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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 희망도 매력도 클라이맥스도 없는 낙원, 미국 문명 기행 ㅣ 산책자 에쎄 시리즈 3
장 보드리야르 지음, 주은우 옮김, 유진 리처즈 그림 / 산책자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별의 아메리카를 찾아다녔다. 사회적·문화적 아메리카가 결코 아니라, 고속도로들의 텅비고 절대적인 자유의 아메리카를. 습속과 심성의 깊은 아메리카가 결코 아니라, 사막의 속도의,모텔과 광물성 지표면의 아메리카를.나는 영화 대본의 속도에서, 텔레비젼의 무심한 반사광에서, 텅 빈 공간을 가로질러 밤낮으로 상영되는 영화에서, 도로의 표지판들, 이미지들, 얼굴들, 의례적 행위들의 놀라우리만큼 감정 없는 연속들, 실질적으로 우리들 자신의 세계인 원자핵의 세계이자 핵심이 빠진 세계에 가장 가까운것인 이 연속들에서, 그리고 유럽식 오두막집들에서까지 그것을 찾아다녔다.(p.17)
미국에 거주하거나 여행을 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일반적인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평가는 믹구인들은 긍정적인 것만 기억하며, 지역 사회들은 자기 고장에서 일어난 위대한 사건만을 선전한다. 기념비와 기념물을 세우고 역사적 사옥을 보존하는 사람들은 대개 백인 사회의 중심 인물들이다. 최근에는 마틴 루터 킹의 이름을 딴 도로와 그의 기념비가 곳곳에 생겨나고 있지만 미국인들은 여전히 백인 우월주의적 환경에서 살고 일한다. 미국 전체가 그렇지만 특히 남부에서, 심지어는 흑인 대학의 캠퍼스에서조차 현장에 세워진 기념비와 기념물, 지명들을 통해, 남부 재편입 이후 흑인들을 다시 2등급 시민으로 되돌려 놓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뿐 아니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노예의 사슬로 묶어놓기 위해 싸웠던 사람들까지도 찬양하고 있다.
장 보드리야르는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곤란한 사람이다. 그는 사회학자이면서, 철학자이면서, 에세이스트면서, 저술가이면서, 평론가요, 비평가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그 중에 아무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규정한다.“ 나는 철학자도 사회학자도 아니다……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지만, 내 자신이 사회학자도 아니며 철학을 가르치는 철학자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 나는 이론가이고 싶고, 궁극적으로 는 형이상학자이지만, 모랄리스트인지 어떤지는 모르겠다……나의 작업은 대학교수로서의 작업은 결코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문학이 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발전하고 있지만, 덜 이론적인 것이 되고 있으며, 증거를 제시할 생각도 참고문헌에 의존할 생각도 없다.”( 배영달, 보드리야르의 문화읽기, 백의, 1998)
장 보드리야르는 프랑스의 구조주의가 구축한 사회 인식과 인간 해방을 위한 실험들을 응용하고 있으며, 그와 동시에 맑스의 거대담론을 재해석함으로써 현대사회를 새로운 시각에서 재조명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큰 별' 혹은 '하이테크 사회이론가'라고 불리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상가 중 한 명으로써 ‘시뮬라시옹(가장, 위장)’이론은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실재가 실재가 아닌 것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설명한 '쉬뮐라시옹 이론'은 현대를 풀이하는 독창적인 이론으로 평가받는다. 사물을 복제한 이미지, 기호들로 분석한 그의 이론은 당시로는 매우 파격적인 것들이었다. 원본과 복사본,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와 구분이 없어진 현대사회를 '복제의 시대'라고 말한 그의 평가는 현대사회에 대한 가장 단적인 해석이라고 평가받으며 "현대사회가 곧 시뮬라시옹이다"라는 명제가 유행하게 된다. 70년대 중반 이후에 그는 기존의 이론적 토대와 실천방안 모색을 과감히 탈피하는 새로운 실험을 단행하였고, 오늘날까지 그러한 실험을 지속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1968년의 혁명세대로 맑스의 논의를 재해석하는 학계의 주류에 있던 그가 돌연 7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실험을 단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원래 파리 그라세 출판사에서 1986년에 출간되었고 1988년에 영역되어 영미학계에서 커다란 반향을 이끌어 내었다. 1994년도에 영어판 중역으로 국내에 선보였던 책을 '산책자'에서 완역으로 다시 낸것이다. 보드리야르의 미국여행 에세이 '아메리카'는 꿈도 아니고 실재도 아닌 하나의 극실재라고 말하는 장 보드리야르의 아메리카 탐색기로 보드리야르의 ‘형이상학적’인 상상력과 극도로 사질적인 관찰력이 투영된 책이다. 그의 형이상학적인 여행은 사막과 풍경과 속도와 시간에 대한 그의 경험, 미국의 도시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특징들에 대한 그의 경험을 반영하고 있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리면서 맞닥뜨린, 소실점이 펼쳐진 풍경의 극한을 사유하는 보드리야르는 '여행'에 대한 지금까지의 관념에 반기를 든다. 보드리야르의 ‘형이상학적’인 상상력과 극도로 사질적인 관찰력이 투영된 기행 에세이다. 미국 문화는 사막의 상속자다. 이곳의 사막들은 도시와 대척점에 있는 자연이 아니다. 사실, 목표가 없는 여행, 따라서 끝없는 여행이라는 개념은 단지 점진적으로만 발전될 뿐이다. 관광 여행같고 그림같은 순회를, 진기한 물건을, 심지어는 경치까지도 거부하기 순수여행에 관광 여행 혹은 여가활동 보다 더 낯선 것은 없다. 이것이 왜 순수여행은 사막의 광대한 진부함 혹은 똑같이 사막 같은, 거대도시의 진부함에서 가장 잘 실현될 수 있는가 하는 이유다. 풍습을 발견하는 것을 훨씬 너머, 중요한 것은 가로질러 여행하는 공간의 비도덕성이다. 책의 내용은 철학적 사유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는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을 때 느끼게 되는 점은 옮긴이의 역주가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그만큼 이 책을 번역할때의 역자의 어려움이 많았음을 느껴지는 책이다. 또한 어떤 측면에서는 역자의 배려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역자도 어떤 독자들에게는 많은 역주가 책을 읽는데 방해요소가 될수도 있겠다고 우려하는 만큼 한점이 있었던것이 한가지 아쉬운 점이다. 역자는 이 점에 대해 이 책에서 전후 맥락에 대한 아무런 설명 없이 등장하는 지명이나 인물, 사건 둥네 대한 해설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느 데 도움을 주는 정도가 크다고 판단에서 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부분에 신경이 쓰이는 독자들은 이를 감안하여 독자들은 역주를 읽지 말고 통독하고 난 후에 역주를 다시 참고해 가며 읽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