에 따른 의미는 물론, 저자 자신의 내면을 찾아가는 내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순천에 있는 송광사 불일암 순례를 시작으로 시자생활을 하셨던 화개의 쌍계사 등 법정스님이 수행했던 암자와 절을 돌아본다. 저자는 법정스님을 이끌었던 구도의 길을 따라가며, 스님이 몸소 체화했던 무소유 사상의 성립부터 완성까지의 전 과정을 낱낱이 살펴보고 있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아라'
스님의 수행처를 다 순례하는 동안 나는 스님의 무소유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더 확인 할 수 있었다. 스님은 꽃 피듯 물 흐르듯 사는 것을 무소유의 삶이라고 사유하신 것이 분명하다.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으므로 진정으로 홀가분해지고 자기다워지는 삶이 무소유의 삶인 것이다.(p.13)
불일암은 송광사 뒷산에 위치해 있으며 이 시대의 정신적 지주이신 법정스님께서 1975년부터 1992년까지 17년간 기거했던 암자로 유명하다. 법정스님을 위해 상좌 스님들이 손수 만든 두 칸짜리 흙집인 서전에 대한 소개내용도 인상적이다. 서전이 완성되어갈 무렵 법정스님이 상좌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중에는 전기, 전화, 수도를 서전에 끌어들이지 말기를 당부하셨다고 한다. 문명의 과잉으로 인하여 청빈과 덕이 상실되는 것을 경계하라는 의미로 생각된다. 누구에게나 인생을 낭비한 죄를 묻는 불일암의 '빠삐용 의자'에 얽힌 사연도 만날 수 있다.또한 저자는 이곳 불일암에서 법정 스님과의 인연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법정스님의 제자되기를 작정하고 불임암을 찾아 저잣거리에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무염'이라는 법명을 받았던 일 등을 회상하고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이지 않는 상처가 있는 법이다. 겉으로는 추억의 사진 한 장처럼 아름답고 멋진 청춘의 시간이었던 것 같지만 내면에는 사진 찍히지 않는 아픈 상처가 한두 가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바다 밑의 조개가 자신의 상처를 진주로 만들어내듯 세상에는 자신의 상처를 반짝이는 보석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도 있으니 바로 그런 분이 아닐까 싶다."(p.90)
맑고 향기로운 삶과 글로 무소유의 의미를 일깨워준 법정 스님의 육신은 떠났지만 무소유 정신과 청빈한 삶, 그리고 지혜가 녹아든 말씀은 우리 사회 곳곳에 녹아있다. 종교를 뛰어 넘어 우리에게 깊고 넓은 울림을 여전히 안기는 것이다. 꼭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더라도 우리 전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조용한 절을 찾아다니다 보면,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나름대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느껴진다. 한꺼번에 읽어도 좋은 책이 있는가 하면 아껴놓은 차를 타마시듯 조금씩 음미하며 읽어야 하는 책이 있다. 이 책은 분명 후자쪽에 가까운 책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