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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효서 : 명두 Relics ㅣ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78
구효서 지음, 미셸 주은 김 옮김, 전승희, 데이비드 윌리엄 홍 감수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11월
평점 :
이 소설은 영어로 한국의 우수한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에 한국문학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시리즈중 한권으로 읽게 되었다.
갓태어난 아기를 며칠 굶긴 뒤 어두운 항아리에 담아 뚜껑을 닫고 살고자 발악하는 아기의 손가락을 잘라 명주천에 싸서 100일동안 가슴에 두루고 지내면 죽은 아기를 얼러서 원혼을 마음대로 부릴수 있게 된다. 그 유골을 명두라 한다. 명두는 150년을 살았다가 20년 전에 죽은 굴참나무를 화자로 하여 죽음과 생명, 자연의 섭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명두’는 20년 전 가루후추와 제초제에 의해 죽었던 굴참나무에 의해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실 이야기 초반에 갑작스레 빈촌에 대대적인 개발 바람이 불어 닥쳐서 산자락에 있던 판자촌이 통째로 부서지고, 산뜻한 콘크리트 마을이 산중턱에 새로 생기게고 큰 길이 뚫려 숲에 있던 굴참나무가 어느 새 황량한 길가에 우두커니 서 있다는 내용에서 왠지 박완서님의 ‘옥상위의 민들레’처럼 현대인의 이기주의와 물질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과 인간적 가치의 회복을 주제로 하는 소설이겠거니 하고 섣불리 판단했다. 그러나 그런 내 예상은 그 다음 몇 단락을 더 읽어 보고나서 산산조각 나버렸다.
부모가 죽으면 자식은 부모를 땅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 그 무덤위에는 세월이 지나도 잡초하나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너무 메마른 가슴이라서.
그만큼 자식을 먼저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우리로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나무는 개발 때문에, 개인의 욕심 때문에, 후춧가루 두 통과 제초제에 의해서 죽는다. 명두집은 이 나무를 개발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몸을 동여매는 등 여자의 몸으로 두려움이 없는 것처럼 싸운다. 그녀의 아이를 세 명이나 묻은 자리가 이 나무 아랫니기 때문이다. 50년 가까이 그녀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나무에 온다. 그러다 오지 명두집이 오지 않는 날이 생긴다. 그녀의 죽음이 임박한 날이다.
작가가 굴참나무를 화자를 삼은 점은 굴참나무가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인공 명두집은 오래전 누구나 다 어렵고 가난한 시절이라 자식마저도 나은지 얼마 안된 핏덩이를 죽이던 시절에 굴참 나무 밑동에 두 아이를 묻어야만 했다.
살기 위해서 자신의 아기를 죽여야만 했던 명두집은 서슬퍼런 그 원혼으로 병든 자를 고쳐주며 개발 바람이 불어닥친 마을에서 굴참나무만은 지켜내려 한다. 그러나 굴참나무마저도 욕심 많은 사람에 의해
죽게되고 가난하던 마을도 길이 뚫리고 개발바람으로 새로운 주거 단지도 생기게 된다.
명두집도 나이가 먹어 결국 죽게 되는데 그녀가 사람들에게 늘 하던 말은 "불망." 이었다.
그건 죽음을 잊지 말라는 것이었고,죽지 않으려면 죽는걸 겁내지 말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