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라오찬 여행기
류어 지음, 김시준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1월
평점 :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개인, 국가, 사회, 민족, 종교따위에 대하여 여러 가지 느낌을 가지고 있다. 그 감정이 깊으면 깊을수록 울음도 더욱 통렬한 것이다. 이것이 홍도(洪都) 백련생(百鍊生)이 『라오찬 여행기老殘遊記』를 쓰게 된 이유이다.(7쪽, 서문 중에서)
소설의 제목중 라오찬(老殘)이란 늙고 힘없는 사람이란 뜻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국어에서 老란 의미는 유교에서의 연장자나 자신보다 나은 사람에 대한 존경의 의미도 있다. 그러므로 늙고 힘없는의 의미보다는 소설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스님의 이름에서 따온' 殘'字에서 존경하는 뜻의 老를 붇인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은 저자 류어가 1903년에 쓰기 시작하여 이듬해 탈고 하였고 이 책에 같이 수록되어 있는 속집은 1905년에 쓴 소설이다. 류어가 소설의 주인공인 라오찬을 내세워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길과 평소 그가 생각해 오던 여러가지분야에 대한 사상까지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 소설은 철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한 자전적인 성격의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제국주의의 침탈과 관료의 부패로 스러져가는 청나라의 실상을 때로는 사실감 있게 때로는 은유적으로 표현해냈다. 소설이 쓰여진 시기는 중국 근대 청나라 말기로 제국의 열강들이 중국을 침략했던 시기 였으며 중국관리들의 부패도 무척 심했던 시기였다. 백성들은 관리들의 핍박에 시달렸고 민심은 흉흉했으며 나라는 점점 쇠퇴일로로 치달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많은 작가들이 소설의 힘을 빌어 관료 사회의 부정과 부패를 폭로하였고 작중인물의 입을 빌어 서술되고 있는 동서문명의 충돌에 대한 사상적 담론과 논설을 통해 근대의 초입에 서서 제국주의의 침탈 앞에 쇠잔해가던 청나라의 현실을 아파하는 시대에 임하는 작가의 사상을 엿볼 수 있었다.
"죄 없는 수많은 선객들의 생명이 아무 이유도 없이 몇 놈의 뱃놈들에게 짓밟히다니! 이런 억울한 데가 어디 있어!"(19쪽)
『라오찬 여행기』는 견책소설이라는 특이한 분야의 대표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소설은 중국의 의협소설.공안소설과 전통과 서구로부터 소개되어 들어온 탐정 추리소설의 영향을 받아 여러 사건을 해결하는 라오찬의 활약이 생동감있게 묘사되어 있다.
첫머리부터 당시의 중국에 대한 비판적 상징으로 시작된다. 큰 배의 길이 이십삼사 장(丈), 조타를 관장하는 사람들 여덟 개의 돛등을 통해 당시의 조종관료들을, 삶을 의지할 데가 없는 듯한 모습의 배 위의 손님들은 국민들이며, 일장이나 되게 파손된 곳이 있어서 점점 침수되고 성난 파도에 표류하는 큰 배는 러시아와 일본의 전운과 서구 열강의 침략 앞에서 몸부림치는 중국을 비유하고 있다.이 밖에 겨울철 꽁꽁 언 황하에 갇힌 뱃길을 뚫기 위해 밤새 혹한 속에 얼음을 깨는 백성들의 고초며, 몸을 파는 기녀들의 입을 통해 신랄하게 펼쳐지는 지식인들의 가식과 허위에 대한 폭로, 아버지의 권세를 믿고 횡포를 부리다 경을 치는 쑹 공자 이야기 등은 모두 그 시대 현실을 다양한 시각으로 보게 해준다. 이러한 고도의 상징과 비유, 함축으로 엮여진 이 소설은 예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문체와 인물과 풍경을 사실적이면서도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소설로서 중국의 현대소설과는 또 다른 맛이 가득찬 소설로 기억될것 같다.
꿈의 정경이라는 것이 비록 이미 환상이고 허상이라서 다시 복원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나, 꿈속의 나는 엄연히 서술할 만한 어떤 실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백 년 후의 내가 어디로 돌아갈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꿈과 같은 백 년의 정경은 있어도 이런 정경 속의 나를 서술할 것은 없다. 인생 백 년을 꿈에 비유하나 오히려 백 년이 꿈보다 허무하다고 생각된다. 아! 꿈보다 더 허무한 백 년을 왜 그다지도 부지런하고 세심하게, 바쁘게, 시끄럽게 살려는 것인가?( 341쪽,속편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