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핏 쇼 워싱턴 포
M. W. 크레이븐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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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포가 뭔가. 주인공 이름이다. 미국과 핵을 공유하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는 워싱턴 선언과는 상관없으나(정치 과몰입한 거 아니다) 도시 이름을 따온 건 맞다. 이름에 얽힌 사연이 후속편 밑밥이기도 하겠다. 피해자를 불에 태워 죽이는 연쇄살인이 발생한다. 정직 상태에 처해 있던 경관 포가 불려나와 대활약을 펼친다. 표지에는 잘 탄 성냥 대가리 다섯 개가 그려져 있지만 이멀레이션 맨이 실제로 사용하는 도구는 지포라이터다. 중요하지 않다. 제목이 ‘퍼핏 쇼The Puppet Show’인 건 중요하다. 최근에 내가 본 puppet 단어는 대니 하이퐁이라는 저널리스트가 쓴 글 속에 있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문장이다. ‘So this puppet leader in Asia is parking US nuclear weapons in the region, (…)’ (정치 과몰입한 거 아니다2)


(다음어학사전) puppet: 1. 인형 2. 꼭두각시 3. 괴뢰


괴, 괴뢰(!) 언제 적 봤던 단어인가. 어 롱 롱 타임 어고~ 괴뢰 쇼 술 취한 퍼핏 리더는 마이크와 함께 놔두고 <퍼핏 쇼>로 돌아간다. 꼭두각시에 연결된, 보이지 않는 실이 말 그대로 실마리를 이룬다. 무슨 다 타버린 성냥 대가리 같은 소리냐. 스포 0인 리뷰를 쓰기 위한 헛소리다. 사실 한 마디면 된다. 재밌다! 버스에서 읽었다. 366쪽 마지막 문장을 눈에 넣었을 때 큰 숨 한 번 쉬고 책을 덮었다. 367쪽을 훑지 않으려고 무척 애썼다. 쾌락주의자답게 즐거움을 잠시 유예하기 위해서였다. 집+맥주+두근두근 스릴러 결말 조합 말이다. (냉장고에 맥주가 있는) 집에 도착하고 나서 후두둑, 큰 비까지 쏟아져 환상적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내 문장, ‘비 오고, 냉장고에는 맥주가 있다’로 끝나는 일기를 쓸 수 있는 밤이기도 했다. 내 문장 중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건… 안다. 당신은 알고 싶지 않으시다. 지면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적지 않겠다. (적는 게 지면을 더 아꼈겠다만, 어쩔)


사람 죽이는 이야기(응?)를 왜 이렇게 읽어대는 걸까. (나 말이다) 나쁜 놈이 결국엔 죗값을 치르리라는 걸 알아서?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말이지? 무엇을 위해서? 정의? <퍼핏 쇼> 등장인물들 대화를 보면서 새삼 깨달았다. 정의보다는 복수가 실현되는 걸 보는 게 좋았던 듯하다. 정의는 거창하고 멀다. 복수는 개인적이고 가깝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사형(私刑)이 집행되는 장, 소설이다. 피해자 혹은 피해자였던 가해자가 공권력에 기대지 않는, 기댈 수 없는 이유는 고위 권력의 공고한 성(城)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풍경이다. 검사 신성가족은 서로를 ‘배려해’ 기소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증거가 있어도 빠져 나간다. 더딘 정의 실현보다 소설 속 강렬하고 빠른 복수는 훨씬 큰 위안이 돼준다. 친구가 돼준다.


복수보다, 혹은 복수만큼 궁극적인 목적을 생각해본다. 사과 아닐까. <퍼핏 쇼>에서 복수하는 사람이 복수 당하는 자로부터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살해 장면을 진행형으로 보여주지 않기에 알 수 없다.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 눈물이 난다. (‘미안하다’는 <퍼핏 쇼>에 한 번 나오는데 같은 맥락은 아니다만 그래도 약간 뭉클했다) 요는, ‘미안하다’는 진짜 이상하다. 을 입장에서 하게 되고 그래야 하는 말인데 하고나면 갑이 주로 운다. 이쪽 편의 복수와 저쪽 편의 사과. 그게 그렇게 힘든 모양이다. 그렇게 힘든 게 소설 속에서 이뤄지는 게 보고 싶어서 계속 읽는다. 사람 죽이는 이야기든 살리는 이야기든 아무튼 소설을.


아까 마이크 살포시 쥔 채 일시정지 당했던 괴뢰 지도자 다시 재생해보자. 또 말하지만 내가 정치 과몰입한 거 아니다. 뉴스를 찾아보지 않아도 귀에 들어오는 소리가 ‘pathetic’(대니 하이퐁)할 뿐이다. 프리덤, 자유, 민주주의, 위협, 프리덤, 자유, 사기꾼, 프리덤, 자유, 핵, 핵, 자유, 무릎 꿇을 필요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선 출마 선언문을, 이후 모든 연설에서 줄기차게 재활용하는 빈곤함이여. 자신이(!) 뭐가 그렇게 억울하고 뭐에 그렇게 분노하는지 도대체가. 정치인이여, 프리드먼 말고 소설 좀 읽기를. 죽이도록 복수하고픈 마음들과 진정한 사과의 힘을 깨닫기를. 괴뢰 지도자 영어 좋아하시던데. 카카오번역베타에 문장 하나를 넣었더니 다음 영어문장을 준다. 내가 쓰려고 했던 문장에 인공지능은 ‘Why don't you’를 덧붙이고 끝에 느낌표 대신 물음표를 넣는다. 나보다 친절하다. Why don't you step down and read a novel?


괴뢰 지도자는 보고 싶지 않고 워싱턴 포는 계속 보고 싶다. 워싱턴과 퍼핏이라는 단어 태그 말고는 둘이 하등 상관이 없다. 실례했다. 포는 정의롭다. 정의감이 끓어올라 순간 발끈하며 초인 근력을 보여주는 건 때로 닭살스럽다만, 그 역시 통쾌해서 사이다 마신 셈 쳤다. 포가 너무 올곧아서, 약점 소유자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먼 그대’ 같다. 작가라고 모를 리 없어 틸리 브래드쇼가 우리에게 왔다. 강력한 두뇌와 빈틈, 동료이자 친구. 따라서 뭐다? 우리의 친구다. 젊고 똑똑한 브래드쇼의 성장과 변화가 밑밥1, 워싱턴 포 이름과 관련한 과거와 치유가 밑밥2, 범인읍읍읍읍(스포 0!)이 밑밥3으로, 후속편 기대하게 된다. <퍼핏 쇼>의 영리한 결말과 밑밥이, 혼자서도 시리즈로서도 멋지다. 포+브래드쇼 웰컴!


브래드쇼가 뭔가 이상하다는 듯 지도를 보고 인상을 썼다.

“왜 그래요, 틸리?”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거 말이 안 되는데요, 포.”

“뭐가요?”

“내 모델에 맞지가 않아요.”

“설명해봐요. 크레용 기법으로 부탁해요.” (359)



P. S. <타이탄의 세이렌>(커트 보니것)에 의하면 우리은하 지구 영국 평원에 배치된 거대한 돌들은 트랄파마도어에서 보낸 메시지다. 타이탄에 이십만 년 간 정박하며 뷰어로 메시지를 읽은 샐로가 번역해준 의미는 다음과 같다.

“교체 부품을 최대한 빨리 배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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